레스큐 시스템 400화
‘생명감지Ⅲ’로 알아낸 것은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빠와 딸들인가?”
톰이 신음했다.
아버지로 보이는 이가 작은 여자아이 두 명의 위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형상이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구급대 호출해 주세요.”
수혁은 톰에게 부탁하고는 요구조자에게 다가갔다.
‘척추가 부러졌어.’
아니, 부러진 것은 척추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딸들을 티끌만큼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듯, 온몸으로 돌의 무게를 견딘 덕분에 전신의 뼈 중 온전한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팔과 다리도 부러졌고, 젠장. 두개골도…….’
이런 상태로 숨이 붙어 있으면 그건 기적이었다.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이 몰려왔을 테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쇼크사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도 숨이 끊어진 아버지는 여전히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수혁이 아버지를 향해 속삭였다.
우리가 왔다고.
그러니 이제는 몸에서 힘을 풀어도 된다고.
수혁이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쓰다듬자,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수혁은 그런 아버지의 몸을 들어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아래에 깔려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정신을 잃은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얼마나 슬펐을까?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무거운 돌을 지탱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은 잠이 든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생명을 바쳐가며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다 혼절한 것이다.
수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아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아버지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몇 군데의 찰과상을 제외하면 두 딸은 무사했다.
“지금 바로 온다고 하는군.”
FILO의 구급대는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지의 구급대를 호출했는데, 다행히 근처에 있었는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입니까!”
구급대는 중국말로 소리를 질러댔고, 수혁이 손을 들어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들은 FILO라는 글자를 보고는 잠시 멈칫-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라는 듯 신속하게 아이들을 들것에 실어 옮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안 좋군.”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톰이 중얼거렸다.
현장에 도착해 처음으로 본 것이 요구조자의 사체다.
당연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앞으로 자신들은 수백, 수천 구 이상의 사체들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안타까워할 수는 없었다.
물론 가슴이 먹먹하고, 슬픔이 몰려올 것이다.
그런데도…….
“움직이죠.”
멈춰 있을 시간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들을 살리려면 감상에 빠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 움직여야지.”
톰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싸늘한 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의 사체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다른 요구조자가 있는 곳을 향해서.
* * *
“젠장, 하필이면!”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던 참이었다.
수혁에 대한 이미지가 저 깊은 곳에서부터 퇴색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차츰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중국에서 큰일이 나버렸다.
‘그놈이라면 거기서도 또 활약을 할 테지.’
수혁의 능력과 힘, 그리고 FILO의 자금력이라면?
수혁이 눈부신 활약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현성은 그 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FILO가 조용한 것이 조금 의아하긴 했다.
그쪽에서도 수혁이 메인이니, 어떻게든 반응을 보일 거라고 했는데 조용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터졌으니 이젠 그럴 정신도 없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언론플레이 따위를 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른다.
수혁의 이미지를 시궁창에 처박고, FILO라는 단체를 한국에서 몰아낼!
강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들었다.
“아, 날세.”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현성과 끈이 닿아 있는 기자였다.
당연히 삼류 찌라시나 끄적여대는 곳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한국의 3대 메이저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였던 것이다.
“내가 이전에 말했던 것 있지 않나? 그래그래, 그거 말일세. 이제 슬슬 터트려도 될 것 같네만.”
음흉하다.
그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이 적기인 것 같으니, 한번 제대로 써서 터트려 보게.”
파급력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혁의 얼굴에 먹칠할 정도는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 땅에서 얼굴 들고 다니긴 힘들 거다.’
그 정도면 된다.
감히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대가로는 말이다.
전화를 끊은 강현성은 기분이 좋은 듯 허허- 웃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내일 아침이 기대되었다.
* * *
“조, 조금 쉬었다 할까?”
박상태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손민준을 향해 물었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상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인 손민준도 지칠 정도였다.
그러니 박상태의 상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민준 역시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하던 차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에 널려 있는 잔해 위에 걸터앉았다.
“후아!”
마스크를 벗자 상쾌한 공기가…….
“젠장.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낫겠다.”
상쾌한 공기는 개뿔!
주변이 온통 불길로 둘러싸여 있었는지라, 매캐한 연기 냄새만이 가득했다.
결국 둘은 다시 마스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갑갑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 참는 수밖에.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현장에 도착한 지 다섯 시간 정도 흘렀다.
그간 두 사람이 구조한 이들만 2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시체는 그 몇 배에 달했고.
구조한 이들마저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으니, 아마 사망자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다른 쪽은 어떻다디?”
“율리안 조도 저희와 비슷한 상황이랍니다.”
“수혁이네는?”
“거긴…….”
손민준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런 걸로 경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났던 것이다.
“왜? 뭐 한 100명쯤 구조했대?”
“두 시간쯤 전에 그랬으니, 지금은 더 많겠죠.”
“……그, 그래?”
박상태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수혁이라면 그럴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들으니 수혁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그놈 같은 애들이 몇 명만 더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랬다면 구조 속도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을 것이다.
물론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세상에 그놈 같은 사람이 더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이제 슬슬 다른 지원들도 도착할 때 됐지?”
“조금 전부터 중국 소방관들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대한 땅 곳곳에 퍼져 있던 소방관들이 허난성에 몰려들고 있었다.
수십? 수백?
대륙 스케일답게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아마 만 단위의 인력이 투입될 거라고 하던데요. 거기다 군인들도…….”
“그러면 좀 여유가 생기겠네.”
박상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들만으로는 턱도 없을 정도였다.
수혁이 아무리 날고뛴다 해도, 한계는 명확했다.
재난 범위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데, 인력은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수만 명의 인력이 지원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원을 보낼까요?”
“보내지 않을까?”
한국의 소방력은 세계에서도 탑급에 속한다.
능력에 비해 그 대우가 개똥 같긴 했지만, 어쨌든 타국에 지원을 보낼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니 이번에도 지원을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보낼 테고.”
이만한 재난은 몇십, 몇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재난이었다.
이런 국가적 재난 앞에서 인류는 항상 힘을 합쳐왔다.
중국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국가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지원을 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순수하게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는 곳도 있을 것이고, 이 기회에 빚을 만들어놓겠다는 곳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지금 이곳에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요.”
“늦어도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올 거다.”
해외 지원을 몇 번 나가본 박상태는 대충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두 사람은 그 후로도 잠시 앉아 쉬며 잡담을 했다.
시간이 촉박하고 위급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기만 해선 될 일도 안 된다.
‘이건 장기전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구조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여기선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싸워야만 했다.
‘적어도 두 배. 아니, 세 배?’
최소한 두 달은 이곳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에서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도네시아보다 짧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니까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돼.’
100m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박상태는 그렇게 생각하며 체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손민준의 체력도.
‘젊은 혈기에 앞뒤 생각도 안 하고 달려들게 해서는 안 돼.’
손민준은 뛰어난 소방관이다.
박상태보다도 더.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요구조자만을 보고 달려들다간 며칠 움직이지도 못하고 퍼질 것이다.
예전의 수혁처럼…….
박상태가 책임져야 할 것은 요구조자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부족한 햇병아리 역시 그의 책임이었다.
‘그 괴물 같은 놈도 심심하면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녀석도 방심하면 안 되지.’
박상태는 어깨를 내리누르는 책임감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다시 움직이자.”
숨은 돌렸다.
체력도 어느 정도 충전이 됐고, 다급하던 마음도 가라앉혔다.
이제는 다시 요구조자들을 구할 시간이었다.
‘그 녀석은 잘하고 있으려나?’
박상태의 시선이 동쪽을 향했다.
수혁과 톰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곳.
박상태는 수혁이 너무 걱정되었다.
혹시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고 있지는 않을까?
위험한 곳에 머리부터 들이밀지는 않을까?
그러다 다치지는 않을까?
‘제발 무모한 짓 좀 하지 마라.’
상태는 빌고 또 빌었다.
수혁이 허튼짓을 하지 않기를 말이다.
“으으으…….”
그때였다.
‘뭐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박상태가 고개를 돌리자, 손민준도 그를 쳐다봤다.
그 말은 곧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요구조자!”
두 사람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