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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98화 (398/425)

레스큐 시스템 398화

중국에서는 FILO에서 여러 장비를 들여오는 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국가를 개방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기도 했다.

당연히 FILO에서 이런저런 물품들을 들여오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욕심이 많고 부패한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짐 머레이는 그 틈을 노렸다.

뇌물이라는 이름의 성의를 보이는 것으로 말이다.

그토록 까다롭던 절차가 순식간에 해결이 되었다.

일을 주도하던 짐 머레이가 헛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본래 뇌물을 싫어하는 성격의 짐 머레이였지만 이 정도로 효과가 있으면 굳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물론 중국 한정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짐 머레이의 돈과 노력을 통해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지진이 일어난 뒤 단계적으로 옮겨와도 되는 일이었으니,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단 말이지.”

짐 머레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책상을 두들겼다.

“뭐라고 하던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쯧.”

짐 머레이가 혀를 찼다.

이제 와서 이유를 설명해 달라니?

처음 짐 머레이는 분명히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쪽 지역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혹시 모르니 대피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경고도 해주었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하지만 중국 관리들은 FILO의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여느 재난 영화의 클리셰처럼…….

짐 머레이는 그들이 답답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니, 이제 와 대피를 시킨다 해도 늦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어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유를 말해달라니?

짐 머레이 입장에서는 답답함에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설명은 해주었나?”

“그렇습니다만…….”

“역시 믿지 않았나 보군.”

만약 중국에서 그 말을 믿었다면 이토록 조용할 수가 없었다.

아마 사람들을 강제로 대피시키느라 난리가 났겠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뭐?”

짐 머레이는 비서의 보고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쪽에서 믿었다고?”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 쪽 데이터를 보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처음 중국에게 보여주었던 데이터와는 그 정확도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수혁의 말대로, 지진이 일어날 조짐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평범한 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지진이!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 무슨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지?”

짐 머레이가 다급히 물었다.

예측팀에선 지금 사람들을 대피시켜 봐야 더 큰 피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단 한 명이라도 대피를 시키는 게 옳았다.

그리고 짐 머레이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짐 머레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답니다. 오직 중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만이 대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짐 머레이가 눈을 감았다.

인간이란…….

화가 치밀어 오른 짐 머레이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당장에라도 그놈들을 찾아가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분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는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짐 머레이는 악물고 있던 턱에 힘을 풀었다.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지.”

짐 머레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떴다.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비서가 공손히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후우.”

이틀 남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틀 ‘정도’ 남았다.

예측팀에서는 그때쯤이 가장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었지만, 확신하진 못했다.

지금 당장 일어날 수도 있었고, 내일, 혹은 며칠 뒤에 일어날 수도 있었다.

덕분에 FILO는 초긴장 상태였다.

지진이 발생하는 것과 동시에 신속하게 일을 진행해야 했으니까.

“미리 구조팀을 보낼 수만 있었다면, 훨씬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한국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미리 중국 내에 들어가 있다가 구조를 시작하는 게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훨씬 낭비를 줄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지 못했다.

중국에서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FILO의 구조팀이 갑자기 중국에 입국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불안해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만 하는 놈들이었다.

“자국의 국민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질 모르겠군.”

수혁처럼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조차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짐 머레이는 그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중국의 말도 안 되는 행태에 혀를 차던 짐 머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진에 대한 대비를 어느 정도 끝내놨으니, 이제 잠시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해야 할 때였다.

“감히 수혁을 건드는 간 큰 놈들이 누구인지 확인을 해볼까?”

사무실을 나서는 짐 머레이의 얼굴은 싸늘했다.

* * *

“이제 떠날 때가 된 거죠?”

최은송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아마도요.”

수혁은 팀원들에게 명령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최은송과의 시간에 충실했다.

조만간 커다란 지진이 일어날 것이란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최은송은 그런 수혁의 모습에 조금씩 불안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최은송은 수혁에게 자세한 것을 묻지 않았다.

수혁이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건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이번에도 그것을 이용해 뭔가를 알아차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에게 고마웠다.

“심각한 일이에요?”

“……네.”

지금까지 수혁이 해쳐온 현장들 중 만만했던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푸켓, 미국, 인도네시아, 독일.

저곳에서 일어난 재난들도 심각하긴 했지만, 이번 중국에서는…….

“많이 위험할 거예요.”

자신조차 100% 안전하다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실드’나 ‘회복’ 같은 온갖 스킬이 있는 수혁도 그러한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할까?

이번 출동은 생각보다 더 위험하고, 더 처절할 것이다.

최은송에게는 괜찮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최은송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살아만 있으면.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은송 씨가 책임지겠다고요?”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처음 최은송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녀는 수혁에게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라고 했다.

수혁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때를 추억한 수혁이 최은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엔 약속 못할 거 같아요.”

수혁의 나지막한 말에, 최은송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래도 노력할게요.”

다시 그녀의 옆에 돌아올 수 있도록.

수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최은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수혁은 최은송을 안은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세상이 흔들렸다.

* * *

“결국…….”

수혁과 예측팀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구조 1팀의 팀원들은 수혁의 말을 믿긴 했지만, 그래도 내심 틀리기를 바랐다.

그러한 재난이 닥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국은 지진이 일어났고, 그 규모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섰다.

“적어도 리시터 8.5 이상의 강진이랍니다.”

지원팀에서는 구조 1팀을 공항으로 데려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으음.”

8.5 규모의 지진이라니!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지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적어도 수십 배 이상은 강력했다.

“아직 정확한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수혁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진의 규모가 9를 찍을 것이라는 사실도.

“……피해는?”

“알 수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피해 규모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예상하기로는 적어도 30만 명 이상이…….”

보고하던 지원팀이 말끝을 흐렸다.

최소한 30만.

지금까지 겪어왔던 현장과는 규모의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워낙 사람이 많은 나라인 데다, 그만큼 큰 지진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피해였다.

“당초 예상보다 피해 지역이 넓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측팀에서 설정한 지진 반경보다 1.5배는 더 넓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중국의 인구 밀집을 생각해 보면 마냥 심각할 정도로 많은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전용기는 출발 준비를 끝낸 상태고, 현지에서도 물자들이 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곳은 허난성.

한국에서 꽤나 가까운 성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세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인지라, 도착 자체는 빠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에서도 FILO와 협력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저우 신정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곧장 헬기로 현장까지 이송을 시켜주는 것부터, 필요한 물자의 지원까지.

중국에서는 모든 것을 약속했다.

‘이제 와서 그래 봐야…….’

중국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짐 머레이에게 모두 들은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중국에서 노력했다면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잠시 후, 구조 1팀은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운영시간이 아닌지라, 공항은 조용했다.

오직 수혁과 구조 1팀만이 바쁘게 움직였다.

본래대로라면 출발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FILO에서 이미 조치를 취해놓았는지, 출국이 가능했다.

모든 절차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끝내 버린 구조팀은 비행기에 올라탔다.

모든 좌석이 퍼스트 클래스로 이루어져 있는 FILO 전용기였지만, 아무도 안락함을 느끼지 못했다.

수십만 명의 피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이 편할 소방관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가로질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두운 밤하늘을 비행하며,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긴장과 초조.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한 불안까지.

구조 1팀은 말없이 박동하는 심장을 억눌렀다.

중국 허난성에 도착할 때까지.

“미쳤네.”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지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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