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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96화 (396/425)

레스큐 시스템 396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몇몇 게시물들이었다.

‘김수혁의 인성 수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글.

수혁이 실력만 믿고 동료들을 무시한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모한 짓을 반복해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죽었다 살아난 것도 그냥 쇼였다더라, 등등.

당연히 헛소문이었지만, 수혁을 꼬아서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물론 사람들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믿기에는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주었던 활약이 너무도 대단했으니까.

자연적으로 그런 게시물들은 비난과 악플 세례를 받고 삭제됐다.

그런데도…….

그런 글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하루에도 몇 개씩, 그리고 점점 더 많이.

“너 그거 봤냐?”

어느 날 갑자기 박상태가 집으로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앞뒤 다 자르고 그렇게 말을 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박상태가 답답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요즘 이런 기사가 뜨고 있다.”

수혁은 뚱한 표정으로 박상태가 보여준 기사들을 확인했다.

-영웅이라 불리는 이의 실제 모습.

-소방관 A의 인성 논란.

-그가 소방관을 떠나 NGO 단체에 들어간 것은 돈 때문?

수혁의 눈매가 좁아졌다.

직접적으로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제목만 봐도 누구를 겨냥하고 쓴 것인지는 명확했다.

“대부분 삼류 찌라시 언론사이긴 한데, 요즘 들어 부쩍 이런 기사들이 많이 올라오는 중이다.”

“흠…….”

기사의 내용들을 살펴보던 수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아예 없는 말들은 아니네요?”

분명 수혁이 했던 행동들을 예로 들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이 그런 행동을 한 내막과 상황은 무시한 채, 오직 자극적인 부분만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제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너를 아주 개쓰레기처럼 보이도록 써놨으니까.”

기사에 나온 일의 대부분은 박상태도 연관이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온 사이였으니 당연했다.

정작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고, 오히려 수혁에게 고마움까지 품고 있건만…….

“대체 어디서 이런 소리를 들은 거지?”

분명 내부에서 새어나간 정보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한 기사를 쓸 수가 없었다.

“우리 애들은 아닐 테고.”

신일서 대원들은 아니다.

“위쪽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수혁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동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구조 작업은 보고서로 작성되어 위로 올라가니, 그것을 본 누군가가 퍼트린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게 확실하겠지.’

언젠간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수혁이 밉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소방시설 점검 때부터 시작해 소방청장의 일까지.

수혁을 눈엣가시로 보는 고위 인사들이 아마 한 트럭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제 품의 자식이라고 했다.

수혁이 소방관으로 근무할 때는 굳이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다가, FILO로 자리를 옮기자 터트린 것일 수도 있었다.

“누구인지는 알 것 같은데…….”

“뭐? 그게 누군데?”

박상태는 당장에라도 찾아가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하지만 수혁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박상태가 정말로 그럴 수도 없는 위치의 사람이었으니까.

‘소방청장이겠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방청장밖에 없었다.

수혁을 고깝지 않게 보는 인물에, 이런 일을 벌일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은 말이다.

‘혼자 일을 벌이진 않았을 테고.’

수혁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이 합세를 해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가십거리나 쓰는 언론사의 기사인지라 파급력은 아직 크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뒤로, 커뮤니티의 반응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서 ‘어? 설마?’라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수혁의 동료라며 헛소리를 늘어놓는 놈들도 생기는 판국이었는지라, 수혁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냄새를 맡은 메이저 언론사들이 언제 달라붙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수혁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게 될 터.

박상태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홍보팀에 얘기해 볼게요.”

FILO 홍보팀에선 지금 이 상황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책도 생각해 두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FILO에서 수혁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 지켜야 할 존재였다.

애초에 짐 머레이가 FILO를 설립한 이유가 수혁 때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홍보팀에서 알고 있다면 굳이 수혁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수혁은 홍보팀에 연락해 상황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약속도 없이 아침부터 이렇게 헐레벌떡 찾아오다니.

수혁은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겨, 겸사겸사해서 온 거다. 아침이나 같이할까 해서…….”

박상태는 되지도 않는 변명에 수혁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은송 씨가 출근하기 전에 해둔 게 있는데, 그거라도 드실래요?”

“그, 그럼 나야 좋지.”

“들어오세요.”

수혁은 박상태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밥을 차려주려는데,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월패드를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민준이네요.”

손민준 역시 기사를 봤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수혁의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FILO 구조 1팀 전원은 수혁의 집에서 거하게 아침식사를 함께했다.

‘고마운 사람들이야.’

모두 자신이 걱정되어 달려왔다.

심지어 한글도 잘 모르는 율리안, 슈미츠, 톰까지.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은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현재로선 대응 기사를 낼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보팀의 팀장은 수혁에게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대기업에서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이름만 대면 국민 누구나 아는, 그런 거대 기업의 홍보를 맡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정도의 일에는 당황도 하지 않았다.

“그럼 보고만 있으면 됩니까?”

“그건 아니죠.”

홍보팀장의 말은, 언론으로 맞대응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섣불리 기사를 냈다가는, 그 이야기들이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습니다.”

FILO에서 반박기사를 내면, 지금까지 가만있던 메이저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소문은 더욱 크게 퍼질 테고.

반박기사를 냈다는 것 자체가 불씨를 더욱 지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일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홍보팀장은 맡겨두라는 듯,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만만찮은 사람일 텐데요.”

“강현성 청장 말입니까?”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배후까지 짐작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이전에 수혁 씨 덕분에 모가지가 달아난 고위 공무원들, 그리고 그들의 지인들까지 힘을 합친 것 같더군요.”

수혁의 예상대로였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홍보팀장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면,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우리나라의 고위 공무원들이다.

고작해야 공무원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는 게, 그들과 연관되어 있는 정치인이나 기업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에 반해 FILO는 비영리단체.

권력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혁 씨는 아직 저희를 잘 모르시나 봅니다.”

홍보팀장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FILO는 수혁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한 기관입니다.”

* * *

‘얼마나 남았을까?’

수혁은 일단 소방청장의 농간에서 관심을 끊기로 했다.

홍보팀장이 그토록 호언장담했으니, 믿고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다른 쪽에 집중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초대형 지진.

정확한 일시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홍보팀에서 나온 수혁은 그대로 집에 돌아와 짐 머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예요, 짐.”

[수혁!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주다니, 무슨 일 있나?]

짐 머레이는 지금 한국의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아직까진 그리 크게 알려진 것도 아니니.’

FILO 한국 지부에서도 굳이 짐 머레이에게까지 보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수혁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한 게 아니었는지라, 본론을 꺼냈다.

“예측팀에서는 아직 이야기가 없나요?”

수혁의 말에 짐 머레이는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짐?”

[아. 미안하네. 잠깐 서류를 찾느라.]

예측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찾아본 듯했다.

[가만있어 보자……. 여기 있군.]

쌓여 있는 서류가 많았는지, 짐 머레이는 한참 동안이나 찾아 헤맨 뒤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즘 중국 쪽에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다네.]

“아직 정확한 시점은 모르는 거죠?”

[기술이 그만큼 따라주질 못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예측을 해보자면, 30일 이내 큰 지진이 올 확률이 높다는군.]

예측일 뿐이다.

그것도 수혁의 미래 지식이 없었다면, 이만큼의 범위도 줄이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예측이 필요한데요.”

[이쪽도 노력 중이라네. 예측팀에서도 온 신경을 그쪽에 집중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걸세. 아, 좋은 소식이라고 하긴 좀 그렇군.]

짐 머레이가 씁쓸한 웃음을 내뱉었다.

“자연재해를 저희가 막을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자책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만큼 미리 알고 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언제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신속하게 대응을 할 수 있게, FILO에서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장비와 인력을 예상지점에 배치하고 있네. 그런데 쉽지가 않아.]

지진이 일어나는 곳은 바로 중국.

폐쇄적인 국가였는지라, 고작 구조장비를 옮겨서 배치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에요.”

인도네시아에서도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지 않아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고작 헬기 한 대를 빌리지 못해 열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만약 헬기와 같은 준비가 미리 되어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시간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그와 같은 실수가 또 일어나선 안 된다.

[내 인맥을 총동원하는 중이네. 그래도 예전만큼 빡빡하진 않아서,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 상황이야.]

아마도 일을 진행하며,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갔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짐 머레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돈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증거라고는 수혁의 말 한마디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래서 수혁은 짐 머레이에게 너무도 고마웠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혁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고 있었으니까.

“고마워요, 짐.”

[고맙긴. 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 것을.]

수혁도 돕고, 그에 더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짐 머레이로선 이보다 더 보람찬 일이 없었다.

[그러니 자네는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오직 사람을 구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그 외에는 내가 모두 해결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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