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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95화 (395/425)

레스큐 시스템 395화

길었던 휴식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수혁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기도 했고, 박상태와 나눴던 말처럼 신일서 식구들과도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특수 구조대에 찾아가 전승철과 진태수에게 인사를 하고 대원들과도 함께 저녁도 먹는 등, 꽤나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최은송과의 데이트도 잊지 않았다.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최은송을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자주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가게를 오래 쉴 수 없었기에 고작해야 1박 2일이나 당일치기 여행을 주로 했지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었다.

수혁이 소방관이 된 이후, 이렇게 여유가 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최은송은 요즘 항상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수혁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좋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도 좋았다.

만약 푸켓에서처럼 쓰나미라도 몰려왔다면…….

박상태나 김상식의 장난에 살짝 불안해하더니, 막상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자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준비 다 됐어요?”

수혁이 고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오며 물었다.

“대충 끝난 것 같아요. 고기는 손님들 오면 구워야 하니까.”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수혁이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의 초대 손님은 FILO 구조 1팀의 팀원들과 가족이었다.

서로 집이 가까운지라 오가며 인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한 번에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만약 박상태가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수혁은 까마득히 신경도 쓰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

“바비큐를 하기로 결정한 건 잘한 것 같네요.”

요즘 들어 집에 손님이 자주 오다 보니, 최은송에게 미안했다.

그럴 때마다 직접 요리를 했으니…….

한두 명도 아니고, 레스토랑에서도 하루 종일 음식을 했을 텐데 퇴근한 뒤에도 해야 했으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재료만 준비하면 되는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다.

물론 찌개나 밑반찬들은 준비해야겠지만, 요리를 통째로 해서 나오는 것에 비하자면 힘들 것도 없었다.

“저는 괜찮은데.”

“내가 미안해서 그래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최은송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수혁은 이번엔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삼겹살이야 쌈 재료와 몇 가지 반찬들만 준비하면 충분했으니까.

“은송 씨 요리는 다음에 천천히 보여주면 되니까, 오늘은 편하게 해요.”

수혁이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하자, 최은송이 배시시- 웃었다.

“알았어요.”

“어? 벌써 준비 끝났냐?”

그때, 울타리 너머로 박상태의 얼굴이 보였다.

“벌써라뇨. 이제 곧 약속 시간인데.”

“좀 일찍 와서 도와주려고 했더니.”

박상태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어머,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박상태의 아내가 한상 가득 차려진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형수님.”

수혁은 박상태의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미안해요.”

“별로 준비할 것도 없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런데, 이슬이는요?”

박상태의 딸이 보이지 않자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갑자기 친구들과 놀기로 했다면서 나가지 뭐냐. 그래서 그 녀석 데려다주고 오느라 좀 늦었다.”

“하긴, 한창 친구들이랑 놀고 싶을 때긴 하죠.”

수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이들이 끼어봐야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럴 바에는 어른들끼리 밥을 먹는 게 나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곧 오겠죠.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계세요.”

손님이 왔으니 밥을 먹기 전에 일단 마실 거라도 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수혁이 집안으로 들어가 음료수들을 꺼내 왔다.

“팀장님, 저희 왔습니다.”

그사이에 손민준과 슈미츠도 도착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교관님.”

슈미츠는 수혁을 팀장이 아닌, 여전히 교관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런 거 신경쓰지 말라니까. 그냥 밥이나 잘 먹고 가라.”

수혁은 그런 슈미츠를 보며 웃었다.

“율리안과 톰은 좀 늦나 봐?”

“그러게요. 일단 저희 먼저 시작하고 있을까요?”

굳이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삼겹살이었으니, 새로 굽는 대로 주면 될 테니까.

“그러자고. 배고파 죽겠네.”

박상태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의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아, 괜찮다니까?”

“그래요, 형수님. 배고프실 텐데 저희 먼저 먹고 있죠.”

수혁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형수는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는 제가 구울…….”

“빠져. 내가 굽는다.”

수혁이 삼겹살과 집게를 들고 그릴로 향하자, 박상태가 그것들을 빼앗았다.

“니가 나보다 사람은 잘 구할지 몰라도, 고기는 내가 한 수 위다.”

고기를 굽는 것에 자부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박상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막내인 손민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 인마.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박상태의 핀잔에 손민준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앉았다.

“자자, 다들 자리 앉아서 기다려요. 내가 기똥차게 구워서 줄 테니까.”

그 모습에 수혁과 최은송은 서로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고, 잠시 후 율리안과 톰이 가족들과 함께 도착했다.

이 두 가족은 아이들도 함께 왔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라, 아직은 따로 시간을 내서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총 열 명이 넘는 대인원이 삼겹살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소주와 맥주가 오가고, 박상태가 자신 있게 구워준 삼겹살도 동이 날 때까지 신나게 먹었다.

그러길 두어 시간.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여자들은 서로 한국에서의 교육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고, 남자들은 역시 일에 관련한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한국으로 오기로 결정한 걸 잘한 것 같다.”

율리안이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이번에 인도네시아에 다녀오며 많은 걸 느꼈지.”

아직 일선의 소방관들에게는 보급되기 어려운 최고가의 장비를 사용해 사람들을 구조하는 건, 율리안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원도 내 생각 이상이더군. 헬기가 지원되지 않은 건 조금 아쉬웠지만 말이야.”

톰은 지원팀에 대한 감탄을 연신 늘어놓았다.

미국에서도 이만한 보급과 물자지원을 해주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구조팀이 구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의 모든 것을 케어해 주었다.

숙소부터 시작해 식사나 생필품까지.

그들 덕분에 구조팀은 뒤가 든든했다.

다른 사람들도 FILO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특히나 이런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좋아했다.

“미국이나 유럽은 그래도 시간이 좀 남지 않습니까?”

소방관의 대우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들이었다.

그런데도 둘은 고개를 저었다.

“소방관이라는 게 어느 나라나 비슷할 거다.”

“물론 한국의 사정이 좀 더 열악할 순 있겠지만 말이야.”

힘든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 출동 나가면 힘들긴 하더라.”

박상태의 말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현장에 출동하라고 만든 곳이니까요.”

손민준은 박상태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하지.”

힘들지 않은 현장이 어디 있겠느냐만, 일반 화재현장과 쓰나미가 일어난 지역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한 번 출동을 나가면 이렇게 쉴 수 있으니까 다행이지.”

“그런 재난이 흔하게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지진, 쓰나미, 화산 폭발과 같은 재난이 며칠 걸러 한 번씩 일어났다면, 인간은 아직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나면 좋긴 한데, 조금 눈치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

박상태가 남은 삼겹살 한 점을 날름 집어먹으며 말했다.

“괜히 월급루팡 하는 기분도 들고.”

당연한 말이었지만, 출동이 없다 해도 월급은 꼬박꼬박 지급이 된다.

만약 출동할 일이 1년 내내 없다 하더라도 FILO의 돈은 계속해서 빠져나간다는 뜻이었다.

박상태는 내심 그게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런 거 감안하고 만든 기관이니까요.”

정 할 일이 없다면 얼마 전에 일어났던 화재 때처럼, 주변의 서를 도와주면 된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야 좋고.”

소방관이 된 이후, 이렇게 오래도록 쉬어 본 적이 없었기에 좀 어색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상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다.

“그리고 어제 지원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조만간 출동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사고가 언제 일어날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사고란 언제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서 사고다.

그걸 미리 알 수 있다면 사고가 일어나지도 않을 터.

특히 FILO의 구조팀이 출동할 정도면 평범한 재난은 아닐 텐데, 그것을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FILO에는 여러 예측팀도 있더라고요.”

지진 관측이나 화산활동을 감시하는 팀.

“그런 팀도 있다고?”

팀원들은 짐 머레이가 얼마나 FILO에 관심을 쏟고 있는지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측팀?”

“네. 거기서 예상하기를, 조만간 큰 지진이 한 번 일어날 것 같다던데요.”

지진 예측은 아직까지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다.

신뢰성도 떨어졌고, 만약 맞춘다고 해도 그 위치나 정확한 시기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예측했다는 건, 꽤나 활발한 지진 활동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아직은 정확히 언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고…….”

사실 수혁은 알고 있었다.

오히려 예측팀보다도 더 정확하게.

아니, 사실 예측팀이라는 곳 자체가, 수혁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는 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수혁은 미래에 일어날 대형재난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짐 머레이는 그것을 이용해 예측팀을 만들었고, 수혁의 부정확한 기억을 보조하는 용도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결과가 이번에 나온 것.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예측 시스템이라는 게 완벽하지가 않아서 미리 예방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 정도로 정확하다면 예측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불러야 했으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미리 대비할 수가 있다면,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팀원들은 박상태와 같은 마음으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좋게 생각해요, 그냥. 어차피 일어날 일이고, 우리는 피해를 줄이는 것만 생각하면 돼요.”

수혁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사람만 잘 구하면 된다.

그 외의 것들은 지금까지처럼, FILO에게 맡기면 된다.

그들이 하는 것이 자신들이 나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경고 정도는 해주겠지?”

“아마 그러겠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국가와 지역에서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은 이번에 일어날 재난을 떠올렸다.

‘내륙지방이라 인도네시아처럼 쓰나미는 없겠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도에, 엄청난 피해가 일어난다.

심지어 여진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에 2차, 3차 피해가 일어났다.

그래서 지원을 나간 많은 소방관도 목숨을 잃었다.

이 세상에 소방관이라는 사람들이 생겨난 이후, 한 번에 가장 많은 소방관이 순직한 사건일 것이다.

그만큼 민간인의 피해도 컸고.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건 확실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예측팀에서 계속 주시를 하고 있을 테니, 관심을 끊었다.

지금 확실한 정보는 단 하나.

그 지진이 바로 중국에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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