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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90화 (390/425)

레스큐 시스템 390화

휴식은 달콤했다.

한 달이란 긴 시간 동안 개고생을 한 끝에 찾아온 휴식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수혁은 눈을 감은 채 침대에서 한참이나 뒤척이다, 일어나라는 최은송의 잔소리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땐 쉬더라도 아침은 먹고 쉬어야죠.”

최은송은 어느새 간단한 아침상을 차려놓고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는데.”

“제가 해준 밥 먹기 싫어요?”

“아,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최은송의 눈이 가늘어지자, 수혁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침 먹어요, 아침.”

수혁은 허겁지겁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최은송이 미소를 지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생했을 수혁을 위해, 이렇게라도 아침을 챙겨주고 싶었다.

그동안은 먹는 것도 시원찮았을 테니 말이다.

그와 별개로 휴식을 방해하는 건 좀 미안했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고생 많았다면서요?”

수혁의 맞은편에 앉은 최은송이 물었다.

사실 수혁이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TV에서도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방영해 주었고, FILO의 직원들도 가끔 찾아와 근황을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최은송은 수혁이 어떻게 지냈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음…….”

수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은 그리 고생하지 않았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만했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이 아무리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한 달이나 이어진 구조 작업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겨울임에도 25도 이상의 기온을 보여주는 습한 날씨였기에 더욱 그랬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더운 공기는 그들의 체력을 더욱 빠르게 갉아먹었다.

억지로 버티는 척을 하긴 했지만, 팀원들은 정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육체적인 것보다도, 다른 쪽이 더 큰 문제였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수혁과 팀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시체만 수백 구에 달한다.

그동안 구조대원으로 일을 하며, 수많은 피해자의 사체를 봐왔다.

그렇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었다.

자신의 손이 닿기도 전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특히나 경험이 적은 손민준과 슈미츠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애써 무덤덤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점점 썩어들어 가는 중이었다.

잠을 잘 때 악몽을 꾸는지 신음을 흘리며 잠꼬대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수혁은 FILO에 말해 두 사람이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요.”

최은송이 손을 뻗어 수혁의 손을 잡았다.

“그건 수혁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녀의 말이 맞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좋지 않은 때에, 좋지 않은 장소에 있었던 것일 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수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요.”

수혁은 최은송과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그간 있었던 일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끝마쳤다.

“그럼 이제 당분간은 집에서 쉬는 거죠?”

“별일이 없다면 그럴 것 같아요.”

“그럼 우리 놀러갈까요?”

최은송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고 싶긴 한데……. 은송 씨 가게는요?”

“아차!”

수혁이 돌아왔다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가게를 생각하지 못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말이야.”

수혁이 짓궂게 웃으며 그런 최은송을 놀렸다.

“며, 며칠 쉬면 되죠.”

“아직 오픈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문을 닫는다고요?”

가게가 망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면,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결국 최은송은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 가요…….”

그 모습에 수혁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론 시간 많을 테니, 자주 놀러 가요. 물론 자리부터 좀 잡은 뒤에.”

최은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나 자신이나, 아직 자리를 완벽하게 잡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여행은 상황이 좀 더 안정된 후에, 얼마든지 하면 된다.

“쉬는 동안 뭐 할 거예요?”

“은송 씨나 좀 도울까 싶은데.”

안 그래도 최은송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는 게 조금 불안한 참이었다.

아무리 레스토랑의 규모가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생 한 명도 쓰지 않고 혼자 하려면 꽤나 힘이 들 게 분명했다.

그래서 수혁은 틈이 나는 대로 최은송을 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은송은 수혁의 뜻을 거절했다.

“가게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아니, 그래도…….”

“혼자 해볼게요. 그러고 싶어요.”

이 일은 최은송에게도 일종의 도전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해내고 싶었다.

거기다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온 수혁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최은송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국 수혁은 어쩔 수 없이 뜻을 접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수혁에게는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이전 생이나 이번 생이나.

취미를 즐길 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이런 여가 시간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수혁은 잠시 소파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뭐 하지?’

* * *

“후우.”

손민준은 한숨을 내쉬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심리 상담.

처음엔 괜한 것까지 신경을 써준다고 생각을 했다.

그동안 많은 죽음을 봐왔고 그것을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리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손민준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 번 상담을 받고 나니, 조금은 후련해진 기분이었다.

‘괜히 받으라고 한 게 아니었네.’

약 처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상담만 받았지만,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손민준은 수혁을 따라 FILO에 들어오기로 결정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에 보람도 있었고, 복지에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부천서에 있을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다시 출동을 나가기 전까지 여유 시간이 있었으니, 그동안 못했던 것들도 할 수가 있었다.

손민준은 운동하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며 차에 올라탔다.

“어디 보자, 헬스장 주소가 어디 있더라.”

내비게이션을 뒤적이던 손민준은 이내 주소를 찾아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날씨도 좋고.”

인도네시아의 습한 공기와 달리, 차가운 공기를 만끽하며 기분 좋게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응?”

손민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기인가?”

저 앞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연기의 색으로 봐서는 화재로 인한 것 같았다.

“불났나?”

연기의 양으로 봐선 화재의 규모가 꽤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떻게 할까?’

헬스장은 연기가 나는 방향과는 정반대쪽이었다.

소방서도 근처에 있었으니 굳이 자신이 가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손민준은 괜히 찝찝했다.

이대로 무시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에이, 진짜.”

인도네시아에서 그 고생을 하고 돌아온 지 아직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은 계속 화재현장 쪽으로 가라고 시키고 있었으니, 손민준은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손민준은 핸들을 돌렸다.

헬스장이 아닌,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곳을 향해.

* * *

수혁은 최은송이 출근한 뒤에도 가만히 소파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도저히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고민에 고민만을 거듭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결국 좀이 쑤시는 것을 견디지 못한 수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냥 놀자.”

박상태의 집이라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씻고 옷을 챙겨 들었다.

그런데 그때.

수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응?”

전화할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들어보니 손민준이었다.

“아, 오늘 심리 상담받으러 갔었지?”

그에 대한 보고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팀장님!]

가볍게 전화를 받은 수혁과 달리,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손민준의 음성은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수혁은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말해.”

[화재입니다!]

다짜고짜 화재라니?

수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놓고는 FILO의 구조복을 찾았다.

[운서역 인근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영종 소방서에서 출동하긴 했지만, 거기만으로는 턱도 없을 정도로 커다란 화재입니다!]

“문자로 주소 찍어. 지금 바로 간다.”

이제 수혁은 대한민국 소속의 소방관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간인의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있을 순 없었다.

출동한 소방서에서 처리가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손민준의 말을 들어보니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다.

‘이유가 있으니까 전화를 했겠지.’

단순히 화재진압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수혁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연락을 했다는 건, 분명 요구조자가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수혁은 구조복을 모두 챙겨 입고는 곧바로 FILO에 연락을 취했다.

“김수혁 팀장입니다. 혹시 운서역 인근에 화재가 일…….”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 주시 중이었고요.]

다행히 FILO에선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쪽에서 손민준 대원이 연락을 해왔는데, 급히 도움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직원은 수혁의 말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지금 바로 팀원들을 호출하고 현장으로 장비들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ILO의 구조장비들은 당연히 한국에도 있었다.

FILO가 출동할 만한 재난이 꼭 해외에서만 일어나란 법은 없었으니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지진과 같은 대형재난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를 위해 준비해 둔 장비들이 꽤 많았다.

짐 머레이가 특별히 신경을 쓴 덕분에, 질과 양 모두 충분했다.

수혁은 곧장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는 출발했다.

띠링-!

때마침 손민준이 현장 주소를 문자로 찍어 보냈다.

‘그리 멀진 않아.’

기껏해야 10분 내외.

그 정도면 현장에 충분히 도착을 하고도 남았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펌프차나 구조차가 아니었는지라 신호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지만,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린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젠장.”

건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펌프차들이 일제히 방수를 하고 있었고, 내부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어댔지만…….

그것만으론 쉽게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불이었다.

“팀장님!”

한쪽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손민준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달려왔다.

수혁은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고는, 스킬을 사용했다.

‘생명감지Ⅲ.’

수혁의 눈에 건물 내부에 있는 요구조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스물둘.’

8층짜리 건물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총 22명.

절대로 적지 않은 숫자였다.

“구조대는?”

요구조자 파악이 끝난 수혁이 손민준에게 물었다.

펌프차가 출동했을 정도면, 당연히 구조대도 도착을 했을 터.

지금쯤이면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어야 했다.

“그게…….”

손민준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진입을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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