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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87화 (387/425)

레스큐 시스템 387화

브레드는 신을 찾으며 수혁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실 수혁이 아닌, 손민준이 구조한 것이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브레드는 그저 에밀리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에 감사했을 뿐이었으니까.

“에밀리는 좀 어떻습니까? 혹시 다쳤나요? 무사한 것 맞죠?”

브레드는 쉴 새 없이 에밀리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를 꽤나 걱정한 것 같았다.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한단 말인가?

“그건 직접 만나서 확인하시죠.”

생명이 위급하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레드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몸의 절반 이상이 깔려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은 수혁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아픈 곳이 있습니까?”

수혁이 진지하게 묻자, 브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다리 쪽이 좀…….”

수혁의 태도에 정신을 조금 차린 브레드는 신기한 눈으로 수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에밀리가 그러했듯, 그 역시 이곳에서 수혁을 만나리라곤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탓이다.

“다리가 어떻게 아픕니까?”

“아픈 것보단 조금씩 감각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칼로 쑤시는 것 같더니 지금은 마취를 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브레드의 말에 수혁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감각에 이상이 생겼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요구조자에게 쓸데없는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써 굳은 표정을 풀었다.

“다른 곳은요?”

“사실 이 아래쪽은 전부 욱신거립니다. 뭐, 돌 더미 아래에 깔렸으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지만요.”

브레드는 이제 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태가 된 건 언제쯤?”

“몇 시간 정도 됐습니다. 쓰나미 통에 간신히 살아남아서 주변을 헤매다가 구조대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동하던 중에…….”

약해진 건물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그 아래 깔렸단다.

이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쓰나미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길을 가다 무너지는 건물 아래 깔려 죽을 뻔했다.

수혁은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으며 그의 안색과 호흡, 맥박 등을 확인했다.

‘출혈은 별로 없는 것 같고.’

몇 시간이나 깔려 있는 와중에도 안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출혈이 심했더라면 이런 안색을 유지하고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호흡도 조금 거칠긴 했지만 괜찮았고, 다른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다리인데.’

직접 눈으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구조 시작하겠습니다.”

“아직은 버틸 만하니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하.”

브레드는 수혁이 당연히 다른 대원들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를 짓누르고 있는 잔해의 무게는, 한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엔 지나치게 무거웠으니 말이다.

브레드 역시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 무게를 온전히 몸으로 받아냈다면 벌써 사망했을 정도였다.

수혁은 그런 브레드의 말을 무시하고 손을 뻗었다.

‘조심스럽게.’

이런 매몰자를 구조할 때는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조금만 힘 조절을 잘못하거나 균형이 무너지면, 그대로 잔해들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위기감지Ⅲ’를 이용해 차분하게 잔해를 치워 나갔다.

‘뭐, 뭐야?’

브레드의 눈이 다시 한 번 커졌다.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잔해들의 무게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용을 써도, 잔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수혁은 너무도 쉽게 그것들을 치우고 있었다.

쿵-!

수혁이 치워낸 잔해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둔탁한 소음에, 브레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소리만 들어도 저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런 걸 저렇게 가볍게 든다고?’

쿵쿵-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나 정도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빠른 속도로 치운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한 번 움직여 보세요.”

“네?”

“상체 쪽은 대충 치웠으니 몸 상태를 한 번 체크해 보시라고요.”

수혁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놀랍기 그지없는 일을 쳐다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몸을 억압하고 있던 잔해들이 치워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 네네.”

브레드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뻐근하긴 했지만, 크게 고통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무겁던 잔해들이 치워지자, 욱신거리던 통증도 대부분 사라진 것 같았다.

“좋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이제 남은 곳은 다리 쪽이었다.

수혁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움직였다.

브레드의 다리에서 점점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수혁은 온 신경을 그의 다리에 쏟고 있었다.

‘이거 운 나쁘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지금 브레드에게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잔해에 두 다리가 짓이겨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척추신경손상.

둘 모두 감각 이상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면 수혁은 척추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다리가 짓이겨진 것이라면 그 고통이 어마어마했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척추신경손상으로 인해 하체가 마비되고 있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었다.

‘둘 다 아니면 좋겠지만.’

수혁은 제발 최악의 상황이 아니길 빌며 브레드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잔해들을 치워냈다.

“음…….”

다행히도 최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상황인 것도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쪼개진 나뭇조각들이 그의 다리를 꿰뚫고 있었다.

‘큰 게 두 개. 자잘한 건…… 일곱 개 정도인가?’

잔해들이 다리를 압박하고 있었던 덕분인지, 출혈량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압박이 사라진 탓에 조금씩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빨리 조치를 해야겠군.’

수혁은 가지고 다니던 구급상자를 뒤적이다 혀를 찼다.

압박붕대가 모두 소진된 것이다.

‘그렇게 많이 챙겼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응급처치I’ 스킬을 사용하는 수밖에.

“마, 많이 안 좋습니까?”

수혁의 신음을 들은 브레드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보지 마세요.”

그런 브레드의 행동을 수혁이 막았다.

괜히 봐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불안감과 공포만 증폭될 뿐이었다.

“안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브레드는 수혁의 무거운 음성에 다시 고개를 원래 자리로 돌렸다.

“아직도 아무런 통증이 안 느껴지십니까?”

수혁이 환부 주의를 살짝 누르며 물었다.

보통이라면 자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하지만 브레드는 여전히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정말 안 좋은데.’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아무래도 다리에 꽤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잘못하면…….’

수혁은 순간적으로 절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애써 털어냈다.

아직은 모른다.

환자의 상태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수혁은 일단 나뭇조각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본래라면 절대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조각을 뽑는 순간 대량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급처치I’ 스킬을 사용한 상태였으니, 더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을 터.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나뭇조각을 뽑았다.

퓻- 하며 고여 있던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게 전부였다.

수혁이 확신했던 것처럼, 대량 출혈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아.’

수혁은 안심하며 나머지 조각들도 뽑아냈다.

그러곤 제복의 팔 부분을 뜯어냈다.

부우욱-!

“지혈 좀 하겠습니다.”

‘응급처치I’는 치료가 아니다.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을 방지하지만, 현재 상태가 호전되지는 않는다.

그 말은 곧, 출혈 자체를 막을 순 없다는 뜻이었다.

붕대가 없는 지금은 이렇게 해서라도 지혈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대량 출혈은 막았으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FILO에서 보급해 준 제복은 꽤 튼튼했지만, 수혁의 힘을 버텨낼 순 없었다.

북북- 하는 소리와 함께 천이 찢어져 기다란 천 조각으로 변했다.

수혁은 그것으로 브레드의 다리를 묶었다.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묶자, 흘러나오던 피가 조금 줄어들었다.

“좋아.”

이 정도면 이제 옮겨도 될 것 같았다.

“저를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수혁이 묻자 브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아프긴 하지만, 움직이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수혁은 브레드를 조심스럽게 들어 등 뒤로 업었다.

“윽!”

조금 아팠는지 브레드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의사에게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차라리 깔려 있을 때가 덜 아픈 것 같았다.

“고, 고맙습니다.”

브레드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이런 와중에 아프다고 불평할 순 없었다.

수혁은 잠시 브레드의 상태를 두고 보다 괜찮다고 판단하고는, 이동을 시작했다.

“에밀리는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브레드가 말을 걸어왔다.

고통을 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던 것이다.

“조금 다치기는 했습니다만…….”

“어디가요? 많이 다쳤습니까?”

허벅지 쪽에 부상을 입긴 했지만, 그것이 브레드의 것과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치료도 무사히 끝났고, 의료진들이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수혁은 말을 하다 말았다.

하지만 브레드는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렇게 안 좋습니까?”

“아직은 모릅니다.”

“제가 봐도 그리 좋은 것 같진 않은데요.”

브레드는 업힌 채로 자신의 다리를 쳐다봤다.

지혈한 덕분에 피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다리는 새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심각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생각보단 안 아픈데 말이죠.”

브레드는 쓰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속으로 괜히 확인했다고 자책하면서 말이다.

“오랫동안 무거운 물체 아래에 깔려 있었으니 당연히 몸이 안 좋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조금만 운이 나빴으면 즉사할 수도 있는 현장이었다.

이 정도에서 그친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

“정확한 상태는 의사 분들께 검사를 받아봐야 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수혁은 브레드를 안심시켰다.

“살아난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죠.”

브레드가 픽- 웃으며 말했다.

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붕괴에까지 휩싸였음에도 생존했다.

이 정도면 불평하는 게 더 우스웠다.

“덕분에 이렇게 수혁 씨를 만나는 경험도 했으니까요.”

수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발 다리가 괜찮아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브레드를 보며, 수혁은 진심으로 바랐다.

저 멀리 텐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바글거렸고, 의료진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수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브레드를 업은 채 그곳으로 달려갔다.

“응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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