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86화
에밀리는 수혁의 노력 덕분인지 가까스로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됩니까?”
수혁은 그녀를 달래느라 한 바가지는 흘린 진땀을 닦아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네, 네…….”
에밀리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자신도 갑자기 이렇게 울음을 터트릴 줄은 몰랐다.
사실 수혁과 사적으로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너무도 막막하던 상황에 아는 얼굴을 보니 감정에 복받친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야 어떻든 간에,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수혁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상식적으로 에밀리는 이곳이 아닌, 영국에 있어야 했다.
BBC의 기자였으며, 수혁을 취재한 이후 급부상한 인재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일행 한 명 없이 이 외딴곳에서 부상을 입고 누워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게…….”
에밀리가 천천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혁의 기사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한 덕분에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는 것부터, 갑자기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 것까지.
아직 완전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말에 두서가 없긴 했지만, 수혁은 인내심 있게 그녀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흠…….’
에밀리가 조금 불쌍해졌다.
푸켓에 이어 이곳에서 쓰나미를 마주했다.
사람이 살면서 두 번이나 쓰나미를 마주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사람도 내 과인가?’
별명이 무슨 에밀리 홈즈 이런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상처는? 이제 괜찮습니까?”
수혁이 그녀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붕대로 감싸져 있어 환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붉게 물들어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상처가 심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 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허벅지의 상처보단, 그녀의 정신적인 문제가 더 컸다.
수많은 시체 사이에서 멘탈이 나가 절규했던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려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재난 현장에서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수혁은 대답하는 에밀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모른 척했다.
‘귀국하면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지금은 에밀리를 돕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얼굴을 봤으니, 이제 다시 돌아가 사람들을 구해야만 했다.
“여기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FILO를 통해 연락 한번 주시죠.”
수혁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도 인연이니, 나중에 한가할 때 한 번 정도는 대화를 다시 나눠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런 수혁을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자, 잠시만요!”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수혁의 팔목을 붙잡았다.
“음?”
수혁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일행이 한 명 있어요.”
“일행 말입니까?”
“같이 온 신입 사진 기자인데, 섬 북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으러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어요.”
그녀의 말에 수혁의 눈이 살짝 작아졌다.
술라웨시 섬 북쪽이라면, 쓰나미가 직격을 한 위치다.
그리고 수혁과 손민준, 박상태가 함께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발견하면,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에밀리는 수혁에게 그런 부탁을 하면서도,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떨어져 있는 곳에 있던 자신도 죽을 뻔했다.
그런데 쓰나미가 직격한 위치에 있었으니, 솔직히 살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름은 브레드예요. 갈색 머리카락에 키는 178 정도. 약간 통통한 체형이고요. 아,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에요.”
살아 있을 확률은 낮다.
하지만 시체라도 확인하고 싶었기에 부탁했다.
수혁은 그녀의 말을 가만히 서서 듣고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발견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에밀리는 진심을 다해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혁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이런 부탁까지 들어준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만 안 했더라면.’
에밀리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수혁의 결혼을 취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기사로 접하고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하지만 그때의 아쉬움과 지금의 아쉬움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에밀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드려요.”
* * *
“이곳은 술라웨시 섬입니다. 보시다시피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폐허가 된 상태입니다.”
전 세계의 언론사에서는 술라웨시 섬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기자를 파견했다.
그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술라웨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했다.
“아름답고 평화롭던 이 섬은, 이제 죽음의 섬으로 변했습니다.”
카메라가 기자의 뒤쪽을 찍었다.
수많은 현지 사람들이 마치 좀비처럼 한쪽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그들의 얼굴에선 희망도, 슬픔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기계처럼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 끔찍한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수백 곳이나 되는 NGO 단체들.
각국에서 지원을 나온 구조대원들.
별다른 기술이나 특기는 없지만, 한 손이라도 거들기 위해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그들로 인해 술라웨시 섬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력과 물품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부상자를 처치할 의약품의 수가 너무도 부족해,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손 놓고 지켜만 봐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구호품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재난 앞에 전 세계가 합심해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노력들은 현장에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일단 공항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두 번째로 큰 문제는 바로 중간에서 장난질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다.
구호품들을 운송해 주겠다며 인계받아, 그대로 먹고 나르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구호품들은 재포장되어 비싼 값에 사람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뒤늦게 대책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 낭비된 시간만큼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이가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몰려온 구조대원들을 비추었다.
그 안에는 수혁도 있었다.
“상태 형. 이쪽!”
수혁이 박상태를 불렀다.
“간다!”
박상태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수혁에게로 달려갔다.
“심한 열상 환자예요. 출혈이 많아서 위독한 상태고, 지금 당장 이송해야 해요.”
“알았다. 여긴 나한테 맡겨.”
박상태는 수혁의 말을 머릿속에 욱여넣은 뒤, 요구조자를 둘러업었다.
어찌나 출혈이 심한지, 업자마자 주르륵- 하고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혼자 괜찮겠어요?”
“맡기라고, 인마. 너는 빨리 다른 요구조자나 찾아!”
사실 박상태는 죽을 맛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발 한 번 떼는 것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순 없었다.
그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사람보단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가족들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데다,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힘들다고?
‘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박상태는 입술을 깨물며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한 명의 요구자라도 더 구해야만 했다.
박상태는 요구조자를 업은 채, 빠르게 달렸다.
다행인 것은 어제보다 더 많은 의사가 도착한 덕분에, 임시 치료소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버티쇼.’
속으로 요구조자를 응원하며, 박상태는 그렇게 또 달렸다.
반면, 혼자 남은 수혁은 ‘생명감지Ⅲ’를 다시 한 번 사용했다.
‘끝이 없어.’
술라웨시 섬에 도착한 지 벌써 나흘이 되었다.
그사이 수혁이 구조한 요구조자의 수는 수백 명을 헤아린다.
다른 구조대원들도 있었으니, 나흘 동안 구조된 사람의 숫자는 엄청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넘쳐났다.
대부분은 경상자들이었다.
부상이 심한 자들은 이미 사망했거나, 수혁이 우선적으로 발견해 구조한 덕분이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임시 치료소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직접 가도록 지시했다.
오직 다리가 부러졌거나,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은 지금처럼 구조대원들이 직접 이송을 했고.
‘대체 구급대원들은 언제 오는 건지.’
재난현장에는 구급대원들이 필수였다.
아무리 많은 구조대원이 집결한다 해도, 구급대원이 없다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는데, 한쪽이 부족하니 다른 쪽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구급대원들만 있다면 구조에만 집중을 할 수 있을 텐데.’
수혁은 그게 아쉬웠다.
하지만 기다리는 수밖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많은 수의 봉사자들이 오고 있다니, 그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수혁은 잠깐 굳어진 몸을 풀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여, 여기 좀 도와주세요!”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멀어서 마치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음성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곧장 몸을 돌려 그곳을 향해 달렸다.
그러면서 ‘생명감지Ⅲ’로 주변을 살폈다.
‘위중한 사람은 없어.’
가장 심각했던 요구조자는 방금 전 박상태가 업고 간 그 사람이었다.
지금 이 주변에 더는 생명에 위협을 받는 요구조자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다급한 구조요청을 할 정도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싶었다.
“여기 사람……!”
간간이 들려오는 음성을 향해 달려간 수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 요청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인?’
소리를 지르고 있던 사람은 에밀리와 같은 백인이었다.
워낙 서구권 인종이 드문 장소였는지라, 수혁은 그를 보자마자 브레드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20대 중반. 통통한 체격.’
키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절반 이상 무너진 건물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수혁은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갔다.
“오, 맙소사! 감사합니다!”
수혁의 모습을 발견한 브레드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상태는 나빠 보이지 않아.’
굳이 ‘생명감지Ⅲ’로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 작은 찰과상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리 심한 것 같지 않았고, 출혈도 많지 않았다.
건물에 깔린 것치고는 천운이라고 할 정도로 괜찮아 보였다.
잠시 그를 살펴본 수혁이 물었다.
“혹시 브레드입니까? 에밀리와 같이 온 BBC 소속?”
“그, 그걸 어떻게? 아니, 그보다 당신 혹시?”
자신을 알아본 것에 대한 놀람도 잠시.
브레드는 수혁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눈을 부릅떴다.
“김수혁!”
수혁은 뒤에 이어진 히어로니 뭐니 하는 말은 못 들은 척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에밀리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 그녀가 무사합니까?”
“적어도 당신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