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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85화 (385/425)

레스큐 시스템 385화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한 것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며칠 정도뿐.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 그에게 있어, 이 정도의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와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분명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수… 혁?”

에밀리가 확실했다.

수혁이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여기에?’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와 큰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작 며칠을 함께 움직인 게 전부였으니까.

그것도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았다기 보단, 그녀가 일방적으로 수혁의 뒤를 따라다녔을 뿐이다.

그런데도 수혁이 에밀리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로 인해 수혁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에밀리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부상은 없는 것 같고.’

비교적 상태가 좋은 이들을 모아둔 텐트였으니 심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허벅지가 다친 것 같았지만, 그나마도 처치가 잘 되어 있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에밀리의 상태가 괜찮아 보이자, 그제야 수혁이 물었다.

“수, 수혁…….”

하지만 에밀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이곳에서 정말로 수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그래도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온 탓이었다.

“흐윽, 흑.”

에밀리가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며 울기 시작하자 수혁이 당황했다.

“아니, 갑자기 왜?”

에밀리를 이곳에서 보게 된 것도 충분히 놀라운데, 울음까지 터트렸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 * *

“상태 선배!”

손민준이 다급하게 박상태를 불렀다.

마침 한 명의 요구조자를 발견해 응급처치를 하고 있던 박상태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여기 요구조자가!”

너무도 다급한 음성에 박상태는 일단 손을 떼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음…….”

그러곤 침음성을 흘렸다.

손민준의 팔에 안겨 있는 요구조자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던 것이다.

“일단 내려!”

온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팔다리는 모두 부러진 것 같았고, 입에서도 끊임없이 피를 흘려댔다.

1초라도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대로는 의사들이 있는 치료소까지 데려가기도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박상태는 요구조자를 일단 바닥에 눕힌 후, 자세히 상태를 살폈다.

사지 골절도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다른 쪽 문제가 더 컸다.

“상태 선배. 배가…….”

“나도 알아.”

마른 몸에 비해 배가 지나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내출혈? 복수?’

복부에서 뭔가가 차오르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진 알 수 없었다.

“혈복강일까요?”

“……아마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박상태와 손민준은 의사가 아니었다.

아주 기초적인 응급조치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의학적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박상태는 이게 복수가 아닌, 피가 고여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안 좋아.’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구급은?”

“이쪽은 없습니다. 모두 율리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젠장.”

조금 전 슈미츠를 통해 많은 숫자의 요구조자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쓰나미로 인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열 명이 넘는 요구조자가 매몰되어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덕분에 일을 도와주고 있던 구급대원들이 모두 그쪽으로 향한 상태였다.

“어쩔 수 없다. 야, 옮겨!”

지금 옮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충격을 억제해 줄 수 있는 들것도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가만있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어.’

조금 위험하다 해도, 가만히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는 것보단 나았다.

손민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요구조자를 안아 들었다.

“최대한 조심히. 그렇다고 늦어서도 안 돼.”

“알고 있습니다.”

힘은 박상태보다 손민준이 좋았지만, 경험과 구조능력은 박상태가 훨씬 윗줄이었다.

박상태의 지시에 손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같이 가자.”

박상태는 방금 전에 자신이 발견한 요구조자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재빨리 등에 업었다.

다행히 상태가 그리 나쁘진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뛰어!”

그러곤 먼저 앞장서 달렸다.

‘젠장…….’

국경없는 의사회가 설치한 텐트까지의 거리는 꽤나 멀었다.

그곳까지 달려가며 박상태는 속으로 계속 욕설을 내뱉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편히 쉴 걸 그랬어.’

한국에 있을 때 박상태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었다.

출동이 있기 전까지 이렇게 쉬기만 해도 될까? 하는 생각에, 죄책감과 불안을 계속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바뀌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 목숨을 걸던 수혁이다.

그가 이런 방식을 따랐을 때는 이유가 있을 터.

‘이런 현장에 출동할 거란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힘들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일서에서 주구장창 출동을 나가는 쪽이 훨씬 편했다.

단순히 체력적인 측면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

그동안 박상태가 발견한 시체의 수만 수십 구가 넘는다.

현장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박상태 혼자 발견한 게 그 정도였다.

그 말은 박상태가 발견한 사망자보다 몇 배, 몇십 배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

동료와 지인들의 부상과 순직에만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은 사람의 싸늘한 시체를 발견하고, 두 손으로 그들을 꺼낼 때는 정신적인 충격이 심각했다.

특히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아이의 시체를 볼 때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복귀하면 쉬어야지.’

무조건 쉴 거다.

죄책감이든 불안감이든 뭐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쉬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박상태는 속으로 끊임없이 욕을 하며 앞으로 달렸다.

“상태 선배!”

그러다 뒤에서 들려오는 손민준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상태가 심상찮습니다!”

손민준의 팔에 안겨 있는 요구조자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젠장, 기도 확보하고 계속 달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여기서 멈춰봐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의사들에게 데려다주는 편이 나았다.

“조금만 버텨요!”

손민준이 요구조자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혹시 출혈로 인해 호흡할 수 없을지도 몰랐기에 한 조치였다.

미약하게나마 요구조자의 입에서 숨이 쉬어지는 것을 확인한 손민준이 다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손민준의 얼굴에는 울상이 가득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고, 품에 안겨 있는 요구조자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렇게 박상태와 손민준은 텐트를 향해 뛰었다.

“응급입니다!”

“여기 좀 봐주세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설치해 둔 임시 치료소에 도착한 두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구조대 복장의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쪽으로!”

다행히 그것을 들은 의사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손짓했다.

박상태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의사가 재빨리 청진기를 꺼내 들며 박상태에게 물었다.

하지만 박상태는 대답 대신 손민준을 가리켰다.

“저쪽부터!”

의사는 박상태가 업고 온 환자를 보려다, 박상태의 말에 흠칫- 했다.

한눈에 봐도 손민준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의 상태가 훨씬 위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손민준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야전침상에 요구조자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의사는 청진기를 들고 빠르게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의사는 요구조자의 가슴에서 청진기를 떼고는 맥과 호흡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다시 박상태에게로 다가왔다.

“뭐하는 겁니까? 지금 저 사람이 급하…….”

“사망했습니다.”

짧게 대답하는 의사의 음성은 무거웠다.

“……사망?”

손민준은 의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누워 있는 요구조자를 살펴보았다.

처음 발견했을 당시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의식도 없었고, 입가에는 핏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숨을 안 쉰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호흡이 있었다.

피를 토할 때 확인했으니 확실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잠깐 사이에 호흡이 끊긴 것이다.

“C, CPR을 하면…….”

손민준이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소용없습니다.”

“그게 의사가 할 소리입니까!”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손민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호흡은 끊어졌고, 심장도 멈췄습니다.”

“그, 그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의 음성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이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약도 부족하고, 심장과 호흡을 되돌릴 장비도 없습니다. 아니,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만큼 요구조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박상태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은 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맞습니다.”

의사는 그 말을 끝으로, 박상태가 데려온 요구조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가자.”

박상태가 굳어 있는 손민준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이냐?”

수혁에게 듣기로, 손민준은 그리 경력이 오래된 대원이 아니었다.

나이도 젊었으니 자신의 손에서 생명이 꺼진 사람을 처음 봤을 수도 있었다.

“아닙니다.”

손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바쁜 지역에서 구조대원으로 활동을 했다.

아무리 경력이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백 번 이상의 출동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 희생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손민준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털어내.”

박상태는 손민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신의 품 안에서 사람이 죽는 경험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것은 손민준도 그랬고, 경력이 10년을 훌쩍 넘어가는 박상태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무뎌지지 않는 일이었고, 절대 무뎌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거기에 얽매여 있을 수도 없는 일.

슬픔은 가슴으로 묻고, 다시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만 했다.

지금도 자신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후회와 눈물은 그들을 모두 구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움직일 수 있겠냐?”

“문제없습니다.”

손민준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럼 가자. 사람 구하러.”

박상태는 축 처져 있는 손민준을 이끌고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이와 같은 일이, 술라웨시 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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