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84화
“……저를 아는 사람이라고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도 아니고, 이 먼 인도네시아.
그것도 관광객은 거의 오지 않는 술라웨시 섬에서 말이다.
“확실합니까?”
수혁이 손에 들고 있던 잔해를 한쪽으로 치우며 물었다.
“정확하게 팀장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음…….”
수혁은 이제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였다.
바로 얼마 전에 미국의 명예시민이라는 핫이슈를 생성한 장본인이었으니까.
그런데 손민준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단순히 그렇게 아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아무래도 팀장님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았습니다.”
손민준은 에밀리가 자신을 보며 지었던 표정을 떠올렸다.
그것은 확실히 안면이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NGO 소속의 의료단체에서 설치해 둔 부상자 텐트에서 치료 중입니다.”
“잠시 다녀와야겠군요.”
수혁이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지금도 수혁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먼 땅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좋았겠지만…….
손민준이 직접 찾아와 말을 해주었으니 일단 찾아가 볼 수밖에.
“그런데 NGO 쪽은 좀 어떻죠?”
이 엄청난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전 세계의 NGO 단체는 모조리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국경 없는 의사회나 글로벌 케어 같은 의료단체도 있었고, 굿네이버스나 월드비전과 같은 구호단체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수혁이 있는 지역에는 국경 없는 의사회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워낙 부상자가 많은 데다, 급하게 오느라 충분한 물자를 챙겨 오지 못했다고 하니…….”
수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보급품이 부족하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수혈할 피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함부로 수술할 수도 없었으니까.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수혁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의료진들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구조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 허투루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녀오십쇼.”
손민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움직였다.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었지만, 서두른 덕분에 수혁은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난리도 아니구만.”
눈앞의 상황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근방에서 구조된 사람들은 죄다 이곳에 몰려 있는 탓이었다.
숨은 쉬고 있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가만히 누워 있는 이도 있었고,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이도 있었다.
부모와 떨어진 아이가 울며 엄마를 찾아대는 소리와 분주한 의사들의 고함소리가 더욱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수는 대충 봐도 백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저들 중 절반 정도는 수혁의 팀이 구조한 이들이었고.
“구조대!”
누군가 수혁을 알아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수혁이 구조한 이들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수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에게 눈인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
“@$%&@$%^.”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들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수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들 사이를 통과해 한 텐트에 도착을 했다.
“모르핀!”
“다 떨어졌어요!”
“젠장, 그럼 데메롤이라도 주세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부상자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수혁은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뭔가를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슨 일이죠?”
바쁘게 움직이던 간호사 중 한 명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영어로 물었다.
“아, 그게…….”
“구조자는 다른 텐트로 보내세요. 지금 여기는 보시다시피 더는 수용할 여력이 없으니까.”
간호사는 수혁의 옷을 보고는 그렇게 말을 했다.
“누구를 좀 찾으러 왔습니다.”
수혁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재빨리 말했다.
“……구조대 아니에요?”
“그건 맞습니다만, 좀 찾을 사람이 있어서요.”
“지금 이 상황에 누굴 찾는다는 거예요?”
간호사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금발의 백인 여성입니다. 부상을 입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양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서양인은 극히 드문 존재였다.
특히나 부상자 더욱 그랬다.
수혁의 말에 간호사가 눈을 빛냈다.
“한 명 본 것 같은데.”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거즈!”
간호사가 대답하려는데, 의사의 다급한 외침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간호사는 재빨리 몸을 돌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물자들 사이에서 거즈를 꺼내 의사에게로 달려갔다.
수혁은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사람 한 명을 찾는 것보단, 생명이 경각에 도달한 부상자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천 배, 만 배 더 급한 일이었으니까.
수혁은 그냥 혼자 찾을까 고민하다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간호사의 말대로 이곳에서 누군가를 찾는 일이 절대 쉬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수혁은 잠시 입구 옆에 서서 텐트 안쪽 상황을 살폈다.
“수술 가능합니까?”
“지금 자리가 없어요. 피도 부족해서 수술방이 있더라도 수술은 불가능하고요.”
“젠장, 보급은 언제 도착하는 거야.”
“오늘 밤 안에 보내준다고 했으니, 몇 시간 안 남았어요.”
“그때까지 못 버텨요!”
의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쩔 수 없어요. 수혈 없이 수술할 순 없잖아요.”
반면 간호사는 침착한 음성으로 의사를 진정시켰다.
의사가 패닉에 빠지면 곤란하다.
그랬다가는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못 살린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간호사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경험이 많은 분인가 보네.’
의사는 딱 봐도 이제 갓 전문의를 땄을 나이처럼 보였다.
서양인이라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무리 많아도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경험도 적고 상황도 최악이었으니, 멘탈이 흔들릴 만도 했다.
그에 반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간호사는 이런 현장 경험이 상당해 보였다.
“지금부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에 집중하세요.”
“그, 그건…….”
간호사의 말은 솔직히 선을 조금 넘는 발언이었다.
감히 간호사가 의사에게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의사는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단순히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베테랑이라는 건가?’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간호사는 어지간한 의사들보다 나았다.
일반 병원에서도 수간호사쯤 되는 이가 하는 말은, 의사들도 마냥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이곳은 권위적인 분위기의 병원이 아닌, 야전이었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서로가 존중하는 곳이었으니, 의사는 간호사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집중하셔야 해요.”
간호사가 다시 한 번 강하게 말했다.
“안 그러면 이 사람들 다 죽으니까.”
의사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리도카인하고 드레인 부탁드립니다.”
힘겹게 입을 연 의사의 음성은 비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음…….’
수혁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자가 부족해 구할 수 있는 생명도 놓치는 중이었다.
저 사람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의료진이 포기한 부상자에게로 다가갔다.
어디가, 어떻게 다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수혁은 의사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의식이 없었고, 호흡 역시 불안정했다.
출혈이 심해 전신에 진흙과 섞인 피가 덕지덕지 굳어 있는 데다, 부러진 정강이에는 뼛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심각하다.’
다시 말하지만 수혁은 의사가 아니었다.
그 말은 곧 이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치료는 하지 못할지언정,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이 환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응급처치I’
수혁의 손에서 스킬이 발동되었다.
오직 수혁만이 볼 수 있는 은은한 빛이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으음.”
작은 신음과 함께 환자가 몸을 뒤척였다.
이것으로 이 환자는 물자가 도착할 때까지 더는 악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살 수 있겠지.’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현상 유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뭐하고 계세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수혁이 흠칫- 놀라며 돌아봤다.
간호사였다.
“아, 잠시 상태를 좀 봤습니다.”
“……그리 좋지 않아요.”
“그렇게 보이는군요.”
의사를 진정시킬 때와는 달리, 간호사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잠시 밖으로 나가요.”
“괜찮겠습니까?”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대충 급한 불은 껐어요.”
그녀의 말에 수혁은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기다리게 미안해요, 워낙 급한 분들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간호사의 사과에 수혁이 손을 내저었다.
현장에서 직접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는 일만큼, 이들의 역할도 중요했다.
수혁은 의료진들의 수고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갑갑한 텐트에서 나와 신선한 공기를 한 번 크게 들이마신 간호사가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금발의 백인 여성이라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잠시 고민을 하던 간호사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아마 5번 텐트 쪽에 있을 거예요.”
“5번 말입니까?”
그렇게 말을 해도 수혁은 알 수가 없었다.
텐트에 번호를 붙여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텐트가 1번이에요.”
간호사는 당연히 수혁이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한 듯,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사람들이나 더 많이 구해주세요.”
밖으로 나가려던 수혁이 멈칫- 했다.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간호사 역시 수혁 못지않게 강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거면 돼요.”
간호사는 쉴 만큼 쉬었다는 듯,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수혁은 그런 간호사의 등에 살짝 목례를 하고는, 그녀가 가리킨 쪽으로 이동했다.
‘저쪽 끝이 1번이라고 했으니까…….’
수혁은 끝에서 5번째 텐트를 찾았다.
“여긴가?”
수혁은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들어갔던 곳과는 달리, 이곳은 꽤나 조용했다.
아무래도 중증 외상자가 아닌, 그나마 경증인 사람들을 모아둔 장소 같았다.
수혁은 텐트 안에 있는 야전 침상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간간이 신음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수혁이 생각한 대로 그리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맞는데…….’
수혁은 사람들을 살피다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금발의 백인 여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 얼굴은 꽤나 낯이 익었다.
“에밀리?”
수혁의 음성에 그녀의 눈이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