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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81화 (381/425)

레스큐 시스템 381화

‘이게 무슨……?’

손민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과 수혁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진 건가?’

박상태의 ‘시작!’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손등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대체 언제? 어떻게 진 것인지 제대로 인지도 하지 못했다.

‘강할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쉽게는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잘하면 이길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했었다.

수혁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자신 역시 팔씨름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김수혁 승!”

박상태가 수혁의 승리를 외쳤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이 중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오직 손민준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상태와 짐 머레이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율리안과 슈미츠 역시 수혁이 얼마나 괴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톰 역시 미국에서 수혁의 능력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했다.

‘맨손으로 차 문도 뜯어내는 사람이니까.’

톰은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손민준의 힘은 정말로 강했다.

직접 맞상대해 본 톰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지만 수혁은?

‘저건 사람이 아니지.’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제가 졌군요.”

손민준이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나대다가 망신만 당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씁쓸해졌다.

“신경쓰지 마라. 저놈이랑 팔씨름해서 이길 정도면, 소방관 말고 올림픽에 나가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박상태가 그런 손민준을 위로했다.

‘저 형은 대체 언제부터 말을 놓기 시작한 거야?’

계속해서 한 공간에 있었음에도, 저렇게 친해진 줄 몰랐다.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봐서.”

손민준이 애써 당황한 표정을 지우며 미소를 띠었다.

“그래, 그래. 저 미친놈 앞에서는 괜히 힘자랑 안 하는 게 나아.”

박상태는 손민준의 기분이 상했을 걸 예상하곤, 수혁을 씹으며 풀어주었다.

그 노력 덕분일까?

손민준이 픽- 하고 웃었다.

“정말 강하시네요.”

조금 전의 씁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감탄만이 남았다.

“팀장님이 이렇게 뛰어나니, 안심이 됩니다.”

손민준은 수혁과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

워낙 뛰어난 피지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부천서에 있을 땐 대원들이 그에게 많은 의지를 했던 것이다.

덕분에 손민준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무리하며 구조 작업에 임했었다.

같이 일했던 선배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피지컬? 경험?’

그 어떤 것도 손민준이 뛰어나다고 자랑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기보단,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젠 혼자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손민준에게는 깊은 안도감을 심어주었다.

“술이나 더 마시자고. 아직 남은 게 많아.”

박상태가 웃으며 어수선하던 자리를 정리했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

함께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었으니, 그 어색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서로 간의 간격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FILO의 한국 지부는 기본적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다.

행정적인 업무는 짐 머레이가 고용한 직원들의 몫이었고, 개인 장비를 제외한 다른 장비들은 모두 정비관들이 정비한다.

그러니 출근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대원들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아니면 다른 대원들과 함께 체력 단련을 한다.

누군가는 꿀을 빤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생활이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여가 시간은 내줘야 한다는 것이 짐 머레이의 생각이었다.

한 번 출동 나가면 최소한 일주일 이상 타국에서 구조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말이 최소 일주일이지, 그보다 몇 배는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그때를 대비해 최대한 편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약속했다.

대원들은 이런 생활에 만족했다.

평생을 현장에서 사투를 벌여왔던 이들이기에,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시간을 더욱 충실하게 보냈다.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아니, 양파 옆에 있는 거요.”

“이거요?”

“네. 그거 좀 가져다주세요.”

수혁은 집에서 점심을 만들고 있는 최은송을 도와주고 있었다.

“고마워요.”

수혁의 도움에 최은송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딱히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수혁이 심심해 보였기에 이리저리 부려먹고 있었다.

“그나저나 가게 인테리어는 언제쯤 끝난대요?”

최은송은 예향정을 그만두고, 집 근처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열기로 했다.

가게는 이미 구해두었고, 현재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한 2주는 더 있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신경을 좀 썼거든요.”

레스토랑은 모두 장모님의 자금으로 만들어졌다.

매매부터 인테리어 비용까지.

본래는 수혁과 최은송의 힘만으로 해보려고 했지만, 장모님이 결혼 선물이라며 마련해 준 것이다.

수혁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까지 가세해 선물을 받으라며 강요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역시 한식 레스토랑이겠죠?”

“퓨전으로 해볼까 했는데, 그냥 잘하는 걸로 하려고요.”

가게 이름은 ‘반상’.

테이블의 수가 다섯 개밖에 되지 않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지금은 작지만, 점점 키워보려고요. 언젠간 예향정처럼 됐으면 좋겠네요.”

예향정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권력가들도 자주 찾는 곳이었다.

과연 그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은송의 꿈만큼은 응원해 주고 싶었다.

“은송 씨 요리 실력이면 금방 이룰 수 있을 거예요.”

그냥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수혁의 입에는 최은송의 요리가 가장 맛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같이 준비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수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음…….”

스마트폰 액정을 확인한 수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누구예요?”

수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최은송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잠시만요.”

수혁은 일단 대답을 미루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김수혁입니다.”

수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있어요?”

최은송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제 휴식은 끝난 모양이에요.”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동이에요.”

“왔냐?”

수혁이 FILO 본부에 도착하자, 박상태가 반겼다.

예전에 많이 경험했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아, 난 여기에 있었거든.”

박상태는 딱히 할 일이 없어 본부에 마련되어 있는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하던 중이었다.

덕분에 가장 먼저 브리핑실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아직. 네가 제일 먼저 왔다.”

박상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팀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눈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다들 모이셨군요.”

상황실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입니까?”

성질 급한 슈미츠가 다급하게 물었고, 직원들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PC를 한 명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화면을 봐주세요.”

팀원들은 태블릿PC의 화면을 확인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는 20분이 지났고, 현재 쓰나미 경보가 발동된 상태입니다.”

태블릿PC에는 현재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찍은 사진과 영상들이 나타났다.

“BNPB(인도네시아 국가 재난 방지청)에서는 아직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소집했습니다.”

“피해 규모는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최소한 수백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것이었다.

만약 이 상황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피해가 몇 배는 더 심해질 것이다.

“화면에 표시된 것처럼 지진이 발생한 지역은 술라웨시 섬입니다. 하지만 피해가 그 섬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근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빨리 준비를 해야겠군.”

이런 현장에 지원을 나가려면, 엄청난 물자가 필요했다.

단순히 몸만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에, 준비할 것이 많았다.

“이미 장비와 물자의 준비는 완료된 상태입니다.”

“…벌써요?”

손민준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지진이 일어난 지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준비를 벌써 끝냈단 말인가?

“FILO에서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항공기에 선적하는 일뿐입니다.”

이런 사실은 수혁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수혁과 팀원들이 FILO에서 가장 중요한 인력이긴 했지만, 크게 보자면 그들 역시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FILO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다랗고 정교하게 돌아가는 단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오로지 현장 구조대원들을 서포트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고.

“그럼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일단 인천 공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직 지원 요청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FILO에서는 분명히 요청이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바로 가면 됩니까?”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은 드리겠습니다만, 최대한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직원의 말에 대원들이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남아 있는 사람은 미리 인사를 하고 나온 수혁과 가족이 없는 솔로들뿐이었다.

“차량이 준비되어 있으니 그것에 탑승해 기다리고 계시면 될 겁니다.”

한 치의 막힘도 없이 흘러가는 과정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 머레이가 건강까지 상해가며 만든 이 단체는, 너무도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단하네.’

수혁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슈미츠, 손민준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직원의 말대로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고작 여섯 명이 타고 이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시면 대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재난 발생부터 준비까지 걸린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국내의 일도 아니고, 타국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대단하네요.”

손민준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버스에 탑승했다.

FILO에 들어와 첫 출동이다.

당연히 조금은 혼선을 빚고, 절차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만큼 우리가 잘해야지.”

짐 머레이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지진이라.’

수혁이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이전 생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이만한 대형 재난이다.

당연하게도 수혁은 인도네시아의 지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해가 엄청났었지.’

정확한 수치나 규모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천 단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똑똑하게 기억했다.

미리 알고 대비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상황이었으니, 남은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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