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80화
창단식 비슷한 행사를 간단하게 끝낸 뒤, 친목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팀원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서로 대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대화에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
다행히 팀원 중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소외되는 이는 없었다.
‘정작 미국 사람은 두 명밖에 안 되는데 말이지.’
수혁이 속으로 웃었다.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들만 모여 있네요.”
그때, 손민준이 다가왔다.
“어떻게 압니까?”
수혁이 모은 팀원들은 확실히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은 없었다.
수혁을 제외하고, 굳이 하나를 뽑자면 율리안 정도.
그마저도 독일에서나 유명했고,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다른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긴 했지만…….
“알아봤죠. 그래도 앞으로 내 등을 맡겨야 할 사람들인데, 아무것도 모를 순 없으니까요.”
손민준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또 하나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수혁이 직접 선택한 인재들이라 할지라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손민준은 따로 팀원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인터넷 검색이나 지인들을 통해 알아본 정보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율리안에 대해선 여러 정보가 나왔지만, 다른 이들은 알아보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서 짐 머레이에게 연락까지 하며 알아봤다.
그런데도 많은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두가 뛰어난 소방관이자, 구조대원이라는 것.
그리고 그중 최고는 단연 수혁이었다.
특수 구조대 체력 테스트 때 봤던 수혁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지.’
피지컬에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 자신감이 수혁에게 산산이 박살났다.
덕분에 자존감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수혁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었다.
그 바람이 이제야 실현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 처음 직접 확인한 팀원들도 뛰어나 보였으니, 손민준은 만족했다.
저들이라면 앞으로 자신의 등을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처음으로 같이 일을 하는 사이였으니, 손발을 맞출 시간은 필요할 터.
손민준은 괜히 현장에 출동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소방관이 되어 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 죄책감이 몰려오긴 했지만,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수혁.”
그때 율리안이 둘에게 다가왔다.
“음식은 입에 맞는지 모르겠네요.”
친목에는 술과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법.
수혁은 저들에게 한국의 진정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치킨과 맥주를 한가득 배달시켰다.
“생각보다 훨씬 좋다.”
그것을 먹어본 율리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맥주의 질은 독일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그게 치킨과 어우러지며,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화를 이루어냈다.
단 한입에 치맥의 세계에 빠져든 이들은 정신없이 치킨과 맥주를 흡입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더군.”
맛있고, 싸다.
거기에 집 앞까지 직접 배달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좋은 음식들 덕분에 더 만족스러운 삶이 가능할 것 같았다.
수혁은 율리안이 미소 짓는 모습에 새삼 한국 치킨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둘이 인사했어요?”
수혁이 손민준을 가리켰다.
“아까 이름 정도만.”
“아직 제대로 대화는 못 나눠봤습니다.”
둘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이쪽은 율리안이에요. 독일에서 날아다니시던 분이죠.”
“그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율리안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세계 소방관 경기 대회에 출전해 수혁과 우승을 다툰 일 때문인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만 봐도 손민준은 율리안이 얼마나 뛰어난 소방관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한국의 손민준 씨. 보시면 알겠지만, 피지컬 괴물이에요.”
수혁과 율리안의 체격은 평범한 사람의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특히 율리안은 보고 있으면 위압감이 들 정도로 탄탄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것도 손민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손민준은 정말로 동양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피지컬을 자랑하고 있었다.
팀 내에서도 톰을 제외하면 가장 우람했다.
만약 키만 좀 더 컸더라면, 톰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손민준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팀에서 수혁 다음으로 궁금했던 사람이 바로 율리안이었다.
“나 역시. 이렇게 함께하게 되어 반갑군.”
둘은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남자들이 언제나 그렇듯…….
꾸우욱-!
두 사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맞잡은 손이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본 수혁이 속으로 픽- 웃었다.
유치한 자존심 대결이긴 했지만, 이런 것도 필요한 법이었다.
“으음.”
율리안의 얼굴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오, 민준 씨가 이기나?’
확실히 육체적인 능력만 따지자면, 율리안보단 젊은 손민준이 뛰어나긴 했다.
율리안 역시 온 힘을 다해 버텨보았지만, 결국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네.”
“대단하시네요.”
율리안이 패배를 선언했지만, 손민준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설마 율리안의 힘이 이 정도로 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자신이 이기긴 했어도 율리안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재밌는 일 있습니까?”
율리안과 손민준의 힘겨루기를 본 다른 사람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 별건 아니고.”
승부에서 진 율리안이 변명하려는데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혁이 아니었다.
“팀 내 최강자가 누군지 한번 겨뤄보고 있었습니다.”
수혁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아니던가?
“그래서 누가 이겼습니까?”
슈미츠가 물었다.
당연히 율리안이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민준 씨가 이겼다.”
수혁의 대답에 슈미츠가 눈을 부릅떴다.
설마하니 자신의 우상 중 한 명인 율리안이 질 것이라곤 생각도 못해본 모양이었다.
“팔씨름 대회라도 한 번 열까요?”
틈을 놓치지 않은 수혁이 다시 한 번 광역 도발을 시전했고, 이 단순한 사내들은 그것을 덥석 물었다.
“좋습니다!”
가장 먼저 슈미츠가 동의했다.
그리고 그 뒤를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따랐다.
“허허.”
한쪽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짐 머레이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보고만 있을 순 없겠군.”
“……짐?”
수혁이 설마 당신도 참여할 거냐는 눈빛으로 짐 머레이를 쳐다봤다.
“내가 그리 생각이 없어 보이나?”
짐 머레이는 껄껄- 웃으며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우승 상품을 걸지.”
상품이라는 말에 팀원들이 눈이 또 반짝였다.
“고작 팔씨름에 너무 비싼 상품은 좀 그렇고, TV 정도면 괜찮겠나?”
TV라는 말에 팀원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콧김을 내뿜었다.
물론 다들 집에 TV 한두 대씩 있긴 했지만, 하나 더 있으면 좋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짐 머레이가 주는 TV라면 평범한 건 아닐 테니, 욕심이 날 수밖에.
수혁조차도 은근히 참가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수혁의 뜻은 이뤄질 수 없었다.
“교관님은 빼죠.”
“저놈은 제외해야지.”
슈미츠와 박상태가 시작도 전에 막아버린 것이다.
“아니, 저는 왜?”
“그걸 몰라서 묻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 중 수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짐 머레이와 박상태였다.
특히, 수혁이 얼마나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박상태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팔씨름? 저놈이라면 손가락 하나만 써도 우릴 다 이기겠지.’
아니, 다섯 명이 힘을 합쳐도 못 이길 것이다.
아무리 피지컬이 좋다고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선에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아니다.
저건 상식을 벗어난 괴물이었다.
‘괴물에도 급이 있는 법이지.’
박상태는 수혁의 참전을 절대 허락할 수가 없었다.
결국 수혁은 입맛을 다시며 짐 머레이와 함께 심판을 보기로 했다.
톰과 손민준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박상태의 결사반대에 포기했다.
수혁과 팔씨름을 하고 싶으면, 대회가 끝나고 따로 해도 될 일이었으니까.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TV였다.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짐 머레이배 팔씨름 대회가 개최됐다.
잠시 후.
“결국은 저놈이 가져가는구만.”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회전에서 손민준을 만나 너무도 쉽게 패배를 하고 말았다.
안간힘을 써봤지만, 손민준은 수혁이 인정한 피지컬의 소유자.
박상태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박상태를 이긴 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손민준이 결국 결승에 도달했다.
상대는 바로 톰.
두 사람은 박빙의 접전을 펼쳤다.
정가운데서 미동도 하지 않고 버틴 시간이 무려 1분이 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톰은 급속도로 체력이 소모되기 시작했고, 젊은 피의 손민준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승자는 손민준으로 결정이 되었다.
손민준이 씨익- 웃으며 짐 머레이를 쳐다봤다.
“축하하네. 내가 괜찮은 걸 골라서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손민준이 희희낙락하며 우승자의 기쁨을 만끽했다.
‘대충 순위가 나오긴 했네.’
오직 근력만 따지자면, 1위는 우승자인 손민준이었다.
그리고 근소한 차이로 톰이 2위였고, 그다음은 바로 율리안이었다.
4위와 5위는 슈미츠와 박상태가 차지했다.
덕분에 박상태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어디 가서 힘으로 밀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꼴찌라니…….
허무할 만했다.
하지만 이 순위를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구조를 오직 근력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신체 능력만 좋다고 해서 뛰어난 구조대원인 것도 아니었다.
박상태에게도 남들 못지않은 뛰어난 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팀원들은 이 팔씨름 대회를 단순한 놀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물론 놀이를 넘어 실력 측정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수혁, 아니, 팀장님.”
바로 손민준이었다.
“음?”
수혁이 그를 쳐다봤다.
손민준의 표정에는 승부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랑 한판 해보시겠습니까?”
TV는 얻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호승심을 채울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대회의 참가를 격하게 반대할 정도이니, 대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손민준은 수혁이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체력 테스트 때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록 승부였고, 이번엔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말이다.
수혁이 그런 손민준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얼마든지.”
수혁이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