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378화 (378/425)

레스큐 시스템 378화

“……생각보다 너무 큰데요?”

최은송이 눈을 끔뻑였다.

“그, 그러게요.”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큰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사를 앞두고 완공된 집을 한번 확인하러 왔는데, 이전과 차이가 상당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짐?”

[오, 수혁. 무슨 일인가?]

상대는 당연하게도 짐 머레이였다.

“지금 새집에 도착했는데요.”

[괜찮지 않나? 신경 많이 썼다네.]

“좋긴 좋은데 너무 큰 것 아닌가요? 처음 설계보다 훨씬 커진 거 같은데요.”

[남는 땅이 좀 있어서 그랬다네. 괜히 놀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수혁은 짐 머레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애초에 처음 수혁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눈속임이고, 이게 진짜로 준비해 둔 것이었다.

“하아, 짐.”

[미리 말을 하지 않은 건 미안하네만. 뭐, 어쩌겠나? 이미 지어진 것을.]

짐 머레이가 허허- 하고 웃었다.

수혁은 당했다는 표정으로 최은송을 쳐다봤다.

그러자 최은송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고는 좀 다르긴 한데, 전 이쪽이 더 좋네요.”

역시 최은송은 짐 머레이의 선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더 나은 대우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은송이 좋아하는 모습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저랑은 다음에 따로 이야기하시죠.”

[알겠네. 조만간 새집으로 찾아가겠네.]

짐 머레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팀원들의 비자 문제나, FILO 내부의 산적해 있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잠도 줄일 정도였다.

‘다들 이사를 끝내고 나면 그때쯤 오시려나.’

그렇다면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아직 혼자인 손민준과 슈미츠는 금방 정리를 끝내고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지만, 유부남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리할 것도 많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다.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도, 몇 주는 더 걸릴 터였다.

“그러고 보니 슈미츠는 언제쯤 온다고 했었죠?”

최은송이 물었다.

직접 얼굴을 본 것은 한 번밖에 없었지만, 수혁에게 깍듯이 대하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오기로 했어요. 짐은 이번 주 내로 도착할 것 같고요.”

“첫 이웃이네요.”

수혁의 집 주변에는 팀원들이 살 집들도 모두 완공이 된 상태였다.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서 사는 것보단, 서로 가까운 곳에서 평소에도 교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수혁은 내심 이게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최은송이 좋아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해 외로워 보이던 아내다.

이렇게라도 팀원들의 가족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혼자 사는 놈이니 이민 오기도 쉬웠을 거예요.”

“혼자 이 먼 타국에서 생활하려면 힘들겠네요.”

“은송 씨가 좀 챙겨주면 좋을 것 같은데…….”

거창한 것 말고, 음식이라도 가끔 해서 보내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혼자 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서요? 손민준 씨라고 했나?”

“맞아요. 민준 씨도 다음 주쯤에 오기로 했어요.”

“총각들 밥은 제가 책임질게요. 힘든 일 하는데 굶고 다니진 말아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은송이 직접 해주는 요리였으니 다들 좋아할 것이다.

모름지기 혼자 사는 솔로남은 대부분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하니까.

“그럼 일단 들어가 볼까요?”

집 앞에 서서 잡담을 너무 오래 했다.

이제 슬슬 들어가서 내부를 구경할 차례였다.

“마당도 넓고……. 강아지를 키워도 괜찮겠네요.”

“커다란 놈으로요.”

안 그래도 수혁은 강아지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앞으로 태어날 자식의 정서 교육에도 좋고, 다른 나라로 출동 나가면 혼자 있을 최은송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이사하면 한번 알아봐요.”

최은송이 신난 표정으로 현관을 열었다.

“와아.”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밖에서 봤을 때도 고급스럽긴 했지만, 내부는 수혁과 최은송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무, 무슨 세트장 보는 것 같네요.”

이전 집도 좋았다.

타운 하우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고급스러운 집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집은 차원이 달랐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벌 집의 세트에 들어온 것 같았다.

새하얀 대리석이 바닥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화려한 금장 샹들리에가 빛을 발했다.

거실 한복판은 한 단 낮게 지어져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전기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이런데 살아도 될까요?”

너무도 화려하고 럭셔리한 광경에, 수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짐이 준 선물이잖아요. 우리만 이런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최은송도 표정이 심상찮았다.

집이 좋아도 너무 좋았던 것이다.

“이거 청소하려면 몸살 나겠네요.”

이런 집을 보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청소 걱정이라니.

최은송은 자신이 왠지 아줌마가 된 것 같아 실소했다.

“그러게요. 내가 집에 있을 때면 모를까, 출동 나가 있을 때는…….”

“또또! 쓸데없는 걸로 걱정한다.”

최은송이 인상을 썼다.

자신을 신경써 주는 것은 고맙지만, 고작 청소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좀 문제였다.

“청소 정도는 혼자 해도 문제없거든요?”

짐짓 삐친 표정을 짓자 수혁이 하하- 웃었다.

“알았어요. 그만 걱정할게요.”

둘은 웃으며 집안 곳곳을 구경했다.

집은 너무도 넓어 이전 집과 비교해도 최소한 세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집도 3층까지 있고, 지하에 마당까지.”

대체 이 큰 집안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했다.

“지금 집에 있는 짐 다 빼도 한참 부족하겠네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두 사람은 평생을 이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휑한 채로 둘 순 없었다.

“천천히 하나씩 채워 나가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최은송은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꾸며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큰 집을 보니, 괜히 도전 욕구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준비할 게 많겠어요.”

반면 수혁은 생각만으로도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강아지부터요.”

최은송은 마당을 본 순간부터, 반려견을 키울 생각에 잔뜩 들뜬 것 같았다.

“이사부터 해야죠.”

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네요. 언제 하는 게 좋을까요?”

“오늘 은송 씨 가게 자리 먼저 알아보고 결정해요.”

인천으로 이사를 하기로 한 순간부터, 최은송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출퇴근 거리도 너무 멀었고, 이제 슬슬 자신만의 가게도 차릴 때도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간 어머니로부터 예향정을 물려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진 혼자서 해보고 싶었다.

“그럼 집 구경 끝내고 부동산에 한번 가봐요.”

두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수혁의 이삿날.

포장 이사를 불러 편하게 지켜보고 있던 수혁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상태 형?”

“벌써 이사 시작이냐?”

부르지도 않았던 박상태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니,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인마, 내가 연락해야만 올 수 있는 사람이냐? 도와주러 왔다.”

지금 박상태도 한창 바쁠 때였다.

그 역시 이곳으로 이사를 와야 했으니까.

그런 와중에 이사를 도와주러 왔다니…….

수혁은 감동한 표정으로 박상태를 향해 말했다.

“포장을 불렀는데 굳이?”

“……미리 말하지 그랬냐.”

꽤나 비싼 돈을 주고 불렀는지라, 수혁은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럼 이왕 온 김에 집 구경이나 좀 하고 가요. 형네 집이랑은 조금 다를 텐데.”

“한번 보자.”

수혁이 복잡한 현관을 뚫고 박상태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세트장이냐?”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낄낄-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형 집은 어떤데요?”

“크기는 비슷한데, 조금 따뜻한 느낌이지.”

박상태의 집은 원목이 주를 이루는 인테리어였다.

덕분에 집 구조와 크기는 비슷할지라도, 느낌은 아예 달랐다.

“형도 이사하면 한번 놀러가야겠네요.”

박상태의 집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아니, 다른 모든 팀원의 집이 궁금했다.

짐 머레이의 말에 의하면 최대한 다른 인테리어로 꾸몄다고 했으니, 집들이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그런 여유도 얼마 못 가겠지만.’

자신들이 이곳에 모여 사는 이유는 단순히 친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인명 구조.’

수혁과 그의 팀이 앞으로 해나갈 일 때문이다.

앞으로는 정말로 쉴 새 없이 달려야만 했다.

물론 복지와 혜택들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길이 가시밭길이란 건 달라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힘겨운 싸움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정말 목숨을 걸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복지? 혜택? 여유 시간?

그 모든 것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위로해 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이사를 끝내고, 다른 대원들이 모두 이곳에 집결하는 순간.

그 순간부터 수혁은 다시 구조대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즐기자.’

수혁은 미소를 띠며 박상태를 안내했다.

***

“끄응.”

짐 머레이가 차에서 내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괜찮으십니까?”

“허허, 괜찮네. 나이가 드니 조금 고단한 것뿐이니.”

수행 비서의 걱정에 짐 머레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그리 좋은 몸 상태는 아니었다.

FILO의 설립부터 시작해 운영까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고 있었으니, 노쇠한 그의 몸으로선 벅찰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1월의 차가운 공기에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호텔로 돌아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지.’

괜히 이런 피곤한 노구를 이끌고 인천까지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곧장 달려와야 할 정도로 말이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의 종착점이니.’

내일 당장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이곳에 와야만 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비서가 짐 머레이의 한쪽 팔을 부축하곤 걸음을 옮겼다.

웬만해선 혼자 걷고 싶었지만, 이것마저 거절할 순 없었다.

“집들 참 괜찮지 않나?”

“고급스러운 게, 보기 좋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디자인 한 집들이라네.”

짐 머레이는 만족한 듯 웃으며, 집 사이를 걸어 어느 한 건물에 도착했다.

‘드디어…….’

짐 머레이의 눈에 감격이 서렸다.

-국제 구조 단체 FILO.

건물 입구에 새겨져 있는 글자.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들어가세.”

세상에 FILO의 첫 번째 공식 행사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FILO 1팀의 대원들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첫날이기도 했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