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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77화 (377/425)

레스큐 시스템 377화

신입 유의성은 지난 며칠 동안 수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특히 현장에 출동하면 단 1초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수혁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유의성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수혁의 특수 구조대 근무 마지막 날.

유의성은 마침내 수혁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피스텔 화재 현장.

2층 상가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 빠르게 번지며 많은 사람이 위층에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의성은 수혁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수혁의 등을 따라가던 유의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집은 왜 건너뛰는 걸까?’

유의성은 당연히 집집마다 방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집에 사람이 있고, 어느 집이 비어 있는지 알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문을 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호출이나 노크 정도는 해서 사람의 유무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이 유의성의 상식이었고,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수혁은 그런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마치 요구조자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이 멈춰서 문을 두드린 곳에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요구조자가 있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벌써 열 곳이 넘었어.’

평일 오후.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오피스텔의 특성상, 지금 이 시간에 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작위로 열 곳을 찍어 사람이 모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운?’

아니었다.

이건 분명 요구조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유의성은 수혁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며칠간 수혁은 너무도 쉽게 구조에 성공했다.

처음 수혁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었던 교통사고 현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현장에서도 수혁은 쉽게 쉽게 사람들을 구해냈다.

처음에는 경력에 비해 경험이 많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너무도 쉽게 요구조자들을 찾아내고, 혼자서 별다른 힘을 쓰지 않고도 구해냈다.

그리고 지금 역시.

“계십니까? 구조대입니다.”

수혁이 어느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 안쪽에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잘못 찍은 건가?’

유의성은 수혁이 마침내 실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젠장, 도끼!”

갑자기 수혁이 유의성을 향해 소리를 쳤다.

“예, 예?”

갑자기 도끼라니?

당황하며 머뭇거리는 유의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끼 내놔!”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의성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수혁에게 건넸다.

‘대체 왜?’

이 상황에 도끼가 필요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유의성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다, 눈을 부릅떴다.

“미친!”

수혁이 문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콰드득-!

단 한 방.

도끼질 한 방에 문손잡이가 완전히 뜯겨 나가며 문이 열렸다.

소방관의 파괴용 도끼가 아무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철문이 무슨 장작도 아니고.’

유의성은 깜짝 놀랐지만, 진짜 놀라야 할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괜찮으십니까!”

집 안에 사람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요구조자가!

‘……어떻게?’

요구조자는 의식이 없는 듯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으로 봐선 다행히 호흡은 하고 있었지만, 정신을 잃은 것인지 수혁의 외침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차라리 의식이라도 있었다면, 수혁의 부름에 인기척이라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였으니, 아무런 신호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수혁은 요구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끼로 문을 까부수고 들어갈 리가 없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마스크!”

수혁이 멍하니 서 있는 유의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유의성은 자신이 갖고 있던 보조 마스크를 재빨리 꺼냈다.

“연기를 마신 건 아닌 것 같군.”

아직 이곳까지는 연기가 퍼지지 않았다.

그러니 연기를 마신 것보다는 다른 부분을 의심해야만 했다.

‘지병인가?’

우연히 화재가 일어났을 당시 지병 때문에 쓰러진 것일지도 몰랐다.

“일단은 구급대에 연락해. 7층에서 의식불명의 요구조자를 발견했으니, 이쪽으로 와달라고.”

수혁은 언젠가부터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유의성은 그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다급히 무전기를 꺼내 든 유의성이 곧바로 구급대를 호출했다.

그러면서 계속 곁눈질로 수혁을 살펴봤다.

‘다르다.’

이쯤 되면 수혁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무슨 구조의 신을 보는 것 같네.’

유의성의 눈에 수혁은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다.

‘대체 어떻게 보고 배우라는 거야?’

강병규가 수혁을 보고 많이 배우라고 했지만, 어느 부분을 어떻게 따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비슷하게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이건 저 괴물만 가능한 일이야.’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하고, 배워왔던 방법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유의성은 그렇게 가만히 서서, 수혁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

“으, 오늘도 수고 많았다.”

강병규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혁이 웃으며 강병규의 말을 받았다.

“이제 오늘이 마지막인가?”

“그러네요.”

수혁이 시간을 확인했다.

근무 시간이 이제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슬슬 다음 근무조인 2팀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퇴근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거 섭섭하네.”

특수 구조대에서의 마지막 날.

강병규는 수혁을 향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주 놀러 오겠다는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저도 이제 이사를 가야 해서.”

“인천으로 간다며?”

“네. 그렇게 됐습니다.”

짐 머레이가 준비한 집들은 엄청난 속도로 지어졌다.

고작 한 달이 조금 넘은 시간에 모두 완공이 된 것이다.

‘무슨 공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건축 쪽 지식은 전무한 수혁이었는지라, 대충 빨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만 이해했다.

“집들이 한번 안 하냐?”

“정리가 되면 한번 초대할게요.”

특수 구조대를 나간다고 해서 지금까지 이어왔던 인연을 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연락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직접 만나는 게 좀 힘드니까.’

“그래그래, 너희 집 좋다고 소문났더라. 우리도 구경 한번 가보자.”

수혁을 비롯한 팀원들의 집이 인천에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에서도 보도된 적이 있었다.

아직 완공되기 전의 모습이긴 했지만, 꽤나 멋져 보이는 집의 모습에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소방관 집이 저렇게 좋아도 되냐는 말이 제일 많았지.’

수혁의 입장에서는 좀 어이가 없는 얘기였다.

소방관은 좋은 집에서 살면 안 되는 것인가?

허름한 원룸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소방관들에게 그런 이미지를 덧씌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국회의원들보다 소방관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더 많으니, 차라리 둘의 월급을 바꾸라는 말’부터 ‘수혁을 청와대로!’까지.

집 한 채 가지고 꽤 뜨거운 논란이 이어졌었다.

수혁이 볼 때 논란이 생긴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아마 집 정리하고 자리 잡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이사 자체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사보다는 FILO의 일이 더욱 시급했다.

단체가 설립되기는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았다.

짐 머레이와 함께 그것들을 해결하려면 당분간은 정신이 없을 것이다.

“잊지만 마라, 잊지만.”

“물론이죠.”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때마침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의성과 눈이 마주쳤다.

‘흠…….’

요 며칠 유의성이 잠잠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투덜거리는 것도 많이 줄었고, 지시하는 일을 빠르게 시행했다.

계속해서 관찰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크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수혁은 눈을 피하지 않는 유의성을 향해 턱짓했다.

‘따라 나와.’

수혁의 뜻을 알아차린 유의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게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뭐? 지금? 이제 슬슬 퇴근할 시간인데?”

강병규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자신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수혁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신입과 할 얘기가 조금 있어서.”

“아, 그래.”

뒤따라 움직이는 유의성을 발견한 강병규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까지 인수인계 똑바로 하고 가. 설렁설렁하지 말고.”

“걱정도 많으시네요.”

수혁이 웃으며 사무실 밖을 나섰다.

“커피?”

“저는 괜찮습니다.”

유의성이 손을 내저었다.

“그럼 말고.”

수혁은 이제 자연스럽게 유의성에게 하대를 했다.

수혁에 비해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유의성이었지만, 딱히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특구 일은 어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많이 바쁘다는 걸 빼면…….”

“아마 처음에는 많이 힘들 거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래도 체력 테스트에 합격했을 정도니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게 불가능했다면 뽑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요 며칠 나를 계속 관찰하는 것 같던데.”

“아, 강 선배가 많이 배우라고 하셔서…….”

유의성은 빠르게 둘러댔다.

네가 이상해서 보고 있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 배울 건 있었고?”

이번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걸 대체 어떻게 배워.’

수혁처럼 되는 방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돈을 줘서라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가르치고, 배우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유의성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수혁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를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거다.”

수혁도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배우라고…….”

“병규 선배가 네게 배우라고 한 건 다른 거야.”

구조 방법?

행동 요령?

그건 유의성이 배울 수도 없었고, 배울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

강병규가 유의성에게 배우라고 한 것은 그딴 게 아니었다.

“마음가짐.”

“……예?”

“네가 내게 배울 건 그거 하나였다.”

유의성은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가짐이라는 걸 대체 어떻게 배운단 말인가?

“아쉽게도 나는 네게 그걸 가르쳐 주지 못한 것 같군.”

고작 10일도 되지 않는 시간.

한 사람의 소방관을 변화시키기엔 지나치게 짧았다.

수혁은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도 성과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었지.’

다행히 지난 며칠간은 유의성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예 싹수가 없는 놈은 아니야.’

비록 직접 가르쳐 주진 못했지만, 여기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다.

“네게 필요한 건 기술과 능력이 아니야.”

“그럼 뭡니까? 소방관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까?”

유의성이 물었다.

그리고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현장을 무서워해라. 요구조자를 잃는 걸 두려워해. 그게 네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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