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76화
현장에 도착했다.
갑작스레 일어난 3중 추돌 사고로 도로는 혼잡했다.
하지만 보고로 들었던 것처럼 사고는 그리 크지 않아서, 다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딱히 위험한 것도 안 보이는군.’
수혁은 ‘위기감지Ⅲ’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곤 일단 마음을 놓았다.
“이쪽이요! 이쪽에 사람 있어요!”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스프레다 챙기고, 김수혁은 나 따라와.”
수혁은 전승철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 사람이 갇혀서…….”
“알겠습니다. 지금부턴 저희에게 맡기시고, 조금 뒤로 물러나 주세요.”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킨 수혁은, 주변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요구조자의 안전을 걱정하는 그들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구조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수혁의 지시에 잘 따라주었다.
걱정스러운 기색은 여전했지만, 차에서 멀찍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이분들이 신고했나 보네.’
한눈에 봐도 괜찮은 사람들 같았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갇혀 있던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쓴 것 같았다.
‘팀장님한테 얘기해서 표창장이라도 줘야겠다.’
대통령이나 장관 표창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남을 위해 애를 써줬으니 그 정도는 받을 자격이 충분해.’
수혁은 자신의 지시를 잘 따라준 다섯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물었다.
그들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수혁이 안심시키며 묻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것들을 스마트폰에 모두 받아 적은 수혁이 몸을 돌려 요구조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떻습니까?”
수혁이 요구조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던 전승철에게 물었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스프레다로 공간 벌리고, 절단기로 이쪽 잘라낸 뒤 빼내면 되겠지.”
수혁이 봐도 그럴 것 같았다.
요구조자는 딱히 출혈도 없어 보였고, 눈에 띄는 부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장비 왔습니다!”
그사이 다른 대원들이 장비를 챙겨 도착했다.
“절단기는?”
“신입이 갖고 오고 있습니다.”
“좋아. 일단은 스프레다부터 준비해.”
전승철이 구조를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그사이 수혁은 요구조자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별로 위험하지는 않으니까, 금방 꺼내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요구조자의 나이는 기껏해야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대가 오기 전에는 한바탕 운 모양이었다.
‘무서웠겠지.’
자신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야 그리 큰 사고가 아니었지만, 당사자는 다르다.
몸도 많이 아플 테고, 다리가 낀 상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공포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아프신 곳이 있습니까?”
“다리가…….”
수혁이 안심시키기 위해 건넨 질문에, 요구조자가 자신의 끼어 있는 다리를 가리켰다.
‘부러진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차량의 운전자들도 늑골 골절 등이 발생했으니, 이 요구조자도 뼈가 부러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위치가 좋지 않은데.’
핸들과 의자 사이에 끼인 부위는 허벅지였다.
만약 대퇴 골절이라면…….
‘내부 출혈이 심할 수도 있어.’
겉으로는 출혈이 없어 보였지만, 내부에선 출혈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대퇴 골절은 내부 출혈을 발생시켜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아직은 통증을 그리 심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다리를 빼내는 순간부턴 엄청날 텐데.’
핸들이 지혈과 압박의 역할을 해주며 지금은 괜찮아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수혁은 요구조자에게 한번 웃어주고는, 몸을 돌려 구급대를 찾았다.
다행히 자신들이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도착한 구급대원 중 한 명이 수혁의 부름에 달려왔다.
“대퇴 골절이 의심됩니다.”
수혁의 말에 구급대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골반과 고관절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겠군요.”
확실히 수혁보다는 의학적인 지식이 더 많았다.
“그에 맞춰서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아, 그리고 혹시 진통제는…….”
이번엔 구급대원이 난감해했다.
“진통제류의 약물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투여가 가능한 부분이라, 저희는 드리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수혁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통증이 심할 텐데.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한 뒤에 병원으로 이송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구급대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요구조자를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은 바로 이송할 수 있게 준비부터 해주세요.”
“금방 끝내겠습니다.”
구급대원과 이야기를 마친 수혁이 다시 차로 돌아왔다.
대원들은 어느새 준비를 끝낸 뒤, 스프레다를 이용해 구조를 하고 있었다.
“붙잡아!”
전승철과 강병규가 스프레다를 붙잡았고, 다른 대원들은 요구조자를 보호했다.
오직 신입만이 뒤쪽에 멀뚱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 뭐합니까?”
수혁이 그런 신입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딱히 제가 할 일은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신입의 말대로 요구조자의 주변은 대원들로 가득해 다가설 공간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절단기 준비라도 해놓으시죠.”
수혁의 말에 신입이 혀를 찼다.
“알겠습니다.”
신입은 수혁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해도, 사수나 다름없는 수혁의 지시는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거 문제네.’
아직도 현장을 너무 쉽게 보고 있었다.
특수 구조대에 들어올 정도면 꽤나 능력이 있는 건 확실한데, 마음가짐이 한없이 가벼웠다.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수혁은 그런 신입을 잠시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일단 지금은 신입보다 요구조자의 구조가 우선이었다.
스프레다가 공간을 벌리기 시작했다.
“아, 아악!”
진동이 허벅지에 그대로 전달되며, 요구조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정지!”
전승철이 다급히 스프레다를 빼냈다.
“골절인가?”
이 정도의 충격만으로도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뼈가 부러진 게 분명했다.
“이런…….”
전승철은 이제야 요구조자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했다.
‘미리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당연히 전승철이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구급대원에게만 말을 한 것이 실수였다.
“김수혁!”
전승철이 수혁을 불렀다.
“대퇴 골절 같다. 스프레다로 작업하기 힘들겠어.”
유압 장비였는지라, 장비가 작동할 시에 꽤나 큰 진동이 생긴다.
평범한 경우에는 별로 신경쓸 정도는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요구조자에게 너무 큰 부담이 생긴다.
“공간은 얼마나 만들어졌습니까?”
“조금 벌어지긴 했다만, 아직 모자라.”
수혁이 차 내부로 고개를 넣어 안쪽을 살폈다.
요구조자는 그 잠깐 사이 엄청난 고통을 느꼈는지,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쉽군.’
조금만 더 참을 수 있었으면 충분한 공간이 나왔을 것 같았는데, 이젠 불가능했다.
한번 고통을 경험한 요구조자는 스프레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마냥 참으라고 할 수도 없어.’
대퇴 골절로 인한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고통으로 인해 쇼크가 올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수혁이 신입을 불렀다.
“절단기 준비됐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신입이 글라인더를 가지고 왔다.
“일단 이쪽 문짝 좀 떼어주세요.”
수혁의 말에 전승철이 글라인더를 받아 들고, 운전석 문의 경첩을 향해 가져다 댔다.
“여기 모포도 좀!”
수혁이 다시 한 번 말하자, 신입이 투덜거리며 모포를 가지고 왔다.
“이거 들고 요구조자 앞에 가려요.”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신입은 모포를 문과 요구조자 사이에 펼쳤다.
쇳가루가 요구조자에게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신입은 마치 자신을 애송이처럼 다루고 있는 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한 대 패버릴까?’
수혁이 고민하는 와중에 전승철이 글라인더를 작동했다.
위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의 경첩이 빠르게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붉은 쇳가루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신입이 들고 있는 모포로 인해 요구조자에게 튀는 것은 없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문이 분리가 되었다.
“이거 치워.”
대원들이 떨어져 나온 문을 한쪽으로 치웠다.
“네 차례다.”
전승철이 수혁을 쳐다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별다른 방법을 생각한 게 아니었다.
그냥 힘으로 틈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전에…….’
수혁은 아직도 울고 있는 요구조자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며 스킬을 사용했다.
‘응급처치I.’
수혁의 눈에만 보이는 빛이 요구조자에게 흘러 들어가 흡수되었다.
완벽한 치료 효과 같은 것은 없었지만, 최소한 지금보다 상태가 나빠지진 않고, 통증 완화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스킬이었다.
빛이 스며들자, 요구조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훌쩍이며 눈을 깜빡였다.
“좀 어떠십니까?”
수혁이 물었다.
“괘, 괜찮은 것 같아요.”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을 터.
수혁은 안심하며 핸들을 붙잡았다.
“대퇴 골절일 겁니다.”
“대퇴 골절……?”
조금은 생소한 단어에 요구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로 반응을 하는 것으로 봐선 ‘응급처치I’가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았다.
“허벅지 뼈가 부러졌다는 뜻입니다.”
“아!”
요구조자의 얼굴에 겁이 잔뜩 서렸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만 잘 받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으니…….”
수혁은 말을 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요구조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걸고 있는 것으로밖엔 안 보일 것이다.
하지만 수혁의 힘에 의해 핸들은 조금씩, 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뒤에 있던 신입이 강병규에게 물었다.
“뭐가?”
“아니, 그렇게 혼자 급한 척은 다하더니……. 막상 하는 게 없지 않습니까. 이빨만 털고 있고. 대퇴 골절이라면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텐데, 지금 저러고 있을 땝니까?”
그간 쌓인 것이 많았는지, 대놓고 강병규에게 수혁을 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병규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네가 보기엔 저게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냐?”
“요구조자 안심시키는 거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잖습니까. 저럴 시간에 다른 분들은 구조해야죠.”
“어떻게 할 건데?”
“스프레다 써서요. 요구조자가 조금 아프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내해야…….”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던 신입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눈이 점점 커졌다.
“어?”
수혁이 요구조자를 꺼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요구조자와 말만 하고 있던 수혁이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 요구조자를 구조해 낸 것이다.
“대체 어떻게……?”
“저놈한테 배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워둬라. 앞으로 며칠 안 남긴 했지만. 넌 김수혁을 몰라도 한참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