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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73화 (373/425)

레스큐 시스템 373화

율리안이 합류했다.

이렇게 늦게 연락을 줘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실 율리안의 가족들은 수혁이 제시한 조건을 듣자마자,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히려 심사숙고한 것은 율리안 쪽이었다.

과연 받아들여도 될 것인가?

타지 생활이 힘들진 않을까?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많은 걱정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혼자가 아닌 가족들의 삶까지 영향을 주는 일이다 보니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아들의 말에 결정했다고 한다.

‘나와 같은 소방관이 되고 싶다니.’

수혁이 속으로 픽- 웃었다.

율리안은 위대한 소방관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초일류 소방관.

그런 아버지를 두고 수혁을 닮고 싶다고 하다니…….

그것을 들은 율리안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되었다.

‘섭섭했겠는데?’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존경한다는데 섭섭하지 않을까?

율리안 역시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아들이 그토록 원하는 수혁을 옆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정리하고 오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결정했다고 곧장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현재 직장을 관둬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위치가 위치였으니, 인수인계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터였다.

그리고 한국으로의 이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테고, 부동산과 같은 재산들도 처분해야 했다.

그러면 최소한 두 달 정도는 지나야 할 것이다.

물론 인수인계만 한 뒤, 나머지는 가족들에게 맡기고 율리안만 먼저 한국으로 올 수도 있겠지만…….

“짐이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놀랍게도 짐 머레이는 대원들의 집을 직접 지어주기로 결정했다.

아직 적당한 위치를 찾고 있긴 했지만, 수혁이 예상하기로는 인천 쪽이 아닐까 싶었다.

‘인천에는 인천 공항이 있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허브 공항.

전 세계를 관할로 삼고, 언제든 빠르게 출동이 가능해야 했기에 한 예상이었다.

집이 언제 완공될지는 수혁도 알 수 없었지만, 준비가 된다면 수혁도 이사 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꽤나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수혁,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아, 팀장님.”

수혁이 책상에 앉아 멍 때리고 있자, 전승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불렀다.

“무슨 생각하고 있냐고.”

“그냥……. 이런저런 생각 중이었습니다.”

아직 전승철에게 특수 구조대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미안하기도 했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다.

‘그만둔다고 하면 많이 실망하겠지?’

수혁을 특수 구조대로 끌어들인 것이 전승철이었다.

처음엔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음에도, 전승철은 수혁에게 머리를 숙여가며 부탁했다.

그런데 정작 특수 구조대원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만둬야 된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지.’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은 수혁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수혁보다 훨씬 힘든 결정을 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계속 미룰 순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수혁이 전승철을 향해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전승철이 대답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혁의 표정이 심각해 보이자, 전승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 하지.”

“아, 그럼 저도…….”

강병규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전승철이 고개를 저었다.

“낄끼빠빠란 말 아나?”

“……네?”

“빠져.”

설마 전승철의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올 줄 몰랐던 강병규는 당황하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가지.”

전승철이 앞장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수혁이 미안한 표정으로 강병규에게 속삭여 주고는 전승철의 뒤를 따랐다.

“밀크?”

“블랙으로 주세요.”

수혁의 요구에 전승철이 블랙커피를 뽑아 건넸다.

괜히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할 말이란 건?”

“음…….”

수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짐 머레이에게 어떠한 제안을 받았고, 그것을 위해선 아쉽게도 더는 이곳에서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일이고,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죄송하다.

‘대충 이 정도면 되려나.’

충분하진 않겠지만, 일단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가다듬은 수혁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그만두려는 생각인가?”

수혁이 입을 다시 다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전승철을 쳐다봤다.

그러자 전승철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수원에서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율리안과 슈미츠에게 제안을 할 때, 특수 구조대도 함께 있었다.

물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들었군.’

최대한 조용히 대화한다고 했는데, 전승철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자세한 건 못 들었다. 대충 새로운 단체가 설립되고, 네가 그곳에 들어갈 것이란 정도뿐.”

중요한 건 다 들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전승철은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눈을 감았다.

“어떤 곳이지?”

“국제 구조 단체입니다.”

아직은 정확한 명칭도 없었고 승인도 나지 않은, 준비 중인 단체였다.

하지만 수혁은 최대한 자세하게 그 단체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어떤 활동을 주로 할 것이며, 조직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이들이 함께하기로 했는지까지.

수혁의 설명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전승철은 눈을 감은 채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할 뿐이었다.

간간이 한 모금씩 마시던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쯤.

전승철이 눈을 떴다.

“좋은 단체군.”

“그렇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단체였고, 그 안에 소속될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중간에 누군가 헛짓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었다.

“언제쯤 그만둘 생각이지?”

의외로 전승철은 수혁을 붙잡지 않았다.

자신의 부하가 순직하면서, 전승철은 수혁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누구보다 수혁을 원했고, 수혁의 능력을 필요로 했다.

수혁은 그런 전승철이 당연히 자신을 붙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 것을 주저했던 것인데…….

‘너무 담담하잖아.’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수혁의 표정을 본 전승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내가 붙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솔직히 말하자면요.”

“붙잡으면 남을 생각은 있고?”

“그건 아니죠.”

이번엔 수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미 수혁을 중심으로 단체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머나먼 타국의 사람들도 설득해서 데리고 온 판국에, 이제 와 자신이 빠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붙잡을 이유가 없군.”

전승철이 손에 든 종이컵을 구기며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그래서, 언제 간다고?”

“조만간 결정이 날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히 결정된 것은 없었다.

일단은 단체의 설립이 먼저였다.

“그렇군.”

전승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섭섭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대장님께는 네가 직접 보고하도록.”

“제가 말입니까?”

당연히 전승철이 보고할 줄 알았던 수혁이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이런 보고는 그가 도맡아 해왔기 때문이었다.

진태수가 수혁을 마음에 들어하고, 아낀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가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었다.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보고를 하라니.

“팀장님이 대신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대장님이 실망할 거다.”

그 한마디로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진태수가 수혁에게 걸고 있는 기대는 컸다.

지금껏 수혁이 보여준 활약만으로도 진태수의 기대는 한껏 상승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둔다는 소식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면 그 실망감이 더 클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지금 바로 올라가서 보고하도록.”

전승철이 수혁의 등을 밀었다.

반쯤 강제로 위층에 올라간 수혁은 진태수의 사무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이나 만나본 얼굴이었지만,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똑똑-

“들어와.”

수혁이 노크를 하자, 안에서 진태수의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수혁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태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무시간 중에 자신을 찾아올 일이 있던가? 하는 표정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앉아.”

진태수는 수혁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는지, 일단 수혁에게 자리를 권했다.

“뭐 마실래?”

“괜찮습니다.”

방금 전 커피를 마시고 올라온 터라, 목이 마르진 않았다.

준다고 해서 넘어갈 것 같지도 않았고.

“무슨 일이지?”

수혁의 앞에 앉은 진태수가 물었다.

“조만간 특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그만둔다?”

진태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전승철과는 달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유는?”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승철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지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할 순 없었기에 수혁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했다.

진태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긴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진태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남아 있을 생각은 전혀 없나?”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전승철과는 다르게, 자신을 붙잡아주었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기분이 좋은 걸 보면 나도 참…….’

수혁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기분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남을 생각이 없었다.

남을 수도 없었고.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두통이 생기는지, 진태수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감았다.

그러곤 수혁의 말을 곱씹었다.

확실히 자신이 수혁이라 하더라도 그쪽을 선택할 것 같았다.

어떤 대우를 받느냐를 떠나, 그쪽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10년, 아니, 5년만 젊었더라면 자신도 함께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늙었고, 더는 현장에서 뛸 힘이 없었다.

진태수는 수혁이 그만둔다는 것보다, 그 현실이 더욱 아쉬웠다.

“……알겠다.”

수혁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붙잡는다고 해서 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괜히 마음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위에서 난리가 나겠군.’

한국 소방관들의 이미지를 더할 나위 없이 드높인 수혁이 그만둔다니.

정부와 소방청에서는 수혁을 붙잡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게 분명했다.

‘그걸 막아주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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