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71화
수혁은 저녁 식사에 율리안과 슈미츠, 그리고 짐 머레이를 초대했다.
짐 머레이가 나머지 두 사람을 픽업해서 오기로 했기에,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매운 건 별로 안 좋아하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짐은 괜찮아도, 다른 두 명은 입맛에 안 맞나 보더라고요.”
밥차에서 준비한 제육볶음을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던 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꾸역꾸역 먹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독일 음식들과는 차이가 났기에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일단 불고기 종류로 해봐야겠네요.”
불고기는 외국인들에게 잘 먹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달콤짭짤한 양념과 고기의 식감이 외국인들의 입맛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선 삼겹살이라도 굽고 싶은데…….”
“이제 밤에는 좀 춥잖아요.”
수혁의 집에 널찍한 테라스가 있긴 했다.
하지만 부쩍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밖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은 내키질 않았다.
“불고기면 충분할 거예요.”
하지만 최은송은 불고기만으론 좀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아껴두었던 재료들을 몽땅 끄집어냈다.
“아니, 고작 세 명 오는데 이렇게 많이 할 필요는…….”
“모자란 것보단 많은 게 나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나 율리안과 슈미츠는 덩치가 큰 만큼 식사량도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수혁까지 있으니, 꽤나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모자라지 않을 터.
최은송은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하겠다며, 신나게 주방을 누볐다.
덩달아 수혁 역시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음식들이 대충 준비가 되어가자 초인종이 울렸다.
“아, 왔나 보네요.”
쌓여 있던 설거지를 하던 수혁이, 이때다 싶어 재빨리 도망가 문을 열었다.
‘차라리 현장에 나가는 게 낫지.’
요리는 아무래도 수혁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자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짐 머레이가 코를 킁킁- 하며 웃었고,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교관님, 여기 이거…….”
슈미츠가 어색하게 집으로 들어오며 손에 있던 것을 수혁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뭐지?”
“한국에서는 초대받은 손님이 이런 걸 사간다고 해서…….”
“이걸?”
두루마리 휴지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집들이 선물 같은 걸 본 모양이었다.
세 명 다 외국인이었는지라, 한국 문화를 잘 몰랐기에 고른 선물인 것 같았다.
‘뭐, 틀린 것도 아니지.’
어쨌든 이들은 수혁의 집에 처음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맙다. 잘 쓰도록 하지.”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슈미츠의 표정이 밝아졌다.
왜 휴지를 선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잘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 한국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율리안이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수혁이 깜짝 놀라며 가르쳐 주었다.
“아, 그랬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은 율리안과 슈미츠가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오…….”
생각보다 크고 좋은 집에 슈미츠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율리안 역시 널찍한 거실을 둘러보며 집을 구경하고 있는데, 최은송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반가워요.”
웃으며 인사를 건넨 최은송에게 짐 머레이가 손을 들었다.
“이거 오랜만이군.”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이 늙은이야 항상 바쁘게 지내고 있지.”
둘은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며 가볍게 포옹을 나눴다.
“이쪽이 율리안이에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마 박상태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소방관이 바로 율리안일 것이다.
그리고 율리안은 모르겠지만, 사실 최은송은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최강 소방관 대회에서 말이다.
수혁을 응원하러 갔던 최은송은 멀리서나마 율리안의 모습을 구경했었다.
“율리안입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율리안이 예의 있게 고개를 숙이며 최은송에게 인사를 했다.
“여기는 슈미츠. 예전에 말했던 적 있죠? 연수에서 내가 가르쳤다고.”
“아, 들은 적 있어요.”
최은송은 슈미츠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사모님.”
“……사모님?”
나이로 보면 두 사람은 또래다.
기껏해야 최은송이 한두 살 정도 많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모님이라니?
최은송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슈미츠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교관의 아내였으니, 당연히 존칭을 했을 뿐인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면 되네.”
옆에서 보고 있던 짐 머레이가 헛기침을 하며 슈미츠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그, 그렇습니까?”
슈미츠는 최은송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잠깐 쉬고 계시겠어요? 아직 좀 더 기다리셔야 해서.”
“천천히 하게.”
짐 머레이가 두 사람을 데리고 거실로 향했다.
“사모님이라니…….”
또래 외국인에게 사모님 소리를 들은 최은송이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에 수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최은송이 째릿- 쳐다봤다.
뜨끔해진 수혁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더 도와줄 거 있어요?”
“거의 다 됐어요. 혼자 해도 되니까 손님들이나 챙겨요.”
최은송은 ‘흥!’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으로 돌아갔다.
슈미츠의 사모님 발언이 내심 재밌었던 수혁은 다시 실실 웃으며 거실로 갔다.
“집이 꽤 좋군.”
설마 수혁이 이런 집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율리안은 소파에 앉은 채로 계속해서 집을 둘러봤다.
“선물 받은 겁니다.”
“선물?”
율리안과 슈미츠의 시선이 짐 머레이에게 향했다.
수혁에게 이런 좋은 집을 선물해 줄 사람이라고 하면, 짐 머레이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주고 싶었네만, 이미 다른 사람에게 받았더군.”
만약 짐 머레이가 집을 선물했더라면, 이런 타운 하우스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초호화 아파트나, 그것이 아니라면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줬겠지.
수혁은 짐 머레이가 집을 선물 하기 전에 이 집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구경 좀 하시겠습니까?”
수혁이 물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나?”
“물론이죠.”
율리안과 슈미츠는 수혁의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은 한국의 숙소라고는 호텔 밖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더욱 궁금해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말이다.
수혁은 일단 그들을 데리고 1층을 둘러봤다.
평범한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
이때까지 두 사람은 크게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이미 거실에서 대부분을 확인한 상태이기도 했고, 깔끔한 인테리어를 제외하면 딱히 구경할 거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층에 올라서자 슈미츠의 눈이 커졌다.
독일의 평범한 집에서는 볼 수 없는 크기의 테라스와 그곳에 있는 바비큐 그릴 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지하였다.
바를 비롯한 놀이 공간으로 꾸며놓은 지하를 본 율리안과 슈미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 부럽군.”
율리안도 남자였다.
집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신세계로 보였다.
오히려 젊은 슈미츠보다도 율리안이 더욱 좋아하는 것 같았다.
‘유부남이란 어느 나라나 똑같구나.’
수혁은 속으로 살짝 웃으며 바를 가리켰다.
“식사 후에는 여기서 술이나 한잔하시죠. 아마 독일 맥주도 좀 있을 겁니다.”
“맥주보단 소주라는 걸 좀 마셔보고 싶은데.”
“물론 소주도 있죠.”
수혁은 내심 소맥의 세상에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위로 올라왔다.
다리가 아프다며 집 구경을 사양한 짐 머레이가 최은송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구경은 벌써 끝났나?”
“네. 좋더군요.”
“저도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네요.”
슈미츠가 부럽다는 듯 수혁을 쳐다봤다.
“살 수 있을 걸세.”
그런 슈미츠를 본 짐 머레이가 말했다.
“네?”
슈미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내가 복지에 대해 말을 안 했나 보군.”
짐 머레이가 깜빡했다는 듯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우리와 함께하기로 하지 않았나.”
짐 머레이는 단체에 소속되는 대원들에게 복지 차원에서 집을 한 채씩 지원해 주기로 했다.
수혁의 팀은 원활한 활동을 위해 한국에 거주하기로 했으니, 그들을 위해 집을 선물하기로 한 것이었다.
다른 팀의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
세금이 꽤나 나오겠지만, 짐 머레이에게 있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수혁의 집보다는 더 좋을 걸세.”
짐 머레이가 기대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슈미츠는 벌써부터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확실히 집으로 유혹하는 것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율리안마저도 혹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집이라는 미끼 하나만으로 율리안의 마음이 한층 더 크게 기울었을 것이다.
“일 얘기는 그만하고, 다들 와서 이것들 좀 날라주세요.”
어느새 요리가 끝났는지, 최은송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에게 맡기십쇼!”
슈미츠가 의욕적으로 나서며 최은송의 요리가 담겨 있는 접시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건 뭡니까?”
생소한 요리들에 슈미츠가 물었다.
“잡채라는 거다.”
“이건?”
“……떡갈비라고 하지.”
수혁은 슈미츠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음식들을 나르면서도 쉬지 않고 입을 놀려야만 했다.
“그냥 먹어라, 슈미츠.”
보다 못한 율리안이 그런 슈미츠를 말렸다.
괜히 시무룩해진 슈미츠가 입을 다물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식사하면서 가르쳐 드릴게요.”
이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어려서일까?
최은송이 슈미츠를 동생 보듯이 쳐다보며 달랬다.
“가, 감사합니다.”
슈미츠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얼마나 많이 한 건가?”
거실에 마련된 상에 요리가 한가득 쌓였다.
말로만 듣던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게 이런 모습인가 싶었다.
당연히 외국인 삼인방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국인인 수혁조차도 많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저들에게는 가히 문화충격일 것이다.
“원래 한국에선 반찬이라는 것을 많이 먹는다고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슈미츠가 멍하니 상 위를 쳐다봤다.
“자자, 얼른 앉아서 식사해요.”
최은송의 재촉에 모두 홀린 듯이 앉았다.
“오늘 이거 전부 다 드시고 가야 합니다. 저랑 은송 씨가 이것들 만드느라 고생 엄청 했으니까요.”
“그, 그러지.”
짐 머레이가 말을 더듬었고, 슈미츠는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식사하시죠.”
식사가 끝난 시간은 무려 두 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수혁을 포함한 전원이 배를 두드리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럼 소화도 시킬 겸, 아래로 내려갈까요?”
“그거 좋죠!”
슈미츠가 가장 신나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율리안 역시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리는 좀 이따 같이해요.”
수혁이 조용히 말하자, 최은송은 고개를 저었다.
“볼일 봐요, 여긴 저한테 맡기고.”
최은송은 수혁이 그냥 놀기 위해 저들을 데리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 잘하시고요.”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