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70화
구조는 총 사흘에 거쳐 진행됐다.
첫날 대부분의 요구조자들을 구조하긴 했다.
무려 백 명을 뛰어넘는 숫자의 생존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시킨 것이다.
하지만 남은 요구조자들도 있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
너무 깊은 장소 있어 시간이 필요한 곳.
잘못 건드리면 붕괴될 위험성이 있는 곳.
그곳에 있는 요구조자들은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혁이 앞장서 그들을 구하긴 했지만 말이다.
3일간 이어진 구조 활동에, 언론은 수혁을 집중했다.
수혁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몇 시간을 움직였는지, 심지어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기사로 써서 내보냈다.
그만큼 사람들이 수혁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말이다.
“구조보다 이게 더 힘드네요.”
수혁이 지친 얼굴로 스마트폰의 액정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는 수혁이 오늘 아침 몇 시에 현장으로 출근했는지에 대한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도 이제 끝이잖습니까.”
슈미츠가 웃으며 수혁을 위로했다.
이제 남은 요구조자는 없었다.
수혁이 ‘생명감지Ⅲ’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니, 형식적인 수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군.”
율리안은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랜만에 휴가를 받아 수혁을 만나러 한국까지 왔건만, 결국은 또 현장이다.
거기다 그 현장이라는 것이 엄청난 희생자를 낳았으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현장도 대충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데, 이제 그만 오셔도 됩니다.”
남은 요구조자도 없다.
그러니 율리안과 슈미츠가 굳이 현장에 나올 필요는 없었다.
3일간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내일부터라도 남은 휴가를 좀 즐겼으면 했다.
“뭐, 그래야지.”
율리안도 한국까지 와서 사람만 구하다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몇 번이나 방문해 본 한국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관광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다.
“추천할 만한 곳이라도 있나?”
한국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수혁에게 구조 단체에 대한 제안을 받았고, 예상치 못했던 현장에 나와 요구조자도 구했다.
이제 남은 4일간은 좀 편하게 한국을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율리안과 슈미츠는 한국에서 어떤 관광지가 인기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갈 만한 곳이라면.”
수혁이 잠깐 생각해 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하나도 모르겠네.’
자신 역시 국내 여행을 몇 번 다녀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마저도 최은송과 다녀본 것이 전부였다.
“음…….”
수혁이 신음했다.
자신 때문에 황금 같은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추천을 해주고 싶은데 도무지 해줄 만한 곳이 떠오르질 않았다.
“겨, 경주라던가?”
“경주?”
그래서 수혁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떠올리며 일단 내뱉었다.
“저 밑에 있는 도시인데, 옛날 한국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죠.”
수혁은 추천해 주면서도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수학여행으로 간 적밖에 없으니까.’
단 한 번.
그것도 중학생 때 가본 것이 전부였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경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였으니, 추천하기엔 괜찮은 것 같았다.
“경주라…….”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가보도록 하지.”
다행히 율리안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이제 철수하는 게 낫지 않겠나?”
율리안이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이제 빠질 생각이었습니다.”
더는 요구조자가 없다.
남은 수색과 후속 조치는 지역 소방관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수혁과 특수 구조대는 이제 슬슬 철수해 일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이 율리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이긴 했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네가 독일에서 해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율리안은 수혁의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테러 사건 때 수혁은 독일에 더없이 큰일을 해주었다.
미국에서 수혁을 명예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곤, 독일 정부도 뭔가를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죠. 너도 고맙다.”
수혁은 이번엔 슈미츠를 쳐다봤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수혁이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를 했다.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럼 감사의 의미로 오늘 저녁은 제가 쏘겠습니다. 괜찮죠?”
지난 3일 동안 율리안과 슈미츠가 먹은 음식이라고는, 호텔 조식과 밥차에서 나오는 음식들이 전부였다.
그게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3일이나 비슷한 것들을 먹으니 질릴 만도 했다.
“좋은 생각이군.”
율리안도 이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는지, 수혁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 그리고 이 기회에 제 와이프도 소개시켜 드려야겠네요.”
아직 율리안과 슈미츠는 최은송을 본 적이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앞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 율리안은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수혁은 그가 받아들일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이 기회에 최은송을 소개시켜 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요리 솜씨도 좀 자랑하고 말이다.
“좋은 생각이군.”
“저도 좋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먼저 숙소에서 씻고 기다리고 계세요. 준비 끝나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율리안과 슈미츠가 먼저 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수혁은 다시 몸을 돌려 현장 쪽으로 향했다.
그 두 사람과 달리 수혁은 특수 구조대에 소속되어 있는 대원이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수혁이 부르자, 전승철이 뒤를 쳐다봤다.
수색에 한창 집중하고 있던 전승철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추울 텐데.’
이제 곧 겨울이다.
아직은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그래도 싸늘한 기운에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계절인 것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 것으로 봐선, 꽤나 힘들게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철수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수혁의 말에 전승철이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그렇군.”
전승철은 수혁에게 말을 들어 더는 요구조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열심히 수색하고 있던 이유는 생명을 잃은 희생자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낼 때가 되었다.
이제 슬슬 철수해야 내일 제대로 근무를 할 수가 있었다.
안 그래도 3일간 거의 혹사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기에, 대원들에겐 휴식이 간절했다.
“철수하지.”
전승철이 무전기를 들어 대원들을 호출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수색하고 있던 대원들이 금세 모여들었다.
“철수준비 해라. 장비 정리한 다음 곧장 퇴근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구조차로 향했다.
그런데 수혁은 그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도 같이 가죠.”
이제 현장 철수를 하게 되었으니, 구조 본부에 보고해야 했다.
수혁은 전승철과 함께 구조 본부로 갔다.
전승철은 도착하자마자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제 철수하려는 건가?”
김민철이 전승철의 방문 이유를 짐작한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전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민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특구의 도움에 감사하네.”
지원 온 구조대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수 구조대의 활약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곳에는 수혁이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대원들 역시 전문가 중 전문가들이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고.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전승철은 김민철과 악수를 하고는 철수보고를 했다.
“수고했네.”
김민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수혁의 차례였다.
수혁은 김민철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죄송했습니다.”
느닷없는 사과에 김민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허리는 이쪽에서 숙여야 했다.
수혁이 아니었다면, 이 많은 요구조자를 제시간 내에 구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수혁은 인사를 받는 대신, 김민철에게 사과했다.
“왜 이러나?”
김민철은 혹시나 기자들이 볼세라 수혁의 몸을 붙잡았다.
만약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내일부터 김민철은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혁은 허리를 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첫날, 상황이 급박해 대장님께 많은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수혁의 말에 김민철이 멈칫- 했다.
이제야 수혁이 왜 이러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김민철에게도 잘못은 있었지만, 이번엔 수혁이 실수를 한 것도 맞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상급자에게 잘못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수혁은 그것을 사과하고 싶었다.
“허, 참.”
김민철은 수혁을 강제로 일으키는 것을 포기했다.
수혁이 왜 자신에게 사과하는지 알아차린 데다, 솔직히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헛웃음을 내뱉은 김민철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사과를 받아들이지.”
그제야 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자네가 당시에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있네.”
그때는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애송이 놈이 인기 좀 있고,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상급자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일.
수혁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김민철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계급이고 나발이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앞뒤 재지 않고 행동을 한 것이었다.
김민철도 소방관이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구조대장의 자리까지 오른 소방관.
수혁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수혁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수혁을 높게 평가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김민철이 손을 내밀었다.
“언제 또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네. 그때도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오겠습니다.”
수혁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악수한 뒤, 전승철과 함께 구조 본부를 빠져나왔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군.”
그가 아는 수혁은 이렇게 순순히 사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은 수혁이 딱히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조금 예의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특수 구조대라는 특수성을 생각해 보면 크게 책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수혁이 사과했다.
전승철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음…….”
수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조금 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전승철에게 밝히기엔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런가?”
다행히 전승철은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수혁은 그런 전승철의 뒤를 따라 구조차로 향했다.
이제 철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