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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69화 (369/425)

레스큐 시스템 369화

당연한 말이겠지만,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보단 밥과 반찬을 먹는 것이 훨씬 든든하다.

비록 고급 레스토랑의 값비싼 요리들은 아닐지라도, 이런 현장에선 꿈도 꾸지 못할 호사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준비된 식판에 음식을 한가득 담아 먹고 있는 소방관들의 표정은 밝았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육신에 활력을 불어넣는 식사가 꽤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배를 잔뜩 채운 덕분에 앞으로도 더 힘을 내서 구조에 전념할 수 있을 터.

소방관들은 빠르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것은 수혁과 다른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다 보니 현장에서 밥차를 다 보네요.”

팀장이 제육볶음을 입에 한가득 우겨 넣으며 말했다.

“아, 저희는 가끔 보긴 합니다.”

“정말입니까? 역시 특구…….”

강병규의 말에 일반 구조대원들이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부러워할 일은 아니죠. 밥차가 올 정도면 몇 날 며칠을 밤새워가며 작업해야 하는 현장이니까요.”

지금처럼 말이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 현장에서 시민 단체가 보내주곤 합니다.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만.”

전승철이 강병규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도심으로 출동한 경우에선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번화가에선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렇긴 하겠네요.”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산불 현장 같은 외진 곳에선 식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대형 산불 같은 경우엔 국민들의 관심도 집중되어 있었으니, 그만큼 소방관들에게 신경을 더 써줬을 테고.

밥차가 조금 부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장에서 맛있는 밥 좀 먹겠다고 그런 대형 현장에 출동 나가는 것은 사양이었다.

먹은 것의 몇 배는 쏟아내야 할 테니까.

수혁은 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앉았다.

그리고 짐 머레이와 율리안, 슈미츠가 그 주위에서 식사 중이었다.

“그러니까…….”

제육볶음이 매웠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인상을 찌푸린 율리안이 흠흠, 하며 수혁을 쳐다봤다.

“스카웃 제의인가?”

“뭐, 비슷한 거죠.”

지금 일하는 곳에서 나와 자신과 함께하자는 이야기였으니, 스카웃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국제 구조단체라…….”

율리안은 수저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까지 수혁과 짐 머레이에게 단체에 대한 간략적인 설명을 들은 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국가와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출동해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

사명감이 투철한 율리안으로선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독일의 시민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역시 있었기 때문이다.

애국심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율리안에게 독일이란 나라에 대한 애착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율리안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독일인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국가에 대한 지나친 충성과 애착을 금기시하고 있었다.

반성과 죄책감에서 비롯한 교육의 발로였다.

율리안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독일, 그 자체보단 사람들 때문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율리안이 고개를 돌려 슈미츠에게 물었다.

슈미츠는 대화에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 오직 밥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음식을 욱여 넣었다가 화살이 갑자기 자신에게 돌아오자, 다급히 그것들을 삼키느라 결국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켁켁!”

다행히 음식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했다.

수혁이 건네준 물을 마시곤 간신히 안정을 되찾은 슈미츠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별다른 고민도 없어 보였다.

“괜찮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율리안은 슈미츠에게 다시 물었다.

“음……. 교관님을 따르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슈미츠.

“그 말은?”

“저는 같이하고 싶습니다.”

슈미츠는 수혁의 제안을 듣자마자 결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율리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지만, 슈미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쉽게 결정한 것은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은 지 5분도 안 지나서 결정한 게 가볍게 생각한 게 아니라고?”

“교관님이잖습니까.”

수혁이라면.

그리고 수혁과 함께라면.

지금보다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거기다 어마어마한 부자인 짐 머레이가 후원자이니 돈이 부족할 일도 없었고, 사업가답게 계획을 허투루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직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에 별다른 애착도 없는 슈미츠는, 오히려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대장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해도 저는 결정했습니다.”

슈미츠의 우상은 두 명이었다.

수혁과 율리안.

한 명은 롤 모델이고, 다른 한 명은 존경하는 상관이다.

둘 중 누구를 더 존경하는지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슈미츠는 수혁의 제안을 택했다.

그쪽이 더 매력적이었고, 끌렸기 때문이었다.

“흠, 그런가?”

율리안은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슈미츠를 탓하거나 붙잡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슈미츠의 말로 인해 조금 더 고민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

“물론이에요.”

한참 고민하던 율리안이 내뱉은 대답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당장 결정하라는 뜻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듣자마자 수락한 이들이 좀 이상한 것이었다.

슈미츠나, 톰이나, 손민준 같은.

‘나야 좋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같이하게 되어 기뻤다.

“일단 독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 상의를 좀 해보고, 그 후에 다시 연락하지.”

“그렇게 하세요.”

수혁은 그럴 것이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식사하기 시작했다.

“이 말을 하려고 저희를 부른 겁니까?”

율리안이 이번엔 짐 머레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네.”

“언제부터 준비하신 겁니까?”

“처음 계획한 것은 꽤 오래되었네. 실질적으로 행동에 들어간 건 얼마 되지 않았네만.”

짐 머레이의 대답에 율리안이 뺨을 긁적였다.

“어디까지 준비된 거죠?”

“거의 대부분. 이제 단체 설립 절차만 남아 있네.”

율리안의 눈이 커졌다.

팀원 구성을 하고 있기에 이제 시작단계인 줄 알았는데…….

“장비는 거의 구매가 끝났고, 인력도 자네가 거의 마지막일세.”

율리안이 허허- 웃었다.

그러면서 수혁을 쳐다봤다.

왜 이런 제안을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본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멀잖아요.”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저 둘은 한국이 아닌,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으니까.

미국인인 톰 역시 바로 며칠 전에야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왠지 율리안은 섭섭한 표정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율리안도 우스웠지만 말이다.

“설립은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조만간 끝날 걸세.”

미국 대통령과도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일주일 내로 단체를 설립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조금 더 천천히 일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미흡한 점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핵심 대원들이 준비되는 것도 기다려야 했고.

“늦어도 두 달 내에.”

“두 달이라…….”

율리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두 달이면 정말 코앞이나 다름없었다.

그사이에 결정해야만 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율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그런 율리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아마 머리가 터질 것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결국 받아들일 테고.

율리안 역시 수혁과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았다.

그가 아는 율리안이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면 돼.’

오늘은 슈미츠를 얻었다.

수혁이 생각한 팀에서 남은 것은 이제 율리안 한 명뿐.

아직 시간도 남아 있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수혁과 율리안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

“미쳤네.”

“김수혁, 김수혁 하더니. 왜 그렇게 난리인지 이제 알겠네.”

기자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자신들이 쓴 기사의 초고를 쳐다봤다.

-수원역 붕괴 후 네 시간. 현재까지 105명 구조.

-세계가 놀란 구조 속도. 김수혁 덕분?

시간당 약 26명씩 구조한 셈이었다.

백 명이 넘는 생존자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것을 쉴 새 없이 구조해 낸 수혁의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이 바닥에서 기레기라 불리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이 매몰되어 있는 현장에서, 제발 생존자가 발견되길 바라는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물론 자극적인 기사를 뽑기 위한 사이코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요구조자들을 발견하고 구조하는 수혁의 모습은, 기자들에게 경외심마저 갖게 만들었다.

수혁의 정신없는 활약에 취해 기사를 써 내려가던 기자들은, 정신을 차린 뒤 고민했다.

쓰고 보니 수혁에 대한 칭찬만 가득했던 것이다.

“이대로 보내면 욕먹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서로 친분이 있는 기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팩트를 전달해야 할 기사에, 감정적인 표현만 잔뜩 적혀 있었으니…….

하지만 기자들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보내자.”

기자들은 자신이 느낀 이 감정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왜 수혁이 해외 언론에서 그토록 영웅이라 칭송받고, 미국에서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까이면 까이는 거고.”

픽- 하고 웃은 기자들이 일제히 메일을 통해 편집부로 기사를 전송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인터넷은 수혁에 대한 기사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명예시민이 된 이후, 수혁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그런 상황에 쏟아지는 수원역 기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실시간 검색어는 수혁의 이름과 수원역 붕괴 사고로 가득 찼고, 댓글들은 순식간에 수백 개를 돌파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수혁과 소방관들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국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단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케인 로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수혁의 기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혼자 한 일은 아니라지만, 네 시간에 백 명이 넘는 사람을 구조하다니.”

다른 현장도 아니고 붕괴로 인해 매몰된 사람들을 말이다.

보통은 백 명을 발견하기도 힘든 시간이었다.

“이것 참.”

대통령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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