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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68화 (368/425)

레스큐 시스템 368화

82명.

오늘 하루 수혁과 일행이 구조한 숫자다.

수원역이 무너지며 매몰된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알고 있었다.

‘지하철 플랫폼에 생존해 있던 사람들은 이게 전부야.’

그 외에는 모두 사망했다.

그만큼 사망자의 숫자가 많았다.

‘그래도…….’

아직 남은 요구조자들은 많았다.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플랫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다른 쪽에 더 많았다.

붕괴가 심하지 않은 쇼핑몰 쪽에 남아 있는 요구조자가 150명 이상이었다.

수혁도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이쯤에서 퀘스트가 발동하면 몇 명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퀘스트는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 퀘스트의 발생 빈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단순한 교통사고 출동에도 쉬지 않고 떠올랐었는데, 지금은 아주 가끔 한 번씩 발생할 뿐이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르지. 그냥 랜덤일 수도.’

수혁은 깊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사실 그가 고민해 봐야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잘한 선택이었다.

“언제쯤 작업 재개할까?”

수혁은 현재 다른 이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혁은 아직 팔팔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이기 힘들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수혁 혼자 작업할 수도 없었기에, 일단은 밥도 먹고 휴식을 좀 취하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면 될까요?”

수혁이 대답하자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체력이 회복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듯했다.

“야, 인마! 한 시간 쉬고 또 그 짓을 한다고?”

강병규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물론 한 시간 휴식이라면 지친 육체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상태로 다시 구조 작업을 개시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퍼질 확률이 높았다.

한 시간?

아니, 30분도 채 움직이지 않아 체력에 한계가 올 것이다.

슈미츠는 하늘과 같은 수혁의 말에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무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일반 구조대원들은 흡사 수혁을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보고 있었고.

“한 시간은 너무 짧다.”

전승철 역시 마찬가지.

한 시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혁과 율리안이 전부인 것 같았다.

‘그런가?’

신체 능력이 너무 좋아진 것에 대한 부작용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체력을 감안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아, 그럼 조금 더 쉴까요?”

수혁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하자, 대부분의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시간 휴식하도록 하죠. 밥 좀 먹고, 잠깐 눈 좀 붙였다가 하는 걸로.”

“그래. 그 정도는 쉬어야지.”

그제야 강병규가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뭐, 상관없겠지.’

시간은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구조 작업을 나갔다간 대원들이 다칠 위험이 커진다.

저하된 체력과 지쳐 버린 육체는 해이함을 불러오고, 그 대가는 언제나 사고로 이어지니까.

수혁은 일단 대원들을 쉬게 하고, 자신만이라도 작업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플랫폼 쪽은 구조가 끝났으니, 나머지는 위쪽에서 차근차근 수색하며 파고들어 가는 방법만 남았다.

지금도 지원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고, 아직 작업하고 있는 다른 대원들도 많았으니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충분할 것 같았다.

“혹시 컵라면 있습니까?”

수혁이 팀장을 향해 물었다.

이런 장기적인 구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칼로리 보충이다.

안 그래도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는지라, 한 번 대규모 재난 현장에 출동하면 3, 4㎏씩 줄어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식사를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간다.

때문에 소방관들은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칼로리를 보충해 줘야만 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금방 챙겨올 테니까.”

마음 같아선 뜨끈한 국물에 밥을 한 그릇 말아서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식사를 여기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럴 돈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소방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팀장은 자신의 부하 두 명에게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사람의 숫자가 많았는지라 꽤나 많이 가져와야 했다.

두 사람이 떠나자 남은 대원들은 멀리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을 쳐다봤다.

“……저기도 고생 많네.”

팀장이 중얼거렸다.

물론 고생은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했다.

고작 열다섯 명도 되지 않는 숫자로 터널을 뚫어 82명이라는 요구조자를 구조했으니까.

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드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절대 편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쉴 새 없이 장비를 들고 움직이며 생존자를 수색하고, 발견하면 맨몸으로 돌을 들어올린다.

무거운 중장비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모든 작업은 맨손으로 이루어진다.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아래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적인 부담과 체력적인 한계로 저들 역시 지금쯤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저기서 움직여야 합니다.”

팀장의 말을 들은 수혁이 말했다.

“조금 더 쉬어도 되지 않습니까?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저 위에서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는 구조대원의 수는 대충 훑어봐도 백 명에 가까웠다.

수원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 있는 구조대원이 모조리 몰려온 덕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실 팀장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지금 수색하고 있는 인원을 빼고도 자신들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원들도 많았으니까.

모든 사람이 한 번에 몰려 나가는 것보다, 팀을 정해 교대로 번갈아 가며 수색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좋았다.

이왕 휴식을 취하는 것, 몇 시간 동안 푹 쉬며 완벽히 체력을 회복한 뒤 움직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 팀에 수혁이 없었다면 말이다.

“팀장님 팀은 쉬어도 괜찮습니다.”

수혁에게 저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달리, 지금 수혁에게는 도움을 줄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정 손이 부족하면 같이 수색하는 다른 대원들에게 부탁하면 된다.

이 현장에서 수혁의 부탁을 거절할 소방관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꼭 쉬겠다는 말은 아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다리의 근육이 땡땡 뭉쳐 걷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올라올 정도였다.

게다가 팔은 어떤가?

다리보다 더 심했다.

평소에 체력 단련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고강도의 움직임을 버텨내는 것은 무리였다.

적어도 며칠은 쉬어야 회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리치료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수혁의 말을 듣자, 욱- 하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왠지 자신들이 별로 쓸모없다는 것처럼 들린 탓이었다.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습니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죠.”

지금 자신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둥, 쉴 시간에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겠다는 둥.

팀장은 횡설수설하며 변명을 했다.

그런 자신의 팀장을 보며 대원들이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쉬고 싶은 생각은 그들이 팀장 못지않게 컸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수혁의 마수에서 벗어나 조금 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믿고 있었던 팀장이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부하들의 입장에선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럼 계속 같이하시면 되겠군요.”

수혁이 픽- 웃으며 말했다.

“무, 물론이죠.”

팀장이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의 부하들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말이다.

수혁의 입장에서도 사실 저들과 같이하는 게 좋았다.

지금까지 대충 자신들의 페이스를 익혔을 테니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처음부터 손발을 맞추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가져왔습니다.”

그때, 컵라면을 가지러 갔던 부하들이 돌아왔다.

“오, 먹자.”

팀장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두 개씩은 먹어야죠.”

컵라면을 아예 몇 박스 가져왔다.

“물은 여기 있습니다.”

뜨거운 물도 주전자 두 개에 가득 채워 왔다.

“자자, 컵라면 받아가세요.”

팀장이 박스를 뜯어 사람들에게 컵라면을 배분했다.

인당 두 개.

사람이 많았는지라 그 많아 보이던 컵라면이 순식간에 비었다.

“……한국에선 이런 걸 먹는군.”

율리안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컵라면을 쳐다보았다.

독일에서도 이런 인스턴트식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율리안은 그리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고, 이런 현장에선 처음이었다.

“독일에선 이럴 때 뭘 먹습니까?”

수혁이 율리안에게 물었다.

독일하면 소세지와 맥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그런 것을 먹긴 어려울 테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버거나 샌드위치로 해결하지.”

“아…….”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수혁도 독일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도 정신이 없어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독일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음식의 종류만 다를 뿐.

“한번 드셔보세요. 생각보단 든든할 겁니다.”

밥을 먹는 것과는 비교도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간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다.

물을 붓고 잠시 면이 익길 기다린 뒤,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먹으면 되나?”

“네. 조금 매우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과연 율리안이 라면을 먹고 괜찮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런 수혁의 호기심은 해결되지 못했다.

율리안이 라면을 입에 막 넣으려던 순간, 누군가 그들을 부른 것이다.

“수혁! 율리안!”

낯익은 음성이었다.

“짐?”

자신들을 부른 사람은 바로 짐 머레이였다.

분명 돌아가서 이곳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었는데…….

짐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수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저게 뭐야?”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짐의 뒤에는 커다란 트럭이 있었다.

“저거 밥차 아니야?”

TV에서나 봤던 밥차와 모습이 비슷해 보였다.

길쭉하게 뻗어 있는 트레일러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확실한 것 같았다.

그 크기는 그것보다 훨씬 컸지만 말이다.

수혁과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사이, 짐 머레이가 다가왔다.

“지금쯤 밥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지.”

짐 머레이는 웃으며 수혁이 든 컵라면을 가리켰다.

“그런 부실한 건 내려놓고, 저기로 가서 밥을 먹도록 하게.”

“저건 뭡니까?”

“한국에서는 밥차라고 부르더군.”

정말로 밥차였다.

더욱 놀라운 건, 밥차가 한 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총 다섯 대.

다섯 대의 커다란 밥차에선 쉴 새 없이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네들뿐만 아니라, 다른 소방관들의 식사도 모두 준비했네. 모자라진 않을 거야.”

모자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남으면 모를까.

“와아, 밥이다!”

어느새 밥차 근처로 달려간 소방관들이 미소를 지었다.

현장에서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배가 든든하면 구조에 더욱 집중할 수가 있었으니, 밥차를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 말고는 드릴 게 없네요.”

수혁은 항상 짐 머레이의 호의를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런 호의는 환영이었다.

“별것 아니네.”

짐 머레이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선심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보단 이 기회에 말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짐 머레이가 한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율리안과 슈미츠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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