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67화
구조 속도는 빨랐다.
아니, 단순히 ‘빠르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우스울 정도였다.
‘이게 말이 되나?’
팀장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정신이 멍해졌다.
조금 전, 기다리고 있던 특수 구조대가 도착했다.
수원역에 도착한 두 개의 팀은 각자 나뉘어 2팀은 위쪽으로 올라갔고, 1팀은 수혁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구조에 더욱 박차를 가했는데…….
이 속도가 정말로 말이 안 될 정도로 빨랐다.
수혁과 특수 구조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 두 명.
그들이 힘을 합치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잔해는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며 길이 뚫렸다.
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그들이 파낸 잔해들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수혁과 다른 이들을 쳐다봤다.
“팀장님…….”
팀장이 멍하게 서 있자 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러자 팀장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대원을 쳐다봤다.
“야, 나 좀 꼬집어봐라.”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정신 차려요, 팀장님.”
“지금 저걸 보고도 정신 차릴 수 있겠냐?”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팀장은 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여타 대원들도 놀라워하긴 마찬가지였지만, 팀장은 그 충격이 훨씬 컸다.
팀장인 만큼 경험이 많고 아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보여주는 작업은 단순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속도를 낼 수 있는 거지?’
단순히 길을 뚫는 것이라면 자신도 저만큼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쌓여 있는 잔해들이 무너질지 모른다.
작은 돌멩이 하나 잘못 건드려도 그대로 우르르- 붕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본래라면 치밀한 계산 끝에 조심스럽게 길을 뚫어야만 했다.
그런데 수혁은 아니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곡괭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잔해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혁이 지정해 주는 장소를 파고 있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작업을 지속했고, 역시나 잔해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팀장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업 방식과 속도였다.
“팀장님!”
부하가 다시 한 번 팀장을 불렀다.
팀장은 더 이상 잡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치워야 할 잔해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
“율리안!”
쉴 새 없이 곡괭이질을 하던 수혁이 갑자기 율리안을 불렀다.
그 소리에 율리안이 멈칫- 했다.
“그쪽은 위험해요.”
수혁의 눈에 선명한 붉은빛이 들어왔다.
율리안이 저곳을 건드리면 주변이 무너져 내릴 것이 확실했다.
“거기보다 조금 왼쪽으로 파내주세요.”
“알았다.”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지만, 율리안은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고 그것에 따랐다.
‘음…….’
수혁은 잠시 멈춘 김에 주변을 한번 살펴보았다.
작업은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로웠다.
베테랑인 특수 구조대가 도착하며 훨씬 더 빨라진 덕분이었다.
‘위험한 곳은 없고.’
몇 군데 붉은 표시가 나타나 있긴 했지만, 굳이 건드릴 이유가 없는 곳들뿐이었다.
‘요구조자들은?’
‘미니 맵’을 확인한 수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물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어야 20분인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요구조자에게 도착할 수 있는 예상시간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20분, 혹은 그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
다른 사람들은 수혁이 아니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뛰어난 베테랑이라고 해도, 지치게 마련이라는 뜻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곡괭이를 휘둘렀으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휴식 시간을 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힘들어 쉬면, 그만큼 안에 있는 요구조자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쓰러져도 구조를 한 다음 쓰러진다.’
그런 마음이었다.
오직 거친 숨소리와 곡괭이가 돌을 쪼개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들었어요?”
스마트폰 불빛 하나에 의지하고 있던 여자 한 명이 귀를 쫑긋했다.
“뭘요?”
그녀의 주변 모여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봤다.
“방금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깡깡- 하며 뭔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
“저는 아무것도 안 들…….”
“쉿!”
누군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려는데, 여자는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흐르는 침묵.
깡-!
‘들렸다!’
갇혀 있다는 두려움에 환청이라도 들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정말로 들렸다.
“들었어요!”
“이, 이거 구조대가 오는 소리 맞죠?”
“살았어!”
사람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일렀다.
“조, 조용히 해요.”
가장 먼저 소리를 들은 여자가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머리 위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하며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다간 깔려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역이 무너져 내릴 때는 꼼짝 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여러 잔해가 얽히고설키며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소리 조금 질렀다고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지 않은가?
이 불안정한 공간은, 작은 충격에도 얼마든지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었다.
“가까웠죠?”
여자가 조용히 물었다.
“네,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어요.”
소리는 왜 지금까지 듣지 못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혹시 구조대가 아니라 그냥 다른 소리는 아닐까요?”
누군가 불길한 소리를 내뱉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는 확신했다.
아니, 확신하고 싶었다.
지금 이 소리가 구조대의 소리라고 말이다.
“구조대가 맞을 거예요. 한번 들어봐요.”
깡- 깡- 하는 소리가 일정하다.
그 소리가 하나만 들렸으면 뭔가가 주기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한 셋. 아니, 넷?’
구조대가 이곳으로 오기 위해 길을 뚫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집중해서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이 소리가 사람이 내고 있는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지금 당장에라도 이 무서운 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숨을 쉬기도 힘들고,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내려앉은 곳.
언제 무너질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가까우니까 금방 올 거예요.”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러니 소리만 듣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들리고 있으니, 금방 올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요. 너무 움직이지 말고.”
구조대가 오고 있는데 불편하다고 막 움직이다가 이곳이 무너져 내리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사람들은 숨도 조심스럽게 내쉬며 구조대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구조대원의 음성이 들려왔다.
***
“뭐라고? 벌써?”
김민철은 무전기로 들어온 보고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요구조자 열두 명 발견했습니다. 상태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구급대원들 파견 부탁드립니다.]
수혁의 보고였다.
갑자기 나타나 구조 작업에 착수한 것이 고작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준비를 하고 이동한 시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시간은 한 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도 위가 아닌, 아래에서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위에서 파고 내려가는 것보다 지금 수혁이 있는 위치의 작업이 훨씬 고되고 힘들다.
시간 역시 몇 배는 더 오래 걸릴 터였다.
그런데 벌써 요구조자들을 구조했다.
김민철은 열두 명이라는 숫자보다, 이처럼 빠른 시간에 구조에 성공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보내지.”
하지만 놀랍다고 해서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 당장 구급대를 보내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나와야만 했다.
무전기를 들어 구급대를 급히 호출한 김민철이 점퍼를 챙겨 들며 본부를 빠져나왔다.
“어디 가십니까?”
부하 중 한 명이 물었다.
“현장에 가봐야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요구조자들을 구조했는지 말이다.
‘운 좋게 근처에 요구조자들이 갇혀 있었나?’
그럴 수도 있었다.
김민철은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수혁을 비롯한 특수 구조대 한 개 팀이 투입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김민철은 내심 그들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구급대와 함께 현장에 도착한 김민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뭔가?”
터널이 뚫려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선로 위에는 커다란 터널이 뚫려 있었다.
사람 두세 명 정도는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중장비를 사용했나?”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김민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비 허가에 대한 권한은 전부 그가 가지고 있었으니, 이곳에 중장비가 투입되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오직 손으로만 이걸 뚫었다는 건데…….’
그건 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이곳에 투입된 인원은 열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대원들이라고 해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수혁, 김수혁은 어디 있지?”
김민철은 곧장 수혁을 찾았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민철은 수혁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김수혁은 지금 안쪽으로 향한 상태입니다.”
수혁과 함께 작업하던 팀장이 대답했다.
“휴식도 없이 말인가?”
이 정도의 길을 만들 정도라면 체력이 지금쯤 바닥이 나고도 남았다.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수혁은 계속 움직였다.
“별로 지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실 가장 놀란 것은 김민철이 아니라, 팀장이었다.
그는 이 기적 같은 일을 바로 옆에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구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