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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65화 (365/425)

레스큐 시스템 365화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대원들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팀장에게 속삭였다.

“젠장. 까라면 까야지.”

팀장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무려 구조대장에게 직접 받은 명령이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새로 팀장을 맡게 된 사람이 수혁이라면 더욱…….

“내가 살다 살다 김수혁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인마, 김수혁이 연예인이냐?”

“이쪽 바닥에선 톱스타나 다름없죠, 뭘.”

대한민국 소방관들 중 수혁만큼 TV에 얼굴을 내비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방청장도 수혁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성공한 소방관.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봐도 그랬다.

어쨌든 수혁은 미국의 명예시민이 됐을 정도의 영웅이니까.

“김수혁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다른 얘기야.”

일개 대원으로서 활약하는 것과 팀을 이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나 수혁처럼 경력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소방관이라면 더욱 그랬다.

“젠장.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팀장은 작게 투덜거렸다.

혼잣말이긴 했지만, 수혁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목소리는 컸다.

그리고 수혁은 그것을 들었다.

‘음…….’

수혁은 대원들이 마련해 준 예비 장비들을 챙기며 속으로 신음했다.

저들의 걱정은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저들이라도 저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 만약 누군가 갑자기 와서 박상태를 밀어내고 팀장 자리를 차지한다면, 더욱 격하게 반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저들의 불만을 모른 척했다.

괜히 불만을 잠재워보겠다고 나섰다간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장비를 모두 착용한 수혁이 대원들에게 물었다.

“아, 네. 뭐…….”

팀장이 떨떠름하게 대답했고, 다른 대원들 역시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곧바로 구조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곤 먼저 앞장서 현장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미니 맵’과 ‘생명감지Ⅲ’를 동시에 사용해 현장을 둘러봤다.

‘요구조자는…….’

너무도 많았다.

신일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지하철 플랫폼이라는 위치적 특이성 덕분에 생존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몇 명인지 세지도 못하겠네.’

최소한 백 단위였다.

군데군데 무리 지어 있어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든 이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였고.

“어느 쪽부터 하시겠습니까?”

수혁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팀장이 물었다.

“팀장님은 어디가 좋겠습니까?”

수혁은 속으로 선택을 해둔 상태였지만, 일단 팀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물었다.

“아래쪽이 좋겠습니다.”

“……아래요?”

“지원이 오고 있습니다. 위쪽부터 구조하는 것은 그들에게 맡기고, 지금은 아래쪽에서 길을 뚫어 매몰자들을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역시 팀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조대원이 삼십여 명.’

자신들을 제외하고 현장에 있는 구조대원들의 숫자였다.

거기에 비슷한 숫자의 화재 진압대원들과 구급대원들까지 있었다.

이 정도면 자신들 정도는 빠져서 아래쪽부터 공략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위쪽에는 요구조자가 없어.’

적어도 단시간에 구할 수 있는 요구조자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모두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수혁은 ‘미니 맵’으로 봐둔 곳으로 향했다.

“선로를 따라 플랫폼 쪽으로 뚫을 생각입니까?”

“그게 가장 나을 것 같군요.”

신일역에서도 박상태가 그 방법으로 수혁을 구해냈었다.

그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지금은 수혁이 직접 나섰으니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저희만으론 힘들지 않겠습니까?”

고작 일곱 명이다.

무너져 내린 잔해들을 치우고 길을 뚫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신일역 붕괴 사고.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 네.”

꽤나 큰 사고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수혁이 팀장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거기선 세 명이 길을 뚫었습니다. 일곱 명이면 뭐……. 양호하네요.”

물론 수혁이 반대쪽에서 절반 이상 뚫었고, 나중엔 특수 구조대도 투입되긴 했지만.

굳이 밝히진 않았다.

수혁의 말에 대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세, 세 명이서요?”

개중 가장 어려 보이는 대원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덕분에 제가 살아서 나올 수 있었죠.”

도무지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날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럼 정말로 저희만으로 길을 뚫겠다는 겁니까?”

“충분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저희 팀에서도 지원 올 테니, 그때까지만 수고해 주시면 됩니다.”

수혁은 자신 있게 말을 하고는 선로 쪽으로 향했다.

지하철 플랫폼은 요구조자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였다.

‘여기랑 AK플라자가 쪽인데…….’

AK플라자는 굳이 자신이 가지 않아도 구조가 충분히 가능한 위치였다.

건물이 무너지긴 했어도, 지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하철 플랫폼은 아니었다.

직접 경험해 봐서 알지 않던가?

그것도 신일역과 독일에서, 두 번이나 말이다.

‘저 아래 갇혀 있는 건 지옥이지.’

어찌저찌 살아남았다고 해도, 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살 수 있는 것도 못 산다.

그래서 수혁은 지하철 플랫폼을 선택했다.

“……중장비 지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로에 도착해 수원역 쪽을 확인한 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며 물었다.

‘엉망이군.’

역 자체가 무너져 내리며 선로 위를 뒤덮고 있었다.

이럴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눈으로 직접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것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뚫고 들어갈 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

‘잔해의 크기가 작아. 이 정도면 내 힘으로 충분히 걷어낼 수 있어.’

거기다 특수 구조대가 도착한다면 한결 더 수월해질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미니 맵’을 통해 내부를 관찰한 수혁은 확신했다.

‘이틀 안으로 구조한다.’

***

“이것 참. 미안하게 됐네.”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소방관이 다 그런 거죠.”

“그래도 면목이 없네. 이 먼 곳까지 불렀는데…….”

짐 머레이는 율리안을 보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직접 율리안을 한국으로 초대했다.

빨리 올수록 좋겠다는 사족까지 붙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타이밍도 좋지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율리안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은 초면이었음에도, 마치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허물이 없어 보였다.

그간 몇 차례의 연락을 주고받으며 어색함이 사라진 덕분이었다.

사실 낯을 가릴 나이도 아니었고.

“그나저나, 이쪽 아이도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짐 머레이가 율리안의 뒤쪽에 서 있던 슈미츠를 쳐다봤다.

“다행히 이 녀석도 휴가를 받은 상태라서요.”

독일의 테러 현장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자, 수고했다는 의미로 출동했던 현장 대원들에게 휴가를 풀었다.

슈미츠는 운 좋게도 율리안과 같은 기간에 휴가를 받았고, 덕분에 이렇게 한국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슈미츠가 짐 머레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짐이라고 하네.”

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짐 머레이가 준비해 온 차에 올라탔다.

“일단은 호텔로 가지. 피곤할 텐데 그곳에서 며칠 쉬게. 모든 비용은 내가 댈 테니 눈치 보지 말고.”

율리안과 슈미츠는 자신이 초대한 손님이었다.

그리고 짐 머레이는 자신의 손님에게 소홀히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서 수혁에게 해준 정도는 아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율리안은 그런 짐 머레이의 제안을 거절했다.

“호텔보다 다른 곳을 먼저 들르고 싶습니다.”

“음?”

짐 머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한국에 들어온 율리안이 무슨 볼일이 있다고 다른 곳을 먼저 가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 볼일이 있을 만한 사람이 있나? 지금 수혁은 현장에 출동한……. 아, 설마?”

짐 머레이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고,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원이라고 했던가요? 그곳으로 가야겠습니다.”

***

‘미친……!’

팀장은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팀장은 수혁과 바닥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땅에는 방금 전 수혁이 내려놓은 잔해가 놓여 있었다.

‘저걸 혼자 치웠다고?’

크기는 대충 2m가량에 두께도 최소한 20㎝쯤 되어 보이는 돌덩이였다.

온 힘을 다한다면 잠깐 정도야 들 수 있겠지만, 방금 수혁이 한 것처럼 번쩍 들어서 옮길 순 없었다.

‘혹시 스티로폼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잔해로 다가가 만져 보았다.

“돌이야.”

진짜 돌이었다.

혹시나 하면서 손을 뻗어 들어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네.’

대체 운동을 얼마나 해야 이런 걸 번쩍번쩍 든단 말인가?

“팀장님.”

그때, 수혁이 멍하니 서 있는 팀장을 불렀다.

화들짝 놀란 그가 쳐다보자,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에 와서 이것 좀 도와주시죠.”

수혁이 가리킨 곳에는 언제 부쉈는지, 조금 전까지 거대했던 잔해가 쪼개져 몇 조각으로 나누어진 상태였다.

팀장이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을 제외한 대원들은 정신없이 잔해들을 치우고 있었다.

‘이걸 본 사람이 나밖에 없네.’

팀장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구조를 시작한 지 고작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혁과 대원들이 뚫은 길은 마치 세 시간은 족히 걸려야 가능할까 말까 할 정도의 진척을 보였다.

‘역시 이 정도는 돼야…….’

영웅이라 불리는 거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때, 갑자기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수혁의 전화가 울리는 소리였다.

“아, 잠시만…….”

수혁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는 고민하다 받는 것을 선택했다.

“네, 짐. 무슨 일이에요? 저 지금 좀 바쁜데.”

한쪽으로 물러나 전화를 받은 수혁이 물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분초를 다투는 급한 상황이었다.

[방해해서 미안하네.]

짐 머레이는 일단 사과부터 하고는 용건을 이야기했다.

[오늘 율리안이 한국에 들어왔다네.]

“율리안이요?”

수혁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조만간 한국에 방문한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게 오늘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그다음에 이어진 이야기였다.

[지금 율리안과 함께 수원역에 앞에 도착한 상태인데, 자네를 돕고 싶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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