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63화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지만, TV와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수혁의 미국 명예시민권 획득이 엄청난 이슈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대한민국의 대대적인 홍보 수단으로 생각한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밀어준 덕분에, 수혁에 대한 소식은 연일 언론을 달구었다.
오죽하면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특별 방송이 편성될 정도였다.
“……미쳤네.”
아침에 일어나 TV를 켠 수혁이 혀를 내둘렀다.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구한 것인지, 수혁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들이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다.
“언제까지 이럴 것 같아요?”
수혁이 최은송에게 투덜거렸다.
“아마 좀 오래가지 싶은데.”
어느새 씻고 나온 최은송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대답했다.
“미국에서 지원하기로 한 장비도 이번 주에 한국으로 들어온다면서요?”
“아, 그랬죠.”
마침내 소방 구조 장비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단발성에 그치는 지원이었지만,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대한민국 소방관 전체를 무장시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구조 헬기나 펌프차, 파괴 공작차와 같은 중장비들도 온다니…….
미국에서 얼마나 단단히 준비해 준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거 들어오면 다시 주목받지 않겠어요?”
이 엄청난 규모의 지원을 이끌어낸 사람은 수혁이었다.
미국에서 영웅이 되는 대가로 받은 것들 중 하나였으니, 혼자서 해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이런 대가는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명예시민인지 뭔지 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애초에 명예시민권은 공짜가 아니었지 않은가?
받기 싫은 걸 억지로 받게 하더니 그것 가지고 조건을 걸었다.
“땅도 크고 사람도 많은 것이 왜 이렇게 속은 좁은 건지.”
“응? 무슨 말 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중얼거리는 소리에 최은송이 물었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오늘 쉬는 날이죠?”
“네. 대장님이 배려를 좀 해주셔서. 다행히 오늘은 집에서 쉴 수 있겠어요.”
본래 비번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려는 타이밍에 현장에 출동해 밤새 구조 작업을 벌인 뒤, 수여식까지 참여한 1팀을 위해 진태수는 휴식을 명령했다.
“피곤할 텐데 아침 먹고 좀 더 쉬어요.”
최은송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려고요.”
최은송과 놀러라도 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오늘 출근을 해야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수혁은 최은송의 출근길을 배웅해 준 뒤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뭐하지?”
최은송도 없이 혼자 집에 있으려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멍하니 서서 집안을 둘러보던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이전 생에서는 평생을 혼자 지냈는데…….’
그토록 익숙하던 일이 지금은 낯설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것 같네.”
뺨을 긁적이던 수혁은 일단 집안일부터 조금 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최은송과 분담을 해서 하긴 했지만, 어차피 할 일도 없었으니 오랜만에 대청소하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집이 크니까 시간도 빨리 가겠지.”
수혁은 단순하게 생각하며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음…….”
너무 빨리 끝났다.
제법 꼼꼼하게 한다고 했는데 고작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나 버린 것이다.
워낙 평소에 청소를 자주 하기도 한데다, 수혁의 움직임이 너무 빠른 덕분이었다.
“미치겠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청소를 끝낸 수혁이 혀를 차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결국은 TV구나.’
수혁은 여느 백수들처럼, TV를 켜고 손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응?”
TV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던 수혁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곤 널브러져 있던 소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맞아. 이맘때였어.”
수혁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쉬기는 개뿔.”
미국과 독일에서 연달아 테러가 벌어지고, 세상이 뒤집혔을 당시였다.
주가는 폭락하고, 경제는 마비 직전의 상황까지 왔으며,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혹시나 한국에서도 테러가 일어나면 어쩌냐는 공포심부터, 전 세계적인 불황에 먹고살 걱정까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수혁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었다.
이전 생에서는 그런 곳에 신경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대는 대형 재난에, 수혁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매일같이 현장에서 혹사를 당해야만 했다.
밥은 현장에서 나눠주는 컵라면이나 편의점 삼각김밥 정도가 전부.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이번 생에서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테러가 일어나긴 했지만, 어떻게든 수습하는 중이었다.
그 중심에는 수혁이 있었다.
수혁은 질색했지만, 영웅이란 이름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더욱 컸다.
하지만…….
이전 생과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
한국에서 일어났던 대형 재난들.
전 세계가 난리 난 테러에도 신경쓰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수혁을 바쁘게 만들었던 일들.
스마트폰을 보던 수혁은 그것들 중 하나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수원역 앞 도로에서 싱크홀 발생.
인터넷 뉴스 기사에는 수원역의 전경과 함께, 싱크홀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기에 크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였는지라 기사의 수는 많았다.
물론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람들 역시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뿐이었고.
하지만 수혁은 알고 있었다.
‘저 싱크홀은 시작에 불과해.’
싱크홀은 대부분 지하수가 빠져나가며 생긴 공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반은 단단한 화강암층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잘 생기지 않는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울과 경기도를 중점적으로 말이지.’
하수관 손상이나 관로 공사 등으로 인해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대부분은 작게 땅이 내려앉고 끝나는 정도지만…….
‘이번엔 달라.’
수원역 앞 싱크홀은 아니었다.
“무너진다.”
도로만 무너진다면 다행일 것이다.
지금 싱크홀이 발생한 쪽은 교통이 통제되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수혁이 차를 끌고 다급히 수원 쪽으로 향하는 이유는 바로.
“역이 무너져.”
수원역.
그 커다란 역이 폭삭 무너져 내린다.
신일역 붕괴 사고 역시 엄청난 재난이었지만, 수원역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많은 희생자와 피해를 야기한다.
‘이걸 잊고 있었다니…….’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지만, 이런 대형 재난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제발 늦지 않길.’
수혁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것을 말이다.
***
“이야, 여기에도 싱크홀이 생기네.”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도로 한가운데에 뻥 뚫린 구멍을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난 상황이었지만, 그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각 핑계로 딱이네, 딱이야.”
싱크홀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지름 2m 정도?
도로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니었다.
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이 넓디넓은 도로 전체가 통제되고 있었으니, 지각에 대한 핑계로 삼기엔 더할 나위가 없이 좋았다.
“차는 없지만서도.”
남자는 실없이 웃으며 수원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이 꽉 막혀서일까?
오늘따라 역에 사람들이 많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혼잡한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지하철 플랫폼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보자…….”
사람들의 수를 보아하니 앉아서 가는 것은 글러 먹었다.
그래도 만원 전철을 타는 것보단 조금이나마 사람이 적은 쪽이 나았기에, 까치발을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저기가 좋겠네.’
그나마 사람들이 적어 보이는 곳을 찾은 남자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움직이려 할 때였다.
“응?”
순간 남자는 묘한 진동을 느꼈다.
‘지하철이 들어오나?’
전광판을 확인해 봤지만, 아직 지하철이 오려면 3분이나 남아 있었다.
왠지 모를 이상함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움직이려는데…….
‘흔들렸어!’
이번에는 확실하게 느꼈다.
지하철이나 기차가 지나가거나 할 때 느껴지는 진동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진이 난 것 같…….’
남자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구르르릉-!
“꺄악!”
“뭐, 뭐야?”
땅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남자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흔들림이었다.
“지진인가?”
“이거 지진 맞지?”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진동이 느껴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와, 살다 보니 수원에서 이런 지진을 느껴보네.”
“야, 방금 너도 느꼈냐? 지진 났어, 지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하듯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건 군중심리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었다.
주위에 이 많은 사람이 있으니 나도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한 번의 커다란 진동 후에 별다른 일이 없자, 사람들이 웃으며 이곳저곳에 연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진동을 느꼈던 남자는 달랐다.
‘불안해.’
역으로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싱크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별것 아니라고, 그저 지각에 대한 좋은 핑곗거리가 하나 생겼을 뿐이라고.
그렇게만 여겼던 것이 차츰 공포로 다가왔다.
‘나가자.’
지금 역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회사에 더 늦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남자는 빠르게 계단 쪽으로 향했다.
불안감을 느낀 사람은 남자 혼자가 아니었는지, 몇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여기만 올라가면…….’
어느새 계단에 도착한 남자가 빠르게 뛰어오르려던 순간이었다.
콰르르르릉-!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진동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런, X발!’
남자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
-속보입니다. 조금 전 오전 11시 14분경, 수원역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당시 내부에는…….
“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속보에 수혁이 탄식했다.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만약 그랬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
그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혁의 힘만으론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혁은 속으로 자책을 했다.
‘뭐가 명예시민이고, 뭐가 영웅이냐.’
그딴 것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젠장!”
수혁의 차가 미친 듯한 속도로 수원역을 향해 달렸다.
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