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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62화 (362/425)

레스큐 시스템 362화

대통령과의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간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지인들이 있다는 핑계를 둘러댔다.

대통령 역시 앞으로 남은 일정이 있었고, 자신이 원하던 것도 얻어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어쩌자고 그것을 받아들인 건가?”

수혁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나선 짐 머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본 수혁이 빙긋 웃었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서 짐 머레이가 얼마나 수혁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받은 것이 있으니, 이쪽에서도 주는 게 있어야죠.”

“그건 그렇네만, 굳이 자네가 나서지 않아도 됐을 일이네.”

수혁이 아니라 자신이 해결할 일이었다.

짐 머레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걸 짐에게만 맡겨둘 순 없잖아요.”

수혁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는 게 좋아요. 그게 여러 번도 아니고, 딱 한 번에 불과하니까. 받아낸 것에 비해 이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죠.”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짐 머레이는 아니었다.

그가 아는 대통령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교활한 축에 속했다.

그런 대통령이 손해를 보는 일을 할 리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선거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 자네를 써먹을 걸세.”

“뭐, 그렇겠죠.”

반면 수혁은 그렇게 똑똑한 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뇌파보단 육체파였으니까.

그런 수혁도 대통령의 꿍꿍이를 대충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쉽게 여길 일이 아니야. 자칫 잘못했다간 자네가 정치에 엮여 곤란해질 수도 있어.”

짐 머레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정치란 늪과 같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밑으로 빠져들어 가고 마는…….

그래서 짐 머레이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충분한 재력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대통령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네.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지도 몰라.”

짐 머레이는 진심을 담아 수혁에게 충고해 주었다.

“조심할게요.”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 머레이에게만 모든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아 나선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것을 보니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짐 머레이가 괜히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발은 내디뎠다.

이제 와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었는지라, 짐 머레이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갔다.

“아무튼 축하하네.”

짐 머레이가 웃으며 수혁에게 축하를 건넸다.

“빨리도 해주시네요.”

“자리가 자리였으니 말이야.”

두 사람은 피식- 했다.

“아, 맞다. 율리안은 어떻게 됐습니까?”

“조만간 시간을 내서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했다네. 자네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니, 망설이지도 않고 알았다고 하더군.”

“슈미츠도……?”

“일단 이야기는 꺼내봤네만, 그것까진 장담할 수가 없군.”

“하긴, 율리안이랑 슈미츠는 입장이 좀 다르니까요.”

율리안 정도의 위치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슈미츠는 달랐다.

이제 소방관으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일단은 율리안부터 설득하는 것부터 하죠.”

슈미츠는 율리안이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확률이 높았다.

“그럼 이제 톰만 남은 건가?”

“아, 톰은 좀 전에 만났어요.”

수혁의 말에 짐 머레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을 내서 함께 수혁을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벌써 만났다니?

“수여식 전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찾아왔더라고요.”

수혁은 짐 머레이에게 톰과 나누었던 대화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이군.”

솔직히 짐 머레이는 톰을 설득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자리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쉬운 결정일 리가 없었으니까.

특히나 톰과 같은 나이대라면 더욱 그러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나이든 사람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똑같았다.

그런데 제안을 수락했다니…….

“큰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군.”

“제 말이요.”

수혁이 구상하고 있는 팀에서 톰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몸 쓰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면 된다.

수혁을 제외하고 손민준, 율리안, 박상태, 슈미츠.

이 네 명 역시 어느 곳에 가도 인정받고 남을 정도로 뛰어난 이들이었다.

톰은 그간의 경험을 살려 이들을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나한테 아무리 좋은 능력들이 있다고 해도, 경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지.’

이전에 병원 폭발 현장에서 신재식을 보며 느낀 것이다.

수혁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피지컬의 소유자였고, 거기에 많은 스킬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재식은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수혁이 톰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짐은 어때요? 잘되어가고 있어요?”

이번엔 수혁이 물었다.

“물론이네.”

수혁은 모르고 있었지만, 짐 머레이는 이미 대부분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장비 구입은 대부분 완료했고, 인력도 거의 다 채운 상태지.”

남은 것은 단체 설립의 허가뿐이었다.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긴 했지만, 오늘 수혁이 나선 덕분에 조금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혁은 짐 머레이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장비도 벌써 다 구했다고요?”

무슨 장비가 필요한지는 아직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다 구했다니?

“여러 곳에서 자문을 좀 받았지. 필수적인 것들은 대부분 구해놓은 상태네.”

짐 머레이가 직접 구매한 장비들이니, 보급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뿐인가?

심지어 짐 머레이는 헬기와 긴급 수송을 위한 비행기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미쳤어요?”

수혁은 진심으로 경악을 했다.

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짐 머레이라면 구조 헬기를 마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라니?

“이 일은 속도가 생명 아닌가?”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출동한다.

그것이 미국이 될 수도 있었고, 유럽이 될 수도 있었으며,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다.

“요청이 올 때마다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장비 이송을 위한 절차를 밟고, 비행기 시간을 맞추고. 그런 일을 계속할 수는 없지 않나?”

돈이 얼마가 드는지는 그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니 가능한 생각이었다.

오직 효율.

짐 머레이는 얼마나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동이 가능한지만 따졌다.

“그리 비싼 건 아니니 너무 놀랄 필요 없네.”

마음 같아서야 구조팀을 위해 A380을 구매해 전용기로 삼고 싶었지만, 그건 짐 머레이에게도 조금 무리였다.

단종이 되기도 했고, 솔직히 돈 낭비였으니까.

“지금은 개조 중이라 당장 탈 순 없겠지만, 단체가 만들어질 때쯤 되면 완성이 될 걸세.”

수혁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짐 머레이는 생각하는 스케일의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아, 알아서 잘 준비해 주셨겠죠.”

수혁은 말까지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들의 전용기가 있다면 일이 훨씬 편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도록 하지. 율리안이 한국에 오면 그때 같이 들르겠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최은송을 비롯한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먼저 가게. 나는 다시 돌아가서 케인 녀석과 앞으로의 일을 상의해야겠네.”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같이 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결국 수혁은 어쩔 수 없이 짐 머레이에게 부탁하고는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어, 왔냐?”

대기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박상태였다.

“피곤하실 텐데 그냥 먼저 돌아들 가시지.”

수혁은 박상태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특수 구조대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지금 밤새 현장에 있다 왔으니, 피로가 장난이 아닐 터였다.

깨어 있는 시간만 따져도 거의 24시간이 다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하지만 전승철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이 고개를 숙였다.

피곤한 와중에, 이런 행사까지 참석해 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우리도 좋은 경험 했다.”

강병규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졸리긴 하네요.”

그러면서 전승철에게 눈짓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정말로 피곤해서라기보단, 자리를 피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래. 우린 이만 돌아가야겠다.”

전승철은 강병규의 뜻을 눈치채곤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한다.”

특수 구조대 대원들은 수혁에게 축하를 건네고는 돌아갔다.

“휴우.”

그들이 나가자 대기실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너희 밤새 출동 나갔다 바로 온 거라며?”

박정우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다 아는 수가 있어.”

수혁이 특수 구조대로 이동한 이후에도, 박정우는 여전해 보였다.

“근데 어디 갔다 온 거냐?”

이번엔 김강식이었다.

이재한과 함께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것으로 봐선, 자기들끼리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대통령 보고 왔어요.”

“역시!”

“아, 젠장.”

수혁의 무덤덤한 대답에 김강식이 환호했고, 이재한은 욕설을 내뱉었다.

“…너희 또 내기했냐?”

박상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하, 내 말이 맞지?”

“미국 대통령이 무슨 옆집 아저씨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만난답니까?”

이재한이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내 김강식에게 넘겨주며 투덜거렸다.

“적당히 해, 새끼들아!”

물론 박상태는 둘을 향해 버럭- 화를 냈고.

“무슨 얘기 나눴어요?”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던 최은송이 물었다.

“뭐, 별건 아니었어요. 그냥 축하한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이 정도?”

그것보단 더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 자리에서 꺼내기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최은송과 박상태만 있었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최은송은 뭔가 더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해주었다.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점심은 제가 쏠게요.”

“제수씨가 직접 해주는 겁니까?”

“오랜만에!”

신일서 식구들이 환호했다.

최은송의 요리는 언제 먹어도 맛이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최은송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제 요리가 아니네요.”

그 말에 사람들이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을 때.

최은송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저희 가게로 가요. 제 요리보다 더 맛있을 거예요.”

예향정.

최은송은 오늘을 위해 식당을 통째로 비워둔 상태였다.

물론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매출을 날리는 일이었지만, 사위에게 경사가 났는데 이 정도쯤이야!

최은송은 환호하는 대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수혁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미국 명예시민이 되는 것보다, 이렇게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러 가는 쪽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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