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60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소리.
수혁은 속으로 허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 옆에 앉은 공무원을 쳐다보았다.
그와 사전에 나누었던 이야기에서, 이런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무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확실한 듯했다.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밝은 조명이 수혁을 비추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와주시죠.”
배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수혁을 무대 위로 불렀다.
“……올라가면 됩니까?”
“아, 아마도요.”
수혁이 공무원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부르니 올라가는 게 맞겠지.’
그렇게 생각한 수혁은 무대 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무거운 부담감이 어깨를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나?
지금 이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이 맞는 건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생각했던 것과 설명을 들었던 것과 너무도 달랐기에 수혁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화려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뺨을 긁적이며 무대에 오르자, 배우가 그런 수혁을 맞아주었다.
‘설마 인터뷰? 수상소감? 이런 걸 하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며 다짐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또 일어났다.
덥석-!
배우가 수혁을 격하게 안은 것이다.
“응?”
수혁이 당황하자, 배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것일까?
“당신이 내 딸과 아내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그제야 수혁은 그가 왜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굳이 한국까지 찾아와 수여식의 진행을 자처한 이유도.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의 세상은 무너졌을 겁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의 음성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수혁은 이제 눈물마저 흘리는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명성과 위치, 그리고 이 상황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익숙한 일이었다.
‘요구조자의 가족일 뿐이야.’
그리고 수혁은 이런 경험이 많았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 말고도 많은 분이 수고해 주었고, 덕분에 당신의 가족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니, 너무 저에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히어로들은 항상 그 말을 하곤 하죠.”
배우가 수혁을 보며 웃었다.
“……당신 작품에도 나오고요.”
“보셨다니 영광이네요.”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수여식이고 뭐고, 그저 요구조자의 가족을 대한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까지 수십, 수백 번을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수혁의 표정이 편해진 것을 보고는 한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몇 명의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백인과 흑인도 있었다.
심지어 동남아인도.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배우의 물음에 수혁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수혁의 행동에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격에 찬 얼굴로 수혁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 설마?’
이번 행사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순서.
‘구조자들인가?’
수혁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들은 전부 수혁 덕분에 생명의 구함을 받은 이들이었다.
한국에서, 푸켓에서, 미국에서, 독일에서.
전부 수혁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이들이었던 것이다.
‘무슨 순서를 이렇게 제멋대로…….’
미리 들었던 일정대로 흘러간 것은 딱 하나.
오프닝밖에 없었다.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구조자들은 자신들이 준비해 온 선물을 수혁에게 건넸다.
당연히 고가의 선물들은 없었다.
손수 쓴 편지와 꽃.
수혁은 웃으며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론, 미국 명예시민보다 이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꽃다발을 받으니 정말 시상식에 온 것 같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다행히 마무리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살짝 지루할 법도 한데, 배우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재치 있게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수가 쏟아졌다.
수혁이 소개됐을 때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컸다.
대통령은 어느새 마련된 단상에 서서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대체 왜 갑자기 한국 방문을 결정한 것이냐고 말이죠.”
언론, 정치인, 국민.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던졌던 질문이었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백악관 대변인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과연 그가 왜 방한을 결정한 것인지 말이다.
“내심 짐작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가 어떤 이유로 직접 이곳에 온 것인지 말입니다.”
대통령은 손을 들어 자리에 앉아 있는 수혁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저는 미국의 히어로를 보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플래시가 터졌다.
특종이었다.
기자들은 깜짝 놀라며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청와대에서도 그렇게 발표하긴 했다.
하지만 그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저 미국의 립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사들은 쏟아져 나왔지만, 그마저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추측성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국뽕을 거하게 들이켠 기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소수였다.
한 국가의 수장이, 그것도 미국의 수장이 고작 그런 이유로 무거운 엉덩이를 떼 이 먼 나라까지 온다는 것이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확인을 시켜주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정말로 김수혁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 터졌다.
반면 수혁은 더욱더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말을 잘하는 대통령이라더니…….’
케인 로저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미국의 대통령은 인기를 끄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곳의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제 길었던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질 때가 되었다.
“영광입니다.”
대통령이 수혁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야말로…….”
사실 그렇게 영광스럽진 않았지만, 예의상 악수를 하며 말을 맞춰주었다.
“당신이 미국을 위해 해준 일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수혁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수혁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 혼자 한 일도 아니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수혁이 미국의 영웅이 되었던 것은, 조작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희망을 주기 위해 수혁이란 존재를 부각시킨 덕분이었던 것이다.
미국 명예시민 역시 그 조작의 일환이었다.
그러니 수혁의 입장에선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런 수혁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대통령이 눈웃음을 지었다.
“자리가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맘 같아선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자 대통령이 수혁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고, 국민이 원하고, 미국이 원하는 일입니다.”
물론 시작은 관심을 돌리기 위한 계획 중 하나였지만, 이번에 독일의 일을 보고 대통령은 확신했다.
수혁은 미국의 명예시민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강제로 수여해서라도 미국과의 끈을 만들어놔야만 했다.
대통령은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독일에서도 테러가 일어났다.
그 말은 언제, 어디서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었고.
그런 상황에 수혁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었다.
수혁이 한 사람, 한 사람 구조할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흥분할 것이다.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미국 명예시민 수여는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켜 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 않고 부담스럽긴 했지만, 한국까지 와서 준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쁜 일도 아니었으니.
대통령은 준비된 시민권을 꺼내 들었다.
검은 가죽에 금색으로 ‘Honorary Citizen’s Document’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미국의 상징인 아메리칸 이글과 함께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글자, 그리고 수혁의 이름도 있었다.
크기는 여권 정도였지만, 그 고급스러움은 여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수혁에게 시민권을 넘겨주었다.
그러곤 크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김수혁을 미국의 명예시민으로 인정하는 바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역사상 아홉 번째, 아시아인으로선 첫 번째.
한국과 미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었다.
“이것 참…….”
수여식이 끝나고 수혁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괜히 진이 다 빠져 지쳐 버렸다.
가뜩이나 밤새 현장에 있다 와서 좀 피곤한 상태였으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수혁 씨!”
가장 먼저 온 것은 바로 최은송이었다.
그녀를 본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축하해요!”
“고마워요.”
수혁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최은송을 가볍게 안아주었다.
“야, 미국놈!”
“내가 무슨 미국놈이에요?”
“시민권 받았으면 이제 미국 사람이지.”
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박상태를 비롯한 신일서 식구들이었다.
그들은 수혁을 향해 장난을 치며 웃었다.
“남들은 원정 출산이다 뭐다 해서 미국까지 가는데, 너는 복받은 거야, 인마.”
“전 그냥 한국이 좋거든요?”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낄낄- 거리며 장난치는 사이, 특수 구조대의 동료들도 찾아왔고, 아까 무대에서 봤던 구조자들도 조심스럽게 방문했다.
덕분에 조용하던 대기실이 순식간에 북적북적해졌다.
수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차라리 이런 분위기가 더 나았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않아도 좋았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그렇게 수다를 얼마나 떨었을까?
“흠흠.”
누군가 헛기침을 하며 대기실 문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예의 그 공무원이었다.
그를 발견한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저와 잠시 어디 좀 가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