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59화
솔직히 말하자면, 톰은 현재 자신의 위치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현장에서 멀어지고, 뒤쪽으로 빠져 지휘만 하고 있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출동해도 저놈들보단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해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톰의 육체는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현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끊임없는 운동과 단련을 거듭해 왔다.
덕분에 녹이 슬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돌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트라우마도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였는지라 지금 당장에라도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현장 대원이 아니라 지휘부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력과 장비가 충분한 상황에 뒷방 늙은이를 현장에 투입할 순 없었다.
그래서 톰은 속으로 삭이며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수혁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더는 참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원하는 것처럼, 현장에 나가 동료들과 함께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었다.
톰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수혁의 제안을 수락했다.
수혁이 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톰은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바로 결정하실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좋은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톰이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군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확히 단체 설립이 언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준비는 하고 계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아직은 구상 단계였지만, 짐 머레이의 추진력을 보면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직장부터 때려치워야겠습니다. 부하 녀석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뉴욕 소방서에서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근무지를 바꾸지 않고 일을 해왔다.
그런 톰이 정년도 아니고, 자진해서 은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황당하다 못해 기막혀 할 것이다.
분명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 놈들도 나올 테고.
톰은 그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똑똑-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수혁 씨, 준비되……?”
이번엔 들어온 사람은 수혁에게 이번 수여식의 절차 등을 알려주기 위해 온 공무원이었다.
“누구시죠?”
그는 수혁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톰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제가 아는 지인입니다. 잠깐 인사를 하러 오셔서.”
“아, 네.”
공무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은 현재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장소였으니 당연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감시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 장소에 보고되지 않은 인원이 들어와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그가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느끼곤 톰을 소개해 주었다.
“이번에 미국 측의 실무진으로 참가한 분입니다.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한국으로 온 분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야기도 다 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톰은 여기까지 들어올 수도 없었을 터였다.
“아, 그렇군요.”
미국의 실무진이라는 말에 공무원의 얼굴이 풀어졌다.
“그럼 톰, 일단 오늘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한국에는 조금 더 머물 예정이니, 언제든 편할 때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톰은 수혁과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덩치와 키에 공무원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보디가드입니까?”
톰이 나가자 슬쩍 물어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톰은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 경호국의 요원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어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수혁은 공무원을 향해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소방관입니다.”
‘미쳤구만.’
수여식의 규모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수혁도 이런 행사에 여러 차례 참가했었다.
작게는 행안부 장관 표창장 수여식부터, 독일의 훈장 수여식까지.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단연 독일 현지에서 열렸던 행사였다.
테러 현장에 달려와 도움을 주었던 각국의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던 그 행사.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크고, 화려했다.
‘사람이 대체 몇 명이냐…….’
세종문화회관의 메인홀에 있는 좌석이 꽉 차 있었다.
수혁이 알기론 최소한 3천 석이 넘었는데, 그것이 모두 만석이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은 그들 대부분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한국 사람도 있고, 미국 사람도 있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를 이들도 있었다.
아마 한국과 미국의 초청을 받은 각계각층의 인사들인 것 같았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두 눈에 담고 싶었던 이들은 모두 참석한 것이다.
이 많은 사람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릴 것이라 생각하자 수혁마저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긴장되는구만.”
차라리 현장에 나가는 편이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수혁은 심호흡하며 긴장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다른 생각을 했다.
‘수여식 절차가…….’
행사 일정은 다른 것들과 딱히 다르진 않았다.
이런 종류의 행사는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했으니까.
물론 다른 점도 있긴 했다.
뭔가를 주고받고, 사람들을 향해 연설하고, 소감을 말하고.
이런 것을 제외하고도 그간 수혁이 보여주었던 활약상이라던가, 수혁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던 동영상 상영이라던가.
수혁에게 있어선 안 하느니만 못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기대되는 순서도 있었다.
바로 수혁에게 구조된 사람들과의 만남.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직접 여기까지 온 이들도 있었다.
자신이 살린 생명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것은 아니다.
가끔 감사를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거나,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많진 않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 좋네.’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100% 지원을 통해 선별한 이들이라고 한다.
즉, 강제로 동원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모두가 실제로 수혁을 만나고 싶어 지원한 이들이었다.
수혁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올지 궁금해졌다.
그간 수혁이 구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보니, 예상이 되질 않았다.
“슬슬 시작할 모양입니다.”
어느새 시작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다행인 것은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진정되었다는 것이었다.
팍-!
순간 내부의 조명이 꺼졌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살짝 긴장한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도 연출인가 본데?’
스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큰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수혁의 예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두구두구- 하는 북소리와 함께 핀 조명이 하나둘 켜지며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아!”
의도된 연출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제야 환호성을 질렀다.
“무슨 시상식도 아니고.”
반면 수혁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한국에서 기획한 행사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마치 TV로만 봐왔던 영화제나 연예 대상 같은 시상식에 참석한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선사했던 연출이 끝나자, 이윽고 행사 진행을 위한 사회자가 등장했다.
“어?”
“저거 혹시……?”
수혁의 눈도 커졌다.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선 사람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것이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공무원을 쳐다봤다.
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느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물을 수가 없었다.
공무원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앞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 들어가겠네.’
수혁이 픽- 하고 웃으며 다시 앞을 쳐다봤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이렇게 자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는 더욱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될 배우.
그는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제 꿈은 슈퍼히어로였습니다. 미국의 여느 꼬맹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등 뒤로 망토를 두르고, 지붕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진 경험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와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누구나 어릴 적에는 그런 상상을 해봤을 겁니다. 아니, 나이가 든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죠.”
그는 중간중간 유머를 섞어 가며 편안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러니까 정말 시상식 같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저도 그 영화의 제안이 왔을 때,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계약서를 들고 오라고 재촉까지 했죠.”
제작 비화라고까지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배우에게 직접 들으니 꽤나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여식에 대한 부담과 긴장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슈퍼히어로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수혁에게 꽂혔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소방관은 현실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슈퍼히어로라고.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위대하다고 말입니다.”
사람들을 구하고, 재산을 보호하며, 자신의 몸을 바쳐 헌신한다.
그것이 슈퍼히어로가 아니면, 대체 그 누가 자격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그 슈퍼히어로들 중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고, 하늘을 날아다니지도 않으며, 손이나 눈에서 빔을 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 말에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졌다.
“하지만 그는 영화 속의 그 어떤 히어로들보다도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무대 뒤쪽에 펼쳐져 있던 스크린에서 영상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것은 수혁의 영상이었다.
NSA에서 편집한 뉴욕에서의 영상뿐만이 아니었다.
수혁이 처음으로 영웅으로 불리게 된, 푸켓에서의 BBC 영상도 흘러나왔고, 독일의 기자들이 찍은 것들도 방영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활약상은 물론이고, 라오스에서 시애를 업고 빗속을 달려가는 모습까지 나왔다.
먼지와 검은 재로 범벅이 된 얼굴로 사람을 업고 달리는 모습.
장비를 착용한 채,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
잔뜩 지친 얼굴로 머리 위에 물을 뿌리는 모습.
그리고…….
부상을 당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지금까지 수혁이 겪어온 경험들의 요약판이었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한 사람의 처절하고 헌신적인 모습에, 절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저에게 무한한 영광입니다. 바로 이 영상 속의 주인공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까요.”
그가 정중한 태도로 손을 뻗어 수혁을 가리켰다.
“슈퍼히어로, 김수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