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55화
김연희는 스마트폰의 불빛에 의지해 김의천의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줌마의 능숙한 행동에 안도한 아이는 어느새 김연희의 옆에 서서 손을 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옥상까지 올라가야겠습니다.”
무전을 통해 당장 위로 올라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말은 곧, 4층은 위험해질 것이란 뜻이었다.
연기가 올라오든, 아니면 화재가 번지든.
최대한 빠르게 위쪽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보다 속도는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불빛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시야는 확보했음에도, 아수라장이 된 백화점 내부를 빠르게 돌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조금만 더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있습니다. 거길 통해서 위로 올라가면 될 겁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옥상까지 통하나요?”
김연희가 물었다.
“아니요. 하지만 6층까지는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6층에는 하늘 공원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가 있으니, 그곳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백화점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하늘 공원.
부모님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자, 잠시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다.
최정상 층인 옥상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쪽이 몸을 피하기엔 더 안성맞춤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럼 그곳으로 가죠.”
사람들은 그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들 중 백화점 내부 구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김의천이었으니까.
“괜찮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김연희가 문득 옆을 돌아보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울음은 멈췄지만,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그것을 본 김연희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오늘 아침 밖으로 나올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획대로라면 오늘 자신에게 줄 선물 하나를 사곤, 분위기 좋은 식당으로 가 와인 한잔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어야 하는데…….
‘처음 보는 아이 손을 붙잡고 불난 백화점을 헤매고 있을 줄이야.’
계획이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런 현실이 너무 어이가 없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때, 조용히 있던 아이가 김연희에게 속삭였다.
“조금만 있으면 이 언니가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벌써 몇 번째 하는 말일까?
틈만 나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아이 덕분에, 벌써 열 번이 넘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연희는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무서운데 이 애는 오죽할까?’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꼭이에요. 꼭 엄마한테 데려다줘야 해요?”
“그래, 약속할게.”
김연희가 웃으며 아이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불안감이 많이 가신 듯했다.
그때였다.
앞장섰던 김의천이 걸음을 멈추었다.
덩달아 멈춰선 김연희가 무슨 일이냐는 듯 앞을 쳐다봤다.
“에스컬레이터 쪽으로는 못 가겠네요.”
“그게 무슨…… 읍!”
김의천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김연희가 숨을 멈추고는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연기예요!”
앞쪽에서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러온 것이다.
“이런!”
“어, 어떻게 하죠?”
사람들이 당황했다.
그들도 근래 TV에서 자주 해주는 소방 관련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화재 현장의 연기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말이다.
에스컬레이터에는 연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덕분에 연기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벌써 여기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기는 아직 4층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3층 계단 쪽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속도로 봐선 아직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연기가 퍼지는 속도가 빨랐다.
“다른 쪽으로 가야겠습니다.”
김의천이 사람들을 이끌고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비상계단으로 가야 했다.
비상계단이라면 철문과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을 테니, 에스컬레이터보단 연기가 덜할 것이다.
“여기서 먼가요?”
이 백화점은 규모가 상당하다.
거기다 어둡고,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상태라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거리까지 멀면 시간이 꽤 걸릴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 김의천은 고개를 저었다.
“가깝습니다.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의천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서둘러 이동하죠.”
김의천은 사람들을 재촉했다.
그리 멀지는 않다지만,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 늦기 전에 위쪽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어서요!”
김연희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힘이야 들겠지만, 이편이 훨씬 빨랐다.
사람들은 김의천의 뒤를 따라 비상계단을 향해 직진했다.
***
“후우-!”
“뚫었습니다!
“물 끊어!”
특수 구조대 1팀은 불과 싸우며 위를 향해 오르는 중이었다.
1층의 화재가 너무 심했는지라 그곳을 통과하는 게 가장 힘들었고, 그 위로는 조금 수월했다.
3층 정도 올라오자 이제 불길은 많이 잦아든 상태였고, 자욱한 연기만이 가득했다.
“올라가!”
호스의 관창을 돌려 방수를 중단하자, 전승철이 소리쳤다.
대원들은 지체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방금 전까지 불과 싸우느라 힘들 법도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쌩쌩했다.
‘4층.’
수혁은 4층에 도달하자 ‘미니 맵’을 다시 확인했다.
‘음…….’
남은 요구조자는 없었다.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땐 몇 명이 있었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는 사이 위층으로 올라간 듯싶었다.
“바로 5층으로 갑니다!”
수혁의 외침에 잠시 주춤거리던 대원들이 그대로 4층을 지나쳐 올라갔다.
순식간에 5층까지 올라온 대원들이 철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좋아, 화재는 없다.”
아직 불길은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연기는 불과 달라서, 5층도 천천히 채우는 중이었다.
“2인 1조로 수색한다. 흩어져!”
전승철의 명령에 수혁은 강병규와 조를 이루어 수색을 시작했다.
“여기에 요구조자 있을 것 같냐?”
다른 대원들과 거리가 멀어지자, 강병규가 은근한 목소리로 수혁에게 물었다.
“아니요.”
수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확신에 가득 찬 음성이었다.
“그럼 더 위로 올라가는 게 낫지 않아?”
강병규 역시 수혁의 대답을 완전히 믿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안양에서 일어났던 산불 현장에서도 귀신같이 요구조자들을 찾아낸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강병규는 바로 옆에서 그것을 지켜본 목격자였고.
수혁의 능력을 똑똑히 확인한 그였기에 이번에도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그래도 수색은 해야죠.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수혁은 5층에 요구조자가 없다는 것을 100% 확신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만약 5층의 수색을 건너뛴다면, 분명히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수혁은 더 이상 트러블이 일어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이제 자제할 때도 됐지.’
동료와의 갈등은 신일서에서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지금은 매뉴얼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물론 상황이 더 급박했으면 갈등이고 뭐고 움직였을 테지만 말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지금은 괜찮아요. 아직은 여유 있어요.”
시간을 오래 쓸 순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수색한다면 한 층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빨리 움직이죠.”
수혁은 대화를 멈추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5층을 살폈지만, 머릿속으로는 ‘미니 맵’을 통해 위층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6층에는 사람이 꽤 많네.’
당장 확인이 가능한 숫자만 해도 거의 40명에 육박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게다가 그들은 한 곳에 뭉쳐 있는 것이 아닌, 여러 장소에 흩어진 상태였다.
수혁은 그들을 확인하며, 6층으로 올라가면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동선을 계산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응?”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 것이 수혁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저 사람들은 뭐지?’
6층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곳에 모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무리만 계속해서 이동 중이었다.
물론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는 것일 수도 있었고.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이었다.
‘거긴 안 돼!’
수혁의 눈이 다급해졌다.
***
굴뚝 효과라는 것이 있다.
건물의 내부와 바깥 공기의 온도 차이가 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온도의 차이가 만들어낸 밀도차로, 건물의 수직 공간을 통해 연기와 공기가 유동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슈트, 배관 같은 곳을 통해 유독 가스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보통은 고층 건물이나 산불과 같은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인데, 지금 이 백화점에서도 그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행히 많은 비상계단 중 단 한 곳에서만 일어난 상태였고, 그마저도 철문과 방화벽에 가로막혀 사람들이 있는 쪽으론 퍼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이제 시간문제였다.
김연희와 김의천이 향하는 곳이 바로 그 비상계단 쪽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굳게 닫혀 있는 문이 열린다면?
갇혀 있던 연기와 유독 가스가 마치 폭발하듯 바깥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6층에 있는 인원들은 순식간에 그것에 휩쓸릴 테고.
차라리 불길이 퍼지는 것이 나았다.
열기에 어느 정도의 피해는 입겠지만, 그래도 피할 순 있었으니까.
하지만 연기가 퍼진다?
그럼 끝이었다.
절대 피할 수도 없었고, 살아남을 수도 없었다.
지금 백화점 내부를 채우고 있는 연기는 절대 평범한 연기가 아니었다.
화학 물질이 타며 내뿜는 유독 가스였다.
한 모금만 마셔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유독 가스!
그런 사실을 이들이 알 리가 없었다.
6층에 도착한 김의천은 일행을 이끌고 하늘 공원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 쪽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몇 명의 사람들이 더 합류해서 이제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되었다.
“얼마나 걸리나요?”
“잠시만요.”
김연희의 물음에 김의천이 잠깐 계산을 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속도라면 5분 내에 도착할 수 있겠네요.”
거의 지척에 다다랐다는 말이었다.
김의천의 대답에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늘 공원까지만 가면 안전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늘 공원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자신들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