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54화
“아가씨! 아가씨! 이쪽으로 와요!”
김연희가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연희는 두려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쪽으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려고 하니, 괜히 걸음이 늦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는 곧 사라졌다.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 자신이 있는 위치를 밝힌 남자의 주변에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김연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아줌마 한 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불났대요. 지금 아래층은 난리라고 하네요.”
누군가와 통화하던 학생 한 명이 대답했고, 사람들은 침음성을 흘렸다.
갑자기 정전이 되고,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럼 빨리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저쪽에 있는 계단으로 가면…….”
“계단은 막혔어요.”
아줌마는 이 백화점의 단골이었는지 정확하게 계단이 있는 쪽을 가리켰지만, 김연희가 고개를 저었다.
“마, 막히다니?”
“방금 그쪽에서 오는 길이거든요. 아래쪽은 연기로 가득 차서 못 내려갈 것 같아요.”
김연희의 말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한 지 고작 10분이나 되었을까?
그사이에 내려갈 수 있는 길목이 막혔을 정도면, 대체 얼마나 화재가 심각하단 말인가?
“확실합니까?”
“네. 직접 보고 오는 길이에요.”
김연희가 아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런…….”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의 수는 김연희와 아이를 포함해 총 열두 명이었다.
갑작스러운 혼란에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을 조금 전 김연희를 부른 남자가 모은 것 같았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많이 봐줘야 이십대 초중반.
김연희보다도 어려 보였다.
그런데도 남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느낀 것일까?
남자는 김연희를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김의천이라고 합니다. 이 백화점의 보안 요원이기도 하고요.”
남자, 김의천의 말에 김연희가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옷도 보안 요원의 복장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구나.’
사람들이 왜 그를 따르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요?”
아줌마가 물었다.
하지만 김의천이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지금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겁니다.”
백화점과 가장 가까운 소방서는 바로 조연서였다.
그리고 조연서는 고작 5분 거리.
화재경보가 울리고 10분이 넘었으니,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불이 얼마나 크게 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여기는 안전해 보이니 이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의천의 말은 타당했다.
멋대로 움직였다가 괜한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언니, 엄마 어디 있어? 엄마 보고 싶어…….”
그런데 김연희가 데리고 온 아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에 가까스로 울음을 참고 있었는데, 그것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 찾아줄게.”
김연희가 달래보았지만, 아이는 결국 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김연희가 허둥거렸다.
“동생입니까?”
김의천이 묻자, 김연희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까 도망치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던 아이예요.”
만약 그 울음소리를 무시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쯤이면 백화점 밖으로 빠져나가 안전한 장소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희는 후회하지 않았다.
‘울고 있는 애를 보고 어떻게 그냥 가.’
그녀는 평소에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도 없다는 게 더 정확했다.
나 혼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남을 챙길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평소였다면 길을 잃은 아이를 봐도 안쓰럽다는 생각만 할 뿐, 굳이 나서진 않았을 게 뻔했다.
그런데…….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돕지 않으면, 아무도 저 아이를 위해 나서주지 않을 것 같아서.
김연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이의 눈가를 닦아주며 계속해서 달랬다.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이 이리 줘봐요.”
낑낑대며 애를 쓰고 있는 김연희가 안타까웠을까?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아이를 들어올렸다.
“어이구, 우리 애기.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보러 갈까?”
아이를 품에 안고 둥가둥가 해주는 모습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아줌마의 노력이 통한 것인지, 아이 역시 조금씩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고, 김연희를 포함한 사람들은 괜히 미소를 지으며 그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삐비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동시에 김의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그에게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소리는 김의천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의천 씨, 지금 어디예요? 김의천 씨.]
동시에 무전기에서 다급한 사람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김의천은 그것을 듣자마자 무전기를 꺼내 들며 입을 열었다.
“4층, 4층에 있습니다.”
[아, 다행이다. 무사하셨네요.]
무전기 너머의 음성은 김의천이 대답을 하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4층은 어떤 상황입니까?]
“정전돼서 시야 확보가 어렵습니다.”
김의천은 침착하게 현재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몇 명이 함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아래로는 내려가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화재는 2층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내려가기 힘들 겁니다.]
그는 지금 보안 요원들의 무전기를 이용해, 백화점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수를 파악하고 있었다.
“몇 명이나 있습니까?”
[의천 씨 일행을 포함하면 50명이 조금 넘습니다.]
50명이라는 숫자에 사람들이 숨을 집어삼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 더 있을 겁니다. 지금도 계속 파악 중이니까.]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의천 씨가 지금 4층이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김의천이 그렇다고 하자,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 당장 위쪽으로 대피하세요.]
***
‘화재는 4층까지 번진 상태고.’
수혁은 ‘미니 맵’을 통해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요구조자들은 거의 6층에 모여 있군.’
십여 명의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6층에 몰려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로 올라간 건가? 아니면 지시를 들은 건가?’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수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화점 이곳저곳에 퍼져 있었다면, 수색과 구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문제는 제시간 내에 모두 구조할 수 있느냐인데…….’
요구조자가 너무 많았다.
자신들을 포함해도 구조대는 고작 열다섯 명도 되지 않는다.
열다섯 명으로 백 명이 넘는 요구조자를 모두 구조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헬기라도 뜰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일단 지원 요청은 해둔 상태였지만, 백화점 외벽을 타고 위로 치솟아 오르는 연기로 인해 헬기구조는 힘들 것 같았다.
“준비 다 됐나?”
전승철이 장비 착용을 끝내고는 대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진입하실 겁니까?”
화재가 너무 심했다.
펌프차들이 계속해서 방수를 하고 있었지만, 불길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1층 입구로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하 주차장을 통해서 들어간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선 발화 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걸림돌이라고는 연기 정도?
하지만 연기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랜턴도 있었고, 여차하면 수혁의 ‘미니 맵’도 있었으니까.
“저희만 들어가는 건 아니죠?”
이번엔 강병규가 물었다.
요구조자의 규모가 상당하니, 당연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고, 후에 계속 투입될 거다.”
대략적인 브리핑을 끝낸 전승철이 수혁을 쳐다봤다.
“수색은 맡긴다.”
수색 능력은 그 누구도 수혁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승철이었다.
“맡겨주십쇼.”
수혁이 호언장담하자, 전승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들어가자.”
대원들이 지하 주차장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화점 쪽으로 다가갈수록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안에 들어가면 진짜 찜통이겠는데?”
“탈 게 많으니까요.”
화재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연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런 대형 화재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열기만으로도 사람을 말려 죽일 수 있었다.
“랜턴 켜.”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 전승철이 명령했다.
대원들이 일제히 면체 마스크에 달린 랜턴을 켰다.
새까만 연기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찌나 짙은지, 랜턴을 켰는데도 시야가 확보되질 않았다.
“김수혁, 앞장서라.”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혁이 선두로 나섰다.
‘이쪽으로 가면 되겠군.’
수혁은 대원들을 가장 가까운 비상계단으로 인도했다.
철문을 열자, 화끈거리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진입합니다.”
하지만 수혁은 물러나지 않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곤 한발 먼저 계단 위로 올라가 위쪽 상황을 살폈다.
“소화전 필요합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건물인지, 방화문은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덕분에 불길은 계단까지 퍼져 불구덩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수혁 혼자라면 모를까, 이대로는 절대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준비됐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수혁이 계단을 살피는 사이, 전승철은 미리 소화전 연결해 두었다.
‘역시…….’
특수 구조대가 괜히 정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었다.
수혁의 활약에 빛이 바래긴 했지만, 이들 역시 최정예 소방관들이었다.
“강병규, 이치호. 호스 잡고 길 뚫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전승철이 다른 대원들에게 호스를 맡기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넌 수색에만 집중해. 나머진 우리가 한다.”
방수하는 것은 꽤나 지치는 일이었다.
물론 수혁에겐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전승철은 조금이라도 그의 체력을 아끼고 싶었다.
수혁이 뒤로 물러나자 강병규가 관창을 붙잡았고, 이치호가 그 뒤를 받쳤다.
“방수합니다.”
밸브를 돌리자 호스가 팽팽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물줄기를 쏟아냈다.
마치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천천히 불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1층.’
당연한 말이었지만 불길이 번진 4층까지는 요구조자가 없었다.
“1층 수색합니까?”
강병규가 전승철을 향해 묻자, 그는 수혁을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본래대로라면,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수색해야만 했다.
아무리 불길이 퍼져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니, 그렇기에 더욱 수색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이 시간 낭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전승철이 입을 열었다.
“5층까지 바로 올라간다.”
수혁을 신뢰하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