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51화
-미 대통령이 방한하는 이유는?
-체류 기간 중 소방관 김수혁 씨에게 미국 명예시민증 수여한다.
-방한 일정 중 명예시민증 수여 행사 진행 예정.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었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수혁이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명예시민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수혁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 위해 한국까지 왔다는 말은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미국에서도 같은 내용의 발표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쪽이 조금 더 노골적이었다.
-영웅을 만나기 위해 한국 행하는 대통령.
-‘늦었지만, 그를 직접 만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번 방한의 가장 큰 이유는 김수혁.
청와대에서는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일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면, 미국은 대놓고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의 대통령은 수혁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었다.
‘서프라이즈라고 했던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던 케인 로즈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포퓰리즘이니, 인기에만 눈이 멀었다느니, 하는 평을 듣는 대통령.
그럼에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런 파격적인 행보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수혁은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영웅으로 각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통령의 서프라이즈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아마 지지율에도 변화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대로라면 재선도 문제없겠군.’
NSA는 성격상 선거와는 그리 관계가 없는 기관이었다.
그들이 하는 역할은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케인 로저스는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길 바랐다.
이번 대통령은 NSA를 꽤나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이 편했으니까.
‘예산도 말이지.’
한참 동안이나 노트북을 통해 여론을 살펴보던 케인 로저스가 문들 내선전화를 들어 자신의 비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노크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비서가 시킬 일이 있냐는 듯 물었다.
“내일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나?”
“급하게 준비한 것치고는 순조롭습니다.”
방한을 결정하고 고작 2주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덕분에 백악관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는 밤낮없이 준비해야만 했다.
그리고 내일.
마침내 대통령이 한국을 향해 떠난다.
“보안에 특히 신경쓰도록.”
준비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이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빈틈이 있을 수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테러가 일어난 만큼, 만반의 대비를 해야만 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USSS(비밀 경호국)와 연계해서 물샐틈없이 준비 중입니다.”
“한국과도 이야기가 되었겠지?”
“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 인근의 위험 지역을 사전에 차단하고 이후 일정에 포함된 장소들까지 대비해 둔 상태입니다.”
“좋아.”
케인 로저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안전한 나라다.
총기 금지 국가이며, 테러 위협도 미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북한이라는 위험 요소가 아직 남아 있긴 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도발하진 못하겠지.’
이 정도면 충분히 대비한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까지 점검을 계속하도록.”
“알겠습니다.”
케인 로저스는 방심하지 않고 한 번 더 점검할 것을 지시하고는 노트북을 닫았다.
“오늘은 이만 퇴근해야겠군.”
에어포스원은 내일 아침 일찍 날아오른다.
장시간의 비행이 될 테니, 좀 쉬어두는 편이 좋았다.
케인 로저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퇴근을 했다.
‘기대가 되는군.’
명예시민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미국행을 거절한 수혁.
그리고 그런 수혁에게 어떻게든 주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한 대통령.
과연 수혁이 대통령을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설마 인상을 쓰진 않겠지?’
혹시나 했지만, 수혁이라면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케인 로저스는 즐겁게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얼른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
***
“……결국 왔네.”
수혁이 뉴스를 보며 혀를 찼다.
“그렇게 싫어요?”
아침을 준비하던 최은송이 풋- 하고 웃었다.
“딱히 좋진 않네요.”
어제부터 수혁에 대한 기사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사람의 관심이 수혁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기자들이 수혁의 집 앞까지 찾아왔을 정도였다.
“지금도 밖에 있어요?”
“아까 보니까 있더라고요.”
수혁의 대답에 최은송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일을 직접 겪어보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공항 같은 곳에서 둘러싸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다.
“이래서 기레기, 기레기 하나 봐요.”
최은송이 투덜거렸다.
그것은 수혁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기자들에게 시달리기는 했지만, 그들은 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은?
‘선은 개뿔.’
그런 걸 지킬 줄 알았더라면 애초부터 기레기라는 소리를 안 들었겠지.
“오늘은 조금 늦게 출근해요. 내가 먼저 나가서 저놈들 다 끌고 갈 테니까.”
“그렇게 할게요.”
기자들의 관심은 수혁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개중 한두 명 정도는 최은송에게도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혁을 취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수혁이 먼저 출근을 해버리면, 분명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최은송은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출근하면 될 것 같았다.
“식사해요.”
“오늘도 고마워요.”
푸짐하게 차려진 아침상을 본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 나빴던 기분마저 풀릴 정도였다.
“한 번쯤은 내가 해주고 싶은데.”
수혁은 요리에 큰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혼자 산 경력이 꽤 되다 보니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매일 아침 식사 준비를 하려고 일찍 일어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이 해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최은송은 거절했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수혁 씨 요리는…….”
최은송이 말끝을 흐렸다.
“뭐요? 왜 말을 하다 말아요? 내 요리가 뭐 어때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솔직히 먹을 만하지 않아요?”
“네네, 맞아요. 식당 차려도 될 정도죠.”
“지금 비꼬는 거 맞죠?”
수혁과 최은송은 행복한 아침 시간을 보냈다.
“그럼 먼저 출발할게요.”
출근 준비를 끝낸 수혁이 최은송과 인사를 하고는 먼저 집을 나섰다.
“김수혁이다!”
“어, 김수혁 씨!”
“MCB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것이 사실입니까?”
“이미 알고 계셨나요?”
“한말씀만 해주시죠!”
기자들은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수혁은 그들을 깨끗하게 무시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어? 어?”
“차에 탔다. 서둘러!”
기자들은 혹시라도 수혁을 놓칠세라 잽싸게 뒤를 따랐다.
“쯧,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뭐하는 짓인지.”
기자들의 행태에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들도 수혁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이상은 별다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수혁이 본부에 도착하고 나면, 따라 들어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공무 집행 방해로 걸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차분하게 운전해 특수 구조대 본부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본부 앞에도 기자들이 있었다.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근무지에서 기다리는 것이 더 확실하다고 생각한 기자들이었다.
‘그래 봐야 쓸데없는 행동인 건 마찬가지지만.’
수혁은 기자들을 무시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켰다.
그러곤 몰려들기 전에 후다닥 달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서 기자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왔냐?”
사무실에 도착하자, 강병규가 맞이해 주었다.
“일찍 오셨네요.”
잔뜩 질려 있는 그의 표정을 보니, 기자들에게 어지간히도 시달린 것 같았다.
“어휴, 말도 마라.”
강병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이럴 것 같긴 했는데. 도가 지나치네, 저놈들.”
강병규 역시 어제의 뉴스를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TV든 인터넷이든 난리가 난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거 진짜냐?”
“뭐가요?”
“그, 뭐냐. 미국 대통령이 너 보러 온다는 거.”
강병규가 조심스럽게 묻자, 수혁이 픽- 웃었다.
“설마 그게 진짜겠어요?”
“그, 그렇지?”
수혁의 대답에 강병규 역시 어색하게 웃었다.
“가짜라기엔 너무 오피셜로 나왔지.”
“아, 팀장님.”
수혁이 둘러댄 말에, 사무실로 들어오던 전승철이 태클을 걸었다.
“백악관 대변인이 직접 한 말이다. 아예 거짓말은 아니겠지.”
전승철이 수혁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받은 수혁이 뺨을 긁적였다.
“뭐, 명예시민인지 뭔지를 주겠다고 한 건 사실이에요.”
“역시!”
강병규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 하나 보려고 한국까지 왔다는 건 오버죠. 쇼맨십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원래 그런 거 잘한다면서요.”
수혁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는지라 전승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이 정말이든, 아니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수혁이 미국의 명예시민이 된다는 것이었으니까.
“그 수여식이라는 건 언제 한다고 하지?”
“듣기로는 내일모레요.”
“곧 공문이 내려오겠군.”
“죄송합니다.”
수혁이 전승철을 향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또다시 근무 시간에 자신만 빠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사과할 것 없다. 하루이틀 정도는 괜찮으니까.”
시장이 나서서 상을 준다고 해도 근무 시간을 빼야 할 판에, 무려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다.
청와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내고 있었고.
그런 자리를 간다고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불가항력이었으니까.
“1팀장님.”
그때, 행정실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전승철을 불렀다.
전승철이 돌아보자 직원은 손에 든 문서 한 장을 건네주었다.
“여기 이거…….”
그러면서 수혁을 힐끔 쳐다보았다.
‘공문이구나.’
그 눈빛으로 문서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
“업무 협조 공문이 내려왔군.”
역시 예상대로 문서는 위에서 내려온 공문이었다.
“음?”
그런데 그것을 읽던 전승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이상한 거 있습니까?”
그것을 본 수혁이 물었다.
하지만 전승철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그것을 읽었다.
그러곤 눈살을 찌푸리며 수혁을 쳐다봤다.
“같이 참석하라는군.”
“1팀 전체가요?”
“그래. 거기다 네 전 근무지였던 신일서의 대원들도 참석할 모양이다.”
수혁이 공문을 받아 들어 읽기 시작했다.
전승철의 말대로 신일서와 특수 구조대의 대원들도 전원 참석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수혁이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현장 대원들이 이런 행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미안했다.
수혁이 전승철을 향해 다시 한 번 사과하려 할 때였다.
“계십니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행정실 직원 뒤에 누군가 나타났다.
“……케인?”
“다행히 여기 있었군.”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케인 로저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