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48화
박상태는 일단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과 함께 돌아갔다.
아직 확답을 주진 않았지만, 그것은 수혁도 원하지 않았다.
충분히 고민하고, 상의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인생이 송두리째 변화하는 일이었으니, 쉽게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되었고.
“어떨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최은송이 물었다.
“같이할 것 같아요.”
그냥 느낌이었다.
솔직히 짐 머레이가 내건 조건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받기 때문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소방관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복지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저도 그렇게 느끼긴 했어요.”
최은송 역시 박상태가 수혁을 따라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은송 씨는 정말로 괜찮아요?”
“음…….”
최은송은 살짝 고민했다.
내심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독일에서처럼,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곧바로 현장에 찾아갈 수 있었다.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수혁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아니었다.
당장 달려가기에는 독일과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수혁이 위험에 처했는데, 자신은 이 머나먼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져 내릴 뻔했다.
다행히 수혁은 무사히 구조가 되었지만, 그때와 같은 경험을 또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괜찮을 것 같아요.”
자신이 말린다면, 수혁은 짐 머레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은송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잖아.’
수혁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살렸고, 앞으로도 그보다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최은송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은송 씨가 싫다고 하면, 없던 일로 할 수 있어요.”
수혁이 운전하며 슬쩍 최은송의 눈치를 살폈다.
전날 밤새도록 최은송과 함께 의논하긴 했지만, 아직도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최은송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조금 더 확신에 찬 음성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잖아요.”
최은송은 빙그레 웃으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언제나 말했듯이, 수혁 씨만 무사히 돌아와 주면 돼요.”
이젠 그녀도 안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수혁은 언제나 그러겠다며 약속했지만…….
‘거짓말쟁이도 이런 거짓말쟁이가 따로 없어.’
이번에도 수혁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은송은 수혁의 뜻을 존중했다.
* * *
“후욱- 후욱-!”
마스크 안에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피지컬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화재라는 재앙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손민준은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요구조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어.’
요구조자 한 명이 불길 속에 갇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어 왔다.
뒤에서 선배들이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선배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독단적인 행동의 대가는 컸다.
화재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퇴로는 막혔고, 열기는 손민준과 요구조자를 통째로 익혀 버릴 것만 같았다.
진퇴양난의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손민준은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요구조자는 벌써 목숨을 잃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도 위험한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숨은 붙어 있었다.
‘나가면 살 수 있다, 나가면.’
구하는 것은 자신이었지만, 살리는 것은 의사의 일이다.
병원에만 갈 수 있다면 의사들이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손민준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어떻게?’
혼자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부상을 입긴 하겠지만, 이 빌어먹을 곳에서 탈출할 순 있었다.
하지만 요구조자와 함께라면 불가능하다.
지금도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는 요구조자는 조금의 충격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절대로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있는 건 더 말이 안 되고.’
손민준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신체 능력은 부천서 내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경험이 그리 많진 않았다.
아직까진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혼자 책임을 지고, 행동하기엔 손민준은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한계가 찾아왔다.
“흐으으으.”
요구조자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온 것이다.
“괘, 괜찮으세요?”
지금까지 쥐 죽은 듯 있었던 요구조자가 반응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냥 좋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곳의 열기는 평범한 사람이 버티기엔 너무도 가혹할 정도였다.
지금쯤 요구조자는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작열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심하면 그 고통만으로도 쇼크가 올 수 있었다.
‘이동해야 돼!’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손민준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도박이라도 해야 요구조자를 살릴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요구조자를 품에 안은 손민준이 한쪽을 노려봤다.
다른 곳에 비해 불길이 훨씬 거센 곳.
다른 경우였다면 저쪽으로 움직일 생각은 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기만 뚫으면 바로 창문이야.’
잠시만 버텨주면 된다.
손민준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자!’
결심하고는 불길을 향해 뛰어들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때,
콰아앙-!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손민준의 움직임이 굳어졌다.
‘가스 폭발?’
당연히 폭발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가스 폭발이 일어난 것치고는 별다른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손민준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응?”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타오르고 있던 한쪽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아, 방금 그 소리가?’
가스 폭발이 아니라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덕분에 불에 탈 물질이 사라지며 불길이 사그라진 것이었고.
손민준은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몸을 틀었다.
확연하게 줄어든 불길을 발견하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저기다!’
저기라면 요구조자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빠져나갈 수가 있었다.
일단 손민준의 속도는 빨랐다.
도저히 방화복과 장비들을 착용한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길을 뚫었다.
‘됐다!’
안심하기에는 일렀지만, 가장 큰 장애물을 넘은 셈이다.
이젠 밖으로 향하는 길만 찾으면…….
“그 앞은 아직 위험해요.”
우뚝-!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손민준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화재 현장 한가운데서, 누군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저런 평온한 음성이라니?
손민준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돌아갔다.
“누구……?”
손민준은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자신의 질문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을 감싼 방화복에 장비를 풀 장착한 채 서 있는 사람.
누가 봐도 소방관이었지만, 손민준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너무 여유로워.’
불길 사이에 서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경기 남부 지방 특수 구조대 1팀의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김수혁?”
낯익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보네요.”
수혁은 손민준을 보며 웃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요구조자는 무사히 구조가 되었다.
정확한 상태는 병원을 가봐야 알겠지만, 수혁은 괜찮을 것이라며 손민준을 안심시켰다.
요구조자가 구급차에 실려 이송되는 것까지 모두 지켜본 손민준은 그제야 수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쩌다 보니?”
수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오늘은 손민준을 보러 온 것이었다.
박상태에게 했던 제안을 하기 전,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실력은 상관없었다.
수혁이 확인하고자 한 것은 인성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인성이 글러 먹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혁은 손민준에게 합격점을 주었다.
“어쩌다 보니 부천에 왔고, 어쩌다 보니 화재 현장을 발견했고, 어쩌다 보니 장비까지 착용하고 현장에 들어온 겁니까?”
손민준이 허허- 웃었다.
수혁은 자신이 생각해도 그 대답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손민준 씨를 좀 보러 왔습니다. 그러다 상황이 위급한 듯 보여서 끼어들게 된 것이고요.”
‘미니 맵’을 통해 내부의 상황을 확인한 수혁은 곧장 부천서의 구조팀장에게 달려가 협조를 요청했다.
수혁의 정체를 들은 구조팀장은 고민할 것도 없이 협조 요청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보면 월권 행위나 다름없었지만, 막내가 위험에 빠져 있는 상황에 거절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허가가 떨어지자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장비를 착용한 후 현장에 돌입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지.’
수혁은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게요?”
손민준은 수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수혁과의 인연은 특수 구조대 체력 테스트에서 같이 경쟁했던 것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는 접점도 없었고, 딱히 서로 관련되어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보러 왔다는 말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있으니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그저 어떤 사람인지 확인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괜히 시간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안할 것이 있거든요.”
“제안이라면?”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일단은 서에 복귀한 후에 하도록 하죠.”
손민준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제안이기에 수혁이 이곳까지 직접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손민준의 호기심을 느낀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민준 씨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