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45화
공식적인 미국의 답변이 도착했다.
이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최문식이 대통령에게 전달한대로 수혁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 위함이었다.
몇 가지 이유를 더 들긴 했지만, 그 이유라는 것들은 누가 봐도 한국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해 보였다.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수혁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정부는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청와대 상주 기자들은 얼굴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질문하세요.”
발표가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기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손을 들었다.
그중 지목된 기자는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게 김수혁 씨를 만나기 위한 것이란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다음 분.”
방금 전까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물어보고 있는 기자의 모습에 대변인은 대충 대답하고는 순서를 넘겼다.
“말씀하신 대로 김수혁 씨에게 미국의 명예시민증을 주기 위해 방한하는 것이라면, 미국 대통령이 직접 수여한다는 뜻입니까?”
“그것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수여식은 언제 진행될 예정입니까?”
“아직 논의 중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문은 그리 영양가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준 낮은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간간이 괜찮아 보이는 질문만 성심성의껏 답변해 준 대변인은 시간이 되었다는 스태프의 신호에 이만 회견을 마치기로 했다.
“김수혁 씨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때 마지막 질문이 들려왔다.
인사하려던 대변인은 멈칫- 하더니 살짝 웃어 보였다.
“그건 저 역시 궁금하군요.”
* * *
“1계급 특진이 좋냐, 미국 명예시민이 좋냐?”
“고민할 필요도 없네요. 당연히 특진이죠.”
수혁은 특수 구조대 동료인 강병규의 물음에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인마, 미국 명예시민이야. 이름에도 명.예.라고 붙어 있잖아. 엄청 명예로운 거라니까?”
“명예가 밥 먹여줍니까? 괜히 부담스럽기나 하지.”
수혁은 질색했다.
“많이 듣기는 했는데,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강병규는 허허- 웃고 말았다.
“그래도 무슨 혜택 같은 거 많이 준다고 하지 않나?”
“글쎄요. 그것까진 못 들어서.”
사실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저 귀찮게 됐다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여간…….”
강병규는 수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저 때문에 다들 고생하게 됐는데, 이거 죄송해서 어떡합니까?”
수혁은 다음 주에 진급식을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명예시민증을 받으러 가야 하고.
마음 같아서는 일 핑계를 대서라도 안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건 신경쓰지 마라. 뭘 새삼스럽게.”
확실히 수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심했다.
조금 전 출동했을 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수혁이 없었더라면 구조에 최소한 30분 이상은 걸렸을 현장이었건만, 수혁은 고작 5분 만에 해결했다.
그만큼 다른 동료들이 편해질 수가 있었고, 요구조자의 생존률 역시 높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을 못 가게 잡을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동료에게 좋은 일이 생겼는데 조금 힘들어졌다고 짜증을 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요.”
수혁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파 죽겠네.”
어느덧 식사 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참 미스터리야.”
대체 왜 잠잠하다가도 밥을 먹으려고 하면 출동이 떨어지는 걸까?
수혁은 어이없어하는 강병규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달렸다.
* * *
인천 공항.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허브 공항으로 언제나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장소다.
“여기는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좋군.”
짐 머레이는 인천 공항의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벌써 몇 차례나 방문한 곳이다.
그럼에도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은 생각보다 훨씬 발전한 나라야.”
서방 국가의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대부분 잘 몰랐다.
요즘 들어 꽤 널리 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특히 미국과 같은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는 더욱 그랬다.
자기 나라도 다 모르는데, 동양의 작은 국가에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오죽하면 북한과 남한의 차이도 모르는 이들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짐 머레이 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한국의 대기업들에 대해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얼마만큼 발전한 나라인지는 알지 못했다.
만약 푸켓에서 수혁에게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짐 머레이는 인천 공항을 둘러보며 싱긋- 웃었다.
‘한국은 투자하기에 적합한 곳이야. 그게 기업이든, 사람이든.’
그리고 짐 머레이는 사람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이 엄청난 수익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익 대신 얻을 수 있는 게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
짐 머레이는 그것이면 만족했다.
어차피 돈이야 지금도 썩어날 만큼 많았다.
더는 벌어봐야 그중 100분의 1도 채 사용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목숨 빚을 갚으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준비됐습니다.”
짐 머레이가 공항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출발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가지.”
짐 머레이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데리러 온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공항 밖에는 고급 세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에 당연하다는 듯 올라탄 짐 머레이는 가방 안에서 서류들을 꺼내 들며 말했다.
“일단 수혁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군.”
“숙소를 먼저 들르시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비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안 그래도 장거리 비행을 한 덕분에 피곤할 텐데, 호텔에 가서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움직이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수혁을 먼저 보고 싶네.”
“알겠습니다.”
수혁을 향한 짐 머레이의 관심과 애정을 이미 알고 있는 비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차는 한참 동안이나 달려 수혁이 근무하고 있는 특수 구조대의 본부에 도착했다.
“모시겠습니다.”
비서는 짐 머레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 뒤 앞장을 섰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군.”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출동을 나간 듯싶었다.
“차에서 기다리시죠.”
비서가 말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기다리지.”
짐 머레이는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일하던 곳과 별로 다르진 않은데.’
모르고 봤더라면 신일서나, 여기나 그냥 단순한 회사의 사무실로 착각했을 것 같았다.
덕분에 딱히 구경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짐 머레이는 가만히 앉아 몇 번이나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때,
육중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복귀한 것 같습니다.”
비서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구조차가 천천히 본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짐 머레이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어?”
마침 구조차에서 내리던 대원들이 짐 머레이와 비서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전승철이 나서서 짐 머레이에게 물었다.
“아, 저희는…….”
“짐?”
비서가 나서서 소개하려는데, 수혁이 짐 머레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
짐 머레이가 두 손을 활짝 벌리며 수혁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아니, 여긴 어쩐 일입니까? 다음 주에나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수혁은 반가운 표정으로 짐과 포옹을 한 번 하고는 물었다.
“겸사겸사 할 일도 있고, 자네도 보고 싶어서 좀 일찍 왔네.”
“미리 연락을 좀 주시지요.”
“서프라이즈라네.”
짐 머레이가 껄껄- 웃었다.
하지만 수혁은 환하게 웃질 못했다.
“요즘 서프라이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아서요.”
수혁의 말에 짐 머레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놀랐으니, 자네야 오죽할까?”
그는 수혁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 이쪽은 저희 팀장님입니다.”
반갑게 인사하던 수혁은, 이내 멀뚱히 서 있는 대원들을 보고는 ‘아차!’ 싶어 재빨리 소개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전승철이라고 합니다.”
“나는 수혁의 친구인 짐 머레이라고 하네.”
친구라는 단어에 전승철이 이상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미국 사람이니 수혁에게 친구라는 표현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런 전승철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짐 머레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혁은 내 생명의 은인이지.”
그제야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수혁이 해외에서 여러 차례 사람들을 구해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짐 머레이 역시 수혁이 구조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수혁은 대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갑자기.”
짐 머레이는 바쁜 사람이다.
단순히 보고 싶다는 이유로 이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짐 머레이가 미소를 지었다.
세월의 흔적이 눈가에 맺히며 깊은 골을 만들어냈다.
“잠시 조용히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그럼 이쪽으로…….”
무슨 긴히 할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한 곳을 원한다니 일단은 휴게실로 안내했다.
“이걸 한번 봐보게.”
짐 머레이는 휴게실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수혁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수혁이 물었지만, 짐 머레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읽어보라는 듯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수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들어 가장 앞면에 적혀 있는 글자를 읽었다.
-국제 구조 단체 설립안.
“……이게 뭡니까?”
다시 한 번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뉘앙스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