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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43화 (343/425)

레스큐 시스템 343화

만찬은 별다른 문제 없이 끝이 났다.

하긴, 대통령이 함께하고 있는 자리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겠냐만…….

이번에는 강현성도 수혁을 귀찮게 하지 못했다.

만찬이 끝난 뒤, 수혁은 최문식과 함께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똑같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였지만, 소방청장과 재경부 장관의 위치는 달랐다.

제아무리 강현성이라고 해도, 최문식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축하하네.”

최문식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수혁에게 축하를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수혁이 말을 더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통령 앞에서보다 최문식과 단둘이 있는 지금이 더 긴장되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갈 테지?”

“네, 그렇습니다. 은송 씨도 기다리고 있을 테고…….”

“그럼 데려다주겠네.”

최문식의 말에 수혁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동료들과 같이 타고 가면 됩니다!”

“오랜만에 딸아이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 같이 가지.”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장모와는 달리, 장인어른을 대하는 것은 어렵기 그지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최문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혁은 박상태에게로 향했다.

“상태 형.”

“이야기는 잘 끝났냐?”

“그게…….”

최문식과 함께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자, 박상태가 웃었다.

수혁이 장인어른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점수 좀 따고 그래, 인마.”

“노력해 볼게요.”

“그럼 홍관 씨한테는 내가 말해놓을 테니까 가봐.”

“집 가서 연락드릴게요.”

수혁은 일단 박상태에게만 인사하고는 재빨리 최문식에게로 돌아갔다.

“그럼 가지.”

수혁은 최문식을 따라 이동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최문식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이었다.

‘역시 장관쯤 되면 개인차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나 보구나.’

수혁이 차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행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최문식은 언제나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수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장인어른이 운전하는 차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는데, 최문식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겠네.”

결국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조수석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축하하네.”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없이 운전하고 있던 최문식이 문득 말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최문식이 말하는 것은 당연히 진급 이야기일 터였다.

“다음 주라고 했었나?”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로 강현성은 다음 주, 수혁에게 1계급 특진과 표창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다른 대원들은 진급하지 못했지만, 불만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성과 상여금을 약속했고.

“내가 자네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나?”

깜짝 놀랐다.

설마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줄이야.

하지만 최은송과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지라, 크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내가 자네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그 소방관이라는 직업 때문이네.”

이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언제나 위험 속에서 일을 해야 하는 소방관과 결혼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는 수혁이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당사자니까.’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꽤나 반대도 했었지. 자네 장모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도 반대했을 걸세.”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혼자 갇혀 있을 때도,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질 때도.

그리고 죽음이 닥쳐온 그 순간까지도.

소방관이 되어 사람들을 구하는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은송을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진다.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면 최은송의 마음도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

최은송이 흘렸던 눈물이 떠올랐다.

그뿐인가?

신일역 붕괴, 전통시장 화재, 그 외에 수혁이 다쳤던 수많은 현장.

그때마다 최은송은 수혁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지만, 그것 때문에 최은송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수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최문식이 슬쩍 눈동자를 돌려 쳐다봤다.

“만약 내가 지금이라도 소방관 일을 관두고 다른 일을 하라고 하면 받아들이겠나?”

최문식의 물음은 수혁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다고만 한다면, 내가 한번 알아봐 줄 수 있네.”

최문식은 이 나라의 장관이다.

그것도 한직이 아닌, 실세 중의 실세.

집안의 재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서, 수혁이 다른 일을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미뤄줄 능력이 되었다.

실제로 최문식은 수혁과 최은송이 결혼하기 전에도 같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거절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최문식은 차오르는 호기심을 속으로 감추며 수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세상은 수혁을 영웅이라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간 수혁이 해온 일을 생각해 보면, 영웅이라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생명을 구해주지는 않는다.

수혁 역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무사했지만, 소방관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목숨을 잃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특히나 수혁처럼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어 가는 사람은 더욱 더 그러했다.

최문식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처음엔 수혁이 잘못되면 자신의 딸은 어떻게 사나? 하는 걱정밖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혁도 걱정이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이제 자신의 가족이었으니까.

그래서 최문식은 진심으로 사위가 소방관이 아닌,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내가 과연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과거로 돌아왔을 당시, 퀘스트는 수혁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소방관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인지.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 수혁은 소방관의 길을 택했지만, 그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이전 생에서는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숨도 살렸고, 더 많은 동료와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원하시는데 그만두는 게 맞지 않을까?’

태어나 처음으로 가져본 가족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소방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수혁은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수혁의 눈이 떠졌다.

“죄송합니다.”

수혁의 대답에 최문식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 대답은?”

“저는 역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굳이 현장에서 발로 뛰지 않아도 할 수 있네.”

“그게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서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혁이 해온 일이라고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자신 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바로 구조대원이었다.

“그런가? 알겠네.”

최문식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처음부터 수혁을 강하게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여간 딸내미나 사위나…….”

최문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지만, 표정이 그리 나빠 보이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하겠네.”

신호 대기에 걸려 차를 멈춰 세운 최문식이, 수혁을 바라봤다.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자랑스럽긴 해.”

수혁의 눈이 커졌다.

설마 최문식의 입에서 자랑스럽다는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탓이다.

“아니, 존경스럽다는 쪽이 더 정확하겠군. 세상 어느 누가 자네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하겠나?”

“아, 아니, 그건…….”

“자네가 내 사위인 이상, 아마 나는 영원히 자네가 마음에 들진 않을 거네. 하지만 그게 자네를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야.”

청와대에서 느꼈다.

대통령이 수혁을 칭찬하자,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 정도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몇몇 사람들이 아닌, 전 세계에서 그 이름을 떨칠 정도라면.

이젠 자신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최문식이 수혁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응원하겠네.”

신호가 바뀌었다.

수혁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차는 다시 앞으로 출발했다.

그 덕에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친 수혁은 조용히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 * *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2주 뒤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니, 같이 일정을 조율해 보자고…….”

“이렇게 갑자기요?”

대통령은 난데없는 소식에 눈을 부릅떴다.

이건 외교적 결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한 국가의 정상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타국을 방문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미국의 정상과 회담이 성사된다면?’

주변국에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여러 논의도 할 수가 있었다.

“무슨 일로 이런 결정한 건지는 들었나요?”

“그것은 저희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든 이유는 세계 경제와 국제 정세를 논의하기 위해서라지만, 그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 알아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관련되어 있는 장관들과 실무진들도 모두 소집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대답하고는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에 대통령은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2주 뒤라…….’

너무도 빠듯한 일정이다.

2주 내내 준비에만 올인 해도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해야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내한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으로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재경부 장관 좀 호출해 주겠어요?”

일단 회의 전에 재경부 장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최 장관이 미국에 꽤나 굵직한 인맥이 있었다고 했으니, 한번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군.”

최문식과 수혁, 그리고 미국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알아내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집무실에 앉아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똑똑-

“최문식입니다.”

“들어오세요.”

생각보다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었던 듯싶었다.

최문식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대통령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최 장관, 전에 미국과 연이 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이곳까지 오며 대충의 상황은 들었기에 최문식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혹시 그에게 언질을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대통령 측근에 미국과의 연줄이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최문식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가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최문식은 망설이지 않고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짐? 나 최문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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