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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41화 (341/425)

레스큐 시스템 341화

“청와대다.”

“내가 살다 살다 여길 다 와보네.”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과 흥분이 서렸다.

자신들과 같은 일개 대원들이 청와대에 와볼 일이 언제 또 있을까?

평생을 살아도 청와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조금 흥분할 수밖에.

어느새 청와대 앞으로 도착한 차량이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안내자가 인솔하는 곳으로 따라가 다시 한 번 신분 검사를 받고는 이내 청와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생각했던 거랑은 조금 다르네.”

박상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좀 썰렁하긴 하죠?”

대한민국의 최 심장부인 만큼 뭔가 화려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부는 허전하다 싶을 정도로 심플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영화에서 봐도 그렇게 멋있진 않더라.”

박상태는 살짝 실망이라는 듯 구경을 멈추고는 수혁과 수다를 떠는 것으로 신경을 돌렸다.

“넌 전에도 와봤었지?”

“네. 독일 가기 직전에요.”

“무슨 재밌는 일 같은 거 없었냐?”

“그런 게 있었겠어요?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판에.”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픽- 웃었다.

“나라도 그렇긴 했겠다.”

자신은 수십 명의 동료와 함께 왔는데도 이렇게 긴장이 되는데, 그날 수혁은 혼자 왔다.

그것도 엄청나게 높으신 윗분들과 동석해 식사를 했고.

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오늘 우리를 왜 불렀을까?”

“글쎄요. 그냥 수고했다고 몇 마디 하시려고 부른 거 아닐까요.”

“에이. 겨우 그딴 걸 하려고 이 많은 사람을 불러? 그런 이유라면 책임자 몇 명만 불러도 충분할 텐데.”

그렇긴 했다.

대통령이 동네 친한 형도 아니고, 그냥 수고했다며 밥 한 끼 하자고 불렀을 리도 없었으니…….

“혹시 포상 같은 거 주려는 게 아닐까 싶은데.”

박상태의 말도 아예 신빙성이 없진 않았다.

실제로 대원들은 대부분 뭔가 포상을 받을 것이라 예상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초청한 만큼, 그 포상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이도 많았고.

“일단 제 생각도 그렇긴 해요.”

크던, 작던.

이번 초청은 분명 좋은 일로 부른 게 틀림없었다.

“뭐, 가봐야 알겠지만요.”

한 번 와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수혁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수행원이 대원들을 이끌고 간 곳은 커다란 강당 같은 장소였다.

대원들의 숫자에 딱 맞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이름까지 붙어 있었기에 각자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수혁은 박상태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팀장급 인원들의 자리인 것 같았다.

수혁은 또 맨 앞에 앉게 되었다며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그것을 내색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자,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슨 행사 같은 거 하려나 본데?”

당연히 만찬을 생각하고 있었던 수혁은, 지금 이 자리가 행사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뭐지?”

사전에 들은 내용이 전혀 없었기에, 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팀장 중 한 명이 준비하고 있던 남자를 조용히 불렀다.

“아, 뭐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그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혹시 오늘 뭘 하는 건지 알 수 있을까 싶어서요.”

쭈뼛거리며 질문하자, 남자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환영식 비슷한 겁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잔뜩 얼어붙어 있는 팀장의 모습에 남자는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아, 환영식.”

그러고 보니, 귀국했을 때 마중 나왔던 소방청장이 공식행사에 대한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해외 지원 파견을 다녀오면 으레 이런 행사를 하게 마련이었다.

언론에 홍보하기 딱 좋은 소재였으니 이런 식으로 행사를 하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곤 했던 것이다.

그것을 청와대에서 하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행사는 간단하게 끝나고, 이후에 대통령님과 함께 식사 자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줄 수 있었으면서, 왜 진즉에 해주지 않고 시간을 끌었는지.

“감사합니다.”

팀장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손을 내젓고는 다시 준비하러 돌아갔다.

“별거 아니었네.”

박상태가 조용히 투덜거렸다.

청와대에서 행사 같은 걸 준비하기에 뭔가 좋은 거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별것 아니었다.

장소만 청와대였을 뿐.

실망한 것은 박상태뿐만이 아니었다.

팀장과 남자의 대화를 들은 대원들은 모두 같은 기색이었다.

대놓고 표현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잔뜩 실망한 게 틀림없었다.

오직 수혁만이 뺨을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진급한다고 하면 좀 그런가?’

이번 일로 인한 진급도 아니었건만, 타이밍이 좀 그랬다.

괜한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수혁은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

“잠시 여기 집중해 주시겠습니까?”

그때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던 남자가 대원들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 *

“그러니까, 미국으로 안 오겠다 그랬다는 말이군.”

“그렇네.”

짐 머레이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인 로저스를 보며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대체 왜?”

케빈 로저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수여하는 명예시민증이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단 여덟 명밖에 받지 못한!

그 명예로운 자리를 주겠다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오지 않겠다는 건지…….

반면 짐 머레이는 수혁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귀찮다는 거겠지.’

속으로 허허- 웃었다.

명예도 명예였지만, 혜택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수혁은 그것을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있었다.

‘물론 부담도 될 테고.’

짐 머레이가 아는 수혁이라면, 지금쯤 옳다구나! 하고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설득해 보면 안 되겠나?”

케인 로저스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수혁이 거절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탓에,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다.

“아마 소용없을 걸세.”

모르긴 몰라도, 수혁은 미국 명예시민증보단 최은송과 함께하는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이걸 어찌한다?”

케빈 로저스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위쪽에 ‘아, 미국에 오기 싫어서 안 받겠답니다’라고 보고할 순 없는 일이었다.

미 대통령이 직접 결재를 하고, 승인한 사안이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무슨 좋은 생각 없나?”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를 리가 없었다.

해서 수혁을 잘 알고 있는 짐 머레이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글쎄.”

수혁은 한 번 한다면 하는 남자였다.

그런 수혁이 안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것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에 큰 관심이 없었고, 명예에도 욕심이 없다.

수혁을 미국으로 오게 할 미끼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을 압박해 강제적으로 오게 할 수도 없었다.

그 방법은 수혁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으니까.

그리하면 오히려 수혁이 미국에 반감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았다.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 위해 미국의 이미지를 구기다니.

말도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과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이번에 테러 현장에 지원을 나가 큰 활약을 했다는 것 말인가? 꽤 위험한 일도 있었다고 하던데.”

케인 로저스는 수혁의 동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뉴스에서 흘러나온 것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짐 머레이가 말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훈장 말일세.”

“아, 그렇지. 그가 이전에 독일의 훈장을 받았다는 보고를 들은 적 있네.”

그래서 더욱 애가 탔다.

독일의 훈장은 받아들였으면서 미국의 명예시민은 거절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건 미국의 국격에 타격을 받는 일이었다.

마치 독일이 미국보다 한 수 위인 것처럼 비춰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국가의 이미지라는 것이 그러했다.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고.

그러니 수혁에게 어떻게든 수여해 줘야만 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케인 로저스는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저쪽에서 달라고 사정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쪽에서 매달리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도 이상했다.

“그래서 말인데.”

짐 머레이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케인 로저스를 쳐다봤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

“그게 무슨 말인가?”

케인 로저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NSA의 국장 자리까지 오른 만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이내 짐 머레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설마 수여식을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하자는 뜻은 아니겠지?”

독일의 훈장이 독일 대사관에서 수혁에게 수여되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보고를 받은 케인 로저스는 코웃음을 쳤었다.

자국의 훈장을 타국에서 수여하다니?

그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비웃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자는 말인가?

“그럴 수 없네.”

케인 로저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그런 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생전에 미국의 명예시민이 된 사람은 여덟 명 중 단 두 명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흠, 그런가?”

짐 머레이는 내려놓았던 커피잔을 다시 들어 천천히 입가로 가져다댔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네.”

짐 머레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수혁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으니,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로서도 딱히 방도가 없었다.

미국을 위해 수혁과 척을 지고 싶지도 않았고.

미국이 자신의 조국이긴 했지만, 수혁과 미국 중 하나를 택하라면 짐 머레이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수혁은 그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었으며, 내심 존경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자신의 반도 살아오지 않았지만, 수혁은 존경받아 마땅했다.

지금과 같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았다.

케인 로저스는 입을 다물었다.

짐 머레이가 저런 태도를 취한 이상, 정말로 다른 방법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그 방법밖엔 없나?”

“내 아둔한 머리로는 그것이 최선일세. 자네도 따로 방법을 찾아보게나. 혹시 아는가? 다른 방법이 생길지.”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으리란 건 잘 알고 있었다.

수혁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며 미국으로 불러들일 방법 따윈 아마 없을 것이다.

짐 머레이는 조금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잘 생각해 보게. 그럼 난 먼저 일어나지.”

짐 머레이는 엄청난 자산가답게 케인 로저스의 커피값까지 계산해 주고는 카페를 빠져나갔다.

케인 로저스는 혼자 남아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

“어쩔 수 없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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