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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40화 (340/425)

레스큐 시스템 340화

혼이 났다.

최은송과 감격스러운 재회를 꿈꿨지만, 돌아온 것은 폭풍 같은 잔소리였다.

“제가 몸조심하라고 했죠?”

“…그래서 안 다치고 잘 돌아왔잖아요.”

수혁은 소심하게 반항해 보았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최은송의 걱정이 뒤섞인 잔소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미안해요.”

최은송을 향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다치지도 않았지만, 최은송에게 걱정을 끼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아래에 갇혀 있는 동안 최은송이 지금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을지 걱정하지 않았던가.

수혁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수혁을 향해 화를 쏟아내던 최은송이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지자 수혁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혁을 향해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던 최은송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 은송 씨.”

당황한 수혁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걱정했던 것만큼 힘들어하진 않은 것 같아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최은송은 수혁이 매몰되어 있는 동안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자신의 남편이 건물 밑에 깔렸는데,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아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최은송은 수혁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것은 똑같았다.

제발 무사하길.

다쳐도 좋으니, 제발 살아서 돌아오길.

수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도 없이 빌어왔던 기도였다.

그러니 제발 이번에도 수혁이 평소처럼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길 빌었다.

하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줬음인가?

수혁은 며칠 지나지 않아 멀쩡한 모습으로 구조가 되었다.

병원에도 가지 않고 멀쩡하게 곧바로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는 뉴스도 봤다.

그것을 본 최은송은 안도보다는 원망이 앞섰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만큼의 반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챙겼으면 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최은송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자신의 몸을 던져 가며 사람들을 구했다.

그런 수혁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저는 다신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8개월간 입원해 있던 수혁.

그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켜만 봐왔던 끔찍한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을 것이라고 믿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수혁은 가만히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최은송을 안았다.

“미안해요.”

수혁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걱정을 하게 만들 것이기에, 수혁은 최은송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으로 오라고요?”

수혁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휴가 기간이라고 들었는데. 가능하지 않은가?]

짐 머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수혁은 미국에 갈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의 휴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수혁은 최대한 최은송의 곁에 있을 생각이었다.

“죄송해요. 미국까지 가기엔 좀 그러네요.”

[미국의 명예시민증을 받기 위해서네.]

짐 머레이는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다.

비행기부터 숙소, 그리고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

짐 머레이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에서도 책임을 져주기로 했다.

이전 신혼여행 때보다도 훨씬 좋은 여행이 될 것이라며 설득했다.

하지만 수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요. 지금은 집에서 조금 쉬고 싶어서.”

[그러면 명예시민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네.]

“어쩔 수 없죠.”

짐 머레이는 마음을 돌려보려 이야기를 꺼냈지만, 수혁은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마음만 받을게요, 마음만.”

미국 명예시민이라는 것은 수혁이 별로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케인 로저스가 준다기에 그냥 받아들인 것뿐이지, 딱히 필요도 없었다.

명예?

그깟 시민증을 받지 않아도 현재 수혁에겐 차고 넘쳤다.

미국에서 엄청난 혜택을 약속했지만, 평생 미국을 갈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미국 명예시민이라는 것은 수혁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음…….]

하지만 짐 머레이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일단 알겠네. 이쪽에서 방도를 찾아보도록 하지.]

“너무 신경써 주실 필요 없어요. 저는 정말로 안 받아도 괜찮으니까요.”

[내가 안 괜찮네. 어쨌든 다시 연락 주도록 하지.]

짐 머레이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설마 수혁이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누구예요?”

수혁의 통화를 들었는지 최은송이 물었다.

“아, 짐이었어요.”

“짐이요?”

최은송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는지 별로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하긴, 수혁이 영어로 통화할 만한 사람이 짐 머레이를 제외하면 딱히 없기도 했다.

“미국으로 오라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어요?”

최은송이 불안한 눈동자로 물었다.

설마 또 사람들을 구하러 그 먼 나라까지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수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심각한 일은 아니고요. 명예시민증 수여식을 미국에서 할 예정이니 한번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아니, 그걸 안 간다고 했어요?”

최은송이 깜짝 놀라며 묻자, 수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귀찮잖아요.”

짐 머레이에게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수혁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최은송의 옆에서 그녀를 안정시켜 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수혁 역시 휴식이 필요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기에, 그것을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 또 미국을 가라니…….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 명예시민인데, 가는 게 낫지 않아요?”

최은송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만큼 미국의 명예시민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또 거기 갔다가 무슨 일 터지면 어떡해요. 내 별명 알죠?”

수혁의 말에 최은송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가는 게 좋겠어요. 수혁 씨를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수혁이 폭소했다.

“그렇죠. 미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 가는 게 낫지.”

겸사겸사 받기 부담스러웠던 명예시민이라는 것도 거절하고 말이다.

하지만 수혁은 미국을 잘 모르고 있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은 어떻게든 이루고야 마는 국가였다.

설령 그것이 선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3일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수혁은 단 한 발자국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최은송 역시 휴가를 내고 수혁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끔 한 번씩 찾아오던 불안 증세도, 최은송과 함께 있으니 괜찮았다.

그래서 더욱 최은송과 떨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몇 번의 연락들이 왔다.

박상태와 신일서 동료들에게도 왔었고, 전승철이나 지양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서도 많은 연락이 왔었다.

대부분은 안부 전화였지만, 한 곳에서만큼은 아니었다.

“청와대를 또 가야 되다니.”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가는 게 아니잖아요.”

최은송이 웃으며 말하자, 수혁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긴 하네요.”

이번에 청와대로 초청된 사람들은 독일에 지원을 간 구조팀 전원이었다.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직접 초대한 것이었다.

수혁으로선 두 번째.

그것도 다녀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가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 청와대를 갔을 때, 나쁜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대통령이 표창과 1계급 특진을 약속했으니까.

강현성을 만나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을 들었다는 것만 빼면, 오히려 괜찮은 경험이었다.

이번에도 좋은 일로 초대를 받은 것이었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대통령과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최은송의 말대로 혼자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언제 오래요?”

“휴가 마지막 날이요. 한 번에 모여서 갈 것 같던데.”

“부럽네요. 나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최은송의 아버지는 재경부 장관이다.

장관들 사이에서도 실세 중 실세였으며, 가진 권력이 절대 작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둔 최은송도 청와대는 먼발치에서밖에 보지 못했었는데, 수혁은 벌써 두 번이나 초청을 받았다.

최은송은 짐짓 질투가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수혁을 흘겨봤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땐 같이 가요.”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최은송이 배시시- 웃으며 하던 저녁 준비를 마저 시작했다.

“아, 맞다.”

야채를 썰던 최은송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칼을 멈추고 수혁을 쳐다봤다.

“우리 내일 오랜만에 어디 놀러 갈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수혁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만 있는 것도 좋았지만, 이 기회에 최은송과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았다.

“괜찮네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음, 그건 딱히 생각 안 해봤는데.”

해외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휴가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밥 먹고 같이 한번 찾아봐요.”

오랜만의 여유.

수혁은 그 안락함 속에서 엉켜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대로 1년이고 2년이고 계속 지내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지금 수혁이 보고 있는 뉴스에서도 전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나오고 있었다.

수혁이라면 요구조자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을 현장들.

그것들을 보며 수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 이내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소방관 정복을 차려입은 수혁은 최은송의 입에 가벼운 키스를 하곤 집을 나섰다.

오늘은 청와대에 초청받은 날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차를 타고 미리 연락을 받았던 약속장소로 가자,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시킨 수혁이 다가가자,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역시나 박상태였다.

“왔냐?”

한결같은 인사에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웃어? 지금 나 보고 웃은 거냐?”

깔끔한 정복을 차려입고 얼굴을 찌푸린 박상태가 성큼성큼 다가와 수혁의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아! 머리 망가져요, 머리!”

이른 아침부터 최은송이 신경써서 만져 준 머리였다.

박상태의 거친 손길에 헝클어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기에, 수혁은 힘을 주어 저지했다.

“이, 이놈이!”

박상태가 아무리 힘이 좋다고는 하지만 수혁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애를 써봐도, 수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응.”

결국 박상태는 힘을 빼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힘만 좋아서는.”

수혁을 향해 툴툴거린 박상태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다들 모여 있으니까 가자. 네가 제일 늦었어.”

박상태의 말대로 약속 장소에는 모든 사람이 집합해 있었다.

다들 청와대를 간다는 사실에 긴장했는지 약속 시간보다 훨씬 빨리 나온 것 같았다.

대원들은 잔뜩 들뜬 기색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모든 인원의 신원이 확인되자, 청와대로의 이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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