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339화 (339/425)

레스큐 시스템 339화

“이게 얼마 만에 맡아보는 한국 공기냐.”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박상태는 독일에서의 시간이 꽤나 힘들었는지, 한국 땅을 밟자마자 잔뜩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러게요. 진짜 오랜만인 것 같네.”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생처음으로 타본 퍼스트 클래스에 놀라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대던 박상태 때문에 잔뜩 지치긴 했지만, 이제 곧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모든 수속을 끝내고 짐까지 찾은 뒤에 모든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구조팀은 이홍관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 젠장.’

수혁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김수혁 씨! 이쪽 한번 봐주세요!”

“독일에서 활약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일본과의 마찰이 있었다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말씀만 해주세요!”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할 정도로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였고, 쏟아지는 질문 세례는 방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을 바닥으로 끄집어내렸다.

다른 이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해외로 지원을 나갔다 오면, 기자들이 따라붙는 건 으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달랐다.

평소였다면 많아 봐야 열 명 내외였을 것이다.

그마저도 사진 몇 장 찍고, 인터뷰는 팀장급 인사 한두 명 정도가 짧게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저게 대체 몇 명이냐?’

솔직히 박상태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는 했다.

미국에서의 일로 명예시민과 엄청난 규모의 소방 장비 지원, 그리고 영웅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수혁이 있었으니까.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을 시간에 독일로 지원을 갔고, 심지어 독일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했다.

언론에서 가만히 놔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많은 수의 기자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그것이 박상태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무슨 할리우드 배우가 내한이라도 한 것 같네.’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이 모여 있으니 공항에 있던 사람들도 무슨 일 있나 싶어 이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덕분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 사람들 그거지? 이번에 독일에 갔다는?”

“그런 것 같은데? 어? 김수혁이다.”

“와, 진짜 김수혁이야!”

현재의 수혁은 일반 시민들도 한 번에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예전에 TV에 출연했을 때도 그런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수혁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수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이홍관을 쳐다봤다.

이홍관은 박상태와는 달리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잠시만요.”

이홍관은 허둥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기자들을 향해 대원들이 피곤한 상태니 회견이나 인터뷰는 나중에 하자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기자들은 그런 사정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홍관의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오직 수혁과 대원들에게 질문만 해댔다.

‘기레기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지.’

독일의 기자들과 비교해 보자면, 정말이지 낯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독일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자들이 극성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의 기자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최소한 그들은 선이라는 것을 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냥 갈까?’

이대로 그냥 기자들을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수혁의 힘을 생각해 보면 그건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곧장 수혁에 대한 안 좋은 기사들이 인터넷을 뒤덮겠지만, 수혁은 그딴 것에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다른 대원들이 힘들어질 것 같자,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그냥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상태 형, 제가 먼저 나갈 테니까 뒤따라서 오라고 전달…….”

박상태에게 말을 하던 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응? 뭐라고?”

박상태는 갑자기 수혁이 말을 하다 끊자,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수혁은 이미 박상태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수혁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자제해 주세요.”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공항 보안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길을 막고 있는 기자들을 한쪽으로 밀며 길을 뚫었다.

말은 정중했지만, 저항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나중에 재미없어!”

기자들이 반항해 봤지만, 보안 요원들의 힘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기자들이 하나둘 입을 닫았다.

주변이 조금 조용해지자, 만들어진 길 사이로 몇 명의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조치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수혁과 대원들을 향해 사과하는 사람.

소방청장 강현성이었다.

“여러분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현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구조팀의 복귀를 반겼다.

청장은 대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피곤하겠다며 집으로 복귀하도록 명령했다.

그러곤 청장 특별 지시로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려주었다.

그간 고생했으니 집에서 푹 쉬라는 뜻이었다.

공식적인 행사는 휴가가 끝난 일주일 뒤, 소방청이 있는 세종시에서 열기로 했다.

그렇게 청장은 자리를 떠났다.

“청장이라니.”

수혁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된 박상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말단 현장 구조대원들이 소방청장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일은 그리 흔한 기회가 아니었다.

그러니 박상태의 기분은 십분 이해가 되긴 했지만…….

수혁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강현성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만남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청와대 만찬.

그곳에서 강현성은 수혁에게 광주에 있는 한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수혁은 거절했다.

계급으로 찍어 누르며 강제로 명령을 했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겠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하지만 강현성의 기분이 상한 것은 사실이었고, 지양호나 신재식에게서 그는 속이 좁은 인사이니 조심하라는 충고도 받았다.

그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후 곧장 독일로 향하는 바람에 까마득히 잊고 지냈었는데.

‘돌아오자마자 마주치네.’

수혁은 찜찜했다.

“내가 해외 지원을 네 번인가 다녀왔거든? 그런데 청장이 직접 마중을 나오는 건 처음이다.”

“보통 이런 덴 안 나와요?”

“그럴 짬이 아니긴 하지. 그런데 이번 독일에서 우리가 잘하긴 잘했나 보다. 청장이 직접 마중을 나올 정도면.”

박상태는 희희낙락했다.

물론 청장이 마중을 나왔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가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청장 얼굴 한 번 봤다고 가문의 영광이라며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박상태가 들뜬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청장이 직접 나올 정도면 포상도 꽤 짭짤하겠지?”

“뭐, 표창 정도는 받지 않을까요? 성과 상여금도 조금 더 나올 테고.”

“어쩌면 진급할 수도…….”

이것이었다.

소방관은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가장 큰 포상은 진급이다.

표창도 좋긴 했지만, 진급과 성과 상여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청장이 이 정도로 신경써 주는 것을 보면, 진급도 꿈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박상태의 이야기를 듣자, 수혁은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청와대 만찬에서 대통령이 수혁에게 했던 이야기들.

‘대통령 표창. 그리고 1계급 특진.’

이걸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사안이었다.

독일의 테러 소식에 너무도 놀라 이제야 떠올랐다.

“상태 형.”

수혁은 옆자리에서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박상태를 불렀다.

“아, 왜.”

1계급 특진에 대한 상상을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박상태가 귀찮다는 듯 돌아봤다.

“저 진급해요.”

“뭐?”

박상태가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청장이 마중 나오니까 너도 진급할 거 같냐? 인마,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야.”

박상태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역시 이렇게 상상만 할 뿐, 정말로 진급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급이 그렇게 쉽게 가능했다면, 수혁은 벌써 몇 번이나 했을 것이다.

수혁이 그간 보여준 활약은 그만큼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정작 수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밖에 진급하지 못했다.

공무원의 진급은 그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수혁은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박상태에게는 이야기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너 진급시켜준다고 했다고?”

“표창도요.”

박상태는 입을 다물었다.

수혁은 이미 한차례 특진을 경험했다.

평범한 공무원이라면 평생을 일해도 특진을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수혁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진급이라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동안 해온 걸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한데…….’

박상태의 계급은 소방위.

만약 수혁이 이번에 특진을 한다면 바로 아래 계급인 소방장이 된다.

‘3년차에 소방장이라니.’

박상태의 경력은 10년이 넘는다.

너무도 차이가 나는 진급 속도에 박상태는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자요?”

“몰라, 새끼야. 말 걸지 마. 짜증나니까.”

박상태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뭐야, 지금 질투해요?”

수혁이 놀리듯 말하자, 박상태의 입에서 으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급한다고 이제 나랑 맞먹으시겠다? 내가 네 사수야, 인마. 한 번 사수는 영원한 사수. 몰라?”

“공무원은 계급이 깡패다. 이런 말도 있죠.”

수혁이 웃으면서 말하자, 박상태는 결국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계급이 깡패지. 그리고 너 진급해도 아직 내가 더 높거든?”

그렇긴 했다.

수혁과 박상태 사이에는 아직 소방장과 소방위라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했다.

“나에게도 선이라는 게 있다.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선을 밟고 그러면 마! 그땐 내가 깡패가 되는 거야.”

박상태와 투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신일역 근방에 도착했다.

붕괴가 되었던 신일역은 복구 작업을 모두 끝내고, 이전보다 훨씬 깔끔해진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형님 집에 들렀다 가도 된다니까요.”

“괜찮아, 인마. 괜히 택시비만 더 나와. 너도 얼른 제수씨 봐야지. 난 여기서 지하철 타고 가면 되니까, 그냥 가.”

박상태는 끝끝내 수혁의 말을 거부하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휴가 끝나기 전에 한번 보자고.”

“그렇게 해요.”

박상태가 역으로 들어가자, 수혁 역시 차를 돌렸다.

잠시 후.

수혁이 그토록 오고 싶었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집의 문 앞에는 최은송이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었다.

“다녀왔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