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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38화 (338/425)

레스큐 시스템 338화

수혁의 음성은 차가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만약 그날 율리안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수혁이 대신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수혁이 주먹을 날렸더라면 이와타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을 터였다.

아주 얼굴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을 테니까.

그만큼 수혁은 화가 났었다.

그저 율리안이 한발 빨랐기에 가만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와타에 대한 화가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소방관이 돼서 사람을 구하러 왔으면 사람을 구해야지, 다른 것에 정신 팔려서 헛짓거리나 하고 있으니 이딴 푸대접을 받는 겁니다.”

수혁은 이와타를 향해 독설을 내뱉으면서도, 그가 제발 도발에 걸려주길 바랐다.

그걸 빌미로 저 같잖은 가면을 박살 내버리고 싶었다.

“…서로 간에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군요.”

아쉽게도 이와타는 걸려들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표정을 풀곤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실수를 좀 하긴 했습니다. 독일 측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받긴 했지만,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으니까요.”

그러곤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한 행동은 실수라 칭하며 잘못을 감추었고, 은근슬쩍 수혁을 깎아내린 것이다.

이와타의 말에 담겨 있는 속뜻을 눈치챈 수혁이 픽- 웃었다.

‘하여간 저놈들은…….’

답이 없었다.

본래 저런 민족성을 띠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을 통해 학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수혁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실수 때문에 한 사람이 죽을 뻔한 건 알고 있죠?”

수혁의 말에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이와타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소방관은 아니다. 소방관의 실수 한 번으로 인해, 소중한 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격언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이야기에 나온 대로, 소방관 역시 사람이기에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딱 들어맞았다.

실제로 이와타가 ‘실수’라고 주장하는 행동 하나 때문에, 요구조자 한 명이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 말이다.

“못 들어보셨나 보군요?”

이와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수혁이 웃었다.

“일본이 소방관에 대한 대우는 좋을지 몰라도, 교육은 별로인 것 같네요.”

그 말을 끝으로 수혁은 몸을 돌렸다.

더는 도발해 봐야, 이와타가 걸려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그냥 이대로 속을 뒤집어놓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가죠. 별로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인데.”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박상태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

“괜찮겠냐?”

그런 수혁에게 박상태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뭐가요?”

“저놈들이 나중에 시비라도 걸면 어쩌려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방금 수혁과 이와타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그들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이와타의 부하인 일본 구조대원들도 있었고, 몇몇 기자들도 눈을 빛내며 엿들었다.

수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망설임 없이 이와타와 일본을 비난한 것이었다.

“하라고 하죠, 뭐.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수혁은 배 째라는 듯한 태도였다.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래도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수혁은 이와타가 문제 삼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수혁의 태도를 문제 삼기 위해선, 그 이유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한 결정과 행동에 대해서도 알려질 것이다.

이미 율리안과의 일로 인해 어느 정도 보도가 된 상태에서, 수혁까지 엮이게 되면 일본의 평판은 바닥까지 떨어질 게 뻔했다.

일본이 원하는 것은 명성과 명예였지, 비난과 조소가 아니었다.

그러니 최대한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려고 할 것이다.

물론 수혁은 여기까지 생각해 둔 것은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일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다만.”

박상태는 영 찜찜한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이와타는 아직 그 자리에 서서 수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깔에서 레이저도 나오겠네.”

그만큼 살벌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의 부하들과 만찬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더는 이곳에 있어 봐야 좋은 꼴을 보지 못하리란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천하 태평한 수혁의 옆에서 박상태만이 걱정하고 있었다.

만찬은 꽤 즐거웠다.

율리안을 비롯해 여러 소방관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면을 텄고, 그중 몇몇과는 꽤나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누었다.

수혁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대부분 박상태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실제 나이로 따지자면 그들과 거의 비슷했으니, 오히려 이쪽이 더 편했다.

가끔 부총리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다가왔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수혁을 이용해 보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만을 건넸다.

숫자로 보자면 수혁이 직접 구조한 요구조자는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보면, 그 공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다.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감사해했다.

수혁이 살짝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기까지 했으니…….

그들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만찬은 술판까지 이어지며, 결국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신이 나서 떠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풀기에는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술을 잘 하지 않는 수혁조차 맥주를 들이붓다시피 마셔댈 정도였으니까.

다들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독일 쪽에서 준비해 준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꽤 많은 술을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않은 수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구나.’

드디어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독일에 온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건만, 수혁에겐 몇 년이나 흐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바빴고, 여러 사건이 터졌다.

아직 독일에는 몇 차례의 시련이 더 남아 있었지만,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전 생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앞으로 일어날 테러들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을 테니까.

‘아, 은송 씨 보고 싶네.’

집에 가면 분명 최은송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들을 것이다.

수혁이 독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국에도 소식이 전해졌다고 했다.

그것도 꽤나 크게 말이다.

미국에서 수혁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한다고 발표를 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오죽하면 수혁이 매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한국과 미국에서는 동시에 추가 지원팀을 보내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짐 머레이가 직접 전해준 얘기였으니, 단순한 루머 따위는 아닐 것이다.

다행히 수혁이 며칠 만에 멀쩡한 모습으로 구조가 되었기에 쏙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수혁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냈다.

아쉬운 것은,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

두 번째 삶이었지만,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무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후회스럽고, 자책감에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소방관은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실 그 말은 수혁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죽은 희생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랬더라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희생자가 나오는 현장에선 항상 드는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버티기가 힘들었다.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들만 떠올랐고, 마음은 끝없이 무거워졌다.

이대로 가만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들을 숨을 통해 뱉어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몇 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반복하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이것도 오래가겠네.’

아직까지 그날의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언젠간 극복할 수 있을 터.

수혁은 최대한 마음을 편히 먹으며 다시 누웠다.

‘이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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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성공!

*당신은 퀘스트를 양호하게 수행했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필요 경험치 충족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 업!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레벨 36이 되었습니다.

*스킬 [응급 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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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걸 타고 간다고?”

박상태가 눈앞에 있는 비행기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독일의 한 거대 항공사에서 한국 구조팀을 위해 비행기 한 대를 통째로 내주었다.

기종도 무려 A380.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는 별명을 지닌 거대 항공기였다.

이런 대우를 받은 곳은 한국밖에 없었다.

심지어 옆 나라인 일본은 비행기 티켓팅에도 편의를 봐주지 않아 각각 다른 항공편으로 이동한다니…….

덕분에 독일은 구설수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같은 도움을 주러 왔는데, 한 국가에게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성의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독일은 그딴 것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허허.”

박상태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런 대우를 받는 것도 처음이고, 이런 커다란 비행기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박상태는 팀장급 인원이라 퍼스트 클래스에 자리를 배정받은 것이다.

평생 자신은 타볼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퍼스트 클래스를 여기서 탄다는 생각에,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수혁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상태처럼 굴지는 않았다.

수혁에겐 퍼스트 클래스에 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도긴개긴이었지만, 수혁은 나름대로 박상태와는 다르다며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야. 이게 진짜 비행기 맞냐?”

비행기에 올라탄 박상태의 눈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몇 번 타본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 탄 것과 지금 눈앞에 있는 게 과연 같은 비행기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쪽팔리게 하지 말고 그냥 앉아요.”

박상태와 마찬가지로 퍼스트 클래스에 좌석을 배정받은 수혁이 나지막이 핀잔을 주고는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평소였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테지만, 신이 난 박상태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팀장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비즈니스석도 탈 생각을 하지 못하는 말단 공무원들이었다.

그런데 퍼스트 클래스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대접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그들이 놀라든 말든, 정해진 시간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을 향해서…….

“야! 의자가 뒤로 넘어간다!”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박상태의 모습을 보며, 수혁은 아무 말 없이 헤드폰을 썼다.

퍼스트 클래스에 놓여 있는 헤드폰답게 노이즈 캔슬링이 아주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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