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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36화 (336/425)

레스큐 시스템 336화

수혁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싶었다.

수혁은 이런 소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물론 기자들 때문은 아니었다.

수혁은 언론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은 것은 일반 시민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수혁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구조된 요구조자의 가족과 친구들인 것 같아 보였다.

감사 인사를 건네기 위해 몰려든 이들을 위해서라도 인상을 쓸 수는 없었다.

‘저분들은 그렇다 치고, 기자들은 좀 그런데.’

수십 명의 기자는 수혁을 쉴 새 없이 찍어대며 질문을 던져댔다.

대부분은 영어로 하는 질문이었지만, 간혹 한국말이 들려왔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보면, 역시나 그들은 한국의 기자들이었다.

“미국에 이어 독일에서도 영웅이 된 소감이 어떠십니까!”

“한국의 위상을 높여준 수혁 씨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실 말씀 없습니까?”

질문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수혁은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호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호텔 직원들이 만들어놓은 라인 안쪽으로, 누군가 뛰어들어 오며 수혁의 앞길을 막았다.

깜짝 놀란 직원들이 그 누군가를 빠르게 붙잡았다.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 있다고요!”

놀랍게도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수혁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듯,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수혁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잠시만요.”

수혁이 직원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별것 아니다.

수혁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뭐냐?”

수혁은 일단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기는 했는데, 막상 앞에 서니 말이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수혁은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러자 소란스러웠던 주변이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극성이었던 기자들 역시 분위기를 읽었는지, 사진만 찍을 뿐 더 이상의 질문은 자제했다.

그렇게 주변이 조용해지자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알렌이에요.”

“그래, 알렌.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수혁이 담담하게 묻자,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자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를 숙이며 기어가는 음성으로 말을 했다.

수혁은 그 말을 듣고는, 알렌이 왜 자신 앞에 나섰는지 알 수가 있었다.

“내가 구한 게 누구지?”

수혁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묻자, 알렌의 고개가 번쩍- 들어올려졌다.

그러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 이름은 샐롯이에요. 그날 엄마는 저를 보러 베를린으로 오고 있었는데, 아! 저희 부모님은 이혼하셨거든요. 그래서 오랜만에 저를 보러 오겠…….”

신나게 대답하던 알렌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수혁이 손을 들어 가만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래. 엄마는 좀 어떠시고?”

“의, 의사 선생님 말로는 이제 괜찮을 거래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 아저씨가 구해주셔서 괜찮을 거라고…….”

거기까지 말을 한 알렌이 수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그것에 담긴 진심은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고맙습니다! 우리 엄마를 구해주셔서!”

수혁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전 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수많은 사람을 구조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이런 감정을 느껴왔다.

보람차면서도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느낌.

‘소방관이 되길 잘했다.’

이전 생과는 달리, 이번 생에서는 반강제적으로 소방관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만난 퀘스트는 수혁에게 선택을 강요했으니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수혁은 당연히 소방관의 길을 선택했고…….

‘후회는 하지 않아.’

알렌과 같은 아이를 생각해 보면, 다시 소방관이 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수혁은 알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더 고맙다.”

수혁 역시 진심을 담아 알렌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제 엄마 곁으로 돌아가. 그리고 다 나으실 때까지 계속 간호해 드리고.”

“그럴게요.”

알렌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러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웃으며 알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저씬 간다. 조심히 돌아가.”

알렌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준 수혁은 조용해진 틈을 타 호텔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저도 교관님 같은 구조대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수혁의 옆에서 나란히 걷던 슈미츠가,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물었다.

“무슨 소리냐?”

“저도 교관님처럼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구조대원이 되고 싶습니다.”

수혁은 슈미츠의 말에 픽- 하고 웃었다.

“왜 존경을 받고 싶은데?”

“글쎄요…….”

수혁이 물었지만, 슈미츠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을 원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슈미츠 역시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수혁은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사실 남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 수혁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칭찬해 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슈미츠를 향해 엄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소방관을 하는 이유는 존경받기 위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이번에도 슈미츠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수혁처럼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소방관이 되고 싶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소방관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뭐지?”

슈미츠는 자신이 소방관이 된 이유를 떠올려 봤다.

어릴 적 보았던 슈퍼히어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소방관의 길을 택한 것이었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슈미츠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의 인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사는 이들이 많았다.

수혁도 많이 보지 않았던가.

현직 소방관, 전직 소방관, 고위 소방관.

누구 할 것 없이 그런 기본적인 것을 잊고 사는 사람들을 말이다.

“저도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날이 올까요?”

“물론. 지금처럼만 하면 돼.”

슈미츠는 잘하고 있었다.

능력도 뛰어났고, 사명감도 있었다.

한 가지 흠이었던 성격도 많이 바뀌었으니, 이대로만 계속한다면 독일에서 율리안과 같은 소방관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수혁은 슈미츠에게 한번 웃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둘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수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하여간 요란스럽다니까.”

가장 먼저 수혁에게 말을 건넨 사람은 당연하게도 박상태였다.

그는 수혁과 슈미츠의 대화를 모두 들었는지,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심 그 표정 안에는 뿌듯한 감정이 엿보였다.

“그러게요. 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모여 있는 거예요?”

기자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든 정보를 물어올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다른 일반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수혁의 퇴원 날짜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람들, 얘기 듣고 온 거 아니야.”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어디서 얘기 듣고 온 게 아니라, 그냥 여기에 계속 있었다. 며칠 전부터.”

수혁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알렌인지 알랭인지 하는 꼬맹이가 하는 얘기 들었잖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다들 그래서 온 거지, 뭐.”

한숨이 나왔다.

그들이 한심하다거나, 상황이 답답해서 나온 한숨은 당연히 아니었다.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기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깊은 숨이었다.

“이제 집에들 가라고 해요. 나 이제부터 방에서 쉴 건데, 계속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안 그래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수혁의 말에 대답한 건 율리안이었다.

한창 바쁠 시간일 텐데도, 율리안은 퇴원한 수혁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괜찮아 보이는군.”

“계속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진짜 멀쩡하다고.”

“그래서 하는 말이다.”

율리안은 수혁의 말을 믿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로 멀쩡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이 조금 불안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히 정상이었다.

그것이 놀라웠다.

“아무튼 이렇게 마중 나와 줘서 고맙습니다. 아, 슈미츠 보내준 것도 감사하고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율리안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슈미츠에게 눈짓을 했다.

피곤할 테니 이제 좀 들어가서 쉬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슈미츠가 수혁에게 인사를 했다.

조금 더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했다.

“저는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슈미츠는 곧장 호텔 밖으로 나갔다.

“어지간히 피곤한가 보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교대하고 쉴 시간에 너 모시러 간다고 움직였으니까.”

율리안은 다른 사람을 보내려 했지만, 본인이 바득바득 우겼다고 한다.

저렇게 힘들어할 거라면 그냥 쉬는 게 더 편했을 텐데.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한국 구조팀의 대원들이 멀뚱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향해 인사를 하자, 그들 역시 허둥거리며 수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다가와 퇴원을 축하해 주었다.

호텔 안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나왔다.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인천 공항에서부터 수혁의 신경을 건드렸던 백진호와 베를린으로 오는 것을 반대했던 팀장, 그리고 쉬고 있던 몇몇뿐이었다.

덕분에 호텔 로비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자자, 이제 다들 들어가요. 이놈도 좀 쉬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 서로 인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듯하자, 박상태는 그들을 모두 올려 보냈다.

계속 세워뒀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호텔 측에 피해를 주는 것 같기도 했고.

물론 이곳에 묵고 있는 손님들 대부분은 한국 구조팀이었지만…….

어쨌든 모두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자, 남은 사람은 수혁과 박상태, 그리고 율리안뿐이었다.

“너도 이제 올라가서 쉬어야지?”

“아, 그전에요.”

수혁은 방으로 자신을 안내하려는 박상태를 멈춰 세웠다.

“뭐 필요한 거 있냐?”

“혹시 밥 좀 먹을 수 있어요?”

그간 병원식을 먹는 게 너무 힘들었는지, 수혁은 먹을 것부터 찾았다.

박상태와 율리안이 피식- 웃었다.

“룸서비스로 먹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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