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35화
수색 종료.
부상자와 사망자의 수를 합치면 거의 5백 명에 이르는 거대한 재난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된 것이었다.
물론 아직 실종자의 수가 많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왜 벌써 수색을 종료하냐며 정부와 소방당국에 손가락질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충분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2주라는 시간은 기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풍화시킬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고생 많았다.”
“뭘요.”
박상태가 수혁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왔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기분이 들떠 있을 만한데도, 박상태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긴, 피해가 너무 컸지.’
비록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긴 했지만,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졌다.
소방관으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로서, 절대 좋은 기분은 가질 수가 없었다.
“일정은 나왔어요?”
수색이 끝났으니 이제 슬슬 복귀할 시점이었다.
“3일 후로 결정됐다.”
“그래요? 잘됐네요.”
율리안의 말에 따르면 한국 구조팀이 돌아가는 데 사용할 비행기는 독일 측에서 마련해 주기로 했단다.
본래는 한국 대사관에서 그 일을 맡아 진행하려고 했는데, 독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일단 내일까진 호텔에서 푹 쉬라던데? 그리고 모레는 행사 하나 참석해 달라고 하더라.”
“아, 그거구나.”
수혁은 어제 율리안이 찾아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별수 있냐? 꼭 참가해 달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긴 하겠네요.”
독일은 한국 구조팀에게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대접해 주고 있었다.
수혁을 제외한 모두를 베를린에서도 손에 꼽히는 호텔에 묵게 해주었고, 그곳에 있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급하게 구조하러 온 사람들이기에 수중에 돈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었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선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말이다.
“너만 병원에 있어서 어떡하냐?”
“그러게요. 좀이 쑤셔서 미치겠어요.”
수혁의 병실도 VIP나 사용할 법한 고급스러운 병실이었다.
병원 침상도 일반 병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했고, 커다란 TV와 소파, 개인 화장실까지 딸려 있었다.
얼핏 본다면 병원이 아니라 호텔 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병원은 병원.
수혁은 이곳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TV를 봐도 온통 독일어로 나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식사 역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아무리 수혁이 괜찮다지만, 일단은 환자로 입원했기에 병원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한국 병원 밥보다는 훨씬 낫긴 한데, 그래도 이건 좀 그래요.”
박상태를 비롯한 다른 대원들은 낮에는 호텔 뷔페를 마음껏 즐기며, 밤에는 다른 나라의 구조대원들과 함께 맥주를 퍼붓는 중이라는데…….
“여기선 맥주는커녕 콜라도 못 마시게 한다니까요?”
수혁이 툴툴대자 박상태가 씨익- 웃으며, 병실 문으로 가서 주위를 살폈다.
수혁은 지금 저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박상태의 품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 그거 뭐예요?”
“뭐긴 뭐냐. 맥주지.”
수혁이 이러고 있을 것이라 예상한 박상태가 맥주 몇 캔을 챙겨 온 것이었다.
“와, 맥주!”
수혁이 반가운 표정으로 맥주를 받아 들었다.
박상태의 품에 있었는지라 그리 시원하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수혁에게 필요한 건 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일탈이었으니까.
“크으!”
맥주 한 캔을 따서 꿀꺽꿀꺽 마신 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맥주는 독일이라니까.”
“술도 못 마시는 놈이 무슨 맛 타령이야.”
수혁은 한국에서도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빼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가서 마시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옆에서 봐온 박상태가 핀잔을 주었다.
“느낌이 중요한 거죠, 느낌이.”
수혁 역시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마셔. 괜히 간호사들한테 들켜가지고 혼나지 말고.”
박상태는 남은 한 캔을 냉장고 구석에 넣어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네가 입원한 덕분에 내가 할 일이 많아졌다, 이놈아.”
한국 구조팀의 지휘권을 가진 사람은 수혁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지금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으니 그 지휘권을 박상태에게 넘겼고, 덕분에 그만 바빠졌다.
“독일 쪽 하고 할 얘기들도 있고, 집에 갈 준비도 해야 되고. 이홍관 씨가 잘해주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있어야지.”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수혁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일을 대신하느라 바쁜 사람을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어차피 내일 퇴원이라며. 하루만 더 버티고 있어.”
“그럴게요.”
수혁은 모레 있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내일쯤엔 퇴원해야만 했다.
딱히 별다른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난 간다.”
박상태가 대충 손을 휘저으며 병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수혁은 손에 든 맥주를 홀짝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참…….”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기는 병실이다.
저 아래에 있는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숨을 쉬는 게 어려워졌다.
“후우- 후우-”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난 뒤에야 조금 진정이 됐다.
“생각보다 좀 심한데.”
분명 머리로는 별것 아니라고, 크게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혼자 남게 되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수혁은 TV를 틀어 볼륨을 높였다.
TV 화면 속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큰 소리가 들려오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수혁은 멍하니 누워 화면만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이나.
“어우, 좋네.”
드디어 다음 날.
퇴원 수속을 마친 수혁이 병원 밖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농담으로라도 좋은 날씨라고는 보기는 힘들 정도로 흐렸지만, 수혁은 속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일단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교관님.”
수혁의 퇴원을 비롯한 전반적인 일 처리를 위해 온 사람은 슈미츠였다.
슈미츠는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지, 독일에 와서 처음 봤을 때보다 최소한 5㎏은 빠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부탁하지.”
그런 슈미츠를 안쓰러운 눈으로 한 번 쳐다본 수혁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제 갓 임용된 신출내기 소방관.
거의 배치를 받자마자 이런 대형 재난이 터졌으니, 슈미츠의 멘탈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경험 많은 베테랑 소방관들도 이런 현장에서는 망가지기 쉬운데, 슈미츠야 말할 필요가 없었다.
‘힘들겠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슈미츠는 상당히 지쳐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도 자신을 챙기기 위해 나왔으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이쪽에 주차해 두었습니다.”
그런 수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슈미츠는 자신이 타고 온 차를 향해 수혁을 데리고 갔다.
검은색의 삼각별 엠블럼이 박혀 있는 세단이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독일.’
수혁은 중후한 멋이 있는 세단을 보고 감탄하며 조수석에 탔다.
뒷자리에 타보고 싶었지만, 왠지 민망했기에 조수석을 선택한 것이었다.
슈미츠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수혁은 빨리 출발하라며 재촉했다.
“출발하겠습니다.”
결국 슈미츠는 옆자리에 수혁을 태우고는 운전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지?”
수혁이 물었다.
“대부분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 마음 편하게 베를린 시내를 관광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현장은?”
“생존자 수색이 종결되고, 이제는 시신 수습에 중점을 둔 상태죠. 오늘부터 중장비가 투입되어 파헤치기 시작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현장 얘기가 나오자 슈미츠의 음성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렇군…….”
수혁 역시 괜히 물었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차는 호텔로 나아갔다.
“저곳입니다.”
고급스러운 외관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슈미츠가 입을 열었다.
“저기라고?”
율리안이 신경써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건 좀 과하다 싶었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한국 구조팀의 숫자는 80명에 육박한다.
그런 인원을 저런 호텔에 묵게 한다니…….
하루 숙박료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런 수혁의 걱정을 눈치챈 것일까?
슈미츠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호텔 측에서 직접 제안한 겁니다. 독일을 위해서 고생해 준 분들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면서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수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저기에 다른 나라의 구조팀도 있는 건가?”
호텔의 규모는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지원을 온 다른 국가의 구조팀의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순 없어 보였다.
물론 한 방에 서너 명씩 묵게 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저기엔 한국 분들만 계십니다. 다른 분들은 주변의 다른 호텔에서 묵고 있습니다.”
슈미츠의 말은 놀라웠다.
특히나 일본 구조팀의 대우에는 더욱 그랬다.
“일본은 자비로 머물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냥 돌아가라고 비행기 편까지 알아봐 줬는데, 내일 있을 행사에 참가하고 돌아가겠다며 버텼죠.”
일본은 율리안에게 단단히 찍힌 상태였다.
물론 도움을 주러 온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구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행동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웃기지도 않는 행동 때문에 생존자 한 명이 사망할 뻔했다.
만약 수혁이 타이밍 좋게 나서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때문에 율리안은 일본을 대놓고 멀리했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일본 역시 그런 독일의 태도를 비판하며 돌아갔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자신들의 잘못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나갔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혁의 위상을 누르고 자신들이 주목을 받으려던 계획은 틀어진 지 오래였다.
그들로선 이제 망가진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비까지 들여가며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내일 있을 공식 석상에 참가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여간…….’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수혁 역시 그날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도착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차는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입구에는 많은 사람이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상태와 한국 구조팀의 대원들.
그리고 호텔 직원들을 비롯해 수많은 기자까지.
대체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사람을 보며, 수혁은 차에서 내리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 한 명이 차가 서자마자 문을 연 것이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셔터가 터져 나왔다.
“김수혁! 김수혁!”
“와아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수혁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