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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34화 (334/425)

레스큐 시스템 334화

구조는 순조로웠다.

수혁과 율리안의 지휘에 따라, 엄청난 숫자의 구조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준 덕분이었다.

수혁의 능력 덕분에 요구조자들의 위치 또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 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걸 순조롭다고 할 순 없지.’

수혁은 커다란 잔해 하나를 들어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아래에 있는 요구조자가 마지막 아홉 번째였다.

그래, 마지막.

아직도 이 아래에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묻혀 있었건만, 이번이 마지막 요구조자다.

차라리 피를 토할 정도로 힘이 들고,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 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야! 너 왜 그래!”

옆에서 같이 작업하고 있던 박상태가 깜짝 놀라며 수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찌나 세게 깨문 것인지, 수혁의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본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혁은 정신을 차리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피를 닦았다.

“……너 괜찮냐?”

박상태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현장에서 실시한 검사도 문제가 없었고, 수혁도 믿기에 만류하지 않았는데…….

박상태는 그게 실수는 아니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냥 병원으로 보냈어야 했나?’

물론 수혁이 장담한 대로 신체는 멀쩡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대원들보다 훨씬 튼튼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만한 잔해들을 혼자서 번쩍번쩍 들어서 옮길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박상태가 걱정하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수혁이 이해할 수 없는 능력과 인간 같지도 않은 피지컬의 소유자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나, 그것은 오직 신체에만 국한된 것일 뿐이었다.

수혁의 정신은 여전히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그간 수혁의 정신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는 많이 봐왔다.

요구조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드는 행동이나, 자신의 목숨 따위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무모하게 움직이는 등.

어느 누군가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박상태 역시 일정 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박상태는 수혁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괜히 미친놈, 미친놈하고 부르는 게 아니지.’

그런 놈이 며칠 동안이나 어둠 속에 처박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다.

문제가 없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수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였다.

그래서 더욱 걱정스러웠다.

“저 괜찮다니까요.”

수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박상태는 그 미소 안에서 짙은 어둠을 봤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 문제 있으면 바로 얘기하고.”

“아, 내가 애예요? 걱정도 팔자시네 정말.”

“그럼 걱정시키질 말든지, 이 새끼야.”

박상태는 일부러 수혁과 투덜거리며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그 덕분일까?

한없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던 수혁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남았냐?”

“음…….”

박상태의 물음에 수혁이 잠시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앞으로 5분 정도만 더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수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요구조자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수혁처럼 위치만 특정할 수 있었다면, 정말 몇 분 이내로 발견해서 구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요구조자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더 늦기 전에 수혁이 찾아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

수혁은 다시 무거워지는 마음을 애써 떨쳐 내며, 구조에 집중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거 큰일났네.’

한 번 가라앉기 시작한 기분은 쉽사리 회복되질 않았다.

수혁은 자신의 멘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수혁에게는 큰 크게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고, 시간만 있으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수혁은 이보다 더한 매몰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가?

그때도 버텼는데 이번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립감보다, 그곳에 갇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무력감과 죄책감.

그것이 수혁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한없이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심해지면 제대로 숨도 쉬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수혁은 박상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심호흡했다.

‘나는 별것 아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요구조자를 생각했다.

그들은 수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공포와 싸웠다.

얼마나 무서울지, 얼마나 괴로울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들에 비하자면 수혁의 문제는 문제 축에도 끼지 못했다.

세상의 그 어떤 문제도 죽음 앞에서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수혁은 이 앞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요구조자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요구조자 발견! 요구조자 발견!”

마지막 아홉 번째 요구조자가 구조되었다.

-기적, 그리고 슬픔.

-더 이상의 기적은 없는가?

-짧은 환호 끝에 찾아온 것은 기다란 절망이었다.

마지막 요구조자를 구조한 뒤, 기사는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요구조자들을 구하고 홀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수혁.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아홉 명이라는 요구조자들을 구해내며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짧았다.

더 구조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율리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구조 작업을 펼쳤다.

이제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수혁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땅을 파고, 파고, 아무리 파도.

나오는 것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는 희생자들의 싸늘한 시신뿐이었다.

수혁의 복귀와 함께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구조되자 잔뜩 들떴었던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일이 지난 지금.

희망은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율리안이 무겁기 그지없는 얼굴로, 병상에 앉아 있는 수혁을 향해 말했다.

“……종결입니까?”

“그래.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다.”

율리안은 수혁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털끝만큼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자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율리안은 소방당국과 기다란 회의 끝에 수색의 종결을 결정했다.

“피해가 너무 크군.”

율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며칠 사이, 율리안은 10년은 족히 더 늙은 것 같았다.

사망자의 숫자만 수백 명에 달했다.

부상자를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았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들까지 합친다면…….

“더 커지겠지.”

독일은 테러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자국민의 목숨을 수백 명이나 앗아간 테러범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단 테러범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의 배경에 있는 조직, 국가에게도 경고를 보냈다.

유럽 연합(EU)에서도 독일에 동조했다.

유럽 내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테러 사태가, 언제 자신들의 국가에서도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반응은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별 효과는 없었지.’

수혁이 기억하는 바로는 아쉽게도 테러범들의 검거에 실패한다.

몇몇 용의자들을 특정하긴 했지만, 그들은 배후를 채 캐내기도 전에 모두 자살로 목숨을 잃고 만다.

배후에 대한 심증만 있을 뿐, 확증은 없었기에 유럽 연합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고, 결국은 흐지부지하게 사태가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이전 생에서 이 시절의 수혁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한 것도 뉴스에서 몇 번 들은 정도가 다였다.

자세한 사정은 모두 알 수가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기에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다.

‘이번 생에서는 꼭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꼭 죗값을 받기를.

수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빌며 율리안을 쳐다봤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율리안의 몰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오직 구조와 회의만을 반복해 가며,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수혁 역시 그런 율리안의 덕을 보지 않았던가?

율리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아쉬움과 후회는 있을지언정, 자책은 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

율리안이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색이 종결되면 이제 저희도 돌아가야겠군요.”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독일에서 보냈다.

구조하던 도중 베를린에서 연속적인 테러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정리가 되었으니,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의 일은 독일의 소방관들만으로도 충분했다.

“고맙다.”

율리안이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 머나먼 독일까지 와주고, 수많은 사람을 구조해 주었다.

만약 수혁이 없었다면, 구조된 사람의 숫자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만큼 수혁이 해준 역할이 컸다.

“별말씀을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몸은 좀 어떻지?”

현재 수혁은 입원한 상태였다.

더 이상의 요구조자도 없었으니, 일단 입원을 해서 제대로 된 검사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정상.

“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네요.”

수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의사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20년이 넘게 의사 생활하며, 수혁과 같이 건강한 몸은 처음 본다고 연신 감탄할 정도였다.

‘정신 쪽은 조금 다르지만.’

육체와 달리 정신에는 문제가 좀 있었다.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약간의 우울증과 트라우마 증상이 있다는 진단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방관 생활을 하며 이 정도의 정신적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가끔 상담이나 한 번씩 받으며 가슴속에 쌓인 것들을 풀어주면 충분하다.

지금은 안정이 좀 필요하다며 반강제적으로 입원한 상태였다.

“그거 다행이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멀쩡하다니, 율리안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지, 아직 할 일이 산더미라. 그럼 몸조리 잘하고.”

율리안은 정말 바쁜지 그렇게 인사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혁도 그를 배웅하기 위해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율리안이 뭔가 잊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치며 몸을 돌렸다.

“이 말을 잊었군.”

“네?”

더 할 말이 남았냐는 듯 쳐다보자, 율리안이 입을 열었다.

“3일 후에 행사가 하나 열릴 거다. 지원을 와준 구조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행사지.”

“아…….”

수혁은 약간 귀찮아졌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그것을 본 율리안이 살짝 미소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참가하는 게 좋을 거다. 꽤나 성의를 들인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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