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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32화 (332/425)

레스큐 시스템 332화

사람의 손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을 발견했다고 해서 이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파고들어 오며 몇 구의 시체를 발견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생존자다! 생존자 발견!”

그 손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했군.’

당연하게도 손의 주인은 수혁이었다.

수혁은 한참 전부터 구조대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잠도 오지 않았기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구조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구조대는 자신이 예상한 경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 주었다.

대신 속도에는 차이가 조금 있었다.

수혁이 예상했던 것보다 한 시간가량 더 걸린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망할 곳에서 드디어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수혁은 한쪽에 있는 잔해가 치워지며 틈이 생기자, 그곳으로 손을 내밀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당연히 구조대는 난리가 났고, 조금 처져 있던 움직임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손이 움직이는 것으로 봐선 의식이 있는 것 같았지만,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수혁은 그들의 걱정을 단번에 날려주었다.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도 담담한 음성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린 것이다.

그것을 들은 구조대원들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려 3일이다, 수혁이 붕괴에 휩쓸려 이 아래에 매몰된 시간이.

구조대원으로써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상황에 그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애초에 인간이 버텨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육체와 정신, 두 가지 모두 한계에 봉착해 무너지기 직전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음성을 들어보니 아니었다.

마치 손님을 맞이하듯 평온해 보였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이라곤 반가움 정도뿐.

구조대원 생활을 하며 수십, 수백 명의 요구조자를 봐왔지만, 수혁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 조금 서둘러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이 안에 오래 갇혀 있었더니 맑은 공기가 간절해서요.”

수혁의 말에 대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혹시 미친 건가?’

그들은 너무도 차분한 음성에 오히려 수혁의 정신이 나간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상태 파악은 나중에.’

일단은 수혁의 말대로 빨리 이곳에서 구조해야만 했다.

잠시 멈추었던 작업이 다시 재개되었다.

수혁과 대원들 사이에 있던 잔해들이 모두 치워졌다.

“허, 미친!”

“이게 뭐냐…….”

수혁이 쪼그려 누워 있던 공간을 본 대원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들은 당연히 수혁이 잔해 밑에 깔려 있거나, 운이 좋아서 만들어진 작은 공간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공간은 그런 참혹한 현장이 아니었다.

좁긴 했지만 사람 한 명 정도는 어렵게나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해 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붕괴의 위험성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공간 정 중앙에 있는 지지대는 웬만한 충격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던 것이다.

대체 여기서 저런 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수혁이 계속해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율리안은 그 사실을 팀장급 인원과 탐지반, 그리고 재난 대응팀의 몇몇 대원에게만 전파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알려져 봐야 혼란만 가중될 뿐이니, 당연한 조치였다.

덕분에 대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저… 이제 슬슬 나가죠. 여기도 지겨운데.”

수혁이 대원들을 향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 그렇죠.”

대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수혁을 부축했다.

수혁은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대원들에게 몸을 맡겼다.

지금도 충분히 이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몸 상태마저 너무 정상적으로 보일 순 없었다.

수혁은 대원들의 손에 의해 들것에 몸을 눕히고 단단히 고정되었다.

“올려!”

“천천히!”

로프와 연결된 들것이 천천히 위로 끌어올려졌다.

길이 직선이 아니었는지라, 구조대원들은 천천히 끌어당겨 지는 들것을 붙잡고 부딪히지 않도록 같이 이동했다.

“컨디션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도 명확하고, 부상의 흔적도 없습니다.”

대원들은 수혁을 데리고 올라가며 계속해서 무전기를 통해 보고를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본인도 배가 조금 고프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나오는 데 얼마나 걸리나?]

“15분이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3일이 걸렸다.

하지만 나가는 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혁은 들것에 누워 힘겹게 이동하고 있는 대원을 쳐다봤다.

“위쪽 상황은 지금 어떻습니까?”

수혁이 아래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구조 중이고, 여전히…….”

대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망자가 너무 많았다.

하루에 다섯 명을 구조했다면, 사망자의 시신은 20구가 넘게 발견했다.

그마저도 이제는 점점 요구조자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대원은 그런 심각한 상황을 굳이 수혁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수혁에게 별문제가 안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안정을 취할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대원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혁도 대강의 상황은 알고 있었다.

‘미니 맵’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호텔 쪽의 상황과는 달리, 역 쪽의 상황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요구조자의 숫자와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그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구조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혁의 ‘생명감지Ⅲ’는 오직 생명체만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대가 무슨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기 전에 그간 있었던 일을 좀 듣고 싶었는데, 대원이 꺼리자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수혁은 고립된 상황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것들 중 주를 이룬 것은, 여기서 빠져나간 뒤에 할 일이었다.

분명 위에서는 수혁이 구조되면 당장 병원으로 이송시킬 것이다.

수혁도 그것엔 동의했다.

정신적으로 좀 지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그럴 여유는 없을 것 같았다.

“하아.”

한숨을 내쉰 수혁은 병원행을 포기했다.

‘율리안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율리안이라면 강제로 병원에 입원되는 상황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수혁이 내심 그렇게 마음을 먹는 사이.

마침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

수많은 조명이 이곳을 비추고 있어서인지, 위쪽으로 난 커다란 구멍 밖은 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혁은 대원들의 손에 들려진 채, 밖으로 나왔다.

3일 만에 맡아보는 상쾌한 공기.

“흐읍.”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와아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수혁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것이었다.

소방관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수혁의 구조를 축하해 주었다.

인력 낭비라는 이유로 이 상황을 반기지 않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수혁이 무사한 모습을 보자 환호했다.

수혁은 이미 독일의 영웅이었다.

수혁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심하십시오.”

대원들 중 한 명이 수혁에게 주의를 주었다.

쓸데없이 움직였다가 괜히 몸 상태가 망가질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수혁은 웃으며 자신이 건재함을 알렸다.

수혁의 들것이 바닥에 내려가고, 구급대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일단 수혁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혈압, 맥박, 체온 정상입니다.”

구급대원은 수혁을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바이탈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수혁이 그를 보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서 정밀 검사를 하겠습니다.”

구급대원은 수혁이 예상했던 것처럼 바로 병원 이송을 준비했다.

하지만 수혁은 갈 생각이 없었다.

“잠시만요.”

바쁘게 움직이는 구급대원을 멈춰 세운 수혁이 눈짓으로 자신을 고정시키고 있는 들것을 가리켰다.

“좀 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잠시만요.”

구급대원이 구조대원을 쳐다봤다.

고정 장치는 단순히 요구조자가 들것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요구조자가 부상을 입었다면, 최대한 충격을 덜 받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래서 구조대원을 쳐다본 것이었다.

수혁의 부상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구조대원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육안으로 확인한 수혁은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움직임도 정상적이었고.

자세한 것은 구급대원의 말대로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그는 고정 장치를 풀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구조대원의 허락에 구급대원은 고정 장치를 풀었다.

몸을 압박하고 있던 끈들이 느슨해지자, 수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시만요! 그렇게 움직이시면 안 됩……!”

주위의 대원들이 기겁하며 붙잡으려 했지만,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굳어 있던 몸을 풀었다.

그러곤 당황해하는 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율리안을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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