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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28화 (328/425)

레스큐 시스템 328화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것이 확실합니까?”

입을 연 것은 영국에서 온 구조팀의 대장이었다.

그는 회의적인 표정으로 율리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이번엔 프랑스였다.

“그것은 사실입니다만, 제가 아는 김수혁 대원의 생존력을 생각해 보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율리안은 수혁을 크게 평가했다.

박상태처럼 비상식적인 수혁의 모습을 본 적도 없음에도, 신뢰만큼은 그 못지않게 컸다.

하지만 그런 신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었다.

“우리가 볼 때는 괜한 낭비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드는군요.”

시간과 인력의 낭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 많은 대원이 매달리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진 알고 있습니다만…….”

율리안 역시 그들의 걱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을 구조하기 위한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현재 수혁은 독일에서도 미국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독일을 돕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온 힘을 다해 요구조자들을 구해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독일의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수혁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SNS에선 피해자들과 수혁에 대한 응원들로 넘쳐났다.

그런 현상의 바탕에는, 자신들이 미국보다 수혁과 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수혁이 구조하다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독일의 모든 눈이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정부와 소방청에서 허가가 난 일입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수혁을 구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만약 수혁이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독일의 방침이었다.

독일을 위해 수고해 준 수혁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습니다.”

율리안의 단호한 태도에, 각국의 대장들은 한발 물러섰다.

그들 역시 수혁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전 테러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던 수혁의 모습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투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 역시 독일을 돕기 위해 달려왔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수혁이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수혁이라는 소방관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본 수혁은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움직였다.

위험천만해 보이는 곳도 아무렇지 않게 달려들어 사람을 구해낸다.

이미 목숨을 잃은 희생자 앞에서는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소방관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질투는 미뤄두고, 지금은 한 사람의 위대한 소방관을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칠 때였다.

독일 정부에서도 그것을 원한다고 하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그럼 루트를 짜야겠군.”

누군가 말하자, 율리안이 한쪽에 마련된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탐지 장비로 파악한 수혁의 위치와 그곳까지의 거리 등이 표시된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요구조자의 위치까지는 대략 29m 정도의 거리입니다.”

생각보다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직선상의 거리일 뿐이었다.

“탐지반에서 계산해 본 결과 이런 식으로 구조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지상에서부터 수혁의 위치까지 이어진 선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직선이 아니었다.

여러 번 꺾이고 우회하는 경로였다.

“추가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루트입니다.”

거리는 총 50m가 넘었다.

“직선거리로 파는 것은 힘듭니까?”

누군가 묻자 율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계산상으로는 10m만 파고들어도 추가 붕괴 위험이 생깁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잔해들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중간중간 틈도 있고, 약해진 부분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길을 뚫기 위해 충격이 가는 순간 그런 곳들이 무너져 내리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저런 식으로 길을 만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최소한 3일, 길면 일주일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아무런 변수가 없다면 3일 정도 걸리겠지만, 계산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탐지반에서 찾아내지 못한 변수가 하나라도 생긴다면, 시간은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는데…….”

영국의 대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책은 있나?”

“일단은 물을 지속적으로 뿌릴 계획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는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사망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333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소 없이 3분.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통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옛날 한국에서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15일 이상을 버틴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수혁 역시 3일보다 조금 더 길게 버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경우만을 생각하며 희망을 품을 순 없었다.

구조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수혁이었다면 버틸 수 있을 수도 있지만, 만약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라면?

3일은커녕 2일도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혹여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건강상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니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물을 공급해야만 했다.

“물론 정밀한 계산 후에 최대한 안전하게 공급할 생각입니다.”

아무렇게나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닌, 계산적이고 통제된 상황에서 행동할 것이다.

그러면 추가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가 있었다.

“일단 알겠네. 그 사안은 독일에 맡겨두지.”

독일인들 특유의 정교함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 믿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저대로 실행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3교대로 구조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현장처럼 말이지?”

“네. 정확합니다.”

“좋아. 그럼 시간 낭비할 것 없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지.”

회의는 빠른 속도로 마무리 되었다.

일단 전체적인 계획만을 수립하고, 세세한 것은 움직이면서 짜기로 했다.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바로 독일팀이었다.

모두가 지친 상황이기도 했고, 자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는지라, 율리안이 먼저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남은 팀들은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일부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현장을 돕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기각당했다.

지금 그들에게 맡겨진 최우선 과제는 수혁의 구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앙역 현장에는 일본팀 120명이 추가로 투입되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 지원이 오고 있었기에 굳이 일손을 도울 필요가 없었다.

결국 유럽 연합 구조팀은 근처에 급히 마련한 숙소로 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사이 율리안과 독일 구조팀은 수혁의 구조를 시작했다.

* * *

‘내 위치를 찾은 건가?’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에는 일단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행 방향을 보면, 분명 자신의 위치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아!’ 하며 웃었다.

‘탐지 장비를 사용한 모양이군.’

지금까진 ‘미니 맵’에 의지를 해서 잊고 있던 장비였다.

이런 붕괴 현장에선 필수인 탐지 장비가 있다면, 수혁의 위치를 찾아냈을 수도 있었다.

‘소리를 들었나 보지?’

수혁은 구조팀이 자신이 움직였을 때 난 소음을 탐지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조금 더 들려주는 게 나을까?’

오늘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을 모두 사용해, 더는 위로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소음을 낼 순 있었다.

탐지 장비의 성능을 생각하면 작은 소리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테니, 근처의 철근이라도 규칙적으로 두드리면 될 터였다.

그렇게 하면 다시 한 번 위치를 확정 지을 수 있었고, 수혁의 생존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수혁은 손을 더듬어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러곤 벽을 이루고 있는 돌을 치기 시작했다.

탁, 타탁- 탁, 탁-!

5초에 한 번씩.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규칙적인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면 사람이 내고 있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수혁은 ‘미니 맵’을 확인하며 계속해서 그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것이 보였다.

수혁이 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됐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신호를 감지했으니, 구조 작업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이 돌멩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미니 맵’을 통해 저들의 루트를 예상해 보았다.

‘일직선으로 파고 내려오진 않을 테니…….’

‘위험감지Ⅲ’와 연동해서 위험 요소가 있는 곳들을 피해 길을 연결하니, 구불구불한 경로가 만들어졌다.

‘적어도 5일 정도는 걸리겠는데.’

수혁의 예상은 율리안이 했던 3일보다 이틀이나 더 길었다.

수혁은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변수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계산이었다.

‘5일이라…….’

솔직히 버티라고 하면 못 버틸 이유는 없었다.

이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된다.

수분이야 오줌을 이용하면 될 테고.

하지만 수혁은 5일이나 되는 시간을 가만있을 생각이 없었다.

‘보자. 하루에 10m씩 이동한다고 치면……?’

여기서 지상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0m쯤.

구조대와는 달리 수혁은 일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구조대와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가 있었다.

‘이틀, 앞으로 이틀이면 충분해.’

구조대의 진행 방향을 확실히 봐야겠지만, 수혁의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이틀 후에는 구조대와 만날 수 있었다.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수혁이 갖고 있는 능력이 너무도 대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며칠씩 버티는 것은, 정신적인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육체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아직 인간이었다.

신일역 붕괴사고 때는 다른 요구조자들도 있었고, 오직 자신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혼자서 이런 곳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이틀만 버티면 돼.’

수혁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실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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