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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23화 (323/425)

레스큐 시스템 323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소방 헬기의 지원은 여전히 불가했다.

마르코가 모든 요청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헬기 지원에 대한 결정권은 소방 항공대에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공 소방대의 간부는 그것을 거부했다.

대신 다른 방안을 내놓았다.

“결국에는 제가 부탁한 거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

박상태가 말을 더듬었다.

처음부터 수혁은 소방 헬기의 지원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봐서 다른 부탁을 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가서 하는 부탁과 구조 본부에서 직접 공식적으로 하는 부탁은 다르지.]

박상태가 부탁했더라면 과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실현이 가능할지조차 불투명했다.

그런데 지금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구조 본부에서 직접 요청을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방송국이 몇 곳이나 있을까.

만약 거절했다가 그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상상치도 못할 비난과 욕을 들어먹을 것이다.

정치가와 더불어 여론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언론사다.

여론이 등을 돌리는 것보다 그들에게 치명적인 상황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조 본부의 요청을 들어줘야만 할 터.

“그럼 진행 중인가요?”

[그래. 구조 본부에서 요청한 세 곳의 언론사에서 헬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다행이었다.

소방 헬기와 다르게, 일반 헬기에는 커다란 장비를 장착할 수가 없었다.

구조용 바스켓을 장착해도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숫자가 열 명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세 곳이나 지원해 주겠다고 했으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아슬아슬하긴 한데…….’

여차하면 자신은 혼자 탈출할 수도 있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얼마나 걸려요?”

[지금 바스켓 장착 중이라고 연락 왔다. 그거 끝나면 바로 구조 시작한다니, 늦어도 20분 정도면 되겠지.]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요.”

수혁이 옥상을 살폈다.

아까보다 많이 붉어지긴 했지만, 20분 정도는 충분히 버티고도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마 또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진 않겠지.’

“준비되는 대로 바로 다시 연락 주세요. 저는 사람들한테 알려야겠어요.”

[그래, 알았다.]

수혁이 무전을 끊었다.

옆에서 박수진이 눈을 반짝이며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

박상태와의 대화를 모두 들었기에 그녀의 얼굴은 밝았다.

“네, 그런 것 같네요.”

수혁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꽤나 힘든 구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 힘들진 않았다.

처음 호텔에 진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을 정도니까.

‘이 사람들을 데리고 밑으로 빠져나갔다면…….’

수혁이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만약 헬기 구조가 불가능했더라면 그렇게라도 구조해야 했을 텐데, 생각만으로도 진땀이 흘렀다.

수혁조차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하는 장소에서 32명이나 되는 요구조자를 데리고 빠져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힘든 정도가 아니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헬기 지원이 되었으니,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수혁은 이제 곧 헬기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요구조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저마다 앉아서 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수혁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는데, 헬기 소식을 듣자 이젠 완전히 살았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잠시 이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수혁은 혹시나 사람들이 완전히 풀어져 허튼짓할까 싶어 주의 주고는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불 끄기가 어려운가 봐요.”

박수진이 냉큼 수혁의 옆에 따라붙더니 아래를 확인하곤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테러가 일어난 지 몇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진입로조차 만들지 못했다.

독일 소방관들이 그 정도로 무능할 리가 없었으니, 화재가 심상찮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곧 진압될 겁니다.”

수혁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선 다른 지역에서 지원 나온 펌프차들이 호텔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불길이 세긴 하지만, 소방관들이 이 정도나 모이면…….”

이 호텔에만 붙어 있는 펌프차가 20대가 넘었다.

지금 오고 있는 차들까지 합치면 30대도 넘을 것이다.

30대가 넘는 펌프차에서 동시에 방수를 시작하면, 제아무리 거센 불길이라 해도 잡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진 왜 못 끈 걸까요?”

그녀가 보기엔 20대나 30대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수혁은 그녀의 질문에 웃으며 영어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박수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준비할 것도 많았을 테고, 일단 주변 상황도 그리 좋지 못해 동시에 방수가 힘들었을 겁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자리를 잡고 방수할 수 있지만, 처음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았다.

“펌프차가 접근하기 힘들었을 테니 주변 정리부터 해야 했겠죠. 덕분에 화재는 점점 커진 거고, 제대로 된 진압 작전을 펼친 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수혁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도 수혁이 한 말처럼 일이 진행되었다.

“아무리 펌프차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하지만, 이런 규모의 화재를 한두 시간 내에 진압하는 건 힘듭니다.”

수혁은 일부러 크게 말했다.

한쪽에서 쉬고 있던 요구조자들도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저들이 독일 소방관들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독일 소방관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구조와 소방, 구급에 임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조금 늦게 구해줬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수혁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수혁의 말을 들은 요구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의문을 품고 있던 차에 수혁의 말이 시원한 대답이 되어줬던 것이다.

그것을 본 박수진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 수혁이 독일 소방관들의 사정까지 신경써 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저씨는 진짜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박수진이 솔직하게 수혁에 대한 감상을 늘어놨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수혁은 괜한 쑥스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아뇨, 정말이에요.”

박수진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저도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길은 다르지만.”

박수진은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었다.

구조대인 수혁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근본은 같았다.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

박수진은 수혁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혁이 박수진을 쳐다봤다.

이전 생에서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신일역 붕괴사고 때 생명을 잃었을 사람.

그런 사람이 이번 생에서는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혁은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될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구조는 순조로웠다.

박상태가 이야기한 것처럼, 20분이 지나자 헬기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바스켓을 매단 채로 호텔 쪽으로 오고 있는 헬기를 본 요구조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혁은 차례대로 요구조자들을 바스켓에 태웠다.

‘음, 잘못 생각했네.’

그러면서 수혁은 속으로 자책했다.

바스켓에 한 번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열 명 정도.

무리를 하면 한 명 정도는 더 태울 수 있었다.

때문에 상황이 시급하니 열한 명씩을 태워 33명 전부를 한 번에 이동시킬 생각이었는데…….

‘구조대원들을 생각 못 했어.’

당연하게도 바스켓에는 요구조자들만 태울 수 없었다.

그들을 통제하고 안전을 책임질 구조대원들이 한 명씩 탑승해 있었다.

결국은 열 명씩밖에 태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나 포함해서 세 명이 남는데…….’

한 명을 더 태우는 것은 무리였다.

자리도 없었지만, 그 무게 때문에 상황이 위험하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출발해요!”

첫 번째 헬기에 열 명을 태운 수혁이 소리를 지르며 손짓하자, 호버링을 하고 있던 헬기가 날아올랐다.

바스켓이 옥상 바닥에서 떨어지며 허공에 떴다.

요구조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혹여나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헬기는 아무런 이상도 없이 유유히 호텔을 빠져나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분들 탑승 준비하세요.”

첫 번째 헬기가 돌아가자, 대기하고 있던 두 번째 헬기가 옥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헬기는 아무런 문제없이 요구조자들을 싣고 돌아갔다.

남은 것은 한 대.

“두 분은 조금 더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이 남자 두 명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둘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수혁을 쳐다봤다.

“자리가 부족합니다.”

수혁이 바스켓을 가리키며 고개를 젓자, 두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니…….

당연히 당황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한 명이 수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헬기는 다시 올 테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생각인 것 같았다.

“거부하겠소.”

반쯤 벗겨진 머리의 중년인.

그는 수혁의 말에 절대 따를 수 없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저 사람들과 똑같이 기다렸는데, 왜 나만 여기 남아 있어야 한다는 거요?”

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둘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만약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한 사람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싫어할 줄이야.

수혁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옆에서 박수진이 다가왔다.

“그럼 대신 제가 남을게요. 됐죠?”

“아니, 그건…….”

수혁은 그런 박수진을 만류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박수진 역시 위기 상황에 대처할 능력은 충분했다.

그것은 신일역 붕괴사고 때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일이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수혁을 도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었다.

‘박수진 씨라면 괜찮겠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죠.”

수혁이 허락하자, 박수진이 웃으며 중년인을 쳐다봤다.

“아저씨는 가셔도 돼요.”

중년인은 그 모습에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절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젊은 여자가 당차게 나서자 괜히 부끄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때문에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싶진 않았다.

“흠흠.”

괜한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것을 본 박수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어딜 가나 이기적인 사람들은 있네요.”

박수진의 얼굴을 본 수혁은, 그녀가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진상남.’

그날.

자신만 살겠다고 수혁의 지시를 어긴 채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남자.

그 남자의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박수진은 그날 그 남자를 떠올린 게 분명했다.

“오늘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수혁이 위로하듯 말하자, 박수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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