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317화 (317/425)

레스큐 시스템 317화

한국 구조팀은 수혁이 지도에 표시해 준 곳들을 위주로 수색을 진행했다.

덕분에 구조속도는 빨랐다.

워낙 요구조자의 수가 많았기에 어느 곳을 수색해도 요구조자나 희생자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팀장 중 한 명인 조민기는 방금 구조한 요구조자를 보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방금 생각한 것처럼, 몇 분만 더 늦었더라면 요구조자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게 몇 명째지?”

“다섯 명입니다.”

“음…….”

조민기가 신음했다.

“왜 그러십니까?”

조민기의 팀원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쉴 만큼 쉬었으면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해라.”

“아, 알겠습니다.”

조민기는 대원들에게 명령하며 슬쩍 품 안의 지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우연이겠지?’

지금까지 다섯 명.

수혁이 지도에 표시한 곳에서 발견한 요구조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위험한 상태였다.

지도의 표시가 마치 우선 적으로 구해야 할 요구조자를 가리키는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조민기는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정말 심각한데.”

이곳에 있는 소방관의 수는 전부 합쳐 수백 명에 다다른다.

물론 구급대와 화재 진압대를 포함한 수였다.

그 많은 숫자의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중임에도, 생존자는 그리 많이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조민기가 고개를 돌려 한쪽을 쳐다봤다.

아직도 불에 타고 있는 커다란 건물이 눈에 보였다.

두 번째 테러 발생 지역이자, 건물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호텔.

“저기는 아직 구조를 시작도 못 했다는 거지.”

불길이 너무도 강해 도저히 진입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듣기로는 몇 번이나 구조대가 진입을 시도했지만 결국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화재가 아무리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호텔 특성상 안쪽에는 불길을 피할 만한 장소가 다수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구조를 포기할 순 없는 일.

하지만 화재가 진압되지 않는 이상, 밖에서 발을 구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불타는 호텔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조민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도 구조해야 할 사람은 많아. 여기에 집중하자.’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다음은 이쪽이군.”

조민기는 지도를 보며 다음 목적지를 확인했다.

“움직이자.”

조민기와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 * *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냐?”

박상태가 수혁의 손을 잡고 물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 여기에도 구해야 할 사람은 널려 있다.”

“그건 알고 있어요.”

수혁이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박상태를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알면 경거망동하지 마. 넌 지금 일개 대원이 아니라 한국 구조팀의 대장이야. 그런데 대장이 함부로 자리를 비워?”

“이미 내릴 수 있는 지시는 다 내렸어요.”

애초에 수혁이 지휘권을 원한 이유는 수월한 구조를 위해서였다.

구조대원들의 수색이 체계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의 스킬보다 정확하고 빠를 순 없었다.

수색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더 신속한 구조를 하기 위해 지휘권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수혁이 할 수 있는 지시는 모두 내려둔 상태.

앞으론 누가 지휘를 하든 상관없었다.

“변수가 생기면? 그땐 네가 있어야 해.”

“형이 있잖아요. 다른 팀장님들도 있고. 웬만한 문제들은 다 해결하실 수 있을 걸요.”

박상태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수혁을 막는 건, 정말로 그가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기어코 가겠다 이 말이냐?”

“네. 제가 가야 해요.”

“혼자서는 위험해. 정 가고 싶으면 다른 애들 몇 명 붙여줄 테니까 같이 가라.”

“우리가 인력이 남아돌던가요?”

여기도 사람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소방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내일쯤 다른 지원팀들이 올 거예요. 그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사람을 뺄 수 없어요.”

“이 새끼…….”

박상태가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은 혼자서 움직이겠다는 뜻이었다.

“이러려고 지휘권을 필요로 했구만?”

“뭐, 겸사겸사요.”

수혁이 지휘권을 갖게 된 이상, 수혁의 결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만 놔주세요.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까.”

수혁이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다치지 마라.”

“알겠어요.”

“죽는 건 더 안 되고.”

“저도 아직은 죽긴 싫거든요.”

“제수씨 생각해서라도 꼭 무사히 돌아와.”

이번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앞에 최은송의 모습이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약속할게요.”

독일로 떠나기 전.

최은송과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가서 사람들 구해 와.”

박상태가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 김수혁이거든요?”

그보다 더한 보증이 어디 있을까?

수혁은 몸을 돌려 앞으로 향했다.

“겁나 뜨겁겠네.”

수혁이 향하는 곳은 불타고 있는 호텔이 있는 방향이었다.

* * *

“뭐? 어디로 가?”

현장 근처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 의료 시설에서 치료받던 마르코가 벌떡 일어났다.

“호텔로 갔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마르코는 미간을 찌푸렸다.

“거긴 왜 간 거지? 상황을 보러 간 건가?”

지금까지 화재 진압대가 총동원되었음에도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스 누출 때문이었다.

가스로 인해 불길은 사그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몰라 현재 호텔 주변은 통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물론 수혁이라면 지원팀의 대장으로 상황을 살펴볼 권한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마르코는 조금 불안했다.

수혁이 단순히 호텔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 아닐 것이란 예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것이…….”

부하가 잠시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방화복과 봄베, 마스크까지 모두 풀 장착한 것으로 봐선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호텔 안으로 진입하려는 복장이었다.

마르코가 이마를 감싸 안았다.

“몇 명이나 갔나?”

“혼자입니다.”

“뭐?”

구조팀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갔다고?

구조 현장에서 팀은 매우 중요하다.

현장에 들어간 이상, 구조대원들 역시 언제든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명에게 이상이 생기면, 그를 구해야 할 동료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것이 팀워크였고, 동료였다.

그런데 혼자라니?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막아. 절대 혼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마르코의 호통에 부하가 화들짝 놀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미친놈인가?”

수혁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겠다.

몇 번이나 보여준 수혁의 힘만 해도,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 주진 못한다.

화재, 붕괴, 폭발.

이런 거대한 재난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그런 곳에 혼자 기어들어 갈 생각을 한 것부터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늦진 않았겠지?’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장비를 착용한 소방관이라 하더라도, 꼴랑 혼자서 현장에 진입하겠다는데, 그것을 허가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르코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마르코는 몰랐다.

수혁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또라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정면으로는 못 갈 테고…….”

호텔 주변은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이 보통 현장도 아니었고, 무려 테러가 일어난 장소였으니까.

보통의 화재 현장이라 해도 통제를 할 판이었는데, 테러 현장이야 오죽할까?

수혁은 바리케이드를 확인하곤 주변을 살폈다.

“튼튼하게도 막아놨네.”

물샐 틈도 없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현장 진입은커녕 주변에 가까이 가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수혁은 일단 ‘생명감지Ⅲ’를 사용해 호텔 내부를 살펴봤다.

요구조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셋…….’

생명 반응을 살피던 수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32명.”

많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적다고 해야 할까?

수혁은 후자라고 생각한 듯했다.

32명의 요구조자는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었지만, 호텔 내부에 있었던 이들을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이 죽었어.’

호텔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내부에는 최소한 백 명 이상의 인원이 있었을 것이다.

투숙객만 그 정도였고, 직원들까지 생각해 보면…….

‘적어도 2백 명 이상은 있었겠지.’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다.

어쩌면 3백 명이 넘을 수도 있었다.

‘그중에 32명.’

참혹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의 피해였다.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데.”

생존자들은 지금도 천천히 생명 반응이 약해지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다.

열기는 요구조자들의 체력을 빠르게 앗아가는 중이었다.

‘시간이 없어.’

지금이라도 당장 안으로 진입해야만 했다.

수혁은 ‘미니 맵’을 실행해 주변을 확인했다.

혹시나 뚫고 들어갈 틈이 있을지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역시 독일이라고 칭찬을 해야 할지, 아니면 욕을 해야 할지.’

독일답게 이런 면은 철저했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지.’

정면 돌파.

분명 경찰과 소방관들이 앞을 막을 것이다.

수혁은 그것들을 강제로 뚫고 들어가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저들은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보단 낫다.

여차하면 율리안이나 마르코에게 부탁해도 되고.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준 활약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혁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가자.’

팟-!

수혁의 발이 땅을 박찼다.

동시에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20㎏이 넘는 장비를 착용한 이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어?”

수혁의 모습을 발견한 경찰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원을 나온 대원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지! 정지하시오!”

경찰들이 손을 들며 소리쳤지만, 수혁은 무시했다.

콰앙-!

순식간에 바리케이드 앞에 도착한 수혁은, 그것을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쇠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가 트럭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을 날아올랐다.

“뭐, 뭐야!”

경찰들은 그 모습에 경악하며 몸을 피했다.

100㎏이 넘는 바리케이드를 저렇게 날려 버리는 이와 충돌하길 바라지 않았다.

빠르게 몸을 날려 수혁의 진로에서 벗어난 경찰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치,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무전을 들고 현 상황을 보고했지만,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도저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수혁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