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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15화 (315/425)

레스큐 시스템 315화

수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소리 지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로 오랜만에, 수혁의 눈앞에 글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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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를 최대한 많이 구조하라!

*내용 : 독일의 심장부가 테러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폭탄이 터진 장소는 두 곳.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요구조자의 수는 총 287명이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요구조자들을 최대한 많이 구조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자.

*보상 : 대량의 경험치,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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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군.’

그동안 가끔 퀘스트가 뜨긴 했지만 딱히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들은 아니었다.

덕분에 보상도 그리 크지 않았고.

그런데 이번 퀘스트는 완벽하게 완수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요구조자가 287명.’

‘생명감지Ⅲ’로 파악하지 못한 요구조자의 수를 알 수 있었다.

이건 수혁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전부 구할 수 없는 규모였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너무도 큰 피해 규모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아무리 참혹하고 힘겨운 현장이라 할지라도, 퀘스트의 내용처럼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수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것.

“조금만 더 참으세요.”

수혁은 감았던 눈을 빠르게 뜨고는 손에 든 돌을 한쪽에 조심히 내려놨다.

“당신 누구냐고!”

다시 한 번 외침이 들려왔다.

수혁은 손을 들어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뒤, 천천히 요구조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놈이 그래도 대답을 안……!”

뒤에서 계속해 정체를 묻던 사람은 수혁을 붙잡으려다 어깨너머로 요구조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덜컥 멈추었다.

요구조자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부상 범위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고, 의식도 없었다.

미약하게 움직이는 가슴을 보지 못했더라면 시체라고 판단했을 정도였다.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이분부터 구조하죠.”

수혁은 조심스럽게 요구조자의 몸을 뒤덮고 있는 자잘한 돌멩이들을 치워냈다.

‘호흡이 약해.’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지금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야만 했다.

“비켜.”

그때, 계속해서 수혁을 부르던 이가 앞으로 나서며 요구조자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노인?’

수혁은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드문드문 보이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자글자글한 주름까지.

얼굴만 본다면 노인이었지만, 몸은 절대 아니었다.

‘무슨… 보디빌더야?’

지금껏 수혁이 봐온 소방관 중, 몸이 가장 좋았던 이는 톰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았다.

‘뭔 놈의 몸이…….’

옆에 있는 수혁이 왜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지금 당장 구급대 불러. 바이탈 최악이니까 약들도 챙겨오고. 30초 내로 뛰어와!”

수혁이 감탄하는 사이, 요구조자를 살핀 노인이 무전기를 통해 빠른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구급대원 두 명이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다!”

수혁은 노인이 무전을 친지 정확히 30초도 되지 않아 구급대원들이 달려온 것을 보곤 감탄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대원은 아닌 것 같은데…….’

노인을 본 구급대원들도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수혁은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뭐,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수혁은 요구조자가 처치받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이제 구급대원들이 왔으니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이다.

지금부터는 구조해야 할 사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응?”

‘생명감지Ⅲ’를 사용해 찾아낸 주변의 요구조자에게 달려가던 수혁이 의문성을 터트렸다.

언제 온 것인지, 옆에는 방금 전의 노인이 따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뭡니까?”

수혁은 살짝 놀랐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같이 움직이지. 혼자 하는 것보단 둘이 나을 테니.”

“그렇게 하시죠.”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혼자보단 둘이 낫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 * *

마르코는 수혁을 보며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저거 사람 맞나?’

처음 수혁에게 관심을 주었던 것은, 독일인들로 가득한 현장에 동양인 소방관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수혁의 말도 되지 않는 괴력을 봤기 때문에 경악했고.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신속해. 그리고 정확하기까지.’

마르코가 처음 수혁을 발견한 지 고작해야 1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그사이 수혁은 네 명의 요구조자를 발견했고, 그중 세 명을 구조했다.

‘안타깝게도 한 명은 숨을 거뒀지만.’

솔직히 마르코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있었다.

수색해서 요구조자를 찾는 것도 수혁이 홀로 했고, 구조 자체도 대부분 혼자만의 힘으로 해냈다.

마르코는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수혁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동양인은 나이를 짐작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이십대인 걸로 보이고…….’

구조 절차나 방법 등을 봤을 땐 이미 베테랑 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체 이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주변을 둘러봐도 수혁과 비슷한 제복을 입고 있는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수혁의 소속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 낯이 익긴 하군.’

한 명의 요구조자를 구조해 구급대에 넘긴 뒤, 자리를 옮기며 마르코는 수혁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폈다.

하지만 평생을 베를린에서 살아온 그가 알고 있는 동양인이라곤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니 수혁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근래 본 동양인이라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왔다는 그……. 음?’

생각에 빠져 있던 마르코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수혁!”

분명했다.

저 얼굴은 요즘 뉴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영웅의 것이었다.

“저를 아십니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수혁이 고개를 돌려 마르코를 쳐다봤다.

“아니,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지금쯤 수혁은 다른 현장에 있어야만 했다.

“율리안이 미리 연락을 드릴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 전달되지 않았나 보군요.”

“아!”

그러고 보니 부하에게서 그런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베를린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을 왔습니다. 저는 한국 구조팀의 지휘를 맡고 있는 김수혁입니다.”

수혁은 마르코에게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주변에서 마르코를 쳐다보는 시선과 행동을 보면, 그가 평범한 대원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대장쯤 되나?’

그렇다면 예의를 갖추는 게 맞았다.

“마르코라고 부르게. 베를린 중앙 소방청, 특수 구조대의 구조대장을 맡고 있지.”

마르코의 소개에 수혁이 ‘역시’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은 어디 있나? 한국과 일본, 유럽 구조팀도 모두 이쪽으로 지원 올 것이라 들었네만.”

“교통이 혼잡해 일단 저 먼저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시 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수혁은 말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걸음도 멈추었다.

“이번엔 이쪽을 수색해 보죠.”

마르코는 수혁의 말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혁의 말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이걸 들면, 요구조자를 꺼내주십시오.”

수혁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커다란 광고판을 가리켰다.

돌덩이보단 훨씬 가볍겠지만, 저것도 사람 혼자서 들기엔 불가능한 무게일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당연히 들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고, 마르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수혁을 향한 마르코의 말투가 조금은 정중해졌다.

독일에서 일어난 재난을 돕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날아온 소방관.

심지어 고작 며칠 만에 독일에서 영웅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니 마르코는 수혁을 자신과 동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대하기로 했다.

‘자기 입으로 한국 구조팀의 지휘를 맡고 있다고 했으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마르코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끄응.”

나이가 나이였는지라 잠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수백 명의 소방관이 자신의 체력을 불태우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명색이 구조대장이라는 자신이 조금 힘들다 해서 몸을 사릴 순 없었다.

“준비하세요.”

수혁이 광고판의 한쪽을 붙잡으며 마르코에게 신호를 주었다.

“시작하게.”

마르코가 준비된 것 같자, 수혁이 양팔에 힘을 주었다.

쿠구구구-

이곳저곳이 부서져 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는 있었지만, 그 크기가 5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대형 광고판이었다.

그런 거대한 광고판이 너무도 쉽게 위쪽으로 들리고 있었다.

마르코는 다시 한 번 놀랐다.

하지만 좀 전엔 수백 킬로의 돌덩이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봤으니, 이해 못 할 장면도 아니었다.

애써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는데, 마르코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요구조자!’

정말로 광고판 아래에는 요구조자가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두 명이네!”

“확인했습니다! 일단 한 명씩 천천히 밖으로.”

수혁은 이미 이 아래에 두 명의 요구조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르코가 광고판 아래로 들어가 요구조자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수혁은 천천히 그것을 옮기기 시작했다.

광고판 특성상 내구성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심지어 파손까지 되어 있어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부서져 버리는 수가 있었다.

‘그건 안 되지.’

광고판 위에는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만약 광고판이 부서지며 그것이 아래로 쏟아지게 되면 요구조자들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광고판을 한쪽으로 이동시켰다.

“요구조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수혁이 마르코를 향해 물었다.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네.”

폭탄 테러 한복판에서 무너지는 건물 아래 깔린 이들이다.

당연히 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고판이 방패가 되어줬는지, 생각보다 출혈은 심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단 두 명의 요구조자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마르코는 무전기로 구급대를 부른 뒤, 요구조자들을 옮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혁이 광고판을 이동시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위험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부부인가? 커플?’

요구조자는 남녀 한 쌍이었다.

폭발의 순간 서로를 감싸주려고 한 것인지, 둘은 포옹을 한 채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팔부터 풀어야겠네.”

어찌나 꽉 껴안고 있었는지, 팔을 푸는 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마르코는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둘의 팔을 풀었다.

그런데 그때.

우직-!

마르코의 머리 위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본능적으로 고개를 위로 젖혔다.

“이런, 젠장.”

광고판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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