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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12화 (312/425)

레스큐 시스템 312화

이야기는 잘 끝났다.

최문식은 확답해 주진 않았지만, 말의 분위기를 봐선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일단은 자신도 자세히 알아본 뒤, 다시 연락해 주기로 했다.

‘미국에서 정보를 준 건 사실이니 문제는 없겠다.’

아마도 최문식은 자신의 채널을 총동원하여 수혁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 채널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수혁에게 정보를 주었다는 짐 머레이일 것이고.

짐 머레이라면 분명 수혁에게 유리한 말을 해줄 터였다.

게다가 행정안전부 장관도 수혁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으니, 수혁이 지휘권을 가져오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네.”

이렇게까지 했는데 실패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라도 노력하는 수밖에.

정 안 되면 율리안과 공조해서 일을 진행하면 된다.

지금이야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주춤하다고는 하지만, 테러가 일어나면 그딴 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소방관은 율리안이었으니 폭행 사건보단 테러의 수습을 위해서라도 묵인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휴식밖에 없었다.

수혁은 침대에 누웠다.

이제부턴 정말로 힘든 나날이 계속될 것이다.

수혁은 그때를 대비해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쉬자.’

푹 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최문식에게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는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무사히 돌아오라며 염려하던 최은송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엔 정말로 조심할게요.’

수혁은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쾅쾅쾅-!

갑자기 들려오는 거친 노크에 수혁이 벌떡 일어났다.

“김수혁!”

문밖에서 박상태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은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빠르게 문을 열었다.

“상태 형, 무슨 일 있어요?”

박상태의 표정은 심상찮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설마?’

지금 상황에 박상태가 이렇게 다급히 수혁을 찾을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테러가 일어났다.”

“젠장!”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수혁은 욕설을 내뱉으며 방안으로 들어가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속보로 테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베를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미친……!”

뉴스를 보던 수혁이 다시 한 번 욕을 했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현장은 참혹, 그 자체였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폭탄이 터졌다. 출근 시간이었는지라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어.”

박상태는 베를린 중앙역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사실 테러가 일어난 곳은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슈타이겐베르거 호텔.”

“뭐?”

“호텔에서도 폭탄이 터졌어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고개를 돌려 TV를 확인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화면은 무너져 내린 호텔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객실 수 399개의 커다란 호텔은, 폭발로 인해 절반에 가까운 구조가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저기로 가야겠어요.”

그것도 지금 당장 가야만 했다.

수혁이 빨리 도착하면 할수록, 한 명의 요구조자라도 더 구할 수가 있었다.

“허가가 필요해.”

“일단 준비해 주세요. 독일과 한국에는 제가 연락해 볼 테니까.”

수혁의 인맥을 대충 알고 있는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직접 연락하는 것보단 수혁이 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대원들부터 모으마.”

박상태는 그길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수혁 역시 옷도 걸치지 않은 채 방을 빠져나가 한 방으로 향했다.

쾅쾅-!

박상태가 그랬던 것처럼, 수혁은 방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누구……?”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바로 이홍관이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는지라 잠을 자고 있었는지, 이홍관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수혁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했다.

“어,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그래서 독일에 왔잖습니까?”

이홍관은 수혁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쳐다봤다.

“조금 전에 또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베를린의 두 곳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이번엔 수혁의 말을 알아들었다.

“베, 베를린 말입니까?”

독일의 수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말에 이홍관의 눈에서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가야겠습니다.”

“하, 하지만!”

이홍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곳에서의 구조 작업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현장에 남아 있는 행방불명자가 수백 명이나 되는 상황인데 이곳을 버리고 그곳으로 갈 수는 없지 않…….”

“이곳에 생존자는 없습니다.”

“……예?”

이홍관은 수혁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말 그대로입니다. 여기에 더는 구조할 생존자는 없습니다. 이건 독일 구조팀의 대장인 율리안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홍관은 입을 다물었다.

율리안도 알고 있다면, 수혁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 베를린으로 가야겠습니다. 한국에 연락 좀 해주세요.”

수혁은 일단 이홍관에게 한국에 연락하는 일을 맡겼다.

직접 최문식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홍관이 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최문식은 지금 수혁이 한 부탁 때문에 바쁠 테니 말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혹시 율리안의 연락처나 구조본부와의 연락 방법을 알고 계시면 그것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이홍관은 방으로 들어가 메모지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여기에 율리안의 연락처가 적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한국에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시고, 저희는 당장 베를린으로 지원 가겠다고 통보해 주세요.”

“통보라니…….”

지금 수혁의 말은 위에서 허락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베를린으로 떠나겠다는 뜻 아닌가?

“그건 아무리 수혁 씨라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될 겁니다. 안 된다고 하면, 행안부 장관님이나 재정부 장관님 이름이라도 파세요. 뒷일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

이홍관은 수혁이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수혁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일단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야기가 끝나면 제 방으로 좀 와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수혁은 율리안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를 든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홍관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수혁이 사라진 복도를 쳐다보다 퍼뜩 정신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수혁의 말대로 일단 빨리 한국에 연락을 취해야만 했다.

그사이 수혁은 방으로 돌아와 율리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율리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긴, 그쪽도 지금 정신이 없겠지.”

수혁이 조만간 테러가 일어날 것이란 정보를 전해준 게 바로 몇 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비를 취하기도 전에 정말로 폭탄이 터져 버렸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닌, 두 곳에서.

폭발에 휩쓸린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생각만 해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에 율리안이 얼마나 바쁠지는 굳이 고민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수혁은 차분히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다.

한국에서 허가가 나더라도, 율리안과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쉽게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여보세요.]

마침내 율리안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달린 듯했다.

“접니다, 율리안.”

[수혁?]

설마 수혁이 전화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율리안의 음성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소식 들었어요.”

[그렇군.]

율리안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수혁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해서든 테러를 방지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행동에 옮기기도 전에 사달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 한국 구조팀은 곧장 베를린으로 향할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

“지금 한국과 연락을 취하고 있어요. 무리 없이 승인될 거예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군.]

수혁이 도와준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다름없었다.

“바쁘실 텐데 우리가 그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 좀 주시겠어요?”

[그건 내가 바라는 바다. 지금 바로 연락해 두지. 준비가 끝나는 대로 베를린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고마워요.”

[그것 역시 우리가 할 말이다. ……고맙다.]

율리안의 음성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베를린에서 뵐게요.”

수혁은 전화를 끊었다.

“이쪽은 됐고.”

율리안이 장담했으니, 자잘한 준비와 허가는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한국과의 연락도 이홍관에게 맡겼으니, 이제 남은 것은 대원들을 준비시키는 것뿐이었다.

수혁은 짐도 챙기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짐이야 나중에 숙소 측에 부탁해서 챙겨도 충분했으니까.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온 수혁은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누구 지시냔 말입니까!”

수혁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세한 대화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만 봐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수혁이 문을 열고 아래층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는 대원들이 밖으로 나와 모여 있었다.

“누구의 지시도 아닙니다.”

“그럼 그 말을 저희가 왜 들어야 합니까?”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박상태였다.

상대는 팀장 중 한 명.

담담한 표정의 박상태와는 달리, 상대는 얼굴이 벌게진 채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한국과 연락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늦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있자는 겁니다.”

“승인이 안 되면요?”

“될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냐는 말입니다!”

수혁이 이홍관에게 다녀오고 율리안과 연락하는 사이, 지금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수혁이 그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왔냐?”

박상태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수혁이 부탁한 일을 시작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홍관 씨가 승인을 받기 위해서 연락하는 중입니다. 아마 조만간 승인이 날 것 같…….”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수혁이 박상태에게 말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끊었다.

고개를 돌려 그 주인공을 쳐다봤다.

‘백진호.’

백진호는 박상태와 말다툼을 하고 있던 팀장의 곁에 서서 수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는 듯한 표정이었다.

수혁은 잠시 백진호를 쳐다보다 곧 무시하고는 박상태와 다른 대원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독일 측에도 보고했습니다. 지금 당장 베를린으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인마! 네가 뭔데 그걸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진행해!”

이번에도 백진호였다.

그는 이 기회에 수혁을 짓눌러 버리겠다는 듯,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다른 팀장님들도 가만있는데 네까짓 게 뭔데 함부로…….”

“닥쳐, 이 X발 새끼야.”

“무, 뭐?”

갑작스러운 수혁의 욕설에 백진호가 말을 더듬었다.

“입 닥치라고. 대가리 깨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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