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11화
박상태는 난색을 표했다.
수혁의 이야기를 듣고, 왜 지휘권을 원하는지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놈의 능력이라면, 지휘권을 갖고 있는 것이 훨씬 빠른 구조가 가능하다.’
일개 대원으로서 하는 발언과 지휘자로서 하는 발언은 무게 자체가 달랐다.
그러니 수혁이 지휘권을 원하는 것일 테고.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건데…….’
박상태는 수혁이 지휘권을 가져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환영이었다.
수혁이 박상태의 직속 부하였긴 하지만, 그 덕분에 수혁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상태가 권위에 찌든 사람도 아니었고, 수혁이 지휘를 맡음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백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수혁이 유명하고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한들, 그들의 눈에는 이제 걷기 시작한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명령까지 듣는다?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분의 문제가 아닌, 신뢰의 문제였으니까.
“힘들까요?”
박상태의 표정을 본 수혁이 물었다.
“음…….”
박상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이 전달되었다.
“역시 힘든가 보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박상태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았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박상태를 제외하고도 팀장 급 인원이 열 명이 넘었다.
수혁이 한국 구조팀의 지휘자, 곧 대장이 되기 위해선 그 모든 팀장을 설득해야만 했다.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성사될 수가 없었다.
“형이 설득 좀 해주면 안 돼요?”
“되겠냐?”
몇 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모른다.
팀장들 중에선 박상태와 친분이 있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가능성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몰라도, 그전에는 아마 힘들 것 같다.”
박상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팀장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뭐라고요?”
그런데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힘들 것 같다고.”
박상태는 이놈이 왜 이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가능하다는 뜻이죠?”
“그렇긴 하겠지. 현장의 의견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조직은 계급이 깡패니까.”
어중간한 위치의 명령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차장급 이상은 되어야 납득할 수 있을 터.
수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명령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지?’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소방청장이었다.
하지만 곧장 그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자신이 그에게 직접 부탁을 할 계급도 아니었고, 만약 한다고 해도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그런 인간에게 더는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청장보다 높은 사람이라면…….’
수혁이 멈칫- 했다.
그러고 보니 수혁의 가까운 사람들 중,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장관급 인사였다.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방법?”
박상태는 수혁의 말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장인어른께 연락 한번 해야 될 것 같네요.”
* * *
“그놈 좀 짜증나지 않아요?”
백진호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수혁의 험담을 시작했다.
“또 왜?”
갑자기 자신의 방을 찾아와 주인인 양 태평하게 행동하는 백진호의 모습에 전진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같은 조로 움직였기에 강제로 내쫓지도 못했다.
대충 대화를 맞춰주는 수밖에.
“아니, 혼자 잘난 것처럼 나대잖아요.”
말을 하는 백진호의 음성에는 질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잘나긴 했잖아.”
“에이, 또 그러신다. 잘나긴 뭐가 잘 나요? 운 좀 좋았던 거 가지고.”
‘운이 좋아서 여덟 명이나 구했다는 게 말이 되냐?’
전진형은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랬다가는 백진호가 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내쫓고 싶었지만, 팀워크를 위해 참았다.
“아무튼. 운 좋아서 몇 명 구했다고 영웅이니, 뭐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그놈이 거만하게 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수혁이 거만하게 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직 백진호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번 공항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거절당한 일에 앙심을 품은 듯했다.
“지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아주 꼴도 보기 싫어요.”
그 뒤로도 백진호는 한참 동안이나 수혁을 씹었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전진형을 돌아보며 물었다.
“앞으로 요구조자가 몇 명이나 남았을까요?”
“글쎄다…….”
전진형은 대답하지 못했다.
행방불명자의 수는 1~3백 명이다.
오차 범위가 너무 컸고, 그 안에서 변수는 더욱 많았다.
아직 수십 명이 살아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단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전진형은 쉽게 단정 짓지 않았다.
“많이들 살아 있었으면 좋겠네요.”
백진호가 중얼거렸다.
그것을 들은 전진형이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지켜본 백진호는, 솔직히 말하자면 소방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세만 가득했고, 사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이야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긴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다신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백진호가 요구조자들을 걱정하는 듯한 말을 했으니, 지금껏 자신이 잘못 생각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백진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말은, 그나마 없던 정도 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야 많이 구할 수 있죠. 두고 봐요. 내일부턴 제가 김수혁 그놈보다 훨씬 더 많이 구조해 낼 테니까.”
전진형은 자신도 모르게 백진호를 걷어찰 뻔했다.
‘구조가 게임이냐, 이 새끼야!’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그리고 백진호가 자신의 부하였다면, 분명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가까스로 충동을 참아낸 전진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이제 그만 나가라.”
“네? 아 좀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방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단 말이에요.”
“네가 심심하고 말고는 상관없으니까, 이제 그만 가라고. 나도 좀 쉬어야겠으니.”
전진형은 더 백진호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에, 단호하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한 백진호는 머뭇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참나. 노친네 외로울까 봐 기껏 신경써 줬더니, 이따위로 나를 쫓아내네.”
백진호는 복도에 서서 투덜거렸다.
“내가 다시는 신경써 주나 봐라, 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전진형의 방문에 침을 한 번 뱉은 백진호가 몸을 돌렸을 때였다.
“아, 씨! 깜짝이야!”
그의 뒤에 수혁이 서 있었다.
수혁은 백진호가 뱉은 침을 한번 쳐다보고는 딱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하는 짓입니까?”
“뭐, 뭐가?”
속으로 뜨끔한 백진호는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처음부터 백진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수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저 침 말입니다. 우리를 최대한 배려해 주고 챙겨주는 숙소 직원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저런 짓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혁은 잔뜩 화가 난 기색이었다.
자신들이 독일을 도와주러 온 것이 맞긴 했지만, 이 숙소의 직원들 역시 자신들이 최대한 편히 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사용은 못할망정 복도에서 침을 뱉다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용납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아, 뭘 그런 거 가지고 정색이야? 침이야 닦으면 되는 거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된 백진호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여기서 굽히면 수혁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수혁은 그런 백진호를 가만히 쳐다보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직접 바닥에 튄 침을 닦아냈다.
“앞으론 조심하십쇼.”
더는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진호에게 경고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진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신이 조금 실수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 새까만 후배 놈이 저딴 식으로 선배를 무시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도 상했다.
‘어떻게 한다?’
백진호는 수혁에게 엿을 먹일 방법을 생각하다,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과 반대쪽을 향해 걸어갔다.
“한번 X 돼봐라.”
“장인어른 연락처가 뭐였더라?”
자신의 방에 도착한 수혁은 최문식의 연락처를 떠올리곤, 곧장 방에 있는 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너무 시간이 이른가?’
한국과 독일의 시차는 여덟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 한국은 새벽일 것이다.
죄송스럽긴 했지만, 너무 마음이 급했다.
[누구요?]
한참이나 신호가 간 뒤에야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장인어른이십니까?”
[……자네군. 지금 몇 시인지 아나?]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수혁은 일단 사과부터 했다.
그러자 최문식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기다리게. 자네 장모는 아직 자고 있으니 자리를 좀 옮겨야겠어.]
“알겠습니다.”
수혁은 최문식이 방을 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최문식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래. 무슨 급한 일이기에 이 새벽에 연락을 다 했나?]
“제가 지금 독일에 있는 것 아십니까?”
[모르고 있을 리가.]
최문식은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런 최문식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위가 독일에 간 것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곳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도 듣고 있다네. 다들 뿌듯해하는 중이지.]
최문식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위가 국위 선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물론 아직까지 수혁의 직업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인정해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혹 다치기라도 한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수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 미국에 있는 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문식은 짐 머레이와도 친분이 있었다.
[계속 말해보게.]
짐 머레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최문식은, 수혁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보부 쪽에서 테러가 또 일어날 것이란 경고를 해왔습니다.”
[……뭐! 그게 사실인가?]
수혁의 말이 정말이라면 이건 큰일이었다.
“늦어도 3일 이내 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걸 왜 자네에게?]
최문식은 일개 소방관에 불과한 수혁에게 그런 정보를 넘긴 짐 머레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혁이 한 국가의 장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 아닌가?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닙니다. 테러는 일어날 것이고, 그 혼란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수혁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며칠 간격으로 테러가 일어난다면, 혼란은 극에 달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칠 테고, 저희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넘쳐나겠죠.”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최문식은 수혁이 단순히 테러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독일에 있는 한국 구조팀의 지휘권. 그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