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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07화 (307/425)

레스큐 시스템 307화

기자들의 카메라가 불을 뿜어댔다.

네 명을 구조한 다음 날.

쉬고 있어야 할 수혁이 현장에 나와 추가로 한 명을 더 구조했으니, 기자들로선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흥분한 것은 기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속보로 올라간 인터넷 기사를 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수혁이 또 한 명을 구했대!”

“맙소사!”

“역시 영웅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야.”

독일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

“…젠장.”

이와타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수혁을 보며 이를 갈았다.

급하게 꾸리긴 했지만, 이와타가 데리고 온 구조팀은 일본에서도 최정예들이었다.

수혁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120명에 달하는 최정예 구조대원보다 뛰어날 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수혁 혼자서 120명의 일본 구조팀보다 확연히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질책받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어떻게 해서든 만회해야만 했다.

이와타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장님.”

그를 발견한 부하 한 명이 이와타를 불렀다.

퍼뜩 정신을 차린 이와타가 앞을 쳐다보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율리안?’

독일의 영웅.

수혁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방관 중 한 명인 율리안이었다.

“그쪽이 일본 구조팀의 대장입니까?”

율리안은 도착하자마자 이와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직설적인 모습에 이와타는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것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이와타의 모습에 율리안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당장 저 가식적인 얼굴을 뭉개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주먹에서 힘을 뺐다.

그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도 많았다.

당장 저 뒤에 기자들이 수십 명 모여 있지 않던가?

주먹을 날린다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겉으로 보이는 것은 독일의 영웅이 도움을 주러 온 일본 구조팀의 대장을 폭행한 것이었으니까.

“후우.”

율리안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왜 저래?’

이와타는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율리안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화가 난 것 같은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율리안은 지금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오늘 분명 우선 수색 지역을 지정해 주었던 것으로 아는데, 잊으셨습니까?”

웃고 있던 이와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런 이야기를 전달받긴 했었다.

하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그 우선 수색 지역이라는 것 자체가 수혁이 선정한 곳들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수혁의 공적을 줄이고 자신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 말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수혁이 지목한 곳에서 요구조자가 발견이라도 된다면, 또다시 언론은 수혁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기 때문에 무시했다.

“잊지는 않았습니다만……. 저희 팀에서 자체적인 조사를 거친 결과 다른 곳에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이 더 높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일본 구조팀이 수색하고 있는 곳은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이 높은 장소들이었다.

수혁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아무 곳이나 들쑤실 순 없지 않은가?

율리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이와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를 질책할 순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하가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우선 수색 지역이라는 것도 권고사항에 불과했으니, 그것을 가지고 문제 제기할 수도 없었다.

율리안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이와타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뜨끔하긴 했다.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배제한 수색 지역에서 요구조자가 발견되었으니, 이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꽤나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런데 율리안의 표정을 보아하니,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기껏해야 유감을 표하는 정도겠지.’

그 정도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어쨌든 언론에 이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저는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요구조자를 구조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말입니다.”

더는 시간을 빼앗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들은 율리안이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가……!’

풀어졌던 주먹이 다시 쥐어졌다.

지금 자신이 취할 행동으로 한동안 귀찮아지겠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율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본 이와타의 눈이 커졌다.

‘어? 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율리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이와타가 손을 들며 율리안의 움직임을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빠아악-!

율리안의 주먹이 이와타의 얼굴에 틀어박힌 것이다.

“아아악!”

이와타가 얼굴을 움켜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혁만큼은 아니더라도, 율리안은 충분히 괴물이라 불릴 수 있는 신체의 소유자였다.

그런 이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이와타의 곁에 서 있던 부하가 깜짝 놀라며 율리안의 몸을 붙잡았다.

하지만 율리안은 이와타에게 다시 주먹을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대신 분노에 가득찬 말을 쏟아냈다.

“지원 요청은 왜 받아들이지 않았지? 네놈들의 자존심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던가!”

율리안은 이와타가 왜 지원을 보내지 않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은 일본에서 갑자기 구조팀을 보낸 것과 수혁의 지원 요청을 무시한 이유.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 등등.

모든 것을 고려하면 이유는 하나였다.

율리안은 바보가 아니다.

“네놈의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구조된 요구조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말 그대로 조금만 더 늦었으면 발견하기도 전에 사망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병원으로 이송을 시작하긴 했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일본이 지원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최소한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었을 텐데…….

일본은 요청을 거절했고, 덕분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만약 요구조자가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책임에서 이와타는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당장 이 땅에서 꺼져! 네놈은 구조대의 자격도 없는 쓰레기다.”

한 명의 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

하지만 율리안은 차라리 자신의 잠을 줄이면 줄였지, 더는 일본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다.

우선 수색 지역을 제외한 일은 이해할 수 있다.

그곳에 요구조자가 100%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원 요청을 거부한 일은 다르다.

이와타는 선을 넘었다.

“이,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

“마음대로 해라, 쓰레기.”

율리안이 일본 구조팀 대장을 폭행한 일이 알려지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지금도 소란을 들은 기자들이 연신 사진을 찍고 있지 않은가?

아직은 수혁과 요구조자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 와중에 율리안에게 좋지 않은 내용의 기사가 나간다면…….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깟 욕을 좀 듣는 것이 이딴 쓰레기와 함께 구조 작업을 하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오늘 이후로 일본의 도움은 필요 없다. 내일 짐 싸서 돌아가도록.”

율리안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이와타를 노려본 뒤,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이와타가 코에서 피를 흘리며, 멀어지는 율리안의 등을 노려봤다.

그 모습을 기자들의 카메라가 담았다.

* * *

-독일의 영웅, 일본에서 온 조력자를 폭행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일본 구조팀의 대장, 이와타.

-율리안은 왜 주먹을 휘둘렀는가?

-일본 구조팀, 이대로 철수하나?

“음…….”

수혁은 인터넷 기사를 보며 신음을 흘렸다.

율리안이 이와타를 찾아간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주먹을 날린 사실은 이제야 알았다.

‘미안한데.’

물론 미안한 감정은 이와타가 아니라 율리안을 향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 역시 이와타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현장이 조금 정리가 되고, 여유가 생기면 말이다.

그런데 율리안이 먼저 움직였다.

수혁은 그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아주 묵사발을 내버릴 작정이었는데.’

수혁은 율리안처럼 주먹 한 방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뚝배기 정도는 깨도 합법이지.’

수혁이 혼자 ‘그럼, 그럼’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박상태가 다가왔다.

“이거나 좀 먹어라.”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빵과 우유를 건네주었다.

“일본 애들은 어떡한대요?”

율리안은 일본의 도움을 거부했다.

개인의 의견이긴 했지만, 독일에선 율리안의 뜻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에서 율리안의 위상은 한국에서의 수혁보다도 높았으니까.

“글쎄다. 아직 결정된 건 없는 것 같다.”

“그냥 좀 꺼졌으면 좋겠네요.”

웬만하면 이런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이미 한 번 데인 수혁은 율리안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같이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120명이나 되는데.”

“그렇긴 한데…….”

현장이 이번 한 번뿐이라면 일본의 구조팀 따위 없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120명이라는 정예 구조대원은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만 쓰지 않는다면 말이지.’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겠죠.”

아무래도 율리안과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감정적으론 그냥 모두 돌려보냈으면 좋겠지만, 희생될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뭐, 그건 알아서들 하라고 하고. 이제 몇 명이나 남았냐?”

지금까지 다섯 명을 구했다.

남은 요구조자는 이제 세 명.

다행히 상태는 모두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정상적이진 않았지만, 매몰되어 있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기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펌프차로 물을 계속 뿜어대는 게 도움이 된 모양이야.’

사람은 수분만 보충되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니 말이다.

“이제 세 명이요. 내일이 오기 전에 모두 구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수혁의 말에 박상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세 명.

그 사람들만 구하면 구조작업은 끝난다.

심지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하니 모두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세 명이 전부라니.’

독일에선 이 아래에 매몰된 사람을 백 명에서 최대 3백 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존자가 고작 여덟 명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독일은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야단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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