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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06화 (306/425)

레스큐 시스템 306화

시간이 없다는 말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말보단 행동이 훨씬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

수혁은 율리안과 독일 대원들에게 설명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다행히 큰 잔해들은 대부분 치웠어.’

율리안이 도착하기 전, 남아 있던 커다란 잔해들은 거의 걷어낸 상태였다.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일본 구조팀만 해도 수십 명이 그것을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도 멀었고, 수혁이 의도적으로 먼지들을 일으키며 시야를 어느 정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완벽히 상황을 무마할 순 없겠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여차하면 율리안에게 부탁하면 될 것이다.

독일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니, 어느 정도는 커버를 쳐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짐 머레이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짐 머레이와 케인 로저스라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었다.

그 둘의 힘은 그 정도로 막강했다.

수혁은 걱정을 접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굴삭기로 잔해를 퍼내는 것 같은 속도에 대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래도 다행히 상식 수준에서의 모습인지라, 감탄할망정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별명이 괴물이라더니, 진짜 대단하네.”

“괜히 대장님을 제치고 최강 소방관 경기에서 우승한 게 아니야.”

그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율리안을 이긴 소방관.

괴물을 이긴 괴물의 모습에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움직여!”

율리안의 호통이 터졌다.

자신들도 모르게 수혁을 쳐다보고 있던 대원들이 찔끔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는 빨라.’

셋이 길을 뚫는 것과 20명이 넘는 인원이 동시에 뚫는 것은 속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하지만 부족해.’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담배 한두 개비 피면 지나가 버릴 정도로 짧은 시간.

그 시간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율리안을 불렀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만 해라.”

수혁이 요청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변 시선을 좀 차단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선을?”

이해할 수 없는 부탁에 율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력을 보충해 달라는 것도 아닌, 시선 차단이라니?

“이유는?”

율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수혁에게 물었다.

“남들에게 보여선 좋을 것 없는 게 있거든요.”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탁을 들어주면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나?”

“네. 아마도…….”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율리안은 고민하지 않았다.

수혁이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좋아.”

율리안은 곧장 대원들을 집합시켰다.

“이 주변을 둘러싸라. 기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절대 이 안쪽을 확인할 수 없도록 시야를 차단한다.”

“예? 아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분명 시간이 없다는 것을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잔해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에 내려진 뜬금없는 명령에, 대원들이 황당해했다.

“말 그대로다. 움직여.”

대원들은 궁금하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더는 토 달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명령이었음에도 충실히 따를 정도로 율리안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명의 대원이 수혁의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며 시야를 차단했다.

사람의 수가 조금 부족해 듬성듬성 틈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이 심호흡하며 속으로 속삭였다.

‘각성.’

5분간 신체 능력을 뻥튀기시켜 주는 ‘각성’ 스킬.

수혁은 전신에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손을 뻗었다.

마치 갯벌을 파헤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수혁의 손끝에 걸리는 돌덩이들은 모래처럼 부서져 나갔고, 덕분에 길을 뚫는 속도는 지금까지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콰과과과곽-!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직 한 명.

박상태만이 어느 정도 예상한 듯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수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길을 뚫었다.

가끔 보이는 붉은 표시를 피해 움직인 결과.

‘거의 다 왔다.’

‘각성’의 유지 시간인 5분이 채 다 되기도 전에, 요구조자의 위치에 거의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조심해야지.’

‘생명감지Ⅲ’로 확인한 요구조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충분히 숨이 끊어질 수 있을 정도로 쇠약한 상태.

3일이란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것 같았다.

‘운이 없군.’

지상에서는 펌프차를 이용해 수시로 물을 뿌렸다.

요구조자들에게 직접 물과 음식을 전달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흘러내린 물을 받아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요구조자는 안타깝게도 물줄기가 흐를 수 없는 구조 아래에 깔려 있었다.

덕분에 빠르게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었다.

3일간 밥을 먹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물은 다르다.

3일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다면, 충분히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이 이런 재난 현장에서 매몰되어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더욱 그럴 확률이 높았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수혁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지만 빠르게 나머지 길을 뚫었다.

길은 고작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파내기 위함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때, 수혁의 손이 멈췄다.

마침내 요구조자의 신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 물 내려줘요!”

수혁이 위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박상태가 물을 적신 수건을 수혁에게 건네주었다.

수혁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요구조자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요구조자는 이십대 남성.

이미 의식은 잃은 지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당연히 물을 마실 수도 없는 상태였기에, 수혁은 수건을 짜서 요구조자의 입가로 흘렸다.

의식이 없는 상황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물을 받아들였다.

‘좋아!’

이런 반사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드라우지, 혹은 스투퍼.’

의식 수준은 그 정도인 것 같았다.

세미코마나 코마 상태였으면 이런 반응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좋다는 뜻이었지, 요구조자의 상태가 괜찮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수혁은 빠르게 요구조자의 몸을 덮고 있는 잔해들을 치워냈다.

일단 수분 보충으로 급한 불을 껐으니, 부상 범위를 확인해야만 했다.

‘눈에 띄는 부상은 없어.’

뼈가 골절된 곳 몇 군데를 제외하면 큰 외상은 없는 것 같았다.

내상은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해봐야 알 것 같았고.

“옮겨도 되겠어.”

다행히 의식이 없는 상태인지라, 통증에 둔감했다.

골절된 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인지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요구조자 발견! 지금 바로 구조합니다!”

수혁이 소리를 질렀다.

“준비해!”

율리안이 수혁의 외침에 반응했다.

잠시 후, 로프와 함께 구조용 하네스가 내려왔다.

수혁이 업고 가는 편이 훨씬 빨리 구조를 할 수 있었지만, 길이 너무 좁았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요구조자를 로프에 매달아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수혁이 요구조자의 몸에 하네스를 착용시키고는 로프를 연결했다.

“올려요!”

수혁이 소리치자 로프가 팽팽해지며 요구조자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혁 역시 그 속도에 맞춰 올라가며 요구조자가 부딪히지 않도록 조절했다.

“왼쪽으로!”

수혁의 외침에 로프가 왼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차례 장애물을 피하자, 드디어 요구조자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엠마를 구했던 때와는 달리, 주위는 조용했다.

대원들이 철저하게 주변의 시선을 차단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 기자나 일본 구조팀도 접근하지 않은 상태.

수혁은 안심하며 요구조자를 땅에 눕혔다.

“구급대! 당장 들것 들고 튀어와!”

율리안이 무전기를 들고 다급히 구급대를 호출했다.

그러곤 요구조자를 살폈다.

“상태가 좋지 않군.”

다른 부상들보단, 탈수 증세가 문제였다.

수혁이 임시방편으로 물을 먹이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턱도 없었다.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바이탈도 불안정합니다. 골절도 최소한 네 군데 이상이고, 전신에 입은 열상으로 출혈량도 상당합니다.”

언제 숨이 끊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율리안은 다시 한 번 무전기를 통해 소리쳤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함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거 뭐야?”

“설마, 생존자를 발견한 건가?”

“어? 그런가 본데?”

들것을 든 구급대원들이 달려가는 것을 본 기자들이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최대한 구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긴 했지만, 생존자 구조라는 주제 앞에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기자들이 어느 순간부턴 달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들어 회사에 연락하는 이들과 달리면서도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이들까지.

주변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일본 구조팀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구조 본부에서 지휘하고 있던 이와타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지?”

상황이 뭔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자, 이와타가 부하에게 물었다.

“생존자를 발견하고 구조한 것 같습니다.”

“뭐?”

이와타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걸 왜 보고하지 않았나! 구조하기 전에 미리 보고했어야지!”

그랬더라면 자신도 미리 그 자리에 가 있었을 것이다.

이와타는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부하를 질책했다.

하지만 부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저희가 구조한 게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이와타는 순간 불안해졌다.

설마 자신이 생각하는 게 아니길 빌었다.

“한국의 김수혁이 독일의 구조대원들과 함께 구조했다고 합니다.”

“이런 젠장!”

부하의 대답을 들은 이와타가 손에 든 무전기를 집어 던졌다.

콰작- 하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가 부서지며 플라스틱이 사방으로 튀었다.

“너희는 대체 뭘 하고 있었어!”

독일의 구조대원이라고 해봐야 20명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수혁과 몇 명을 더 합쳐봐야 서른도 채 되지 않는 인원.

그에 반해 자신의 부하들은 120명에 달했다.

적어도 네 배 이상의 인원이 해내지 못한 일을, 수혁이 해낸 것이다.

무조건 김수혁보다 더 큰 공을 세우라는 명령을 떠올린 이와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래서야 명령을 완수하기는커녕, 수혁과 비교되어 초라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만회를 해야 해.”

이와타의 눈동자에 독기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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