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03화
날이 밝았다.
어제와는 달리 수혁은 가장 먼저 준비를 끝내고 로비로 나갔다.
‘시간이 꽤 남았을 텐데…….’
오늘 한국 지원팀은 오후에 현장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오전에는 일본 지원팀의 순서였다.
그들은 벌써 현장으로 갔는지, 로비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혁은 로비에 놓여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러곤 티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는 신문을 들어 읽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당연하게도 독일어로 되어 있는 신문 내용은 하나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은 알아볼 수 있었다.
“쯧.”
신문의 1면을 본 수혁이 혀를 찼다.
수혁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내용이 대충 짐작이 되었다.
4라는 숫자와 함께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으니까.
‘네 명의 요구조자를 구조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왜 하필 수혁의 얼굴을 가져다 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혁이 생각하기엔 당연히 구조된 사람들의 사진을 올려야 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기자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까.’
도무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수혁은 신문을 뒤적거렸다.
혹시나 추가 구조가 있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런 내용처럼 보이는 기사는 없었다.
“없나 보네.”
수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신문을 접어 다시 내려놨다.
하긴, 남은 요구조자들의 구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난이도도 높았다.
요구조자들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뭐할까…….’
휴식은 충분히 취했다.
더 자려고 해봐야 잠이 오지 않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 놀러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참을 조용한 로비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는 북적였다.
테러와는 별개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보다야 훨씬 여유로워 보이지만.’
사람들과 거리를 구경하던 수혁이 어느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저 양반들은 아직도 있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기자로 보이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수혁을 취재하러 온 이들 같았다.
‘지치지도 않나.’
한편으론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수혁은 애써 기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밖을 구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수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좀이 쑤셔서 안 되겠다.”
그러곤 곧장 그길로 박상태의 방을 향해 올라갔다.
똑똑-
노크를 하자 잠시 후 방문이 열렸다.
“누구… 응? 무슨 일 있냐?”
방금 전에 일어났는지, 박상태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다 수혁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요.”
수혁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기로 했다.
“저 현장에 가볼게요.”
“뭐?”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팔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20분.
현장에 나가기엔 너무도 이른 시간이었다.
오후 4시에 집합해서 같이 출발하기로 했으니까.
“아직 멀었는데?”
“딱히 할 일도 없어서요. 방에서 멍 때리고 있느니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구하는 게 낫죠.”
“너 피곤하지 않……. 아니지.”
말을 하던 박상태가 고개를 저었다.
수혁은 자신들과 달랐다.
어제는 꽤 힘든 하루였지만, 수혁에게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박상태는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너도 들어와.”
“왜요?”
“들어오라면 들어와, 새끼야.”
수혁이 투덜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오자, 박상태가 욕실로 향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씻고 나올 테니까.”
“응? 형도 가게요?”
“그럼, 인마. 너 혼자만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냐?”
박상태는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욕실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수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혼자 가는 것보단 박상태와 함께 가는 편이 더 도움이 될 테니, 굳이 사양할 필요도 없었다.
박상태의 체력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햇병아리도 아니고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으니 알아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수혁이 잠시 기다리고 있자, 샤워를 끝낸 박상태가 욕실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치고는 몸이 좋으시네요.”
“인마, 내가 이래 봬도 몸 하나는 어디 가서 안 꿀려.”
“네네, 그러시겠죠.”
수혁은 놀리듯 말을 했지만, 박상태의 육체는 사십대를 눈앞에 둔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다.
몸만 봐도 평소 박상태가 얼마나 많은 운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박상태는 수혁이 더 놀릴 새라 빠르게 옷을 입고는 문을 열었다.
“가자.”
둘은 방을 나섰다.
“잠깐만 기다려.”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박상태가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곤 노크를 하고 기다렸다.
“누구, 아, 팀장님?”
방의 주인은 바로 박상태 팀의 대원 중 한 명인 전진형이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조금 전의 박상태와 마찬가지로 전진형은 피곤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별일은 아니고. 나는 이 녀석이랑 먼저 현장에 가 있을 테니까, 출발 시간 되면 네가 애들 인솔해서 데리고 와라.”
“지금요?”
전진형이 깜짝 놀라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멀었으니까 좀 더 자라. 우리는 먼저 가는 거야.”
“아, 알겠습니다.”
그는 수혁과 박상태를 미친놈 쳐다보듯 했다.
출발 시간까지 주구장창 쉬어도 모자랄 판에 먼저 가다니?
두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맡긴다.”
박상태는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는 수혁에게 눈짓했다.
“일 맡길 만한 분이에요?”
“어. 꽤 실력도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가니까.”
대원들을 인솔해서 현장에 오는 것이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으니 별문제 없었다.
수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박상태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는 여전히 조용했다.
몇몇 직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네.”
“밖에 나가면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어요.”
“기자들이 아직도 있어?”
“아까 보니까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모자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있어요.”
그렇게 말한 수혁이 프론트 데스크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직원에게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택시 도착하면 기자들이 붙기 전에 타고 현장으로 튀면 돼요.”
수혁을 발견한 기자들이 뒤따라오겠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더는 귀찮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그냥 밖에 나가 택시를 잡아야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직원이 호출한 택시가 도착하자, 수혁과 박상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러곤 바로 출발해 버렸다.
뒤늦게 수혁의 존재를 확인한 기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왔지만, 이미 늦었다.
그 숫자는 대충 봐도 30명이 넘어 보였다.
“많이도 숨어 있었네.”
대체 어디서 저 많은 사람이 튀어나온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까 봤을 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혁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었다.
방심했다간 아차 하는 순간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 세례를 받기 십상이었다.
“저, 혹시…….”
수혁과 박상태가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택시기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기사는 어설픈 영어로 말을 했다.
“혹시 한국에서 온 김수혁입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
수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당신이었군요!”
기사의 음성이 한껏 들떴다.
“오늘 아침에 기사를 봤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수혁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를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기사는 연신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한국이란 먼 나라에서 독일에 도움을 주러 와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이다.
비록 기사는 구조된 사람들과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애도했고, 실종된 사람들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렸으니까.
수혁은 기사를 만류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기사에게서 진심이 강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어느덧 현장에 도착하자, 기사는 마지막으로 수혁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택시비는 괜찮습니다.”
“아니, 그래도…….”
“지금 당신들에게 돈을 받으면, 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겁니다, 하하!”
과장이 가득한 말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자신의 이웃, 친구, 가족을 구하러 가는 사람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돈을 받다니?
절대 그럴 순 없었다.
수혁과 박상태는 한사코 돈을 받길 거부하는 기사 덕분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마음만.”
“……감사합니다.”
수혁은 택시에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사람들을 구해주십쇼.”
의도한 말은 아니겠지만, 기사의 말은 수혁에게 부담감을 심어주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오늘 남은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겠지만, 현장의 일이란 게 항상 계획처럼 돌아가진 않는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노력을 해보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현장으로 향했다.
“김수혁이다!”
“어디? 어디!”
현장 주변을 맴돌고 있던 기자들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수혁이 흠칫- 놀랐다.
그래서 달릴 준비를 하는데, 의외로 기자들은 수혁을 향해 모여들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만 찍을 뿐이었다.
‘응?’
숙소 앞에 있던 기자들과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좀 제대로 된 기자들인가 보네.”
박상태가 그들을 보며 속삭였다.
“자기들이 방해를 하면 할수록, 구조에 방해된다는 걸 아는 거지. 그래서 취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도 저렇게 참고 있는 거고.”
박상태의 말대로 기자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수혁을 가까이서 취재하고 싶다는 욕망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자제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다들 저런 분들만 같으면 좋았을 텐데요.”
수혁이 씁쓸하게 웃으며 현장으로 들어갔다.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120명에 달하는 일본 구조대와 꽤 많은 수의 유럽 구조대들이 흩어져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수혁은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 ‘생명감지Ⅲ’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얼굴이 굳어졌다.
‘이거 왜 이래?’
문제가 생겼다.
남은 네 명의 요구조자들 중 두 명의 생명 징후가 약해졌다.
그것도 심각할 정도였다.
어제 수혁이 처음 구조한 엠마보다도 좋지 않아 보였다.
수혁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구조 준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