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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99화 (299/425)

레스큐 시스템 299화

“이쪽으로.”

수혁의 팀과 함께 행동하기로 한 독일 소방관은 하인츠라는 이름의 구조대원이었다.

하인츠는 박상태와 그의 팀원들을 데리고 한쪽으로 안내했다.

“이곳이 여러분이 수색해 주셔야 할 곳입니다.”

“알겠습니다.”

박상태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지? 시작해.”

박상태가 명령하자, 수혁을 포함한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해 밑에 깔린 요구조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장비를 사용할 순 없었기에, 오직 손을 이용한 구조 작업이 펼쳐졌다.

한국의 구조대원들이 구조에 투입되자, 지난 며칠간 잠 한숨 자지 못하고 구조 작업을 펼치던 다른 구조대원들은 휴식에 들어갔다.

이제부턴 교대로 휴식과 작업을 번갈아가면서 밤낮 구분 없이 철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일본까지 더해지면 작업 속도가 더욱 빨라질 터.

다음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수혁은 최대한 빠르게 요구조자들을 구해내기로 했다.

“수혁 씨! 여기 한번 와줄래요?”

곡괭이를 이용해 사람의 몸보다 커다란 돌덩이를 깨트리고 있던 수혁이, 양희성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이것 좀 같이 들죠.”

양희성이 가리킨 것은 철근이 잔뜩 박혀 있는 돌덩이였다.

철근 때문에 곡괭이로도 깨트릴 수가 없는 조각이었는지라, 직접 이대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기에 수혁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혁이 손에서 곡괭이를 내려놓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음, 둘이 안 될 것 같죠? 한 명 더 부르는 게 나을까요?”

“아뇨, 충분할 것 같네요.”

양희성은 아무래도 둘의 힘만으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을 한 명 더 부르려 했지만,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무겁기야 하겠지만, 솔직히 혼자서도 옮길 수 있을 정도였다.

수혁은 잔해 쪽으로 가서 한쪽을 붙잡았다.

“셋 하면 들어올릴게요.”

양희성은 살짝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수혁의 반대쪽으로 가서 섰다.

‘과연 가능할까?’ 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나, 둘, 셋!”

수혁이 숫자를 세는 것과 동시에 힘을 주었다.

쑤욱-!

커다란 돌덩이는 너무도 쉽게 들어올려졌다.

양희성의 눈이 커졌다.

“자, 잠깐!”

생각보다 훨씬 힘이 덜 들었기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을 뻔한 양희성이 빠르게 외쳤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이거 뭐지?”

간신히 자세를 잡은 양희성이 황당하다는 듯 손에 든 잔해를 쳐다봤다.

‘이거 생긴 것만 돌이고, 무슨 석고 같은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가벼웠다.

“얼른 치우죠.”

수혁은 양희성이 의문을 품을 수 없도록 움직였다.

“어, 어. 그래요.”

잔해들을 쌓아두는 쪽으로 가서 돌을 던졌다.

쿵-! 하는 소리에 양희성이 또 한 번 놀랐다.

소리만 들으면 절대로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수혁을 향했다.

수혁은 모르는 척 몸을 돌려 다시 작업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양희성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수혁은 애써 그것을 무시하며 돌들을 들어올렸다.

‘이쪽에 한 명이 있는데…….’

수혁은 아무 곳이나 들쑤시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대한 요구조자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

‘미니 맵’을 통해 최단 거리를 찾아 그곳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아.’

현재 수혁이 내고 있는 속도라면, 길어도 두 시간 내에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간이 없다.’

두 시간이면 더할 나위 없이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수혁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생명감지Ⅲ’로 확인한 요구조자의 생명 징후가 빠른 속도로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수혁이 구조하기 전에 숨이 먼저 끊어질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지?’

지금도 수혁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였다.

더는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더 낼 순 있지.’

하지만 조금 위험했다.

‘위기감지Ⅲ’ 덕분에 최대한 위험을 피해가며 치운다고 해도, 돌멩이 하나, 철근 하나 잘못 건드리면 하중을 견디지 못한 잔해들이 추가 붕괴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구조는 물 건너간다.

그렇다고 지금 속도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음…….’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상태 형.”

박상태는 힘겹게 삽질하다, 수혁의 목소리를 듣고는 허리를 폈다.

“왜?”

“잠깐만 이쪽으로요.”

수혁의 표정에서 심상찮음을 느낀 박상태가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이 아래에 요구조자가 있어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박상태에게는 그 정도의 말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얼마나 깊게 있냐.”

“지금 속도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요.”

“그렇게 가까이?”

박상태가 눈을 부릅떴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요구조자가 있었던 것이다.

박상태가 기쁜 표정을 짓다가, 수혁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문제가 있는 거구나.”

“요구조자가 오래 못 버텨요.”

그 말에 박상태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슬아슬해요. 병원까지 이동해서 치료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더 급하고.”

“방법은 있냐?”

“없어요.”

박상태가 물었지만,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을 감수하면 30분 정도 단축을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수혁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위험’했다.

하지만 결정을 해야 한다.

기적을 바라고 지금처럼 차근차근 구조를 진행할지, 아니면 조금 위험하더라도 속도를 더 낼지.

수혁은 박상태의 팀원이었다.

수혁이 어떤 결정을 하든, 그것의 책임은 온전히 박상태에게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수혁이 박상태를 부른 것이었다.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대로 계속하면?”

박상태가 물었지만, 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박상태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후우.”

박상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순간 동안 박상태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구조가 언제나 완벽한 통제 속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박상태는 지금이 그 위험을 감수할 때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면…….’

“서두르자.”

선택했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속도를 더 내기로.

그렇게 결정할 수 있던 것에는 수혁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이놈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다.’

그러한 믿음.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박상태가 지금까지 봐온 수혁이라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박상태의 결정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받아요.”

수혁이 들고 있던 곡괭이를 박상태에게 넘겼다.

속도를 내려면 곡괭이나 삽은 불필요했다.

그냥 손으로 파헤치는 것이 훨씬 빨랐으니 말이다.

남들이 보기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수혁이 손을 뻗었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돌덩이에 수혁의 손이 박혀 들어갔다.

그러곤 마치 스티로폼을 옮기는 것처럼 돌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

‘엄마…….’

엠마는 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갑자기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주변이 어두워졌다.

‘아파.’

그러곤 몸이 너무도 아팠다.

엠마의 나이 이제 열일곱 살.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긴 했지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파악하기엔 충분한 나이였다.

‘뭐가 터진 거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스 폭발이었다.

‘운도 없지.’

오랜만에 엄마와 같이 쇼핑을 나와 들떠 있던 기분이 고통과 함께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뜬 것 같았지만, 앞은 보이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눈이 멀어버린 건 아닌지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눈에 온 정신을 집중하자, 옅게나마 실루엣이 파악되었던 것이다.

‘그냥 빛이 없는 거야.’

엠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어디 있어?’

분명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 엄마와 손을 잡고 신나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딱딱한 돌과 흙먼지만이 만져질 뿐이었다.

“흑…….”

결국엔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사, 살려줘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쳐보았다.

하지만 목구멍 밖으로 나온 그녀의 음성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 듣지 않는 이상은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몇 번이나 몸을 움직여 이 감옥을 벗어나 보려고 해봤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손가락만 까딱여도 온몸이 아팠고, 그것을 견뎌낸다고 해도 도무지 움직일 틈이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밑에 깔렸구나.’

엠마는 절망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살 수 있을까?’

처음에는 구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독일의 소방관들은 뛰어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한 시간, 두 시간, 열 시간…….

대체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가 지나자, 희망의 불꽃도 사라졌다.

‘목말라.’

목이 타는 듯이 마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최소한 하루 이상은 물을 마시지 않은 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 거야?’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이 남았다.

연애도 하고 싶었고,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산 인형도 줘야만 했다.

꿈이었던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들을 고치고도 싶었으며, 결혼도 해서 예쁜 딸도 키워보고 싶었다.

‘이대로 죽기 싫어.’

엠마는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렸지만, 말라 버린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저 흐느끼는 신음과도 같은 절규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때였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응?’

엠마는 가까스로 흐느낌을 멈추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제발 자신이 들은 것이 환청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들렸어!’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들려오던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분명 누군가 가까운 곳에서 잔해들을 치우고 있는 소리였다.

게다가 사람의 음성도 들려왔다.

익숙한 독일어는 아니고, 처음 들어보는 곳의 언어였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지금 엠마에게 중요한 건, 어느 나라의 말인지가 아니라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엠마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쌕쌕- 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엠마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생명줄을 쥔다는 각오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앞으로 평생 동안 말을 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제발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발 나를 좀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동시에 기적이 일어났다.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엠마의 목에서, 갈라지고 찢겨진 절규가 터져 나온 것이다.

“여, 여기 사람 있어요!”

엠마가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구조대가 오고 있었다.

***

“……들었어요?”

“그래, 들었다.”

수혁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생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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