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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96화 (296/425)

레스큐 시스템 296화

이홍관의 눈이 반짝였다.

수혁이 부담스러워 그를 쳐다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출국 심사는 최대한 간소화 되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해외 지원 파견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비행기를 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출국 심사를 거쳐야 했는데, 정부의 배려로 그 절차를 대폭 축소시켰다.

“그건 좀 다행이네요.”

이홍관의 말에 따르면 지원팀의 수가 무려 80명에 육박한다.

비록 일반 이용객들과는 다른 통로를 사용한다지만, 그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이동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줄어들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지원은 저희만 갑니까?”

그때 박상태가 물었다.

“저희라면……?”

“우리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아, 설마요.”

이홍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독일을 가려면 열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모된다.

독일 바로 옆에 있는 EU 소속의 유럽 국가들은 그보다 몇 배는 빨리 도착할 수가 있는데, 머나먼 한국에게만 손길을 내밀었을 리가 없었다.

“인접한 국가들 중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가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 박상태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상황이 안 좋습니까?”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만, 그리 좋아 보이진 않더군요.”

저 정도 지원이라면 마치 자연재해가 일어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테러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이가 지원 나온다는 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참, 일본에서도 지원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일본이요?”

이번엔 수혁의 음성이 살짝 높아졌다.

“아니, 걔들은 왜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한국에서도 지원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에서 직접적으로 요청을 했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지, 일부러 인원을 차출해서 가기엔 너무도 멀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연재해가 아닌 폭탄 테러로 인한 재난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일본도 간다고?

“그쪽도 요청을 받은 겁니까?”

“제가 알기론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였으니까요. 뭐,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그냥 두는 모양입니다만.”

‘쯧.’

수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수혁은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 일본이 한국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몇 년 후에는 일본을 향한 감정이 극에 달할 것이다.

그래서 도저히 일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인력은 곧 효율이다.

박상태의 말처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구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진다.

굳이 도와주겠다는데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일단 다른 분들과 미팅부터 하시죠.”

본래라면 이미 끝냈어야 할 일이었다.

팀 조율과 함께 구조 계획과 지휘 체계 등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견이 결정되고 하루 만에 출발했으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독일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획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독일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열두 시간.

수속과 기타 대기 시간 등을 생각하면 열세 시간에서 최대 열다섯 시간 정도가 남았다.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은 도착해서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겠군.”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고, 수혁이 그에 동조했다.

“출발하기 전에는 팀장 급 인원부터 미팅하기로 했습니다.”

이홍관은 그렇게 말하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럼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혁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었다.

많은 사람이 수혁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아직 팀장을 맡아 팀을 이끌기엔 그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십대 팀장이라니…….

팀원들부터 신뢰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죄송합니다.”

이홍관이 수혁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수혁이 손을 내저었다.

“당연한 일입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수혁도 팀장을 맡는 것보단, 박상태 밑에서 움직이는 것이 훨씬 편했다.

팀장을 맡으면 팀원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하고 싶은 대로 못 할 것이 뻔했다.

“그럼 다녀오마.”

“저는 형 팀에 넣어줘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일이냐?”

수혁이 은근슬쩍 청탁했고, 박상태는 픽- 웃으며 이홍관과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보자, 앉을 곳이…….’

14번 게이트에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십 명의 소방관.

그와 비슷한 수의 기자.

그리고 소방관들이 모여 있자 무슨 일 있나? 하며 구경하는 이들까지.

바글바글하다는 표현밖에는 떠오르질 않았다.

게다가…….

‘이거 너무 나만 쳐다보는 거 아니야?’

수혁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처음 이홍관이 수혁의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수혁을 향한 시선은 사라질 줄 몰랐다.

특히나 기자들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달려와 수혁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만약 사람이 조금만 없었더라도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수혁은 애써 기자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하며 동료 소방관들을 살폈다.

실력을 직접 봐야 알겠지만, 겉으로 봐선 다들 경험이 풍부한 대원들 같았다.

‘하긴, 모두 차출된 인원이니까.’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며 모은 인원이다.

당연히 정예 대원들을 차출했을 것이다.

저 정도라면 누구와 팀이 되어도 방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수속을 시작하겠습니다.”

박상태를 안내하고 돌아온 이홍관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수혁을 위시한 대원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조금 전에 이홍관이 이야기한 것처럼 출국 수속은 거의 프리패스처럼 진행이 되었다.

“아, 면세점 들를 시간도 없네.”

누군가 수혁의 옆을 지나가며 투덜거렸다.

‘이 와중에 쇼핑을 하고 싶나?’

지금은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해외 파견을 가는 중이다.

1초라도 빨리 출발해서 움직여야 할 판인데, 면세점이라니…….

수혁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면서 투덜거린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수혁과 비슷한 키에 말끔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나이는 수혁보다 조금 있어 보였지만, 그래 봐야 두세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듯했다.

‘젊네.’

수혁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는 여기에 모인 대원들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한 것 같았다.

다른 대원들은 대부분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정도였으니까.

그는 계속해서 투덜거리다 수혁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오, 김수혁이다.”

수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언제 봤다고 김수혁이야?’

마음 같아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수혁은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수혁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유명인을 여기서 이렇게 볼 줄이야. 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 한 방 같이 찍어도 될까? SNS에 올리려고.”

그는 자연스럽게 수혁에게 반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수혁은 허락할 생각도 없었건만, 당연하다는 듯 옆에 서서 어깨동무를 하더니 스마트폰을 높이 들었다.

“실례인 것 같네요.”

수혁이 몸을 비틀어 몸을 빼냈다.

그러곤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어, 그래?”

“제가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수혁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 그대로 앞장서 걸어갔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거참, 더럽게 비싸게 구네. 지가 연예인이야 뭐야?”

딴에는 작게 혼잣말을 한 것이었겠지만, 수혁에게는 선명하게 들렸다.

“하아.”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상대하지 말자.’

보는 눈이 너무도 많았다.

기자들은 안쪽까지 들어오지 못했지만, 다른 대원들이나 여행객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수혁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분란을 일으켰다간 구설수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잠깐 참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뒤에서 욕하던 남자는 수혁이 걸음을 멈추자 흠칫- 했다.

하지만 수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피했다.

그 역시 수혁에게 욕하긴 했지만, 괜히 안 좋게 엮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수혁은 지금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서로 시비가 붙어봐야 욕먹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는 입을 놀리지 않았다.

그가 사라지자 수혁은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아직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는 조금 남아 있었다.

그때까진 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탑승 시간이 다 되어가자, 박상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혼자 뭐 하냐?”

박상태는 다른 대원들과 달리 혼자 따로 앉아 있는 수혁을 보며 물었다.

“그냥 좀 귀찮아서요.”

“월클병인가 하는 그거냐?”

“…아니거든요? 대체 그런 건 어디서 주워 들어오는 거예요?”

“나도 알 건 다 안다, 이 새끼야. 어디 뒷방 노인네 취급하고 있어?”

박상태가 으르렁거리자 수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얘기 하고 왔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 일단은 팀부터 짰다. 나머지는 기내에서 더 이야기하기로 했고.”

“저는 형 팀 맞죠?”

“그래, 인마. 내가 힘 좀 썼다.”

박상태가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힘 좀 썼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다른 팀장들 역시 수혁을 자신의 팀에 넣고 싶어 했었기 때문이다.

한두 명이 아닌 전부가 그랬기에 박상태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정말로 애를 먹었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수혁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참 고맙네요.‘

“진짜 고생했다니까? 내 화려한 말빨이 아니었으면…….”

“말빨이 아니라 등빨로 밀어붙였겠죠.”

농담으로라도 박상태가 말을 잘한다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차라리 힘으로 모두를 꺾고 수혁을 차지했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신뢰가 갔다.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박상태가 끄응- 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실제로 그와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기에 아니라고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희 팀은 누구누군데요?”

“보자…….”

수혁이 질문하자 박상태가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네가 직접 봐라.”

수혁은 박상태에게 그것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박상태와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뽑은 거예요?”

“일단 너는 내가 우겨서 넣었고. 다른 녀석들은 대충 골랐다.”

“……그렇게 대충이요?”

“그럼 어떻게 하라고. 아는 거라곤 이름하고 나이, 소속 소방서밖에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녀석들을 무슨 기준으로 뽑아?”

“쩝.”

박상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쨌든 수혁은 박상태의 팀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뒤이어진 박상태의 말에 수혁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너랑 비슷한 또래 한 명 데리고 왔다. 아저씨들만 잔뜩 있는 것보단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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